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한 섬 Side by si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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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한 섬
Side by side

감독 : 김설해, 정종민
제작연도 : 2024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일본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40분

상영일시 : 2024.11.30. (토) 오후 3:00
상영장소 : 영화공간 주안 3관

기획의도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이 국가 민족 사상 이익 온갖 이유를 들어 계속 경계를 긋는다. 선을 긋는 것도 모자라 우크라이나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또 곳곳에서 살육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저 큰 폭력을 마주하면서도 전쟁에 기여하는 삶에 반대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수 없이 관계가 끊어져 나가는 것을 몸에 새기게 된다. 늘 보던 습지와 목초지가 뜯겨나가고 그곳에 살던 생명들을 다시 이전처럼 보기가 어려워 진다. 곁에 살던 이웃들이 떠나거나 원치 않는 삶을 살아 가게 된다. 전쟁을 겪은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삶의 공간이 점점 군사요새화가 되어가는 모습들이 전쟁의 모습으로 실체화 되어 다가온다.

섬 주민들은 쌀과 생명을 실어 나르던 항구가 무기가 드나드는 곳이 되는 것을 바라만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매일 덤프트럭을 막고 무기가 들어오는 길을 막아선다. 땅이 오염되고 범죄가 늘어나고 각종 위험으로 불안 떨지 않는 삶을 찾는다. 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모습으로 자신 살던 곳을 떠났을 것이다. 살던 곳 만이 아니라 함께하던 삶 저항하는 삶을 내려놓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전쟁을 반대하는 삶을 선택한다. 자신만의 활동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평화활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선택의 과정을 지나왔고 어떤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가는지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지금 군사기지 확장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바다를 경계가 아닌 길로 열어 다른 섬과 다른 삶을 연결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섬을 섬으로 남겨두지 않고 전쟁 같은 파괴적인 관계와는 다른 공동의 삶을 찾는 일이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장소가 그냥 이어질 수는 없다. 서로를 잇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또 주민들이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부서지는 관계를 경험하면서 다시 신뢰를 구축해가는 현장활동이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기록하는 과정 중 어떤 어려움과 해결과정을 겪었고 거기서 어떤 희망을 볼 수 있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대화의 시간 기록 

김설해 감독
오이 평화바람 활동가
신석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명혜진 이래봄(수어통역)
박세희 AUD사회적협동조함(문자통역)

신석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나란한 섬> 관객과의 대화 사회를 맡은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신석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박수)
게스트 두 분 각자 소개를 부탁드리면서 저희 관객과의 대화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설해 감독
안녕하세요? 저는 충청북도 청주에 있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라고 하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김설해라고 하고요. <나란한 섬>을 정종민 감독님와 함께 공동연출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이
네 전 군산에서 왔고요 평화바람이라고 하는 평화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이입니다. 반갑습니다.

