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광장에서 Where We Become Us 💬

| 1203 이후,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되는 |

우리는 광장에서
Where We Become Us

감독 : 장병철 최호영 이현호 박채한 이명훈 최종호
제작 : 내란청산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시민 미디어팀
제작연도 : 2025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95분

상영일시 : 2025.12.3.(수) 오후 7:2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기획의도

윤석열 탄핵 광장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고, 무엇을 남겼을까? “주권자 시민이 승리했다”와 “윤석열은 탄핵시켰지만 우리의 삶에 달라진 것은 없다”는 양극의 평가는 광장이 우리 개개인에게 무엇이었는지 말해주지 못한다.  우리는 왜 광장으로 나왔고, 광장을 어떻게 경험했으며, 광장 이후의 삶은 그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옴니버스로 묶인 6편의 단편은 광장의 기억을 환기하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패널과 관객들이 함께 광장의 기억을 소환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구성해보고자 한다.

 

대화의 시간 기록 

최호영 이현호 박채한 이명훈 최종호 감독

이호림 무지개행동 공동대표

이종환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문자통역)

이호림

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진행을 맡은 무지개행동 공동 대표, 그리고 저 광장에서는 공동의장단으로 함께 했었던 이호림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박수]

오늘 12월 3일이죠. 다들 작년 이맘때 그리고 작년부터 올해 봄까지 이어졌던 광장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날이잖아요. 그런데 여러분과 광장 시민 미디어팀이 만드신 영화에 첫 상영을 이렇게 여기에서 함께 하게 되어서 그리고 진행을 맡을 수 있어서 너무나 영광스럽습니다. 오늘 영화 만드신 감독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텐데요, 감독님들 앞으로 나오시기 전에 안내 하나만 드리자면 티켓 이렇게 꺼내 보시면 QR코드가 하나 있어요. QR코드를 누르시면 저희 관객과의 대화에 도움을 줄 오픈채팅방에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제가 전달을 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영화를 만드신 감독님들 자리에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고요. 저희 영화 순서대로 앉아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박수]

너무 오래되지 않은 시기를 담고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아는 얼굴도 진짜 아는 사람 아니어도 ‘어? 나 저 사람 봤어’ 이런 반가운 마음으로, 광장의 기억을 돌아보는 각자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영화를 보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 영화 <우리는 광장에서>를 실마리로 또 우리 각자 기억들을 되돌아보는 시간 같이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이야기 손님으로 오신 각 단편을 연출하신 감독님들 모셨는데요. 첫 번째 영화. <우리는 건설노동자>를 연출하신 장병철 감독님은 아쉽지만 또 개인사정으로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지는 못하셨고요. 다섯 분 모셨습니다. 관객분들이 궁금하신 것들 들어보기 전에 자기소개를 먼저 듣고 제가 몇 가지 질문을 여쭤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감독님들 각자 자기 소개 하시면서 관객분들에게 인사를 나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호영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보신 <우리는 광장에서> 두 번째 에피소드 <리본 가져가세요>를 만든 최호영입니다.

이현호

저는 세 번째 에피소드 <꿈과 숨>을 만든 이현호입니다.

박채한

저는 네 번째 에피소드 <교내 소란행위 일절 금지>를 제작한 박채한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명훈

안녕하세요? 저는 <형광조끼>를 연출한 이명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최종호

저는 마지막 에피소드인 <윤석열 너머>라는 별로 소리를 내서 부르고 싶지 않은 제목이기도 한 단편을 제작한 최종호라고 합니다.

이호림

오늘 감독님들이 이렇게 다 오셔 가지고 제가 질문을 엄청 많이 드릴 수는 없어서 한 분 한 분 영화에 대해서 한 가지 질문을 일단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리본 가져가세요>의 최호영 감독님에게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이 영화는 사실 윤석열 비상계엄에서 문제가 시작된 게 아니잖아요. 그 이전부터 윤석열 정권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리고 윤석열 정권에 맞서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우리가 다시 기억하게 하는 영화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특히 <리본 가져가세요>에서는 윤석열 파면 이후 상황에 대해서도 살짝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해요. 윤석열 파면이 되고 우리 삶이 어떤 게 변했을까? 생각을 하면서 완전히 세상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이태원 참사 특조위 조사가 시작된 것처럼 작은 변화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지금 시민들이 함께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이슈, 쟁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들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호영

네, 많이 떨리네요. (웃음) 질문해 주신 건 아니지만 광장 이전에도 유가족의 시간이 있었고, 우리가 광장에 나와서 만났던 어떤 시간들이 있었고, 또다시 사람들은 다시 자기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광장 위에서 시간들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계시고요. 또 그 과정에서 이태원 가족분들이 광장 한가운데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작업을 준비를 했었고, 말씀하신 것처럼 드디어 드디어 지난 6월에 특조위가 조사를 시작했는데요.

