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사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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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회 인천인권영화제 폐막작 |

1980 사북
1980 Sabuk

감독 : 박봉남
제작연도 : 2024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수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128분

상영일시 : 2024.12.1.(일) 오후 6:00 
상영장소 
: 영화공간 주안 4관

기획의도

사북 항쟁을 이야기하는 맥락은 대부분 탄광 노동자가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었는지, 국가는 이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어떠한 폭력이 가해졌는지 등 국가폭력의 맥락에서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동자들 안에서도 서로 결이 달랐기에 그에 따라 발생한 폭력이, 아직 치유되지 못한 것이 여전히 침묵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사건에 휘말려 각자의 정의를 위해 나섰다고 하나, 정의란 무엇인가.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이 무엇일까. 저질러진 폭력을 마주볼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말할 수 없었던 것, 말해지지 못했던 것들이 꺼내지기 시작했다. 

대화의 시간 기록 


박봉남 감독
박다영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수용시설 담당 조사관
희우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이래봄 명혜진, 이현진 (수어통역)
이종환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문자통역)

희우

안녕하세요? 29회 인천인권영화제 폐막작 <1980 사북> 같이 보셨습니다. 저는 이 대화의 시간을 진행할 인천인권영화제 희우고요. 게스트 두 분을 모실 텐데요. 같이 모셔서 이야기 듣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겠어요?

[박수]

이번 대화의 시간은 이래봄 명혜진, 이현진 수어통역사 함께 하십니다. 문자통역은 AUD사회적협동조합 이종환 님 함께 하고 계십니다.

[박수]

박수 감사합니다. 먼저 게스트로 모신 두 분 자기소개와 함께 관객분들과 인사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박봉남

안녕하세요, 박봉남 감독입니다. 오랫동안 이 작품을 만들었고요. 이 작품이 세상에 나와서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고, 그 사건의 피해자들, 피해 내용들이 밝혀지고 사과를 해야 할 주체들이 사과를 하고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박다영

안녕하세요, 저는 진실화해위원회 박다영 조사관입니다. 저는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던 시기에 재단법인 진실의힘에서 사북항쟁 고문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다큐에 출연하시는 대부분의 분들을 직접 만나서 당시 어떤 정선경찰서에서 어떤 고문 피해를 입었는지 들은 바 있습니다.

희우

지금 저희가 대화의 시간을 진행하면서 관객분들께서도 참여가 가능하십니다. 입장 전에 나눠드린 티켓에 QR코드가 있습니다. QR코드를 통해서 단체 카톡방에 들어오시면 남겨진 메시지가 저에게 전달이 됩니다. 그래서 채팅방에 의견도 좋고, 관객분들이나 게스트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좋고, 질문도 물론 환영입니다. 남겨주시면 조금 이따가 공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관객분들께서 질문을 생각하시는 동안 제가 준비한 질문을 먼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 질문은 감독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영화를 보셔서 다들 아시겠지만 국가폭력에 국가가 가해자다. 그에 당한 사람은 피해자다. 이렇게 정의를 하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보시면 가해, 폭력이 뒤섞여 있는 현장을 보실 수 있으셨을 텐데, 이런 가운데 진실,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많이 묻혀 있는 건데요. 영화에서는 사북이라는 장소에 과거, 현재 그리고 지금 안에 있는 이들의 과거, 현재도 함께 담겨져 있습니다. 이 사이에 얽힌 것들을 꺼내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감독님께서 공들여서 재연하시려고 했던 이유가 있다면요?

