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민지 l 2025 l 다큐멘터리 l 107분 l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문화예술계 내의 성폭력 생존자들과 연대자들은 무너진 일상을 딛고 나아가는 삶을 위해 예술·회복 공동체 ‘상여자의 착지술’을 만든다. 영화는 이들이 5년간 함께 울고, 충돌하고, 다시 연결되며 만들어온 더딘 착지의 시간을 따라간다.
시놉시스
출판계와 문단계의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한 탁은, 미투 이후 무너진 일상 속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씻고, 집 밖을 나서는 일상은 반복되는 긴장과 자신과의 싸움으로 채워진다. 그런 탁이 발 딛고 선 곳은 생존자와 연대인들이 함께 만든 예술-회복 공동체 ‘상여자의 착지술’이다. 이들은 매주 안전한 공간에 모여 간식을 나누고, 돌아온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털어놓고 함께 울고 웃는다. 또한 다양한 성폭력 생존자와 연대인을 대상으로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안전한 공유지를 확장해 나간다. 하지만 이 공동체 역시 완벽하지는 않다. 기대가 어긋나고, 상처가 드러나며, 관계는 균열을 겪기도 한다. 영화는 완벽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다시 말하고, 움직이고, 연결되려 애써온 지난 5년의 시간을 따라간다. 탁과 ‘상여자의 착지술’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더딘 회복의 능선을 따라 각자의 착지를 연습한다.
Synopsis
TAK, who brought to light sexual violence cases in the publishing company and literary scene, struggles to rebuild her life in the aftermath of #MeToo. Waking up, eating, washing, and stepping outside are daily acts charged with constant tension and a battle against herself. The ground she stands on is Sang-yeoja’s Grounding Tactic—an art collective created by survivors and allies. Each week, they gather in a safe space to share snacks, voice their anger toward returning perpetrators, and weep and laugh together. They also run art programs for sexual violence survivors and allies, expanding their shared safe haven. But this community, too, is far from perfect. Expectations clash, wounds surface, and relationships crack.
Over the past five years, the film follows their efforts to keep speaking, moving, and reconnecting within these imperfect bonds. TAK and the members practice their own grounding at their own pace, tracing the slow, uneven ridgeline of recovery.
| 흐르는 : 삶과 곁, 공존을 향해 |
착지연습
Grounding
감독 : 마민지
제작연도 : 2025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107분
상영일시 : 2025.12.6.(토) 오후 7:00
상영장소 : 영화공간 주안 4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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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시간
마민지 감독
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희우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작품해설
영화 <착지연습>은 트라우마 치료에서 사용되는 안정화 기법 ‘그라운딩(grounding)’ 개념에서 출발한다. ‘지면에 발을 딛고 현재의 시간으로 자신을 되돌리는’ 이 기술은 피해 생존자들이 다시 삶으로 돌아오기 위한 첫 단계이기도 하다.
영화는 예술계 성폭력에 맞섰던 생존자들과 연대인들이 지난 5년 동안 각자의 속도로 걸어온 회복의 과정을 따라간다. 미투 운동 이후 예술계를 뒤흔들었던 파도는 겉으로는 잦아든 듯 보였지만 생존자들에게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착지연습>은 바로 그 ‘이후’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시간을 기록한다. ‘상-여자의 착지술’은 생존자들과 연대인들이 함께 만든 예술-회복 공동체로서 매주 모여 간식을 나누고, 가해자의 복귀를 두려움과 분노로 이야기하고,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해 살아갈 힘을 만들어간다. 가해자가 출소하고, 주변의 관심이 줄어들고, 페미니즘의 물결이 뒤로 밀려난 시대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매일의 생존을 위해 싸운다. 영화는 그 싸움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집 밖으로 나서는 ‘가장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비춘다.
