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아파트 Lucky, Apartment

강유가람 | 2024 | 극영화 | 95분 |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

꿈에 그린 보금자리를 영끌로 마련한 선우와 희서. 하지만 선우의 실직과 대출이자의 부담으로 둘 사이는 삐걱댄다. 한편, 선우는 아파트를 감도는 악취의 원인을 밝히려다 주민들과 충돌을 빚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지킬 수 있을까?

Synopsys

Lesbian couple Sun-woo and Hee-suh. Dream of a stable living environment and buy a small apartment, which they’ve put everything for. But when Sun-woo loses her job and injures her leg in the recession, their relationship begins to sour while Hee-suh is sorely responsible for paying the mortgage and interest. While staying at home, Sun-woo tries to find a job, but it’s not easy. Their stress level reaches a fever pitch when a foul odor starts to emanate from downstairs. 

| 다름과 연루 |

럭키, 아파트
Lucky, Apartment!

감독 : 강유가람
제작연도 : 2024년
장르 : 극영화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95분

상영일시 : 2024.11.30. (토) 오후 4:50
상영장소 : 영화공간 주안 3관



작품해설

‘영끌’로 내 집 마련이라는 과업을 완수한 레즈비언 커플 희서와 선우. 이제는 안정되고 행복해야 할 이 오랜 연인의 삶에 선우의 실직을 시작으로 온갖 위기가 쏟아진다. 희서가 직장과 일상에서 위축될 만한, 혹은 난감한 상황을 계속해서 맞닥뜨리는 동안, 선우는 냄새에 고통받는다. 냄새의 근원을 쫓던 선우는 주민들과 부딪히기 시작하고, 두 사람의 골은 더 깊어진다. 하지만 신임의 죽음에서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였던 선우는 더 깊이 연루되기를 멈출 수 없다.

최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살고 싶은 희서의 시선으로 보는 선우는 아슬아슬하다. 부동산 소유자로서 살아가는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선우가 불안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녀는 몸으로 부딪는 경계에서 내밀어진 또 다른 돌출된 손들을 만난다. 결국 선우가 부딪혀 확장한 경계 끄트머리는 앞 세대의 연인들, 그리고 다음 세대인 은주와 연결된다. 신임을 애도하는 유일한 주민이자 선우의 정체성을 자기 나름의 언어로 긍정하는 이웃인 은주는, 단톡방에서 혐오발언을 일삼던 이와는 다르게 공존의 길을 함께 더듬어 갈 수 있는 더 많는 동료시민을 기다리고 싶다.

나리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인권해설

 