박봉남

이 영화 보기 힘드셨죠? 두 시간이 넘는데 힘드셨을 거예요. 저도 볼 때마다 힘듭니다. (웃음) 이 사건은 매우 복잡합니다. 사건의 가해자들은 은폐가 되어 있고,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기업과 국가는 안 보입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명백하게 있고, 고통을 호소합니다. 피해자들의 한 축은 당시 사건에 참여를 했고 잡혀가서 고문을 당한 광부와 가족들이고, 또한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조지부장의 아내가 광부들에게 집단 폭행, 성적 가혹행위를 당합니다. 그들도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압에 동원되었던 경찰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물론 경찰들은 당시 사건을 촉발한 책임자입니다. 사법 형사들이 늘 노조를 감시해서 뺑소니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렇게 폭력화되었습니다. 그런데 또다른 경찰들을 보면 시위에 아무런 것도 모르고 왔다가 아주 적대적으로 대하는 광부들한테 맞고, 죽고 그런 피해자거든요. 그래서 이 사건은 피해자들이 여럿 있는데 그 피해자들이 서로 미워하고 있다. 증오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매우 어려운 어떤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걸 어떤 노동운동이나 항쟁이라는 측면으로 보기에는 사건을 총체적으로 보기 어렵다.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각자 이야기들을 다 들어보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음해를 하는 게 무엇인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습니다.

희우

보시면 처음에는 노동항쟁처럼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서고 그들이 국가로부터 당한 폭력이 나오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어?’ 싶은 피해의 모습들이 계속 등장을 하잖아요. 그래서 그걸 보면서 감독님이 찍으면서 되게 힘드셨겠다, 힘든 조사를 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박봉남

네, 영화를 보면 경찰관이 한 명 나오지 않습니까? 진문규. 눈물을 흘리는 경찰관이 있죠. 저는 그분 인터뷰를 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과 인터뷰를 한 날이 2000년 4월 22일이었습니다. 딱 40년 전 그분이 돌에 맞고 뇌수술을 하고 중태에 빠졌습니다. 우연히 인터뷰를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사실 내가 우리 아버지가 광부였고, 나도 석탄을 캤고, 그리고 내가 돌을 맞아서 정신을 잃었을 때 누군가 나를 껴안고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늙은 광부였던 거로 기억을 한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자기 사촌형이 있습니다. 진복규라고 영화에 잠깐 언급이 되는데 난동 사건으로 실형을 당한. 자기 사촌 형이 광부인 거죠. 저는 그분의 눈물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거든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가 의식을 회복하고 2년 후에 동원탄좌에 혼자 가 봤답니다. 나를 구해 준 광부가 누구인지 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분이 누군가 아직도, 그분을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사건을 한 측면을 보기 되게 어렵다, 지역 공동체의 특성상 다 연결이 된 것도 있고. 그래서 선과 악으로 구분을 하기가 되게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내용들을 파악을 하고 그들에게 위로를 해 주고, 필요하면 당사자들이 사과를 하고 손을 건네는 일이, 그 작업이 되어야만 사북 사건은 국가의 사과를 받을 수도 있고, 어떤 상처가 치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희우

아마 영화를 보면서 4.3이나 다른 국가 폭력 사건을 떠올리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런 국가 폭력 사건에는 이렇게 안에 엄청나게 많은 분들이 얽혀 있고 다 뻗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다영 조사관님에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같이 영화를 보신 입장에서 어떤 장면이 인상깊으셨나요?

박다영

저는 광부 피해자인 이원갑 님이 마지막 다른 여성 피해자 김순이 님에게 사과를 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이 깊었는데요. 감독님이 앞서 말씀을 하신 것처럼 이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 이렇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피해자 간에도 수평적으로 또 다른 피해가 존재를 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다 보면 피해자들이 늘 하는 말이 ‘나의 고통이 가장 크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고문의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당한 피해를 목격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가 당한 피해가 가장 클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이제 고문 당시 상황으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고문을 받은 여성의 아들이 진술한 것처럼 그 이외에 가정 폭력이나 가정 해체나 계속해서 피해는 연속적으로 발생을 하기 때문에 그것까지 생각을 했을 때는 내 피해가 가장 클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저희가 이제 이 사건에 대해서 다시 질문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전체 피해자는 누구인가? 질문을 한다고 하면 저는 광부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원갑 씨도 광부고요. 김순이 씨도 광부의 아내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간 탄광에서 일을 하다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간 광부도 다 광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사과를 하는 사람도 유일하게 광부 한 명이고요. 다만 사과를 하지 않은 사람은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누구에게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희우

저도 사과의 주체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이 사과를 누가 해야 하는가?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당연히 국가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사과할 곳을 찾아가는 사람을 보면 국가의 사과가 부재한 모습이 너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영화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정선경찰서 앞에서 노년의 여성이 막 화를 내시기에 저분의 남편이 끌려가셔서 많이 고문을 당하셨나보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저도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남성 광부들이 많이 고문을 당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후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이 밝혀지고 나니까 그 분도 고문의 대상자고 피해자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감독님께서 남성 광부들의 이야기로 폭력을 당한 남성 광부의 이야기에 더해서 여성의 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하신 건데요.

