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개의 광장, 만개할 평등 The Hundred Squares, The Blooming Equalities 💬

| 높낮이 없는 새땅 |

백개의 광장, 만개할 평등
The Hundred Squares, The Blooming Equalities

감독 : 마민지
기획 : 고주영(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작연도 : 2025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영어 한국수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44분

상영일시 : 2025.12.7.(일) 오후 4:3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3관

대화의 시간 기록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고운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사회)

명혜진 이래봄 (수어통역)

강서영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문자통역)

고운

자급자족 영화제의 묘미가 또 이런 거 아닐까 싶습니다. 영사실에서 지금 고생 많이 하고 계실 텐데요. 그러면 지금 ‘대화의 시간’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실 이야기 손님과 문자통역, 수어통역을 소개해 드릴게요. 문자통역에는 에이유디(AUD) 사회적협동조합에서 강서영 통역사님이 계시고요. 수어통역은 ‘이래봄’에서 함께해 주고 계시는 명혜진 수어통역사님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손님 두 분을 앞으로 모셔서 직접 소개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앉을까요? 짤막하게, 뭐 하는 누구이신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몽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고주영

저는 이번 영상을 같이 기획하고 구성한 고주영이라고 하고요. 평소에는 연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고운

관객분들도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실 텐데요.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경험이나 질문을 남겨주실 수 있는 오픈카톡방이,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티켓의 QR 코드로 삽입되어 있습니다. 채팅방에 남겨주시면 확인하면서 진행하겠습니다.
혹시 문자 사용이 어려우신 분께서는 편한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해 주시면, 직접 말씀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러면 관객분들께서 이야기를 준비하시는 동안, 손님분들과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알기로 엄청나게 긴박한 일정으로 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가 존경과 위로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런 긴급한 와중에도 어떤 것을 상상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꾸려나가셨는지, 그리고 “놓치지 않겠다” 했던 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인지 고주영 피디님께 여쭤보겠습니다.

고주영

아까 들어오기 전에 다이어리를 뒤져봤더니 10월 22일 밤 9시에 온라인으로 첫 회의를 했더라고요. 마민지 감독이랑 집행위원들이랑 첫 회의를 했고, 그날 “시민들 영상을 받자”고 던져봤는데 너무 넙죽 받으셔서, 70명? 이렇게 늘어났는데 100명을 고수하셔서 그때부터 부랴부랴 일정을 짜서, 어떻게 하면 이 상영회에 맞춰 날짜를 쪼개서 쓸 수 있을까 하면서 진행했어요.
심지어 100개만이 아니라 다섯 분의 활동가 영상까지—두 가지를 만드는 계획을—한 달 열흘이 조금 안 되는 기간에 진행한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에 시민들 영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던 건, 차별금지법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면서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같은 말이 반복되는데, 나는 동의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창구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정말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상인분들의 이야기도 왔으면 좋겠고,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영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게 다 현실이 되었어요. 100개 안에 시장 상인분도 계셨고, 전국팔도 영상도 하나 놓치지 않고 다 왔고요.
놓치지 않으려 했던 건, 시간 관계상 모든 이야기를 다 쓸 수는 없지만 “가장 모두의 이야기가 전달되는 것”이었어요. 편집 과정에서 누락되지 않게, 번호 매기며 빠지는 것들도 계속 발견하고 복잡한 과정이 있었는데, 어쨌든 누구의 목소리 하나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운

그렇게 해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몽 님께 질문을 드려보려고 하는데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분투하시는 활동가로서 정말 안 해 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다른 누가 경험한 게 아니라 “내가 경험한 차별”을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상에서 차별을 감각하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지, 체감한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


“안 해 본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면 앞에 계신 차제연의 다른 활동가분들이 “우리 아직 농성도 안 해봤고…” 이런 이야기를 하실 텐데요. (웃음)
오늘 차별 이야기를 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보시고 들으신 분들이 여기 앉아계시니까, 그 이야기가 미치는 효과를 저도 앉아서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저희가 차별을 경험한 국민이 전체에 몇 명이고, 어떤 사유로 차별을 많이 겪는지, 어디에서 많이 겪는지 같은 통계를 뉴스에서 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수치로 보면 “되게 심각하구나”, “생각보다 별로 높지 않네?” 이렇게 생각하고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오늘 이 영상을 보다가, 요즘은 불안과 고립과 외로움의 시대라고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누칼협’과 ‘손절’의 시대가 공존하는 시기잖아요. 그래서 반동으로 공격이나 혐오가 분출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망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차별이나 일상에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의 담담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같은 동료로서 제일 먼저 “해주고 싶은 것들”이 생기잖아요.

