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빈 | 2022 | 극영화 | 28분 |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
이웃과 함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예화에게 오랜만에 딸 세지가 찾아와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엄마와 딸의 삶에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주택청약제도가 얽혀있다.
Synopsys
Her daughter Se-ji comes to Ye-hwa, a basic recipient, and asks her to live with her.
| 당신이라는 세계 |
집으로 가는 길
The way home
감독 : 차은빈
제작연도 : 2022년
장르 : 극영화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28분
상영일시 : 2024.12.1. (일) 오후 1:30
상영장소 : 영화공간 주안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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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시간
차은빈 감독
김영옥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저자, 『돌봄과 인권』 공저자
랑희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작품해설
예화의 일상에는 안부를 챙기고 먹을 것과 놀이를 함께 나누는 이웃 친구들이 있고, 바느질 솜씨를 인정하고 일거리를 주는 세탁소 사장이 있다. 이들은 예화가 독립적인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돌봄의 연결망이다. 혼자 살지만 오로지 홀로이지 않은 예화에게 오랜만에 딸 세지가 찾아와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남들만큼’ 살고 싶은 딸과 ‘각자 잘’ 살고 싶은 엄마의 삶에는 주택청약제도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얽혀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노년의 존엄한 삶을 호소하기 위해 ‘독거노인’에 흔히 떠올리는 비극적인 사건이나 외로움과 곤궁함의 이미지로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닌, 제도로 얽혀있는 삶과 관계 안에서의 유연함과 갈등, 애정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불안 혹은 위기로 간주하는 ‘고령화사회’를 수평적 유대관계를 통해 자율적이고 존엄한 삶을 지원할 수 있는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상상해 본다.
랑희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인권해설
안전하고 재미지고 평화로운 노년기 설계 : 가족중심 아니라, 생활밭 중심으로
초고령화에 인생 수명도 길어지니까 여기저기서 노년들 걱정이 많은듯한데, 실제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국가든, 시민사회든, 심지어 늙어가는 사람들이든. 걱정도 계절별, 명절별 면피용 연례행사일 뿐이다. 소위 취약계층 중에서 당사자 운동이 없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 노년 집단이라는 건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노년의 일상도 당연히 성별, 계급, 거주지, 건강 상태, 인종, 그리고 가족관계에 따라 다르다. 노년기에 이른 사람은 대체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을 만큼 겪었고, 겸손이 저절로 체화되는 건강 상태에 있다. 노년기가 가진 이런 기본 특성을 고려할 때, 노년은 지독한 빈곤이나 학대, 심각한 질병을 겪는 노년여성/노년남성과 그렇지 않은 노년여성/노년남성으로 구분될 수 있다. 개별 노년의 특수성과 개성을 지우고 집단으로 보자는 말이 아니다. 생애단계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전자의 경우 적극적 개입과 지원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후자의 경우, 특히 노년여성의 경우 개입과 지원이 적절해야, 때론 없어야 노년의 삶이 ‘재미지고’ 평화롭다. 예를 들어 자식은 경쟁적으로 펼쳐지는 자식 농사 ‘이야기’에 등장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자식이 현실 속에서 등장하면 노년의 삶은 상상력도, 비/합법적·비/규범적 이해나 지략도 빠져버린 건조한 가족 각본에 갇혀버린다. 늙어서까지 누구의 아내요, 어머니요, 할머니이길 원할 거라는 발상은, 그런 발상이 필요한 이익집단에서 계속 재/생산하는 제조품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어머니의 자식이지만, 모든 여자가 자식의 어머니는 아니다! 노년 여성은 주류 발상과 (아닌데 그런 척) 가면극을 벌이면서, 발상이 그어놓은 금의 안과 밖을 들락날락하면서, ‘자기 나름으로 대충 재미지게’ 잘산다. 가족중심주의의 참견과 훈수가 적당한 거리를 지켜주기만 하면 말이다.
1991년, 노년을 인권 차원에서 언급한 초기 단계에서 UN은 노년의 삶을 독립, 참여, 돌봄(보호), 자아실현, 존엄이라는 다섯 가지 원칙으로 정리했다. 누가 봐도 노년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누려야 할 기본 권리일 이 다섯 원칙을 콕 집어 언급한 건 왤까. 평생 이 원칙들이 골고루 지켜지지 않는 삶을 살면서 노년이 되었거나, 노년이 되어 이전에 어느 정도나마 누릴 수 있었던 걸 빼앗기기 때문일 거다. 늙으면 의존성이 늘어나 독립이 어려워지고, 그만큼 돌봄(보호) 필요가 많아지는 건 이해되는데, 그런데 참여와 자아실현은? 이 둘은 몸과 정신의 달라진 상태와 반드시 연동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회문화적 관점이나 규범과 관련한 문제다. ‘노년이니까’라는 핑계를 대고 빼앗는 거다. 이 4가지 삶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선, 당연히 존엄이 사라진다. 존엄은 삶의 총체적 구(球)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이런 현실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은 노동 계약 없이 일해서 돈 벌고, 그리고 기초생활수급도 받는다(불법? 아니면 생활의 지략?). 지난밤에도 안녕했어? 아침마다 확인하며 같이 희로애락을 나누는 친구들이 있다. 살고 있는 빌라를 중심으로 동네‘밭’에서 움직일 때 그는 잘 웃고, 일 잘한다고 칭찬받고, 농담도 할 줄 안다. 경제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자기 나름으로 대충 ‘활동하며’ 잘 산다. 노년에 대한 모든 걱정 타령이 강조하는 게 이거 아닌가? 사회문화 활동해라, 경제력을 갖춰라, 고립과 외로움을 예방해라. 잘하고 있는데 ‘가족/이데올로기’가 끼어들어 무너뜨린다. 영화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팻말에 쓰인 문구는 이런 것이다. 가족중심이 아니라, 생활의 밭 중심으로 안전하고 재미진 노년 일상을 설계하자. 다른 작물들과 함께 자라나는 밭에서 뽑힌 무는 살아남기 어렵다. 이 밭이 지역이고, 모든 사람이 심하게 아파도 집에서 살다 죽겠다고 말할 때의 그 집이다.
김영옥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돌봄과 인권』 공/저자
감독
차은빈 Cha Eun-bin
단편영화 <수희>(2021)를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에서 상영했으며, <집으로 가는 길>은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연출의도
우리는 모두 잘 살고 싶다. 인간의 필수 요소인 의식주. 그 중에 주거는 자본주의화 되어 있고 돈이 없는 사람들이 갖기 어렵다. 돈이 없는 사람들과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주택 청약제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