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농성장 행정대집행에 즈음한 전국인권단체 호소문

밀양 송전탑 농성장 행정대집행에 즈음한 전국인권단체 호소문
– 행정대집행이 아니라 주민들과 대화가 먼저다

밀양시청, 한국전력, 경찰, 정부에 전국의 인권단체가 호소합니다. 밀양 송전탑 4개 현장 움막농성장에 대한 행정대집행 계획을 거두어주십시오. 지금 즉시 주민과 대화를 해주십시오.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와 대안모색에 나서 주십시오. 움막에서 생의 마지막을 걸고 계신 밀양의 할머니들의 마지막 요구입니다. 이를 지켜보는 많은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이 간절함을, 이 당연한 요구를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밀양의 주민들과 할머니들을 살리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살릴 수 있었다’고 이구동성 말하고 있습니다. 300여명의 목숨을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의 무책임함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밀양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살릴 수 있습니다. 이미 고 이치우 어르신과 고 유한숙 어르신은 ‘송전탑 반대’를 위해 목숨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주민들은 유서를 품에 지니고 다니십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한다면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부의 역할이고 국가의 역할이지 않습니까.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은 이제 그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왔던 주민들에게 지난 10년은 무간지옥이었습니다.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한전직원과 경찰에 의한 모욕과 폭력은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지난해 밀양에 연대하는 인권단체들과 전문의들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 주민들이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평생 경찰서 한번 갈 일 없었던 분들이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했습니다. 마을 공동체는 파괴되어 이웃 간 신뢰가 깨지고 갈등이 깊어진지 오래입니다. 도대체 이 분들에게 왜 이런 비참한 일이 계속되어야 합니까. 765kV라는 초고압 송전탑이 꼭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물음과 대안모색 자체가 무시당한 채 무조건 주민들에게 ‘가만있으라’는 폭력적인 명령을 내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당, 국회의원들에게도 호소합니다. 사력을 대해 중재에 나서 주십시오. 움막을 지키며 주민들이 어떠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 짐작해주십시오.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한과 능력을 발휘해 주십시오. 신고리 핵발전소 3, 4호기를 이유로 강행되는 고압 송전탑 건설의 부당성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한전과 정부에 책임을 묻고 따져야 합니다. 비단 밀양의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핵발전소를 안고 사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문제입니다.

국민여러분께도 호소합니다. 밀양을 주목해 주십시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발전소와 송전탑이 지나는 곳에 사는 주민들의 권리와 삶을 파괴해 왔습니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참사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핵발전소의 위험과 지속불가능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탈핵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위험천만한 핵발전소를 위해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서게 되는 곳이 밀양입니다. 그 밀양에서 목숨을 걸고 삶을 지키려는 분들이 바로 밀양의 할머니들입니다. 조만간 밀양시청은 행정대집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할 것입니다. 주민들은 송전탑이 꽂히는 걸 보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낫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밀양시청, 한국 전력에 항의를 해주셔야 합니다. 움막을 지키는 주민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 주셔야 합니다. 전기를 사용하는 당사자로서 시민들이 움직여야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전국의 인권단체들은 밀양시청을 비롯해 한국전력, 경찰 등 국가에 의한 잔인한 폭력과 인권침해를 현장에서 감시할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을 걸고 싸우는 밀양의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최후의 목격자, 증언자, 당사자가 될 것입니다. 부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지 않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호소합니다.
2014.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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