[박수]

이호림

네, 조사를 시작했지요.

최호영

그 과정에 사실 지금도 많은 가족분들 사이에 있으시고 특조위도 많은 감시와 견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사실 뿐만 아니라 12월 17일이 되면 특조위에서 법적으로 조사 신청이 끝나는 기간이라 그때까지 많은 주변에 내가 피해자거나 생존자거나 이런 분들이 계시면 빨리 조사 신청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 그 다음에 혹은 관련해서 알고 계시는 것들이 있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한 상황이고요. 그렇게 많은 견제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거든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이고, 특조위는 이제 내년까지 1년 넘게, 1년 3개월 가량 조사를 할 텐데, 그때까지 이게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또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호림

네, 호영 감독님은 이태원 참사 미디어 팀 활동도 계속 하고 계시는 건가요?

최호영

맞습니다. 지난 10월 29일 추모식에 참여를 하셨다면 제가 만든 영상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호림

네, 이런 관객과의 대화 다들 처음이신가요? (웃음) 그냥 저랑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을 하시고 앞에 아무도 안 계시다.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관객과의 대화를 한다고 해서 다들 응원봉을 가져오셨어요. 그래서 각자 대답을 하실 때 응원봉도 켜시고 이러면서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6편 작품 중에 중간에 나온 두 개의 작품. <꿈과 숨>, <교내 소란행위 일절 금지>가 사실 가장 넓은 범위의 관객분들이 나의 이야기로 좀 공감을 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광장의 시간과 나의 일상의 시간에 괴리를 느끼기도 하잖아요. 막 사람들이 모이는 데 갔다가 조용한 방에 가면 그 공간 사이에 괴리를 느끼기도 하고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 다르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냐는 듯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고 또 이 공간이 변했으면 한다. 이런 종류의 소망을 가지게 되기도 하는데요. 두 분 질문 여쭤보려고 합니다. 먼저 이현호 감독님께서는 나의 이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그리고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면서 그 광장의 경험에 대해서 다르게 지금 생각을 하게 되신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현호

어려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먼저 광장에 나서게 된 계기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에서는 자세하게 다뤄지지는 않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제가 방 안에서 머무는 기간들을 지내고, 이후에 이제 동료의 연락을 받고 광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어떤 커다란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지만 개인의 어떤 삶의 일상을 가져보고 싶다, 광장에 나서서 촬영을 하고 그런 매일매일의 활력이 필요하다는 다분히 이기적인 어떤 생각으로 광장에 나섰는데요. 그런 마음으로 광장의 풍경들을 바라보다 보니까 되게 어떤 존재들이 유령처럼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처럼 우연히 동료의 연락을 받지 못했거나 혹은 광장의 연결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생각이 계속 맴돌았고, 나아가서 광장을 적대하는 이들까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우리 이후에 기록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기획을 진행을 시키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결국 제 스스로의 어떤 이야기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졸업작품으로 시도를 했었던 스스로의 이야기에 대한 기획들의 일부와 광장에서의 어떤 것들을 새롭게 엮어서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고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을 주신, 이야기를 만들면서 어떤 변화의 말씀을 드리자면 영화 안에 그런 심정들을 대사로써 담으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광장에서 누군가 마주치고 어떤 광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실 영화 안에 뭔가 대사를 적었는데 좀 더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광장의 시간들이 조금은 지나간 이후 영화를 만들면서 그간의 어떤 촬영본, 기억들을 짚으면서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까? 여전히 광장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할까에 대해서 생각들을 해 보았는데 결국 어떤 것들을 계속 놓치고 연결되어 있고, 애정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스스로 있구나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엔딩에 넣게 되었고요. 그런 마음을 발견하고 나니까 광장의 여러 풍경들이 다시 보이더라고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감동스러운 장면들, 감격스러운 장면이 밀려들어오는 광장의 시간들도 그렇게 다르게 기억이 되는 순간들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이호림