박봉남

여성 관객들이 많으시기 때문에 그 장면들, 거기 나왔던 광부의 아내. 그분들의 내용들, 증언들이 좀 충격적으로 느껴졌을 거예요. 이명득 님이 정선경찰서 앞에서 욕설을 할 때 제가 혼자서 찍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이 분이 이렇게 욕을 하나? 개새끼들 이렇게 말을 하나? 들으면서. 나중에 보니까 욕설을 하고 있었고, 그리고 제가 인터뷰를 요청하기 전에 그러니까 3개월 후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이. 장례식을 혼자 찍고 그때까지도 왜 그렇게 분노를 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여기 보셨듯이 처음 발견한 2008년 증언 영상을 같이 보고 비로소 이명득 님의 깊은 상처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한, 아들한테도 못 하고, 남편한테도 못 하고 오로지 08년도에 조사관한테만 증언을 했거든요. 제가 여기 영화에 차마 담지 못한 성적 가혹행위와 언어 폭력들을 이분들이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건 2차 가해 때문에 차마 넣지 못했고, 왜 그렇게 했을까? 이유를 생각해 봤거든요. 첫 번째, 광부의 아내들은 거의 짐승 취급을 당했다. 조사관들로부터, 경찰들로부터 광부의 아내들은 탄광촌을 떠났던 주역입니다. 살림을 하는요. 가사 노동을 담당하고 때로는 여성들이 탄광에서 일도 했던 중요한 인물인데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게도 끌려 간 여자들은 짐승 취급을 당했다. 두 번째 이유는 김순이 그분을 린치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보복 행위를 당했다. 그래서 더욱 가혹합니다.

사실 여기에 나온 분들은 폭력 행위에 가담한 분이 없거든요. 실제로 가담한 거로 보이는 분들은 잡히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보면 폭력이 폭력을 또 부르고, 그래서 당시 끌려갔던 여성들 20, 30명이 되는데 그분들이 당했던 피해, 그분들의 명예회복들이 꼭 필요하다. 그 점들을 여기 계신 관객들이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희우 

참,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데요, 영화에 여러 가지 폭력이 나옵니다. 보기 힘드셨던 것처럼 폭력을 가하는 주체도 여러 가지고 피해자도 여러 층위에 걸쳐져 있는데요. 제가 이런 영화 대화의 시간을 준비하면 항상 고민이 되는 게 폭력과 상처가 분명히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어떻게 내가 듣고 어떻게 이걸 이야기를 하고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아져요. 그런데 이런 피해자 조사하는 위원회에서 일을 하시니까 박다영 조사관 님이 폭력, 상처가 분명한데 이거로 이야기를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사건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으실 것 같아서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다영

저도 질문을 받고 되게 많이 고민을 했던 내용인데요. 사실 피해자들이 진술을 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 지났어요. 사건이 1980년에 시작이 되었지만 2008년, 진화위 1차 조사를 통해서 처음으로 피해자들이 본인들의 고문 피해 사실을 진술했기 때문에 28년이 지난 후에 처음 말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러고 나서 이제 피해자들은 여러 방면으로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저는 사북항쟁이 대다수가 아는 어떤 1980년대의 노동항쟁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렇게 되기 때문에 오늘 오신 관객분들한테도 굉장히 낯설었을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광부가 자기들의 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사실 사북 사건 항쟁 처음 접했을 때 사북이라는 지명도 익숙하지 않았고, 제가 사는 세상에서 광부라는 직업은 이미 사라지고, 잊혀지고, 어쩌면 필요하지 않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과거 당했던 피해를 2020년대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제가 조사를 했을 때 그 피해사실도 지금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요. 그 고민 끝에 이르는 것은 그냥 피해자들의 말하기를 계속 들어주는 것밖에 답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고문 피해를 듣는 것도 너무 어렵고, 지금에 와서 과거의 사건을 다시 되짚어보는 것도 굉장히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부 분들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투박한 방식이라고 생각도 들지만 광부 분들이 목숨을 걸고 탄광에 들어가서 매일 탄을 캤던 것처럼 지금도 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여기 계신 관객분들이라도 알아 주셨으면 저는 광부 분들의 말하기가 충분히 유효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희우

