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 쓰치 | 2019 | 다큐멘터리 | 93분 | 일본어 한국어자막해설
싱글맘인 나의 엄마 가노 호코는 어린 나를 돌봐줄 사람을 모집했다. 그리고 ‘침몰가족’이라는 이름의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지금 어른이 된 나는, 나의 돌봄자들을 찾아가 만난다. 흐릿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가족이란 무엇’인지 생각한다.
시놉시스
1990년대 후반 도쿄, 22세의 싱글맘 가노 호코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모집했다. 자신만의 시간이 없으면 아이와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참가한 보육자들은 호코 씨가 일이나 야간 학교에 가면 아이를 돌봤다. 금전적 거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 공동육아를 그들은 ‘침몰가족’이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20년. 어린 시절을 침몰가족에서 자란 아이, 가노 쓰치는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성장 과정을 추적한다. 침몰가족을 시작한 어머니, 보육에 참여했던 어른들, 그리고 주말에 단둘이 만났던 친아버지, 이들과 다시 만나면서 흐릿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 다름과 연루 |
침몰가족
Family by Chance
감독 : 가노 쓰치
제작연도 : 2019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일본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93분
상영일시 : 2025.12.5.(금) 오후 7:20
상영장소 : 영화공간 주안 4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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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시간
나기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
타리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
작품해설
“나는 쓰치를 낳고 싶어서 낳았습니다. 집에 틀어박혀 종일 가족만 생각하느라 타인과 아무런 교류도 없이 살다가 아이는 물론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고 애쓰며 ‘인간해방’을 기치로 살아온 여성, 가노 호코 씨가 붙인 전단지의 내용이다. 아이를 함께 낳은 파트너와는 양육을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결별과 이동을 감행한다. 정상가족 해체를 일본사회 침몰이라고 한탄한 정치인의 말을 받아 침몰가족이라고 붙인 이 육아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장소가 생성되었다. 이곳에는 정상적인 방향으로 살기 어려운, 살기 싫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역설적으로 배우자, 양육자가 될 계획이 없었던, 될 ‘능력’이 없었던 이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침몰가족 영화는 그 안에서 자라난 가노 쓰치 씨가 대학에 가서 졸업 작품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시작된다. 이전에 자신의 양육에 참여했던 이들을 다시 찾아가 당시의 상황과 기억을 나누며 자신과 어머니의 인생에서 이 경험이 어떻게 잡았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일본 사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유별난/유일한 사례로 남았는지 추적한다.
호코씨 가 침몰가족을 만들고 추구했던 것, 침몰가족 참여자들의 면면과 그들이 양육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서 치열하게 토론했던 이야기들은 여전히 지금 여기에 많은 질문을 던져준다. 어떤 돌봄이어야 가능한가, 무엇을 지향하는 연대라야 가능한가, 어떤 우연과 어떤 자원이 결합되어야 예상치 못한 결과물과 배움을 선사하는가, 우리에겐 그런 우연성과 위험에 자신을 내던질 용기가 있는가, 어떤 위험이 닥쳐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자원과 관계가 있는가.
이 영화는 ‘가족 밖에서 혼자 양육하기’라는 극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창조적이고 해방적인 기획과 실천을 감행했던 한 여성의 그림자에서 각자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국가의 법뿐만 아니라 운동의 규범조차 하나라면 누군가를 배제하는 폭력일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진 어머니와 살아가기로 초대한다.