‘삶은 영화와 달라서’ 이런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영화 같은 영화라고 생각을 했어요. 주인공의 어떤 공간에서 다시 공간으로 돌아오는데 그 사람 안에 달라져 있는. (웃음) 저의 감상이었고요. 박채한 감독님은 벽보를 학교에 붙이잖아요. 광장을 학교에 가지고 가겠다는 시도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좀 궁금했어요. 그리고 제가 성소수자 활동가로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가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편견,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광장에서 동지, 친구로 만나면서 달라지 이야기가 정말 인상깊었는데요.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다면 좀 더 나눠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채한

사실 제가 이걸 만들고 나서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 ‘그래서 어떻게 학교에 광장을 가지고 올 거냐’, 이 질문인데 사실 지금 이 자리에 제 학교 친구들이 많이 와 있는데 저런 벽보를 대체 언제 붙였는지 참 궁금해할 거예요. 사실 원래 혜림이라는 친구와 학교 내에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교외활동을 많이 하면서 휴학이 길어지고 저랑 재학 시기가 안 맞는 것 같아서 제가 지금은 영상방송과라는 과를 다니고 있는데 그 과 내에서 미디어 비평 동아리를 만들면서 조금 이걸 실천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조금 가지고 있었고, 이걸 만드는 과정을 차기작으로 담아 볼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는요. 그 친구가 나와서 하는 말이 사실 제 영화의 가장 포인트라고 생각을 했고, 그걸로 조금 뻔하지만 뭔가 희망을 주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담았어요. 그런데 또 다른 의견으로는 그 친구의 말로 통해서 어쩌면 다른 사람이 나도 저 친구처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단 생각을 하면서 변화를 시작해 나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호림

차기작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이 영화를 여러분보다 조금 미리 봤는데요. 영화 보기 얼마 전 비상행동 자원활동가분들이 여전히 모임을 하고 있고, 같이 스터디도 하고 뭐도 하고 계속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는데 <형광조끼>라는 작품에서 그분들의 얼굴을 봐서 반가웠고, 마지막 작품인 최종호 감독님의 <윤석열 너머>를 보면서 정말 말 한 번 섞어보지 않았지만 아는 얼굴을 보는 반가운 마음들이 들었습니다. 사실 비상행동에서 다들 시민미디어팀으로 함께 활동을 하셨고 매 집회 나오는 영상들 있잖아요. 두둥! 이렇게 하면서 그런 노래가 나오고 이런 영상들 있잖아요. 거기 나오는 그런 영상들도 다 작업을 같이 하셨던 거라고 알고 있는데요 .

정말 두 분 작품은 영화에 담기지 않은 너무너무 많은 촬영본도 있을 것 같고 뒷이야기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로 담지 못한 이야기 중에 오늘 관객분들과 나누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기억나는 에피소드나 사람이나 혹은 어떤 순간이든 이야기를 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명훈

네, 저는 자원봉사자님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이야기를 다루자고 결심하기 전부터 좀 궁금하고 했던 것이 이 자원봉사자라는 게 제가 생각을 할 때도 명예도 없고, 와서 사람들한테 치이고 이런 일들인데 기꺼이 나와서 하고 그런 것을 어떤 동력으로 할까? 많이 물어봤어요. 물어봤는데 별거 없는 거예요. 딱히 큰 대단한 이유 없고 필요하다고 하는 공지가 올라와서 했다고. 여기 인터뷰 아까 평화님 말에서도 나왔는데 첫날 만났는데 나중에 만나서 집요하게 물어봤는데 더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조금 의문을 했던 것 같고요.

그런데 평화님이랑 여기는 안 나왔지만 생각을 해 보니까 질문을, 해 주신 질문을. 그래서 평화님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고, 그런 경험이 연관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저는 그걸 좀 담고 싶긴 했어요, 영화에 안 나왔는데 평화님이 어린 시절 친척이 일본에 계셔서 일본에서 거주를 했었는데 동일본대지진이 나서 이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서 한국에 오셨어요.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거로 들었는데 와 가지고 이제 안 좋은 일들을 당한 거죠.