답변 감사합니다. 그 마음이 조금 전달이 됐나 싶은 관객분의 감상이 있어서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영화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분들과 이야기를 엮어 주신 감독님, 영화를 보고 대화의 시간 마련해 주신 인천인권영화제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 주셨고요. 광부 분들이 계속 이야기를 하시고 그걸 감독님과 조사관님들이 듣고 이렇게 전달이 될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가 마련된 거 자체로도 한 발자국 나아가는 일이 아닌가 감히 생각을 해 봅니다.

계속해서 감상이나 질문 남겨주시면 전달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질문은 감독님에게 드리겠습니다. 편집이 촬영도 그렇지만 편집도 굉장히 오래 걸렸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제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흘러온 시간 만큼 고뇌도 느껴지고 나오는 것도 그렇지만 자기 속 이야기를 하게 만들려고 하면 어려워질 것 같거든요. 그런 걸 담으면서 이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깨달았던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박봉남

영화에 출연자로 나오는 황인욱 씨, 정선지역 소장과 대학교 선후배 사이입니다. 그 인연으로 황인욱 형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중간에 몇 번 후회를 했어요. 이게 너무 어려워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렵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렵고, 특히 김순이 님의 자식들. 저보다 나이들이 훨씬 많으니까 형님들인데 그분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 그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분들을 처음 연락을 해서 인터뷰를 하는 데까지 2년이 걸렸고요. 그전에 만나 주지를 않아요. “당신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당신 마음대로 할 거 아니냐.” 그러고 나서 인터뷰를 하고 편집본을 보여주고, 자기들 이야기를 다 빼라고, 우리들의 이야기 넣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를 듣고, 그래서 처음에는 다 빼고 편집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사건의 주요한 당사자의 가족인데 그들의 이야기를 빼고 간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편집을 해서 보여 주고, 의견을 듣고, 큰형님과 등반도 가고, 다시 만나고 그렇게 하는 데 2년 정도 시간이 걸렸고요. 9월 DMZ 영화제에서 상영을 할 때 형님들을 초대를 했거든요. 형님들이 와서 보셨어요. 보시고 조금 마음이 바뀌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후에 몇 번 형님들의 요구 사항이 있으면 저는 다 수용을 했거든요. 때로는 약간 무리다 싶은 요구가 있어도 다 수용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족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한 적이 없거든요. 그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본 적이 없어요. TV든, 영화든.

그래서 내가 협상가처럼 대하고 싶지 않았고, 형님들의 아픔과 이야기를 다 듣겠다. 설령 그게 사북항쟁에서 불편하더라도 다 듣고 봐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그 문제를 푸는 게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고, 또 하나는 이제 여기에 나온 분들 중에 네 명이 돌아가셨어요. 진행 과정에서요.

천만성, 스님 되시는 분도 만나고 제가 몇 개월 전화를 했는데 우리 스님 돌아가셨고, 강윤호, 무기고 파손 혐의로 실형을 살았다가 무죄 받은 분은 올해 2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몰랐어요, 혼자 돌아가셨어요. 영화제 초대를 하려고 했는데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요. 임창재 기자도 돌아가셨고, 그런 것들을 볼 때 힘들었고, 하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얻은 위로는 무엇이냐 하면 이 사건은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이고,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데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 그런 점에서 사북 사건을 좀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좀 가지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희우

영화에 등장하는 강윤호 님 돌아가셨군요.