신석
관객과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나란한 섬>이라는 제목이 굉장히 영화에 잘 맞는 제목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섬들이 바다를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섬들이 함께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도 하지만 진짜 물리적인 섬 땅덩이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섬처럼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존재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그려낸 제목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감독님이 굉장히 고심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이 제목을 짓게 된 과정 혹은 계기를 말씀해 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설해 감독
네 잘 읽어주셔서 되게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난세이시프트라고 하는 방위계획처럼 방위 선상에서 군사화 되고 있는 섬들이지만 연대하는 우리는 나란히 있자고 하는 의미로 지은 제목이 맞아요. 영화를 보면 한국에서 군사화되고 있는 한국의 지역들이 나오고 오키나와 섬이라고 하는 보통 본섬이라고 하는 섬이 있어요. 그리고 상당히 먼 곳에 떨어진 곳에 이시가키 요나고니 미야코 섬 등이 군사화가 되고 있어요. 모든 이야기가 담기면 장편 분량이 나오는 작품 작업인데요. 지금은 40분으로 이시가키섬과 요나고니 섬에서 있었던 오키나와 섬에서 촬영한 내용을 가지고 중편 길이로 만들었고 한국 상황이라든가 미야코 섬을 포함해서 좀 더 장편 작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섬들이 연결돼 있는 지점들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석
네 감사합니다. 다음 오이님께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오이님이 지금 평화바람에서 활동을 하고 계신데 굉장히 오랫동안 여러 군데에서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평화바람이라고 하는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 영화를 보시면 군산 장면들이 잠깐 나오잖아요? 그 장면과 일본의 장면들을 보시면서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혹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으시면 현장 이야기와 함께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오이
전 평화바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저는 그렇게 읽히더라고요. 나란한 섬에 군산도 그 나란히 있는 섬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했고요. 평화바람에 대해서 그 소개를 드리자면 평화바람은 자칭 평화구조대라고 이름을 붙여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만들어진 지는 오래되었어요. 2003년에 이라크전쟁이 있었는데요 이라크 파병반대 전쟁 반대를 들고 전국 유랑을 시작하면서 활동이 시작되었고요. 그 후에 1년 동안 유랑을 한 후에 평택미군기지 확장 문제가 그때 당시에 있었는데 그 평택에 들어가서 살면서 활동을 하기도 했고 그 후에 군산으로 이주를 했어요. 군산에는 저희가 사느 마을 바로 옆에 미군기지가 있어요. 거기에서 미군기지 대응하는 활동을 거기에서 지금까지 행해 왔는데 그 사이에 평택에서 나와서 용산 철거민 참사가 발생했을 때 용산에 가서 1년 살기도 하다가 강정하고 군산하고 나눠져서 활동을 같이 해 오다가 작년에 겨우 군산 본가로 다 합해져서 지금은 군산에서 다 모여서 활동하고 있어요. 현장에서 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고요 그리고 그 단체와 생활공간이 떨어져 있지 않고 모두 다 같이 살면서 활동을 하고 있는 평화운동단체입니다.

네 이 정도로 단체 소개를 좀 간단하게 준비를 했고요. 그리고 제가 이전에 영화를 이제 사전에 한번 보긴 했는데 오늘 다시 보면서 뭔가 다른 걸 발견하고 싶었으나 역시 인상에 강하게 인상에 남는 장면 남는 사람은 우에하라씨인 것 같아요. 계속 뭐랄까? 말 걸기를 계속하고 있는 분인 것 같았거든요. 거기에서 “여기 현장이 있고 여기 이런 곳이 있고 기지 때문에 전쟁을 위한 기지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장이 있고 이 아름다운 곳을 지키고 싶고 그리고 사람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 마을을 지키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는 우에하라씨가 평화바람이 있었던 곳곳의 현장들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해요. 지금 군산에 미군기지와 새만금 개발 문제가 있는데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동식물들을 보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분이 너무 인상 깊게 강하게 남는 것 같아요. 보고 나서.

신석
그 이어서 오이님한테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활동을 하신 곳들이 오이님의 삶의 터전이 아니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처음부터 살아온 터전은 아니잖아요? 그곳 주민 분들과 함께 활동을 하시는 과정에는 굉장히 많은 어려움 실패가 많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계속 활동을 이어 오셨잖아요? 지속적으로 평화활동을 지속하실 수 있는 어떤 동력은 어디에서 얻으시는가요?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어떤 일들을 했을 때 나에게 힘이 되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이
네. 아마 영화에서 보시면 현장에 들어오는 무기를 막기 위해서 혹은 기지를 짓기 위해서 공사를 하는 현장에서 공사 차량들과 이런 걸 막기 위해서 엄청나게 싸우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영화 속 뿐만이 아니고 군산도 마찬가지고 평택에서도 있었고 강정에서도 있고 지금 성주에서도 있는데 그런 걸 계속 보는 게 신나는 일은 아니잖아요? 힘든 일이기도 하고 평택에서 나왔는데 또 강정 가서 그 꼴을 봐야 된다고? 그리고 강정에서 봤는데 또 군산에서 그걸 또 겪어야 된다고? 이런 마음들이 있죠. 이런 마음들이 있는데, 그렇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어쨌든 거기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거에요. 저희 평화바람에는 다양한 멤버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분노로 동력을 삼아서 싸우기도 하고 그러기도 했을 텐데…