따돌림을 당하고, 약간 반일 감정이 좀 커서. 되게 한국인인데 되게 반일적인 프레임에 씌어져서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그런 경험들을 당했다고 이제 움츠려들거나 잊고 싶어하면서 혹은 엇나가거나 하지 않고 그런 것이 뭔가 좋은 형태로 발현이 되는 거예요. 박근혜 퇴진할 때도 그때도 고등학생이었는데 응원봉을 들고 나갔다는 거예요. 샤이니 응원봉.

평화님은 촛불을 든 적이 없으세요. 처음부터 응원봉을 들었고, 그렇게 영화에서는 이번에 연대를 대거하셨지만 사실 과거의 삶을 보면 그런 기미들이 보였던 것 같고,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사실 저만 알고 있기 좀 아깝다는 걸 질문을 천천히 듣고 생각을 해 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광장에 왜 나왔냐는 질문을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왔대요. 그래서 자기가 엄마라든지 친구라든지 윤석열 탄핵을 시키지 않으면 안 좋은 세상이 열릴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광장에 나온다는 거예요. 광장에 나와서 생활을 하다 보니까 연대 지평이 넓어졌다고 했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는 거예요. 광장에서 만난 동지들, 자원봉사자 동지들, 이제 당신들도 사랑하고, 내가 당신들이 좋은 세상을 살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투쟁을 한다는 말씀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 거침없이 뭔가 나아가는 별 이유 없이 사람이 필요하니까 자원봉사 지원을 하고 연대가 필요하니까 연대를 하고 그런 것들이 되게 일관되구나. 그리고 보신 것처럼 탄핵 이후에도 또다른 팀을 만들어서 연대를 하고 지금도 오늘 아침부터 추운 국회 앞에서 고생을 하고 계시거든요. 추위에 벌벌 떨면서 집회를 더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광장에 가 계시는데 그런 모습이 되게 저는 인상이 깊었습니다.

이호림

네, 주에 집회를 3, 4개 나가는 걸 가볍게 이야기를 하셔서 충격을 받았는데요. (웃음)

최종호

평화님 이야기는 약간 처음 듣는 것 같아서, 저만 처음 들었을 수도 있는데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눠야 되겠다는… 저는 질문을 미리 받고 생각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작품성이 안 들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제가 인터뷰를 현장을 다니면서 놀랐던 건 제가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인터뷰한 분들의 30, 40% 정도는 어떤 방식으로든 성소수자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말을 하자면 일상 속에서 제가 인터뷰어로서 제가 소개를 여쭸을 때 바로 즉각적으로든 조심스러워하시면서, 망설이시면서든 본인의 정체성을 처음 만난 어떤 낯선 이에게 표현을 하는 걸 처음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이 광장의 어떤 큰 힘을 1차적으로 강하게 느끼고 저도 정말 한 사람으로서 강렬한 그동안 가까이 상대적으로 가까이 하지 못했던 것들의 접근하고 경험을 했던 것 같고요.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데 (웃음) 한 가지만 더 이야기를 하자면 아무래도 정말 윤석열 퇴진이라는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수많은 바람과 투쟁이 있었다. 전장연, 세종호텔노동자들, 지해복 선생님, 동덕여대 계속 읊어도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정확히 알지 못하는,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게 있을 것 같고, 수많은 분들의 존재들과 이전에 보지 못했던 수많은 연대들을 봤던 게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고, 물론 그 투쟁들을 영화에 어우르지 못해 아쉽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했던 것 같지만 저희가 담은 어떤 메시지들 속에서 그런 투쟁의 존재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전하고 싶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호림

저희 제가 준비한 마지막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이에 뭔가 궁금하신 것들 남겨 주셔야…  아니면 제가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 끝나니까요. 집에 가서 후회하지 마시고 남겨 주시고요. 옴니버스라는 형식이고, 이것은 심지어 감독이 6명인 작업인 거잖아요. 이런 종류의 협업이 진짜 진짜 어렵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옴니버스라는 형식의 작업을 하신 경험은 어떠셨는지? 진짜 다시는 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느끼신 순간이 있었는지? 혹은 옴니버스라서 너무 좋았다고 생각을 하신 부분들이 있었는지 대화가 더 필요하다고도 하셨잖아요. (웃음) 그래서 그냥 딱 이 작업 자체가 감독님들한테 어떤 경험이었는지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분 정도만요.