박봉남

네, 2월에 쓸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희우

카톡에 남겨주신 분이 계시거든요. 무죄 판결을 받고 연신 고맙다고 했는데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국가의 진심어린 사과 배상으로 사북항쟁 피해자 명예회복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남겨 주셨는데요. 저도 그 장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리고 변호사가 딱 짚어서 말을 한 부분. 간병인도 그렇고, 판사가 대신 사과를 하더라는 게 그분 마음에 맺힌 게 어떤 건지 알고 계시는 분들이 그 말을 꼭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사과라는 말이. 그런 생각이 들고, 판사가 아닌 국가가 사과하는 걸 보셨으면 더 감동에 젖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좀 듭니다.

지금 오픈채팅방에 남겨주신 분도 계시지만 혹시 본인의 목소리로 말을 전하고 싶다 혹은 어떤 방법으로 표현을 하고 싶다는 분 계시면 신호를 주시면 마이크를 전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계실까요?

박봉남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답변해드리겠습니다.

희우

마이크의 기회가 있다는 걸 처음에 말씀을 드리지 않아서 지금 부담이 있으실 수도 있지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준비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웃음) 그러면 또 오픈채팅방에 올라온 질문과 더불어 박다영 조사관님에게 드릴 질문이 있습니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 어떤 태도여야 할지 아까도 잠깐 말씀을 드렸는데 같은 고민을 하신 적이 있다고 하셔서 그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고요, 카톡에서 질문해 주신 분께서 진화위에서 진실 규명과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박다영

피해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건 일반 관객분들이나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조사관이지만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가 진화위에서 사북 광부에 이어 수용시설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좀 알고 계실 것 같은 형제복지원과 같은 80년대 운영되었던 부랑민 피해시설인데요. 그분들을 사실 업무적으로 만나서 가장 큰 어려움은 그냥 듣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에요. 이분들이 이야기를 하는 피해사실에서 어떤 것들은 사실 관계를 확인을 해야 하고, 어떤 것들은 틀린 걸 정정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게 맞고 아닌 것을 가르는 과정이 굉장히 어려운데요.050

그러다 보면 듣기가 좀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집중해서 이 사람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제가 신뢰를 해야 하는데 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어떤 것들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어떤 건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그럴 때 제가 좀 마음을 다잡는 것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 내가 그 사람이 겪었던 시간으로 같이 돌아가기 위해서 노력을 하자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건과 관련이 없는 이분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제가 많이 질문을 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어떤 신뢰 관계가 쌓였을 때는 같이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사실 고문을 겪었던 그 상황에서는 오직 혼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제가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결국 그분은 혼자가 아닌 게 되는 거죠.

그 고문을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공감을 할 수도 있고, 마음이 어땠는지 물을 수도 있고, 그 상황 때문에 어떤 것들이 힘들었는지 묻고 대답을 제가 듣게 되면 같이 시간을 견뎌 온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렇게 제가 진술을 끝낸 날이면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굉장히 홀가분하게 마무리를 하시고, 저 또한 제가 더 이상 해 드릴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화는 충분했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계신 관객분들도 또 다른 사북 피해자뿐만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과 어떤 대면을 할 때 편하게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면 설명을 해 주시는 부분이 있으세요. 그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과 우리가 대화를 한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오히려 그 시간이 좀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너무 좀 무겁게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저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이것만 생각을 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희우

그 고문을 당한 당신 혼자겠지만 이 이야기를 다시 들으면 들어주는 사람이 그 시간을 같이 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되게 와 닿았습니다.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이분들에게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할 때 있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생각을 하면 확실히 저도 약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옆에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박다영

