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할머니들 (The Babushkas of Chernobyl)

체르노빌의 할머니들 The Babushkas of Chernobyl 스크린샷

체르노빌 4번 원자로 주변 방사능 피폭 지역에는 저항적 삶을 이어나가는 할머니들이 살고 있다. 왜 이 할머니들은 원전 사고 후 정부의 통제를 어기고 방사능 피폭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이곳으로 돌아온 것일까?




[전쟁속의 일상 – 탈핵·반전·평화]

체르노빌의 할머니들
The Babushkas of Chernobyl

감독 : 앤 보거트, 홀리 모리스
제작연도 : 2015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우크라이나/ 미국
언어 : 우크라이나어/ 영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71분

상영일시 : 2019.11.23(토) 16:1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3관



작품해설

1986년 소비에트 공화국의 경계에 자리했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4번 원자로가 폭발한다. 30㎞ 반경까지 폐쇄지역이 되었고 주민 약 13만 명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당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체르노빌은 다크 투어리즘 관광명소가 되었고, 비디오 게임 <스토커>의 메인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고향에서 생을 마치려는 할머니들이 방사능 피폭으로 가득 찬 고향집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살고 있다. 당연하지만 불행하게도 음식과 물은 모두 방사능에 오염 돼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방사능 피폭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체르노빌에서의 원전 사고 후의 삶은 곧 할머니들의 삶이며 현재의 생존이 된다.
“출입금지구역에서 생명은 멈추지 않아. (인간 대신) 자연이 이어받았을 뿐. 강은 전처럼 흐르고, 물고기도 전처럼 살고, 나는 총을 들이대도 이곳에 살 거야. 모든 사람은 살고 싶은 곳에 살아야지. 나도 이렇게 계속 살 거야.”

창길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방사능은 안 무서워. 굶어 죽는 게 무섭지”
핵발전의 안전 문제나 통제 불능 원전 사고의 심각성은 잠시 차치하자. 원전의 수많은 문제에 눈을 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땅에 살았던, 혹은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혹시 ‘위험’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잊은 것은 아닌지, 영화는 묻고 있다.

우리에게 체르노빌은 ‘죽음의 땅’ 혹은 ‘저주받은 땅’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날 때부터 살아왔던 땅이고, 의도했거나 혹은 의도치 않게 발길이 닿아 정착한 새로운 삶의 터전이다. 암만 구중궁궐 같은 집도 좁아터진 내 집만 못한 것처럼, 아무리 위험천만하다 해도 그 땅을 일구며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내 고향’이고 ‘내 집’이다.

체르노빌 할머니들은 원전 사고가 터지자 강제로 이주당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밤새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해가 뜨는 방향이 달라진 곳’이었다. 그녀들은 얼마 견디지 못하고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어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자신들의 땅으로 되돌아왔다. 그 땅이 그리워서 수십 킬로를 걷고, 철책 밑으로 구멍을 파서 겨우 돌아왔다. 여전히 방사능 수치는 기준치의 60배에 달하지만, 할머니들은 그곳에서 돼지와 닭을 키우고, 농사를 짓고, 가족의 묘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들은 말한다. 이곳을 떠난 이들보다 자신들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있다고. 그저 할머니들의 주장만이 아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전문가는 실제로 연구를 통해 체르노빌의 할머니들이 이주자들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며 할머니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자연스럽게 10년 넘게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였던 ‘밀양 할매’들과 지금도 성주 소성리에서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막고 있는 ‘소성리 할매’들이 떠올랐다. ‘밀양 할매’들이 산꼭대기 천막에서 쇠줄을 목에 걸고 죽을힘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송전탑은 들어섰다. 이제 ‘밀양 할매’들은 송전탑 반대를 넘어 ‘탈핵’을 외치고 있다. ‘소성리 할매’들은 지난 11월 13일 마을회관 앞에서 151차 수요 집회를 열었고, 지금도 사드와 싸우고 있다. 이미 발생한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돌아간 체르노빌의 할머니와 곧 도래할 위험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밀양과 소성리 할머니들은 다른 듯하지만 닮았다. 세 곳의 할머니들은 자신이 살아왔던 땅에서 안전하게 살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체르노빌의 할머니는 말한다. “사람은 영혼이 갈망하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여기에 살고 있다”

후쿠시마. ‘죽음의 땅’으로 불리는 또 하나의 땅. 2020년 동경올림픽을 앞두고 후쿠시마 방사능 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성화 봉송을 하고, 후쿠시마 산 농산물 선수들 식단에 올라가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무거운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이 느낄 또 다른 차별과 혐오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사고 대처 행태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위험에 무지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살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후쿠시마 밖의 삶이 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미지 참여연대 활동가
참여연대 10년차 활동가로 평화군축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겨누고 있는 총을 내리지 않는 한 전쟁의 위험은 막을 수 없습니다. 일상의 평화가 사라진 ‘평화’는 아무런 힘도 의미도 없습니다. 총을 내리고, 나와 이웃의 삶에 ‘평화’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