박채한

제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희가 여기 감독만 6명이고, 사실 세 분이 더 기획단 세 분이 더 계셔서 총 9명이 프로젝트를 진행을 했어요. 그런데 에피소드가 6개이고, 사람이 9명이잖아요. 그래서 기획 회의를 하는데 끝나지가 않는 거예요. 거의 줌 회의를 6시간 동안 하고 (웃음) 저는 정말 졸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제목을 정할 때도 거의 일주일이 걸렸어요. 그 정도로 참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구나. 그렇지만 그 속에서 의견을 모으려고 좀 많이 애썼던 작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좋았던 점도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물론 앞에가 싫었던 건 아니고요. 좋았던 점을 이야기를 하자면 저희가 집중편집 기간이라는 걸 가졌는데 6명, 그러니까 9명이 다 같이 사무실에 모여서 편집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서로 작업물을 보여 주면서 코멘트를 하기도 하고, 그 시간이 저한테는 굉장히 의지가 되더라고요. 첫 작업인데도 의견을 나누고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저에게는 좋게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자랑할 점은 저희 작업이 거의 팀분들이 찍으신 촬영본들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이 촬영본이고 조금 도움을 얻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게 정말 저에게는 자랑할 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호림

대답하시는 동안 너무너무 저도 궁금한 질문이 들어와서요. 한 마디씩 짧게 바로 바로 생각나는 거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텐데 피켓이나 깃발을 들었다고 하면 어떤 문구를 썼을까요? 혹은 어떤 그림, 어떤 기호 등등등. 무엇을 드셨을까요?

박채한

저 먼저 해도 될까요? 저는 실제로 들고 다녔어요. 들고 다니면서 촬영을 했고, 그런데 좋아하는 밴드 ‘더픽스’의 뭐였지? ‘Singing out loud to survive’라는 문구가 있는데 그 문구가 적힌 이렇게 현수막을 항상 뒤에 달고 다니면서 다녔어요. 그런데 그거 잃어버렸어요. 남태령 때. 그래서 너무 아쉬운 그런… 문구를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호림

다 대답을 하셔야 끝낼 수 있습니다.

최종호

저는 원래 없었는데 떠오르는 게 없다는 게 너무 슬펐고 (웃음) 그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바로 며칠 전에 저희가 여전히 좀 같이 사무실에서 활동을 하고 지내고 있는데요. 그런 와중에 팀장님이 음악을 틀다가 2NE1 노래가 나왔는데 순간적으로 ‘나 좋아하는 아이돌 있었어’

이호림

내 시대다.

최종호

네, 네, 나에게도 최애가 있었다. 그 어떤 응원봉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명훈

저희가 형광조끼를 입기도 했고, 미디어팀, 스태프이기도 하고 명찰을 달고 다녔는데 사람들을 보고 꾸미는 거 보면 부러워요. 치렁치렁 하면 촬영을 할 때 불편하거든요. 걸리기도 하고, 떨어지면 신경이 쓰이니까 못 달아요. 그런데 저는 구호는 잘 모르겠고 제 명찰 뒤에다가 실제로 스티커를 두 개 넣고 다녔는데 하나는 아마 무지개행동에서 나눠 준 퀴어 플래그, 무지개 깃발의 상징물을 넣었고요. 하나는 새벽이생츄어리라고 보호소에서 나눠 준 돼지는 무슨… 까먹었는데 그거 2개 넣어놓고 다녔습니다. 그런 것이 제가 또 관심이 있는 거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이호림

네, 두 분은?

이현호

저도 두 분과 비슷한 상상을 해 봤는데요. 사실 광장에서 다양한 구호들을 보고 느끼는 것은 내가 들고 싶은 떳떳하게 들 수 있는 구호가 없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이제 촬영을 하던 중에 이제 영화에도 등장한 김사월밴드 깃발을 저도 광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처음 ‘아, 나도 저런 깃발을 갖고 싶다, 저런 구호를 들고 나오는 경험을 하고 싶다.’ 오랜 팬이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정도로 했던 것 같습니다.

이호림

네, 마지막으로 호영 감독님은?