저는 오늘 영화 보면서 아 맞아 저런 게 있었지?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게 영화 화면 자막해설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러니까 공사장의 차량 소리와 풀벌레 소리. 이런 게 나란히 같이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냥 영화로만 봤을 때 쏙 들어오지 않았었어요.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장면은 공사를 하고 있는데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 이런 게 뜨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최근에 평화바람에서도 그런 것들을 좀 이렇게 동력 삼는다고 해야 되나? 그런 것들에서 위로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새를 보러 많이 다녀요. 갯벌에 우리가 이제 군산에는 미군기지 옆에 새만금 신공항이 지어질 예정이고 그곳에는 새만금 개발에서 수라갯벌이라고 하는 갯벌이 유지되고 있어요. 새만금이 지어질 예정이라 다 파괴해야 되는데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는데 파괴해야 되고 신공항이 지어지면 미군기지가 그곳으로 확장될 거고 이런 상황에 있는어요. 그래서 이제 거기를 자꾸 찾아가고 있고 사람들을 모아서 답사를 가고 있는데 거기에서 받는 위로가 굉장히 큰 것 같았어요. 새를 보는 것도 그렇고 풀을 보는 것도 그렇고. 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자연이라고 해야 될까? 거기에서 위로나 힘을 많이 받고 있고 그런 점들을 배우는 것 같아요. 거기가 신공항이 들어올지 기지가 들어올지 거기 살고 있는 풀들이나 새들이나 이런 친구들은 전혀 모르거든요. 공사 때문에 앞에서 포크레인으로 갯벌을 파헤치고 있어도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데 그게 이제 저한테 주는 배움이랄까? 이제 이런 건 이제 일단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다는 건데요. 그런데 그게 막 힘겹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어쩔 때는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느껴지는데요. 살아있는 동안 계속 살아있는 것 이게 이제 저는 수라에서 좀 배운 건데요. 그게 요즘에는 힘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답이 된 건가요?

신석
네. 그러면 다른 분들이 뭔가 관객분들이 그러면 뭘 하면 좀 뭔가 좀 더 힘이 되실까? 아니면 같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오이
잠깐 말씀드리기도 했지만 우에하라씨와 같은 심정으로 ‘이렇게 계속하다 보니까 한국에서 이런 친구들도 오고 그러지’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물론 그 현장을 찾아주는 분들이 많이 있을수록 그곳에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의 크기도 커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많이 그곳에다가 발자취를 남기면 남길수록 우리의 지분도 더 커진다. 그래서 답사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이런 저런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 활동들에 함께 해 주시는 것. 그리고 꼭 몸이 오지는 않더라도 같이 이야기해 주시고 네 기억해 주시면 그런 것들도 현장에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신석
이어서 감독님께도 비슷한 취지로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저는 계속 평화활동이라고 하는 게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이 없어야 된다고 계속 이야기하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가? 굉장히 멀고 요원하고 크게 느껴지는 활동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뭔가 그런 생명들을 보고 그렇게 힘을 얻는다고 하는 게 뭔가 활동가들의 입으로 듣는 거랑 제가 그냥 막연하게 혼자서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달라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또 감독님은 이 영화의 감독이기도 하지만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 활동하시면서 4관에서 상영하는 <옵티칼 노동자 투쟁 속보>라고 하는 영화도 찍으셨잖아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유튜브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여러 현장들을 찍으시기도 하고 블로그에서도 보면 굉장히 많은 활동들을 하셨어요. 이 활동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이 활동들이 평화활동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감독님의 활동을 통해서 관객들이 내가 내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씀을 드려 봅니다.