그리고 진화위 조사 관련해서는 사북항쟁의 경우 08년 진실규명 결정이 나왔고, 지금 2기 진화위에서도 일부 신청에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진화위 한계라고 할 수 있는데 위원회에서는 신청인들에 대한 조사만 진행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5명 중에 같은 사건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2명이 신청을 하면 2명에 대한 진실 규명 결정이 나오는 거예요. 나머지 3명은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위원회 신청을 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결정서를 받지 못하는 것이 최대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진화위에서 어쨌거나 두 차례에 걸쳐서 사건을 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만날 수 있는 분들은 저나 다른 조사관께서 만났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또 다른 한계를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 위원회에서 사북뿐만 아니라 여러 과거사 사건을 조사하면서 어려운 점이 진실규명 결정 외에 국가 사과를 권고한다고 하더라도 국가 사과를 거의 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그 진화위 결정만으로 어떤 국가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법원에서 재심위나 손해배상을 통해야만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모든 피해자들이 결정을 받고 나면 손배를 몇 년간 진행을 하고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국가로부터 배보상을 받고 있어요. 이 구조 자체에 대한 고민을 저희가 해 봐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저희는 법원의 판단에 목을 매고 있을까? 아무리 큰 금액을 배상을 하더라도 저는 피해자들한테 굉장히 부족하다는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화위가 종료를 앞두기도 하고, 과거사에 대한 진실규명 절차가 위원회, 법원의 손배상으로 계속 갈 것인가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희우

배보상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사과를 받았는지는 좀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그래도 그거라도 받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게끔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질문에 답변이 되었기를 바라며 다음 질문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이 대답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에 편지는 전달이 되었을까요?”

박봉남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아직 전달을 하지 못했고, 아직 부치지 못한 거죠. 그럴 때가 아닌 거죠. 편지라는 것들은 상대가 받아야 하는데 언젠가 그 편지가 이원갑 선생님이 직접 살아 생전에 그 편지를 손에 들고 김순이 님  자식들 큰아들 손에 직접 쥐여주길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희우

지금 돌아가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약간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지만 시간이 필요한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관객분들이 아마 편지가 전달되었기를 바라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이 질문을 하신 것 같은데 조만간 이루어지길 저도 같이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이 있는데요. 사북에 사셨대요. 그래서 사북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셨대요. 

“감동적이고 중요한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탄광을 닫고 강원랜드. 카지노가 열린 거로 알고 있는데 사북에 어떤 변화를 주었고, 혹시 사북항쟁 역사 왜곡에 영향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사북항쟁 역사의 왜곡하는 그런 영향이 있는지, 카지노가.

박봉남

카지노가요? 글쎄요, 그렇게 답변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사실 사북 주민들은 카지노가 없으면 못 삽니다. 왜냐하면 카지노가 생긴 이유가 사실 동원탄좌가 03년에 폐광을 하고 철수를 했지 않습니까? 기업주가 돈을 다 벌고 빠진 거죠. 그러면 사북을 지탱을 했던 게 탄광인데 가족들과 혹은 거기에서 장사를 했던 모든 주민들이 어떻게 사나요, 학교는 어떻게 유지를 할 것이고. 사북 주민이 대대적으로 궐기를 했습니다. 제2의 사북 사태 각오하라는 슬로건을 들고 거리 시위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학교에 아이들 등교까지 안 했어요. 그래서 정부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서 카지노 내부인 출입까지 했거든요. 그래서 강원랜드 카지노의 수입의 일정 부분은 그 지역 사회를 위해서 쓰게 되어 있어요. 10%에 가까운 금액들이.

그러니까 사실 카지노와 사북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기 어렵죠, 다만 뭐가 문제냐 하면 강원랜드 현재 동원탄좌 영화에 나온 건물 있죠? 소유주가 강원랜드거든요. 동원탄좌를 인수한 곳이 강원랜드인 거죠. 사북 사건. 동원탄좌에서 기업주의 횡포에 저항해서 노동 운동을 하면서 벌였던 사건에 대해서 주민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못해요. 그 운동이 매우 중요하고 노동운동에서도 중요한 평가가 되는 반면 폭력적인 양상 때문에. 특히 지부장의 아내에 대해서 가혹한 폭력을 했던 이중적인 모습 때문에 트라우마처럼 자기들의 역사를 못 껴안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북 항쟁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말을 끄덕이면서 속으로는 찜찜하죠.

강원랜드 카지노? 우리 먹고 사는 데 필요한데 뭔가 찜찜하죠. 카지노가 들어오니까 애들 교육 환경도 안 좋은 것 같고, 동원탄좌에서 벌어졌던 사북항쟁의 적절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이 상처로 한쪽은 항쟁, 한쪽은 폭동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고스란히 투영이 됩니다. 지금도 여전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이 매우 복잡하다는 거죠.