최호영

다들 누구를 덕질을 하는지 고백하는 자리가 되는 것 같아서. (웃음) 부담스러운데요. 좀 재미없는 답을 하자면 그러니까 비상행동 미디어팀이 광장 초기가 아니라 중간에 생기게 되어서 그전에는 저는 이제 제 작업. 처음에 나오는 부스에 가서 초코파이와 보라리본을 나눠 주면서 “가져가세요, 가져가세요.” 이렇게 했던 기억이 있고, 그렇게 계속 했을 것 같습니다.

최종호

있으신 걸로, 아닌가? (웃음) 제가 강제로… (웃음) 아닙니다. 아닙니다.

박채한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이호림

네, 스스로의 결정으로 해야 합니다. 코멘트도 있었는데요. 이현호 감독님에게 ‘광장에 대한 솔직한 입장을 드러내 주셔서 감사하겠습니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광장을 20, 30대 젊고 활기찬 이미지로 해석하는 게 불편했었는데 제가 불편한 게 뭔지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밖을 나가기 어렵거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도 기득권이 말하는 청년이라는 것을요.’그 사실을 저도 잠깐 있었다는 것을요, 감사합니다.’ 이런 코멘트가 있었는데, 저는 그게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안에서도 있을 수 있는 순간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광장의 말벌 동지들 이야기를 되게 여러 자리에서 많이 하시는데 그분들의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 광장을 만나기 전에 어떤 무기력함, 혹은 답답함을 느끼고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경우들도 되게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생각도 좀 드네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질문은 <형광조끼>에 대한, 이게 어떤 주인공으로 인상적인 분이라서도 하시는 것 같은데 요즘도 활동을 집회를 하시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박평화 님을 주인공으로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명훈

‘그림자’라는 몸짓패 활동을 8월 14일에 공연을 했었던 게 이제 영화에 나온 거고, 평화 님은 공연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 공연 기회가 자주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때를 노리고 있는 때인 것 같고요. 그리고 어떻게 해서 박평화 님을 주목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이시죠? 인터뷰를 여러 번 했는데 인상깊었어요. 그날 처음에 되게 본명 이야기를 하면서 저 사실 개명을 했다고 만나서 인터뷰를 했거든요. 그게 탄핵 전날. 4월 3일 밤 이었어요. 그날도 춥다고 하면서 그때 안국역 앞에서 이제 수소문을 하다가 여러 명 인터뷰를 해서 추천을 받고 다른 분한테도 추천을 받아서 그분을 인터뷰를 했어요.

그래서 그게 나중에 두고두고 보니까 인상이 깊어서 또 만나 봐야 되겠다 싶어서 만났던 거거든요. 그래서 만날수록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사실 되게 동작이나 사건들도 많이 나오지만 저는 말씀하시는 것도 되게 일관되고 좋게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인상깊어서 이야기로 구상을 하게 되었고요. 알고 보니까 과거에 카메라 앞에 계셨던 순간들이 많은 거예요. 그리고 탄핵 선고된 날도 동료 자원봉사자들과 너무 감격에 겨워서 울었던 장면을 지금 여기 안 계시고 광장에서, 국회 앞에서 촬영을 나가 계시는 다예 감독님이 우연히 찍어 주신 거예요. 그리고 또 다른 팀원이 찍어 주셨고, 인터뷰를. 그렇게 해서 됐습니다.

이호림

미디어팀이 사랑하는 캐릭터인 것으로 (웃음) 저희 정말 이야기 시간 더해도된다고요? 그럼 좀만 더 할게요. (웃음) 마무리를 하려고 했는데요. 최호영 감독님에게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오랜 기간 사회적 참사 유가족을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호영님에게 광장과 사회를 영상의 형식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어떻게 호영님은 카메라를 처음 들게 되었는지 그곳을 향하게 되었는지 거창한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그렇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도 같이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최호영

네, 감사합니다. 저는 이거 이 작품 전에 40분 정도 분량의 중편 다큐 작업을 하나 했었는데요. 제목은 <기억해, 봄>입니다. 416 TV라고 세월호 유가족 지성아빠님이 유튜브 운영하시는 곳이 있으니까 보시고요. 그리고 그 작업은 이제, 여기에서 제일 제가 어리거든요. 나이를 밝히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호림

굳이.