김설해 감독
지역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공부 모임을 만들어서 세미나를 하다가 각자가 공간을 만들어 보자 해서 책 읽는 곳 카페, 교육장 이런 공간을 같이 만들어서 운영을 시작했어요. 거기에서 같이 활동을 하면서 저희는 그 동네에서 오랫동안 만나왔던 청소년들이랑 마을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던 거였거든요. 그런데 수업에서 “공동체 교육을 할 건데 말이야 공동체란 말이지”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공동체적인 삶이 살아지지 않으니까 삶이 겹치는 곳에 같이 살면서 마을에 섞여 살면서 뭔가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단체가 만들어지고 나서 전국적인 어떤 투쟁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예를 들면 한진중공업에서 고공농성을 한다든지 투쟁이 있다든지 하는 굵직굵직한 투쟁이 터질 때 저는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여기까지 가는 게 맞나? 하는 고민들을 많이 했었어요. 이게 적어도 ‘이 사회에서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현장에 가는 것이 마을에서 잘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투쟁 현장을 좀 찾아가게 되었어요. 저희는 영상 미디어를 할 수 있으니까 필요한 걸 만들자 이렇게 해서 영상작업을 계속하면서, 저희 단체활동도 하면서 살아오고 있거든요. 그래서 뭐 대단한 작품을 만들거나 어떤 예술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저희는, 저는 스스로 이거 그냥 “PPT 만드는 것처럼 만든 거”라고 얘기도 하고 “저는 그냥 영상기술자예요.” 이렇게 얘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중요한 건 어쨌든 현장에는 제가 생각할 때는 신석 활동가님이 질문하신 싸울 수 있는 힘에 대한 답들이 되게 많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을 최소한이라도 전달하자는 생각을 하고 활동을 해오고 있는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접점에 영상이 있었어요. 그 접점… 사실은 바뀔 텐데 나이를 먹거나 제 몸이 달라지거나 사는 곳이 달라지거나 아니면 현장의 상황과 조건이 바뀌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접점도 달라질 수 있을 텐데, 그걸 발견하면 별로 그렇게 고민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걸 충실하게 잘하려고 하는 편이라서. 이게 저기에 와 계신 분들 여기에도 되게 활동가 분들이 많고 자기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그분들한테 무슨 도움이 될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동료를 만들고 같이 살아갈 장소를 정하고 거기에서 잘 살아가려고 하면서 나랑 연결되어 있는 현장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이것을 쭉 유지하면서 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좀 지난 공룡에서 활동하면서 생각을 해왔던 것 같고요. 그래서 찾아가게 되었던 장소는 송전탑 반대 군사기지 반대 성주나 강정도 있었고 노동운동 현장들도 있었던 거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 현장이 어떤 카테고리로 묶이냐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있냐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했던 것 같고 일단 필요하다고 하는 곳에 먼저 찾아갔던 것 같고 우리가 봤을 때 카메라가 필요한 것 같은 곳에 찾아가게 된 측면도 있었어요. 그렇게 찾아다녔던 현장들 제가 20대 초반에 겪었던 대추리, 군산에서 같이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오키나와에 다녀오면서 이게 굉장히 오랜 장기계획에 걸친 군사화 과정 안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10여 년 지나고 지금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일단은 싸운 사람이 있고 이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움직이니까 갔던 건데 지금 와서 보니 이게 굉장히 긴 기간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그 의지에 고통받고 있었던 거구나 라는 걸 10여 년이 지나 여러 현장을 다니고 나서 지금 조금 느끼는 것 같아요. 전쟁이라는 것, 평화의 문제가 우리 삶에 이렇게까지 많은 영향을 되게 장기적으로 오랫동안 장기계획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 조금씩 좀 깨달아 가면서 저의 보통 저의 문제로 받아들인다고들 많이 얘기하는데요. 그런 거였구나? 라는 걸 이제 좀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있는 활동이 이름을 붙이기에는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네. 그렇게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신석
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오이님께서 수라갯벌에서 보고 배우신 것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좋았고 그리고 김설해 감독님이 말씀하신 곁에 있는 “현장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좀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굉장히 잘 숨어 다니는 편이라. 좀 새겨들어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관객분들께서 의견하고 질문을 하나씩 남겨주셨는데요. 잠깐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멋쟁이 프로도님이 중간에 군인의 총을 든 손 부근을 비추며 왼손 약지에 낀 반지가 보이는 장면이 계속 마음에 남는 것 같아요. 저 사람들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 똑같은 인간일 텐데 착취당하고 위협당하는 주민들과 같은 인간이고 그걸는 모두가 알고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자꾸 들어서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오래 인상에 깊게 남을 것 같아요.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혼자가 아닌 걸 알아서 용기가 난다는 말을 들은 만큼 앞으로 더 나란히 같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라고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이건 의견으로 하나 더 의견 먼저 전달드릴게요. 자위대라고 해서 막연하게 유사 군사조직이라고 생각했는데 보기에 그냥 군대 같아서 놀랐어요. 군대와 일본의 자위대가 다른 점이 뭔가요? 라고. 남겨주셨는데 다른 점은 전 없어 보이는데.