2023년 기준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는 1,172만 가구로, 평균 가구원 수는 2.53명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절반 이상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럭키, 아파트>의 주인공이자 레즈비언 커플인 선우와 희서 역시 그 흔한 가구 중 하나다. 하지만 그 흔한 아파트 가구로 쉽게 융해될 수 없는 삶이 바로 이들의 삶이기도 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정상가족 생애규범을 재생산해 온 주택체계의 상징인 아파트 속 은둔자다. 한국사회의 주택 분배의 역사는 국가의 인구·가족 통치와 단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다. 청년기 안정적인 직장으로의 이행은 중산층 진입을 예비하는 단계로, 결혼·출산을 통한 이성애-정상가족의 구성은 자산증식을 거쳐 월세-전세-자가(아파트)에 다다르는 주거 이행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었다. 한국사회가 주조한 생애전환 시기의 과업과 성공적인 이행은 특정한 주거 형태로 이행하는 것과 일치해야 했으며, 그렇게 획득된 ‘아파트 중산층’이라는 표상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격과 지위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은행 대출자격이 영혼의 의미를 대체하는 시대, 정상가족이 아니더라도 끌어모을 수 있는 가족자산과 직장인 신용이 있었기에 희서와 선우 커플은 바로 그 아파트에 안착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안착의 대가는 “소문이라도 나 봐야 정신 차리겠어요?”라는 아파트 주민의 혐오와 협박이다. 희서가 자신의 파트너인 선우와 자기 스스로에게 “제발 조용히 살자”고 반복하는 요청과 다짐은 그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대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다시, ‘정상가족 중산층’이라는 계층의 유지와 재생산 욕망의 상징인 아파트 내 침입자가 된다. 집을 가족 자산증식의 기반이자 투자 대상으로 삼아온 주택상품화 과정 속에서 ‘내 집 마련’과 ‘집값 상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래층 화분 할머니의 죽음과 그 이전의 삶을 따라가는 선우의 행보는 주민 사망보다 집값 하락을 우려하게 만드는 아파트 공화국을 위협한다. 혼자 살다가 혼자 죽었지만 일생이 결코 혼자이지만은 않았던 아래층 할머니의 삶을 알게 된 이후, 선우는 자신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고 느끼게 된 죽음을 외롭게 남겨두지 않으려 분투한다. 아파트 주민들과는 확연히 다른 곳을 향하는 주인공의 절박함은 한국사회에서 ‘다른 삶의 전망’을 떠올리기 어려운 이들이 누구인지, 사회가 누락시킨 관계와 친밀성과 미래의 불안이 누구의 것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물론 선우와 희서를 둘러싼 삶의 조건은 훨씬 더 복잡하고 입체적이다. 작은 부상이나 질병에도 삶을 위협하는 불안정노동과 끊임없는 경쟁과 성차별이 일상이 된 노동시장, 공동체는커녕 서로를 감시하고 비인간화하는 아파트 불패 신화, 서민의 삶이 아니라 투기와 금융자본을 보호하는 국가 주택금융과 금리 정책, 사랑과 포용이 아니라 혐오의 상징이 되어버린 기독교,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숨기도록 만드는 정상가족의 폭력, 직업과 자산과 신용에 따른 계급격차와 관계의 위계… 이 모든 조건 속에서도 영화 속 주인공들은 끝내, 서로에게 가족-친밀성과 돌봄의 연대자가 되기로 한다. ‘조용히 살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균질한 사람들과 동일한 욕망이라는 전제는 아파트 공화국이 강요하는 환상일 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결코 단일할 수 없다. ‘조용히 살지 않기’를 실행하는 순간 주인공들을 홀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이가 보인다. 주인공들처럼 다른 삶의 전망을 꿈꾸는 이 또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두 주인공을 감싸는 따스한 햇살은 바로 이 희망을 비춘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감독
강유가람 KangYu Ga-ram

한국사회의 가족주의와 부동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모래>(2011), 여성들의 삶과 공간의 변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이태원>을 연출했다. 페미니즘 운동을 다룬 <시국페미>(2017),  <우리는 매일매일>(2019)을 연출했으며, 여성제작자들과 함께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애프터 미투>(2021)를 제작했다.  


기획의도

오래 사귄 동성 커플이 만들어가는 ‘집’을 둘러싼 커플 내의 계급 차이에 의한 현실적인 갈등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모순과 혐오의 단면을 세밀하게 그려 내고자 한다.

연출의도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가장 대중적인 주거 공간이며, 자산 증식의 수단인 동시에 중산층의 안정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레즈비언 커플 선우와 희서 역시 안정을 꿈꾸며 아파트에서의 삶을 택했다. 하지만 이사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아랫집 여성의 독거사를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고여있던 경제력 차이라는 문제와 소위 ‘정상성’의 공간에서 드러나는 성소수자 혐오를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사건 속에서 각자에게 내면화된 불안의 요소들을 만난다. 남들만큼 살지 못할까봐 초조했던 삶, 외부의 지지를 받을 수 없어 흔들리는 관계. 사실 이 불안들은 체제 안으로 편입될 수 없게 만드는 혐오에서 기인한다. 아랫집 독거사로 인한 시취를 해결하려는 선우의 강박은 사실 자신 역시 시취를 뿜게 될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닿아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선우는 애도의 방식을 택한다.

<럭키, 아파트>를 통해 ‘혐오’란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계기와 접촉하는 순간 존재가 드러나는, 마치 바이러스와도 같이 스며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다. 정상성에 집착하는 사회일수록 혐오가 발현되는 계기는 많고 혐오의 강도 또한 강할 것이다. 동시에 안정과 안전, 인정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기에 동성애자들의 삶도 이성애자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