최호영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세월호가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은데 의미가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세월호 다큐를 만들어 보자고 했던 게 이제 영상 활동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을 것 같고요. 그때는 그냥 사실 어떤 경험, 자기계발, 이런 거로 생각을 했는데 이제 그 영화를 보시면 나옵니다. 맨마지막 장면에 있었던 세월호 기억 공간을 강제로 철거. 여전히 서울시장인 오세훈 씨가 강제로 철거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날도 이제 다큐를 찍던 중이라서 찍으러 가자고 해서 갔어요.

그런데 이제 그때가 세월호 8년이 지난 시점이고, 그래서 그 광장에는 사람도 많이 없었고, 광화문 광장 서울 한복판이었는데 이제 공사를 한다고 바리게이트를 쳐놓고 그 광장 안에는 되게 적은 사람들이 외롭게 있었고, 밖에는 극우 사람들,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이렇게 험한 말들을 내뱉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저는 되게 힘들었는데 그런 저를 오히려 유가족분들이 위로해 주고, 다독여 주셨어요.

그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게 그냥 나의 좋은 경험, 나의 자기계발이 아닌,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이 광장에 사람들이 많이 있지는 않지만 여기에서 계속 저를 버티게 해 주는 말들이 있고, 사람들을 살게 해 주는 말이 있고, 이 곳에 카메라를 들고 가서 찍어서 사람들한테 전해 주고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태원 참사 미디어팀에 조금 늦게 합류를 하게 되었는데 이태원 참사 활동도 마찬가지인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어떤 광장이든 유가족분들이 계시면 그 이야기를 잘 담아서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호림

네,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최종호 감독님은 박근혜 때도 묵묵히 기록을 하셔서 여러 다큐 작업을 하셨던 거로 아는데요. 아는 분이신가 보네요. 본인에게 이번 계엄, 이번 광장은 어떤 차이나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합니다.

최종호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부터는 특히 여기 제가 8년 전 광장 당시에도 이런 인터뷰 활동을 미디어팀으로서 많이 다녔고, 그 활동을 같이 했던 소중한 동료 아마 여기 감독님 계실 텐데, 죄송합니다. 간단하게 하자면 그때는 인터뷰를 다녔을 때 눈에 보이는 분들이 많은 비율이 약간 가족 단위였던 기억이 나고요.

박근혜가 빨리 퇴진하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게 느꼈던 기억이 나고, 제 개인의 기억이지만 상대적으로 이번에 청년분들, 특히 여성분들, 성소수자분들이 저희가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었고, 눈에 더 많이 보이는 사람들이었고, 바람의 이야기들이 조금 더 다양했다. 퇴진이 전부가 아닌 그 너머의 바람에 대한 것들 이야기들을 더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는 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이호림

네, 이야기 시간은 항상 너무 짧아서 아쉬운 마음이 있는데요. 오늘 사실 비상계엄 1주년이라는 게 축하를 해야 하는지 뭐, 아무튼 복잡한 마음이 드는 날인 것 같아요. 그런데 광장 자체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를 함께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던 것 같고요.

처음 영화를 상영하고 처음 이렇게 관객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셨는데 각자의 소감으로 마무리 인사 대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질문 중에 앞으로 상영 계획 그리고 광장에서 상영할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도 있었는데요. <우리는 광장에서>에서 앞으로 남은 상영 계획이 있다면 그것도 말씀해 주시고, 또 각자 차기작 하시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각자 활동을 하시는 영역에서 또 홍보를 하시고 싶은 일정이 있다면 그런 이야기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다섯 분 소감을 듣기 전에 영화를 9명이 함께 만들었다고 하셨잖아요. 영화의 프로듀서로 함께하셨던 허철녕 프로듀서님 인사 한번. 같이 시민미디어팀 함께 하셨으니까요.

[박수]

소감으로 마무리 인사를 이제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허철녕

제가요?

이호림

마이크가 갈 수 있는지 몰랐어요, 저는.