오이
다른 점이 없을 거고 군대를 남기기 위해서 자위대를 만들었던 것이라고 생각이 들고 지금은 공격가능한 자위대로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일본에서 헌법 구조 이런 것을 이제 개정하고 이러면서 애를 써왔던 것이잖아요? 그리고 또 일본뿐만 아니고 한국도 그렇고 한국, 일본, 미국 이렇게 같이 조금 더 ‘본격적인 군대’, ‘본격적인 기지 군사화’ 이런 걸 계속 진행을 해오고 있는 상황으로 이제 저는 생각하고 있어서 다르지 않다. 그냥 말을 조금 수세적으로 만든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석
답변이 잘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의견이 있는데요. 하나 더 이제 다 읽어드리기가 좀 어려워요. 그 중 하나를 말씀드리면요.

고향에 미군기지가 있는 분이 질문을 남겨주셨어요. 영화에서 주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함께 살고 있는 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면서 군사가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게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남겨주시면서 영화를 제작할 때 공간에 담긴 생명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고려하신 요소나 촬영 중 벌어진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김설해 감독
일본어를 못했었거든요. 작년 1월에 처음 갔는데 저희가 돈이 없어서 처음 갈 때는 처음에 군산에서 같이 활동하는 ‘난리법석 프로젝트’ 일원이랑 같이 갔어요. 그때는 코로나 끝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여서 오키나와와 한국의 연대 조직이 있어 오키나와에도 꾸준히 갔었는데 중단돼 있는 상황이어 가지고 저희가 군산에서 군산 미군기지와 새만금 사라져가고 있는 마을을 미디어로 알려보자고 하는 난리법석이라고 하는 프로젝트를 했었는데요. 그 멤버들하고 처음 갔어요. 일본어 그때는 통역이 있었어요. 오키나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좀 심각하게 그리고 빠르게 군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시가키 섬에 자위대 개장시기에 맞춰 다시 한번 가게 되었어요. 여튼 몇 번을 그렇게 저희는 가서 영상을 찍는 건 일단 기본 찍는 거고, 피켓팅 데모를 같이 하거나 교류회를 하거나 아니면 여기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우에하라 상의 락교 밭에 가서 농사를 짓는 게 저희의 주요한 활동 중의 하나였거든요. 여튼 그렇게 하면서 일본어를 잘 못하니까 다들 얘네를 어떻게 해줘야지? 라고 생각하시는 모습이 화면에도 좀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본인들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게 아닌가 편집할 때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는 “아, 네” 그렇게만 대답했는데 편집할 때 보니까 ‘이때 이런 말을 나에게 하고 싶었구나.’ 깨달았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한국에서 얘네가 와서 봐주고 있다 기록해 주고 있다 우리랑 연대해 주고 있다는 자리를 지키는 역할을 좀 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까 화면에서 이렇게 카메라를 향해서 뭔가 말씀하시는 걸 당시에 우리는 거의 못 알아들었다. 그런 것?