이를테면 조카랑 같이 카페에 갔는데 노키즈존이라 들어갈 수 없을 때, 조카가 먼저 내 손을 잡아끌고 “이모 가자”라고 이야기했을 때 조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오르잖아요. “미안해”라고 말해 주고 싶거나. 또 차에서 빨리 내려야 해서 다칠 뻔한 장애인이 내 주변에 있을 때 그 장면을 보면 달려가서 일으켜 주면서 “괜찮아?” 묻고 싶잖아요.
그런 마음을 들게 하는 게, 바로 이런 생생한 사람들의 자기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죄송합니다. 제가 울컥하게 되는 건,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예요. 여기는 이미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시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고운(사회자)
이 눈물이 언젠가 곧,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달콤한 눈물로 다시 흘리실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그만큼 진심이라는 거죠.

고운

이번에는 주영 피디님께 질문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00개를 목표로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훨씬 넘는 개수의 영상이 들어왔잖아요. 영상을 하나하나 살펴보시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라거나, 구성할 때 어떤 고민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주영 님께서도 노동자의 지위가 쉽게 지워지곤 하는 문화예술노동자이자 독립기획자로서 나눠주실 수 있는 경험이 있다면 무엇일지도요.


고주영
기억에는 사실 너무 많이 봐서 다 기억에 남아요. 어떤 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테스트하면 100점 맞을 것 같아요. (웃음)
주변 지인들, 활동과 전혀 상관없는 친구들에게도 부탁을 해보기도 했는데, 굉장히 친한 20년지기 친구들의 영상, 혹은 같이 최근 작업했던 동료들의 영상을 보면서 “너무 몰랐던 일”을 알게 됐어요. 테이블에 앉아서 차별 경험을 나눠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이 영상으로 다른 속내를 알게 됐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사례”라기보다,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국민의 평등”을 말할 때 ‘국민’이라는 선 긋기가 생기잖아요. 그런데 국민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해 주신 이주노동자분도 계셨고, 대안학교 학생분들은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셨어요. 차별을 말할 때, 나의 당사자성과 연결해 말할 때도 여전히 내가 못 보고 있던 내 안의 선이 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문화예술노동자로서 받는 차별은, 프리랜서 이야기에서도 많이 나오는데요. 저는 학연과도 연관이 없고 연출자도 아니고 잘 나가는 배우도 아니고—이런 조건들 때문에 “소소하게”… 소소하지 않죠. 사실 구조적인 건데, 혼자 독립기획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 안에는 그런 구조적인 차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고운

말씀해 주시는 와중에, “제이지” 님께서 “달콤한 눈물을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주셨고요. 제이지 님도 울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민한 팬더주니어” 님께서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댈 때마다 ‘나는 시민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내 목소리가 인정되는 것 같은 겨울 광장에서 느꼈던 마음이 들었습니다. 낯익은 얼굴들과 낯선 얼굴을 기획하고 구현해 주신 손길에 감사드려요.”
라고 남겨주셨습니다.


고주영

감사합니다.


고운

또 남겨주시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질문이 하나 더 왔습니다. “멍한 프렌즈” 님께서
“차별과 차이에 대한 선호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라고 하시면서,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을 매우 싫어한다”는 솔직한 고백도 해 주셨어요. (웃음) 직원들을 뽑을 때도 반영이 되시나 봐요.

차별과 차이에 대한 선호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간단하게만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어떤 요리를 좋아하냐, 싫어하냐” 같은 건 요리 종류의 차이에 대한 선호 때문에 생기는 것이겠죠. 그런데 영상에서 나오는 차별, 그리고 차별금지법에서 다루는 차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별, 장애, 성적지향, 인종 등과 같은 특정한 집단을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분리하거나 대우하거나 구분하거나 배제하는 행위를 차별이라고 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배제하고 구분하는 모든 행위를 차별이라고 하지는 않고, 반드시 “특정한 집단을 특정 속성을 이유로”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왜냐하면 차별금지법은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온 소수자·약자 집단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있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전제 없이 모든 선택과 선호를 차별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채용을 고민하실 때, 채용하려는 직무와 일의 속성과 관계없이 불합리한 이유로 지원자의 종교를 채용 기준에 포함시키는 것은 고용 영역에서 “종교로 인한 채용 차별”로 판단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사례들도 많이 있습니다.


고운

답변 감사합니다. 질문이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영화에서처럼 남겨주시면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준비한 질문을 이어가겠습니다. 〈만개할 평등〉 파트에서는 각자 응원봉을 하나씩 들고, 지난 겨울 광장의 경험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요. 그 이전에 감각하던 광장들과 지난 겨울의 광장은 확실히 조금 다른 느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장에서 길어올린 평등의 장면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실지, 그리고 그것이 이번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친 게 있다면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이건 두 분께 다 질문드리겠습니다.

고주영

저는 광장 옆에 살거든요. 그래서 굳이 집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대중교통이 막혀 있으니까 매일의 집회 상황을 실시간으로—지나가면서 혹은 참여하면서—보게 됐어요.