허철녕

네, 너무 당황스러운데요. 우선 저희 감독님들이 다 대부분 다 다큐멘터리를 처음 만드시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봄에 윤석열 파면 이후 사실 가장 뜨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름, 가을. 상영 직전까지 정말 쉴 틈 없이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월드 프리미어인데요. 우리 감독님들 좀 박수로 응원을 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박수]

상영 활동 계속 조직을 하고 있고, 바람이 있다면 광장에서도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꼭 그런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여기 감독님들과 그리고 오늘 못 오신 광장에 가 계신 두 분의 프로듀서와 저까지 계속 열심히 알리고 이야기를 하고, 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최종호

이어서 말씀을 드리자면 아까 충분히 채한 님이 말씀을 하셨지만 옴니버스 작업이 쉽지 않은 과정이기도 했어요. 아는 사람이 뜻을 모으고 특히 저희 모두 다큐멘터리 경험이 많지 않은 철녕 프로듀서가 아울러 주고 멱살을 잡고 당겨 주신 (웃음) 그런 게 있어서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또 비자발적으로 (이 응원봉을) 드는 게 내키지 않거든요. 근데 이렇게 프로듀서님이 잘해 주셔서.

저는 그냥 상영 계획 이야기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에 이어 오는 12월 6일 토요일 강릉인권영화제에서 오후 5시 일정으로 또 한 번의 반가운 초청을 받아서 상영할 예정이고요. 그에 이어 12월 14일 일요일에는 저희가 자체적으로 조금 저희 영화에 출연해 주신 분들도 초대를 하고, 최대한 많은 주변 시민분들 모시고 특별시사회를 열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소식들 아마 지금 톡방에서…

박채한

아직 안 올렸어요, 올릴 테니까 영화 끝났다고 나가지 말고 계속 계시면 SNS ID 올릴게요. 팔로우와 홍보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소식 챙겨 주시면 좋겠고요.

최종호

끝으로 계속 이야기를 했는데 팀장이신분과 팀원인 분들은 오늘 오랜만에 이어진 비상행동 현장 촬영을 하고 계시는데 그부분 꼭 언급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명훈

네, 저는 안 떨렸는데 되게 떨렸고요. 그리고 원래 알고 지냈던 친구들과 와서 그런 것도 좀 떨리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같이 영화를 봤고,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박채한

친구들이 많이 와줘서 덜 떨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영화를 많이 보러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또 홍보할 게 있으면 홍보를 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사실 인천인권영화제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이거 말하면 주책이라고 할 텐데, 인천인권영화제도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진짜 좋은 작품 많거든요. 더 많이 와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현호

사적인 어떤 이야기를 광장에 대해서 다룬 이야기들 사이에 넣는 것에 있어서 주저함이 많이 있었고, 과정에서 완성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던 때도 있을 정도로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팀원분들덕에 어떻게 상영까지 맞출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하고 그렇다는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호영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몇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네, 빨리 끝내겠습니다. 한 가지만, 네.

앞에 말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네, 사실 이제 한 가지! 어제 인천인권영화제 개막식에도 인권의 얼굴들로 저희 팀을 소개해 주셔서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요. 사실 이렇게 어제 올려다가 못 올려다가 왔어요. 이유가 사실 지금 이재명 정부라고는 하지만 작년 12월 29일 있었던 제주항공 참사에 관해서 항공철도 사고조사위에서 유가족 참여 없이 배제를 하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공청회를 하겠다고 4일, 5일 하겠다고 했데 가족들이 화요일 삭발까지 하셨어요.

그래서 그걸 보면서 유가족의 시간이라는 게 반복이 되나. 현타도 오고, 또다시 이런 외로운 싸움이 시작이 되는 건가 생각을 했는데 다행히 어제 항철위에서 연기를 한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와 가지고 이렇게 개막식도 참석을 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제 곧 1주기가 되는데 제주항공 참사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호림

오늘부터 내년 4월 4일까지 하루하루 작년의 기억들을 복기하게 되는 순간들이 올 거 같아요. 그 순간마다 영화의 어떤 장면들을 저는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되는데 광장을 한 마디로 정의를 하면 뭘까? 생각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연대’일 것 같습니다. 호영 감독님 말씀처럼 지금도 어딘가 지속되고 있는 누군가의 싸움에 함께 연대하면서 그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영화 함께 보고, 관객과의 대화까지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오늘 감독님들에게 마지막으로 큰 박수 그리고 광장을 함께했던, 또 오늘 영화를 함께봤던, 서로를 위한 박수를 치면서 오늘 이 자리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