신석
네. 알겠습니다. 의견은 넘어가서 이제 간단하게 이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이 질문은 제가 엄청 사심을 담아서 하는 질문인데요. 제가 저는 개인적으로 기록 활동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 영화를 보다 보니까 우에하라 마사미츠라는 분께서 뭔가 계속 변화하는 모습들을 찍고 관찰하시면서 괴롭다고 계속 말씀하시면서도 계속 그걸 기록하는 모습을 보니까 엄청 저는 그 장면들이 좀 기억에 남더라고요. 저 개인적으로.그런데 어쨌든 지금 강정에도 강정평화센터가 있고 군산에도 평화박물관이 있고 감독님은 어쨌든 계속 영상기록도 남기시고 여러 가지 기록활동을 하고 계신데 두 분께서는 이런 기록활동을 어떻게 보셨는지? 좀 그리고 이런 기록활동들이 어떤 모습 앞으로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오이
네. 그러니까 기록해야지 기록 자체에 의미를 막 생각해서 하고 있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기록의 의미를 저는 잘 알지는 못했거든요. 그러니까 별로 이제 쓸 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랬는데요. 평화박물관을 만들고 운영하고 이러면서 군산에 평화박물관이 있는데 평화바람에서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데요. 군산에서 미군기지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기지에서부터 시작해서 해방 후 미군이 들어와서 자리 잡고 계속 확장하면서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게 군산의 미군기지거든요. 그러니까 거의 70, 80년 전쟁이 끝난 지가 그렇게 되었는데 그쪽 분들은 계속 그렇게 살아온 거죠. 그리고 거기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활동을 시작하고 벌여왔던 시민들의 이야기를 평화박물관에 담아서 소개를 하고 싶었던 게 있고요.

그리고 그게 현장이 또 바로 있는 곳이잖아요? 박물관에 있는 이야기가 박물관을 보존하기 위해서 있다기보다는 거기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게 지금 일어지는 일이고 이것이 조금만 10분, 20분 차로 가면 볼 수 있는 곳이고 거기에서는 계속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평화가 깨지는 현장이에요 라는 걸 박물관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록의 의미는 나한테는 현장으로 이어주는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싸움을 평화를 향한 투쟁의 일환으로써 생각하고 평화박물관이라든지 방금 감독님이 얘기하셨던 기지감시 활동이라든지 현장과 현장의 바깥이라고 해야 될까? 그것을 이렇게 끊임없이 연결하기 위한 것이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설해 감독
저도 기록의 의미를 굉장히 많이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요. 생각이 별로 없는데요. 기록, 당연히 같이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는데요. 찍는 거든 뭐든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과정이 먼저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어디에 찾아가야 할까? 어디를 가야 될까 지금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약간 이런 것들을 계속 좀 생각하게 만들어 줘요. 이제 뭔가 어쨌든 영상을 만들거나 하다 보면 지금 내가 어디에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약간 이런 생각들을 계속하게 되고 내가 누구 옆에 가서 서야 되지? 누구를 쳐다봐야 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새 풀을 보면서 에너지를 아직 그런 정신적인 수행이 잘 되는 사람은 아니어 가지고요. 가서 좀 실망하거나 화가 나거나 할 말이 가득해 보이거나 이런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가서 그러면 같이 하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해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신석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의견 하나 더 말씀드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분의 앞으로 활동이나 작품활동 이런 부분에 대해서 좀 소개를 해주시면서 저희 마무리를 좀 해보려 합니다.