그렇다고 이 회복의 공동체를 이상화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이곳이 언제나 안전한 공간이었던 적은 없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기대가 어긋나며 생기는 상처, 서로에게 화살처럼 튀어나오는 말, 관계의 삐걱거림을 감추지 않는다. 그렇게 회복은 성공과 실패로 구분되는 과정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와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결국 <착지연습>은 ‘트라우마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서로에게 발을 딛어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매일의 작은 착지를 연습하는 몸들,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다시 서로를 호출하는 목소리들, 공동체로 모여들어 기어이 연결되는 손들의 이야기이다.
희우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인권해설
<착지연습>은 #OO계_내_해시태그와 #미투운동이 휩쓸었던 2016년부터 2019년, 그 후의 이야기다. 폭풍 같은 피해 말하기, 파도 같은 릴레이 해시태그는 수면 아래 잠자코 있던 이야기들을 밀어 올렸다. 말하기는 큰 힘으로 일렁였는데 사회 관습과 규범은 쉽게 박살 나지가 않았다. 피해자들이 힘써 말하는 동안 백래시는 노골적으로 세를 불렸다.
2020년 서울 합정동 댄서스라운지에 자청, 늘보, 늘, 라무, 구구, 탁이 모였다. 성폭력 생존자와 연대자인 각 분야의 예술인들. ‘상-여자의 착지술’ 이라고 이름도 지은 이들은 각자의 예술 분야를 살려 생존자를 위한 회복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공간을 내놓은 늘보는 말한다. 왜 생존자를 위한 회복 프로그램이 시스템으로 존재하지 않냐고.
사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치유회복프로그램이 있다. 법무부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에서 나온 재원으로 현재 성평등가족부가 관할하는 예산에 편성되어 있다. 전국 성폭력상담소 같은 곳에서 치유회복프로그램 다양한 내용을 살펴보고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 예산을 대폭 깎았다. 절반이 줄었다. 장소도 구할 수 없어 곳곳마다 다니며 사정하고, 간식도 쪼개가며 먹게 됐다. 치유 회복 예산은 삭감하고 ‘고위험군 범죄자 엄벌’하겠다는 정치는 위험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불평등에 맞서는 대안적인 힘은 깎아내고 자른다.
‘상-여자의 착지술’은 자생적으로 활동한다. 자발적으로 대안 공간을 만든다. 제도권에 대한 대안이 된다. 상-여자답게, 착지하는 방법이다. 상-여자의 착지술의 회복 프로그램은 어떨까? 러닝타임 내내 강렬한 것은 무엇보다 상호작용이다. 바닥을 기어서 옆 사람에게 가고, 손을 뻗고, 서로 닿고 잡고, 몸 한쪽이 연결된 상태에서 뒤집어 비틀며 같이 일어난다. 프로그램 기획자와 진행자, 팀원들은 무엇이 어떤 이에게 불편하지 않을지 생각하고 점검한다. 안내는 더 상세하고 친근해진다. 그 결과 상-여자의 회복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의 감정과 몸을 건드린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이는 호흡이 가빠지고, 다른 장소에서 멈추어 쉰다.
<착지연습>은 상-여자 팀 중 생존자와 연대자 사이, 생존자와 생존자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차이를 차분하게 담고 끝까지 희미한 선을 따라간다. 한 구성원이 마음과 몸을 털썩 멈춰 세우자 다른 구성원들은 충격과 고통을 같이 전달받는다. 또 다른 구성원은 팀 활동을 중단했다. 그가 회복하려는 일상의 리듬을 남은 구성원들은 알고 응원한다.