그래서 사실 그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카지노도 사실 카지노와 하이원리조트 관광 자원을 지역 주민들의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플랜도 짤 수 있고 그렇습니다. 매우 좀 양면적으로 판단을 하기에는 어려운 그런 상황입니다.

희우

답변이 되셨길 바라며, 저도 영화 마지막에 산업전사 광부라고 쓰여진 건물 있잖아요? 카지노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적절한 국가의 사과나 이 사건이 어떻게 되었고, 이것은 항쟁이라는 식으로 인정이 되는 게 없이 화려하게 덮어 버리고 산업전사였다는 것만 남기니까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요.

박봉남

맞습니다.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이 사건은 기업과 국가인데 기업은 동원탄좌는 노조지부장을 앞세우고 숨은 거예요. 당시 이재기 노조 지부장이 일개 고용된 노동자예요. 어떻게 하기 어려운 거예요. 그 다음에 국가는 이재기 지부장의 아내가 집단 폭행된 사진을 전면에 내세우고 4월 24일 모든 일간지에 크게 내세우고, 폭도로 광부를 매도하고 뒤로 숨었죠.

그리고 5월 초부터 27일까지 200명 잡아다가 잔혹한 고문을 하고 30명을 기소하고 군사재판에 넘긴 거예요. 그러니까 국가는 김순이 폭행 사진 뒤에 숨은 거죠. 사실 이 책임자가 누구이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내야만 해결될 문제들이 많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황인호 사북 항쟁 회장이 사과하는 것도 중요하고 이원갑 선생이 책임을 어쨌든 지고 김순이 씨에게 사과를 하는 것. 어떤 이후의 자기들이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는 명분이다, 정당성의 기반이다. 그리고 반대편에 서 있는 분노를 누그러트리는 중요한 모티브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희우

정말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까 사북에 살고 계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분이 이제 탄광도 탄광이지만 카지노를 보면 우리가 사는 지역에 어떤 기업 하나가 좌지우지를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씁쓸하기도 하고, 국가가 진짜 무책임하다는 걸 좀 느끼셨을 것 같아요, 사시는 분이니까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박봉남

사북에 관심 좀 가져 주세요, 영화를 보면 나오잖아요. 가을에 라이더들이 와서 즐기고 가잖아요, 무심하게. 그런데 뒷면에는 수많은 상처를 입은 당사자, 가족들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무수한 사연이 뒤에 있는 거죠.

희우

이제 거의 후반부로 달려가고 있는데요. 혹시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마이크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에 카톡 질문이 있는데요. 

“사북항쟁에 대해서 정확하게 몰랐던 부분을 다큐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께서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고 말하신 부분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기록으로 투쟁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현재도 광부들이 진상규명, 피해회복에 대해서 애쓰고 계시는데 현재도 어떻게 활동을 이어가는지 궁금하고 감독님께서 <1980 사북> 후속도 기록하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을 주셨고 제가 준비한 마무리 질문도 이와 비슷합니다. 두 분에게 이후의 계획에 대한 질문인데요. 감독님께서 읽어드린 것에 더해서요.

박봉남

원래는 제가 진짜 너무 힘들어서 이 작업을 끝내고 그만하려고 했거든요. 직업을 그만둬야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여러 관객들의 응원을 받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제 제가 지금 이번에 했던 작업들을 기초로 해서 제가 더 하고 싶은 작업은 감춰진 이야기를 더 찾아내는 거. 보셨겠지만 연행된 사람들 명단이 있잖습니까? 주민등록번호도 나오고, 인적사항도 나오고 제가 사실 그걸 가지고 무수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천만성 씨. 스님도 제가 그렇게 찾은 거거든요. 본적지 주소를 다 찍으면서요. 주소 주변에.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는 백 여 명의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200여 명이 연행이 되면 그중에 인적사항이나 피해사실이 밝혀진 사람이 50명이 채 안 됩니다. 나머지 사람들. 그들을 만나야 되겠다. 진화위와도 협력하면서 생사 여부, 직접 만나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것들을 낱낱이 밝히면 비로소 이 사건의 총체적인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그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희우

광부 분들이 어떻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요?