야마다님이라고 하는 분께서 영화 잘 봤습니다. 좀 중간에 와서 다 보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지만 저희 오빠도 오키나와에 이주하면서 20년쯤 되면서 저는 아직 그 측에 가본 적이 없지만 영화나 음악을 통해서 주민들의 상황을 볼 때마다 일본 본토에 대한 한을 느끼기도 하고 그러나 반항하는 힘도 함께 느껴 왔습니다. 그것은 미래시대에 대한 희망을 잊지 않으려는 주민들에 대한 소원이라고 느꼈습니다.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요. 이런 연대활동이 앞으로도 지속되도록 응원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 활동에 대해서 좀 간단하게 말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이
네 답변해 드리기 전에 제가 새나 풀이나 이런 걸 보고 위로를 받는 건 뭐랄까? 도저히 희망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에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마냥 이렇게보다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까? 아니면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사실 질 게 뻔한 싸움에서 그리고 지고 지고 지고 맨날 지는 이 싸움에서 도대체 이제 그러니까 희망이 좋은 게 아닌 것 같은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희망을 갖는 것밖에 답은 없는데 그게 굉장히 고통스럽고 그렇게 가져가는 것이구나 이런 걸 생각하게 되면서 봤던 게 풀이고 새. 그런 것들이 살아가는 힘이라고 해야 될까? 이제 그런 걸 좀 더 보게 되었던 것 같고요. 이거는 꼭 뭐 현장에 있다고 꼭 그런 건 아니겠죠. 현장이라고 특별히 더 괴로운 건 아니고 즐거움도 굉장히 많고 하니까요. 그래서 좀 방문하셨으면 좋겠고 연장해서 말씀을 드리면 군산에서는 지금 새만금 신공항 문제와 그 다음에 미군기지 확장으로 없어진 화재망을 지키는 건데 그곳을 미군기지가 공유하라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 마을에 철조망이 쳐질까 안 쳐질까 이런 걱정을 하면서 매달 거기에서 문화제를 하고 있거든요. 뺏어서 미군한테 주지 말고 국방부가 계속 관리해라 시민들이 계속 드나들 수 있도록. 그런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만금 신공항은 내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할 텐데 관련해서 지금 국민소송 재판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매달 프로그램을 하고 있기도 하고, 언제든지 요청이 들어오면 갑니다. 그리고 세종에서 천막농성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기도 하고. 이 활동을 계속 쭉 이어가지 않을까? 싶고요. 신공항의 문제. 환경파괴 문제가 아니라 전쟁기지와 연결되는 그런 문제라고 하는 것들을 계속 알려 나가는 활동을 앞으로 새로운 활동이 아닌 대활동 계획으로 가져갑니다.

김설해 감독
저희 또 군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걸 계속해 나가면서 오키나와, 제주, 대만, 중국 이런 아시아뿐만 아니라 하와이라든지 이런 군사기지의 문제를 가지고 연대한 연대가 있는데요. 여기에는 이제 캠프를 연다든지 이런 식으로 나라를 넘어서 만나는 자리들을 계속 만들고 있는데 좀 그것들을 통해서 이게 사실 어느 한 곳에서 군사기지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잖아요? 한국의 군사 미군의 수가 줄면 오키나와에서 많아지고 오키나와에서 겪는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중국이 대만에 침공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유사 시에 대만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군사기지화하는 거다.’ 라는 논리 안에서 대만 사람들이 느끼는 것, 그리고 오키나와 사람들이 느끼는 것, 그리고 기지가 지어지고 있는데 그곳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들이 섬들의 연대에서 만나면 굉장히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르지 않고 서로 충분히 대화를 통해서 길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면 오키나와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차별이나 침략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한국의 활동가들 중에서도 그냥 “일본 사람 아니야?” 라든지 “나는 일본 사람 싫어하는데?” 라든지 이런 게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런 국가와 역사가 없다고 치자는 것이 아니라 그걸 충분히 알고 서로 배워 나가면서 ‘대화의 장’,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모임들 움직임들을 작년부터 이제 그걸 계속 같이 따라가고 있는데 그 기록을 좀 만들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고. <나란한 섬> 작업을 하고 옵티컬 투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시작했을 것 같은데 옵티칼 계속 연대하면서 여러 노동 현장에서 부르면 달려 나가는 그런 한 해를 보내려 합니다.

신석
네 두 분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상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