다른 점은 이전 집회와는 다른 경쾌함 같은 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응원봉일 수 있고, 예전에 투쟁가요 BGM 같은 것도 많이 바뀌었고요. 그리고 응원봉을 쓴다는 건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대상과 함께 있는 거잖아요. 팬심을 담는 거죠.
그래서 촬영할 때도 응원봉이 저의 것이거나 감독의 것이었어요. 이거 잘 나와야 되는데, 왜냐하면 팬심을 담아서 “이 응원봉이 누구 것인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서요. 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아티스트들의 응원봉은 제외하는 과정도 조금 있었고요.
그런 느낌으로 일부러 광장에서 야외 촬영을, 굉장히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려고 했었습니다.

고운

몽 님께는 다른 질문으로 드려보겠습니다. 그런 광장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그간 우리가 쌓아왔던 경험들이 있기 때문일 텐데요. 광장이 변화하기까지 어떤 경험들이 원동력이 되었을지, 힘이 되었을지를 알면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보려고 할 때 떠올리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경험들이 쌓였기에 우리는 광장에서 혐오의 목소리에 비교적 덜 주눅들고, 주위의 누군가가 그것을 제지한다거나 할 수 있었던 것일지, 몽 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광장에서 ‘평등수칙’이 많은 분들에게 감동적이었고, 기사화도 되었는데요. 평등수칙에는 여성단체나 노조에서 만들었던 평등한 단체협약법 모범안이라든지, 단체들의 각 규율 같은 것들이 영향을 미치긴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에게 가장 결정적인 시작점으로 기억되는 건, 연이은 지자체장의 세 번의 성폭력 사건 이후 여성단체들 내부에서 “운동사회·시민사회·정치 안의 조직문화는 얼마나 실제로 평등한가”를 두고 몇 년 동안 분투했던 과정입니다.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단체와 연대체 안에서 실제로 굴리고, 그걸 가지고 가서 설득하고… 미투 이후로 계속 쌓였던 시간이 있었거든요. 광장이 급박하게 열렸을 때 “평등수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바로 반영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시간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사회대개혁을 하자”는 비상행동에 1700개 단체가 함께했고, 그 안에 “사회대개혁”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2016~17년 박근혜 퇴진 이후 운동의 평가와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국정농단이 가능했던 민주주의의 위기가 사람들의 삶의 위기와 연결되어 있었고,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 와중에 다시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단지 정치 지도자의 퇴진만을 목표로 할 수 있나”라는 문제의식이 커졌던 거죠. 그래서 광장에 그런 요구들을 모아갈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이 쌓여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대체 이름에서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었던 건, 모든 진영에서 그런 문제의식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고, 이주운동이 계속 운동사회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해왔던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회 전체를 봐도, 운동사회 내부를 봐도, 광장을 봐도, “우리가 왜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가”를 이번 광장이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운

감사합니다. 시간이 많이 없어서 마음이 조급하지만, 그래도 침착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웃음)
방금 말이 무색하게 이제 마무리 멘트를 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

왜 이렇게 절실한 평등의 원칙, 차별금지법이 왜 아직까지도 제정이 안 되나 답답하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는 하루빨리 제정될 그날까지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지지하면 좋을지—그런 마음을 살짝 곁들이면서 마무리 멘트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주영 님께서는 향후 계획하시는 작업도 있으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영상은 유튜브로도 보실 수 있는데, 이렇게 극장까지 와서 봐주셔서 감사하고요. 제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현실 때문에 아까 눈물이 나기도 했었나 봐요. 이런 목소리도 굉장히 많은데요.

제가 아까 미처 못한 말은, 차별금지법은 우리가 서로 손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법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차별에 맞서 손잡으면서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과정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에 계속 함께해 주시면 좋겠고요.
12월 10일에 보신각에서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이야기하면서 “가자! 평등으로, 민중의 행진”이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일이기도 해서요. 여기 계신 분들 중 함께하고 싶은 분들은 12월 10일 집회에서 같이 힘차게 행진하면 좋겠습니다.


고주영

저는 이 영상 작업에 참여한 게, “차별금지법을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의 일환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활동가도 아니고 연구자도 아니라서, 계속 한쪽에서 집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가끔 집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너무 답답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혹시라도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함께 만들게 된 거였고, 앞으로도 뭔가 제가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작업은… 언제 뭘 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고요. 다만 저는 소수자와 관련된 일을 계속하고 있고, ‘연극연습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언제가 될지 모르지만—SNS를 팔로우해 주시면 공연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운

감사합니다. SNS 많이 팔로우해 주시고요. 12월 10일 보신각에서 저녁 7시에 만나기로 우리 약속해요.
잠시 후 6시부터는 4관에서 폐막작 상영과 폐막식이 진행됩니다. 이제 15분 정도 남았는데 화장실도 다녀오시고, 티켓 데스크에서는 굿즈를 받으시면 후원을 하실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꼭 한 번 들러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통역사분들, 이야기 손님분들, 그리고 관객 여러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