박봉남

사북항쟁 동지회가 있는데요. 사실 이원갑 선생이 오랫동안 20년간 이끌어 왔고, 연로하셔서 이제 황인호 회장이 맡고 있는데 이원갑 선생님도 건강이 안 좋으세요. 사실 그래서 사북항쟁 동지회는 일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당사자들이 거의 다 사망 단계예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보면 남은 일들은 사북사건 2세대. 황인호와 같은 분들, 연구자들, 기록자들을 더 찾고, 아까 밝혀지지 않은 가족들을 만나서 그 사람들 조직화를 해야 합니다. 가족모임을. 그래서 그들이 어떤 진화위에 신청도 하고 필요하면 이슈도 하고, 관객들과 연대도 하면서 앞으로 그런 식으로 운동의 주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희우

네, 답변 감사합니다. 그러면 조사관님.

박다영

저는 사북과 관련해서 지금 작업을 하고 있지는 않고, 아까 말씀을 드린 것처럼 진화위에서 수용시설 사건 피의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30여 명 정도 만났는데 앞으로도 만날 분들도 있고, 그런데 저는 수용시설 사건이 굉장히 사북의 광부들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북에 가서 광부를 했던 것처럼 수용시설 피해자들의 면을 보더라도 집이 없고, 직업이 없고, 가정이 해체되어 어쩔 수 없이 거리에서 삶을 영위해야 했던 그런 넝마주이, 구두닦이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이 시설에 끌려가셨어요. 그래서 저는 사북과 전혀 다른 어떤 피해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지 않고, 그분들에 대한 삶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갈 예정이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이라고 생각을 하는 게 이분들을 만나면 저는 수용시설 사건에 대한 피해만 사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앞, 뒤를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이분들이 다른 국가 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삼청교육대를 다녀왔다가 정신질환이 심하게 발병해서 가족이 직접 형제복지원에 입소를 시켰다거나 월남전 파병을 다녀왔다가 정신질환이 있어서 아내가 참다 못해서 형제복지원에 보내거나, 형제복지원에 갔다가 다른 시설에 계속해서 수용이 되어서 현재까지 시설에서 생활을 한다거나 이렇게 하나의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서 저희가 접하고 있는 많은 국가폭력 사건들이 계속 층층이 쌓이고 있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제가 계속해서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희우

네, 감사합니다. 지금 이야기해 주신 작업들을 저희도 함께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보태고 싶다는 마음을 다들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표정들을 보니까요. (웃음) 마지막으로 들어온 의견 하나 읽어드리고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큰이모부도 사북에 광부였는데 나중에 끌려갔던 분들 구제활동을 하다가 해고를 당하셨다고 합니다, 새벽에 군인들이 들이닥쳤는데 큰이모부가 없어서 안 잡혔다고 합니다. 당시 묶여 있던 분에게 물, 음식을 주었다고 하던데 오늘 영화를 보고 싶어했는데 춘천에 계셔서 못 오셨습니다. 당시 영화가 상처를 회복하는 데 제대로 된 진상규명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이렇게 의견을 남겨 주셨습니다.

[박수]

지금 이제 ‘광부셨는데’ 라고 하셔서 감독님이 휙 쳐다보셨어요. 그만둔다고 하셨는데 못 그만둔다고 하셨고 앞으로 사북항쟁 기록을 계속해서 헤쳐나가는데 열심히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대화의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인천인권영화제는 ‘일렁이는 몸들이 만나는 당신의 세계’ 기조로 열렸는데요. 어떤 몸과 몸이 얽히고 또다른 궤적을 그리면서 다시 없을 당신이라는 세계. 존엄과 평등, 연대의 감각을 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와 주셔서 만나게 되어 반갑고 기뻤습니다. 또 마지막으로 여기에서 기쁜 시간을 보내셨다면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 주시길 요청합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폐막식도 함께해 주시고 마치고 이제 나가시면 데스크에 후원함도 마련되어 있고 소셜펀치도 후원하실 수 있게 아직 열려 있습니다. 적자 없이 내년 30주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더 나은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폐막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