타리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
인권해설
“공동육아라는 말에서 공동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돌봄정의, 시민적 돌봄. 최근에는 ‘평등’이라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 이 말을 호코 씨의 질문을 통해 다시 생각해 본다. 양육과 간병, 친밀성, 상호의존 등 인간의 생애를 지탱하는 수많은 에너지의 교환과 돌봄노동을 혈연, 혼인, 입양 등 법적 틀 속의 가족 내에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시민들이 ‘공동’으로 책임지는 것을 돌봄의 재분배, 돌봄정의, 시민적 돌봄이라고 이름 붙일 때 이 ‘공동’은 정말 구체적으로 ‘누구’의 몸으로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문장은 너무 많이 들어서 구태의연하다. 하지만 너무 많이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문장이 개념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구현되는 행위와 관계를 표현하는 것일 때 <침몰가족>에서와 같이 성별에 편중되지 않고, 자기가 되는대로 ‘함께 있는 것’으로 돌보는 풍경을 구체적으로 떠올린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호코 씨의 공동육아에 대한 요청이 낙오연대(다메롄 : 취직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고, 연애하지 않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모임)와 만난 것은 우연적이지만 필연적이다. 다양한 사람이 양육에 개입될 수 있으려면 시간을 낼 사람이 필요하다. 아침이고 점심이고 중간중간 등·하원이나 식사, 놀이, 아플 때 병원 가기 등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주 양육자가 자리를 비워도 그 시간 아이를 지켜보는 눈으로 함께 있으려면 자본이 요구하는 시간표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직계가족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사유에 의해서만 쓸 수 있는 돌봄휴가, 돌봄휴직(그나마도 사업주가 거부할 수 있는) 제도로는 시간을 담보할 수 없다. 이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을 그 시간에 대한 대가를 줘야만 구할 수 있는 체제라고 할 때 우리는 자신의 시간을 저가로라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시장적 논리를 ‘공공성’으로 포장할 때 ‘외국인 가사관리사’ 같은 제도처럼 인종적, 계급적, 젠더적으로 돌봄노동이 다르게 강제된다. 단순히 ‘다양한’ 개입이 아닌 돌봄정의가 있는 개입이 되려면 생산활동을 덜 해도 먹고 살 수 있을 만한 소득 보장이나 다른 호혜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
돌봄에 연루되는 사람을 많이 만들려면 돌봄을 함께 하는 타인이 드나들어도 괜찮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 꼭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열린 대문이 필요하다. 사적 소유물이자 혈연이나 법적 가족만이 있을 때 안전하다고 상상되는 폐쇄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한 개념을 질문하는 것이다. 가족관계가 아닌 이들의 오고 감이 불온하고 문란한 것으로 낙인찍힐 때 오히려 그 폐쇄된 집에서 비가시화되는 고립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
자격이 나눠지지 않을 때 돌봄도 나눠지지 않는다. 사적인 개입이 아니라 돌봄의 공백이 있는 아동에 대한 제도로 공적인 개입의 한 방법인 위탁가정의 위탁부모조차도 위탁아동에 대한 책임과 보호를 수행할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이다. 병원에서 응급치료받거나 입원해야 할 때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해서 연락이 끊긴 친부모와 연락하고 서류를 받기 위해 애써야 한다. <침몰가족>같은 형태가 아니더라도 이혼, 재혼, 비혼출산, 동거 등으로 한 아이에게 연루될 수 있는 다양한 양육자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데 무조건 친권자, 법적 부모만 아동에 대한 결정을 대리할 수 있다면 위기의 순간 돌봄이 나눠지기 어렵다. ‘사실상의 부모(DE FACTO PARENT)’ 개념을 인정하여 교육, 의료 등에 있어서 아동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일정한 범위의 권리를 허용하는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적 돌봄은 가족 밖 새로운 연결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가족 안에서의 새로움이 요구된다.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태도, 양육하고 보호하되 독점적 결정권을 가지는 ‘엄마’의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지 않고 ‘나’로서 ‘너’와 관계 맺으려는 호코 씨의 태도야말로 시민적 돌봄을 위해 필요하다. 호코 씨의 이런 태도는 침몰가족을 ‘가족’관계가 아닌 관계로, 열린 관계로 만들려고 하는 마음과 이어진다. 우리는 ‘새로운 돌봄’을 원하면서도 과거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관계가 유지되거나 벽에 똥칠을 하더라도 헤어지지 않을 그런 가족 아닌 타인이 있을까-생각하며 (그런 타인은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기존의 가족이 짊어졌던 돌봄에 대한 무거움을 벗어나자, 나누자라고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그 무거움을 짊어질 다른 사람을 기대하고 찾고 있다. <침몰가족>을 보면서 호코 씨와 쓰치 사이의 관계, 침몰가족을 훌쩍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뭔가의 서늘함을 느꼈다면 내가 느낀 온도의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기존에 내가 기대했던 관계들이 너무 뜨거움을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 영원한 책임은 기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계속 바뀌는 타인들 사이에서 돌봄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불안한 기대를 이어 나가자.
이유나 또는 나기 『가족신분사회』, 『퀴어한 장례와 애도』 공저.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

감독
가노 쓰치 加納土
1세부터 8세까지 공동보육 ‘침몰가족’에서 자랐다. 대학 졸업 작품으로 자신의 성장 배경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다. 2019년, 졸업 작품이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다. 또한 취재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 『침몰가족』도 집필했다. 책은 2022년,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