밀양송전탑 현장의 다큐멘터리 감독 강제연행 규탄 성명서
1.
2014년 1월 7일 밀양송전탑 현장에서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 경찰에게 강제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연행 당시 녹화버튼이 켜져 있었던 감독의 카메라에는 자신이 연행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끌려나오면서 허공을 향하던 그의 카메라 앞에 갑자기 경찰들이 몰려들었다. ‘다리 들어, 다리 들어!’ 다급한 경찰의 목소리에 이어 갑자기 카메라가 붕 떴고 감독의 얼굴방향으로 앵글이 맞춰졌다. 몇 명의 경찰들에게 끌려가면서 감독은 ‘아프다, 놓아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카메라 속 경찰들은 감독의 팔과 다리를 결박하고, 점퍼에 달린 모자를 잡아당겨 숨을 막히게 하고, 쓰고 있던 안경을 손으로 뭉개버렸다.
2.
다큐멘터리 <밀양아리랑>을 제작중인 박배일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은 사건이 벌어진 당일, 크레인차량의 반출을 두고 경찰들과 주민들 간에 벌어진 대치상황을 촬영하고 있었다. 경찰은 차량 밑에서 농성중인 주민들을 끌어낼 태세였고 이에 주민들이 연행에 대비해 목에 밧줄을 걸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차량 주변에서 촬영중이었던 박감독은 차량 밑에 들어가 주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다시 차량 밖으로 나와 촬영을 계속했다. 차량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들은 이 과정에서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고 박감독은 자유롭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경찰들이 농성주민들을 끌어내려고 달려들자, 박감독은 연행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다시 차량 밑으로 들어갔다. 목에 밧줄이 감긴 상태인데도 경찰들은 농성주민들의 깔개를 잡아당기며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 있었고 박감독은 눈앞의 상황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박감독의 옷에 달린 모자를 뒤에서 획 잡아당겼다. 모자에 목이 졸려 숨이 턱 막힌 박감독이 ‘놓으라’고 했음에도 경찰은 모자를 계속 뒤에서 끌어잡아당기며 박감독을 차량 밖까지 질질 끌어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수명의 경찰들이 달려들어 박감독의 사지를 들다시피 하면서 연행한 것이다. 연행 당시의 충격으로 마이크 연결부위가 덜렁거리고 카메라의 뷰파인더 덮개는 분실됐으며 안경이 부서졌다. 경찰이 점퍼에 달린 모자를 계속 잡아당기는 바람에 감독의 목에는 상처가 났고 눈 주위에 멍이 들었다.
3.
만신창이가 되어 경찰서로 연행된 그의 범죄혐의는 ‘업무방해’다. 업무방해라니! 연행 직전 박감독이 차량 밑에서 촬영한 시간은 고작 2~3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찰나의 시간동안 차량 밑에 머문 것이 도대체 얼마나 위중한 업무방해 행위이길래 현행범으로 연행까지 했던 것인지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업무방해라면 오히려 경찰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경찰에 연행됨으로써 박감독은 농성주민들이 연행되는 당시 순간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고, 발을 동동 구르며 연행사태를 지켜보던 주민들의 안타까운 반응을 기록하지 못했다. 중요한 사건의 순간을 기록중이던 다큐멘터리 감독을 그 순간으로부터 강제로 격리시키는 것이야말로 다큐감독에겐 가장 큰 업무방해 행위이다.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며 다큐멘터리에서 기록되지 않은 것은 현실에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러한 자신의 업무방해 행위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게다가 연행되는 그 순간 그는 촬영중이었다! 그는 연행되기 서너시간 전부터 경찰과 주민들 주변에서 촬영중이었다. 심지어 박감독이 촬영을 위해 차량 밑에 드나드는 것을 경찰들이 뻔히 보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경찰들도 그가 촬영중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고 차량 밑에서 끌려나오는 그 순간에도 그가 촬영중이라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연행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경찰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마구잡이식 연행을 저지른 것이다.
4.
취재중인 다큐멘터리 감독을 공권력으로 강제연행하는 전무후무한 이번 사태에 대해서 우리는 단지 우발적이고 돌출적인 일회성 사안이 아니라 그동안 밀양송전탑 현장의 경찰들이 독립다큐멘터리 감독과 미디어활동가들의 기록활동을 고의로 방해해온 행위의 연장선에 있다고 판단한다. 작년 10월 공사재개 이후 경찰들은 밀양현장에서 카메라 앞을 일부러 가로막거나, 다큐감독들과 미디어활동가들을 에워싸고 고착시키면서 촬영을 방해해왔다. 심지어 경찰들은 카메라를 여러 차례 가격해서 크고 작은 장비 손괴를 시도했고, 촬영중인 미디어활동가를 떠밀어 운행차량에 치일뻔한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껏 전국의 어느 분쟁현장도 밀양에서 이루어진 취재방해만큼 심각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정도의 심각성을 넘어 진정으로 우려되는 바는, 이 모든 행위가 공권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억압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사건과 현장을 기록하는 카메라에 대한 공권력의 공격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밀양현장에서 박탈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공권력의 이성을 잃어버린 횡포이다.
5.
우리는 밀양경찰서 및 경남도경, 그리고 밀양현장에 들어온 전국의 경찰들에게 요구한다.
-이번 연행을 지휘한 경찰관계자들은 마구잡이식 연행임을 인정하고 감독에게 사과하라.
-다큐감독 및 미디어활동가들의 기록 및 취재활동에 대한 일상적인 방해 행위를 중단하라.
우리는 앞으로 밀양현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행위에 대해 주시할 것이며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있을 시 적극 대응할 것이다. 경찰의 가시적이고 의미있는 조치를 촉구한다.
2013년 1월 21일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문화연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 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인,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미디어 핀다,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서울독립영화제, 서울영상집단, 안산미디어공동체 미디코, 인디다큐페스티발, 인디포럼작가회의, 인천인권영화제,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 청주시네마테크 씨네오딧세이, 푸른영상
강유가람(다큐멘터리 감독), 경순(다큐멘터리감독), 공미연(다큐멘터리감독/서울영상집단), 구자환(레드 툼), 권우정(다큐멘터리 감독), 김경만 (다큐멘터리감독 / 영화제작소 청년), 김동현(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장), 김미례(다큐멘터리 감독), 김수목(다큐멘터리 감독/미디어교육교사), 김숙현(실험영화감독), 김문수(서울특별시의원 교육위원회), 김일권(독립영화 제작자/프로듀서), 김정석(독립영화 제작자/프로듀서), 김청승(다큐멘터리감독/서울영상집단), 김형남(다큐멘터리 감독), 김환태 (다큐멘터리 감독), 모성진(영화프로듀서), 문성준(다큐멘터리 감독), 박소현(미디어교육교사), 송이(영상활동가), 송환웅(참교육학부모회, 신미혜(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차장), 안보영(프로듀서), 오정훈(다큐멘터리 감독), 이도훈(독립영화비평가), 이마리오(다큐멘터리 감독), 이수정 (다큐멘터리 감독), 이원우(독립영화감독), 이지연(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장수정 (미디어활동가), 전경진(다큐멘터리감독), 전상진(다큐멘터리 감독/다큐멘터리 그룹 L336), 정상히(인디포럼 작가회의), 정용택(다큐멘터리감독), 정윤석(다큐멘터리 감독/다큐멘터리 그룹 L336), 주현숙(다큐멘터리감독), 진냥(대구학생인권연대), 최민아(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장), 최은정(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 저널 ACT!), 허철녕(다큐멘터리 감독/다큐멘터리 그룹 L336), 홍형숙(다큐멘터리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