결국 여성폭력이 파괴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안전한 공간, 적정한 거리, 존중하는 말과 서로를 보는 눈, 참여하는 의사결정-과정, 역량을 발휘할 기회, 싸우고 갈등하고 들어보고 설득하고 이해할 기회. ‘상-여자의 착지술‘은 여성폭력이 해친, 해치려던 그것을 회복해 간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다섯 해. 회복은 하나의 개발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당탕탕 작은 넘어짐과 일어섬을 반복하는 일상의 시간, 시간의 관계에서 온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 모두가, 특히 여성들이 폭력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폭력으로 인해 사람들과 가치 있는 관계를 맺게 하는 자신의 능력이 훼손당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생존자들이 슬퍼하는 것은 이와 같은 관계의 상실이며, 관계의 상실은 곧바로 생존자들의 자율적인 삶을 위태롭게 한다. 트라우마 생존자가 트라우마의 여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확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외부의 침범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트라우마 생존자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한계를 지닌 채 살아갈 수 있을지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피해입은 자신과 화해를 이루어가고, 동시에 그녀는 자신에게 드리운 외부적 한계들 중 일부는 변화될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자율적 자아와 관계적 자아는 서로 도와주는 관계이며, 때로는 서로가 상대방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야기 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수잔 브라이슨, 인향 2003)
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감독
마민지 Ma Minji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의 감독이자 작가로 퀴어·페미니스트·계급 의식에 대한 시선을 결합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분법적 범주에 저항하며, 개인적인 이야기와 정치적인 서사를 엮어 정체성과 역사의 다층적인 복합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미시사와 거시사를 교차시킴으로써, 주류 담론에서 간과되는 미묘한 결들을 포착하는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쓴다.
장편 데뷔작 <버블 패밀리>(한국/핀란드)는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토론토 릴 아시안 영화제에서 특별언급 되었다. 또한 핀란드 Yle와 일본 NHK World에서 방영된 바 있다. 두 번째 장편 영화 <착지연습>은 202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차기작 <나의 두 번째 가족>으로 Chicken & Egg Pictures 제작지원을 받았으며, 미국 Uniondocs Summer Lab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기획의도
영화 <착지연습>은 트라우마 치료에서 사용되는 안정화 기법 ‘그라운딩(grounding)’ 개념에서 출발한다. ‘지면에 발을 딛고 현재의 시간으로 자신을 되돌리는’ 이 기술은 피해 생존자들이 다시 삶으로 돌아오기 위한 첫 단계이기도 하다. 영화는 예술계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연대인들이 5년에 걸쳐 회복 능선을 함께,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는 과정을 기록한다.
미투 운동 당시 문단계, 무용계, 미술계, 연극계, 영화계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예술을 통해 다시 성장의 장을 만들어가려 한다. 페미니즘의 물결이 한풀 꺾이고 가해자들이 출소하는 현실 속에서도, 생존자들은 여전히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 영화는 함께 싸워온 이들의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앞으로의 싸움을 위한 힘을 모으기 위한 시도이다.
연출의도
나는 영화계에서 성폭력을 경험했다. 그리고 스스로 ‘성폭력 피해 생존자’라고 부르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일어났던 이른바 ‘이상한 일들’이 사실은 신체적‧심리적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게 천천히 회복의 능선을 걸으며, 각자의 능선을 오르고 있는 다른 생존자, 연대자을 만나기 시작했다.
‘상-여자의 착지술’ 팀은 미투 운동 이후를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며 예술로 무엇을 해나갈 수 있을지 질문해 왔다. 나 역시 영화 감독이자 생존자로 팀에서 활동하며 지난 5년의 시간을 함께해 왔다.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함께 울고, 웃고, 듣고, 말하며 우리는 회복할 때도 있었지만 실패하기도 했다. 영화 <착지연습>은 생존자와 연대인이 ‘안전한 공유지’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공동체의 기록이다. 또한 회복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성폭력 피해 이후의 삶을 이어나가는 생존자와 연대인들의 이야기이다.
Credit
제작 · 쌍마픽처스
프로듀서 · 마민지, 오희정
연출 · 마민지
촬영감독 · 배꽃나래, 이지민
편집감독 · 이연정
음악감독 · 이민휘
색보정 컬러리스트 · 김형희
사운드 · 표용수
번역 · 원혜연, 박혜연, 설미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