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들이 말할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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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의 힘, 몫소리의 힘 |

돌들이 말할 때까지
Until the Stones Speak


감독 : 김경만
제작연도 : 2022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영어자막, 자막해설
상영시간 : 100분

상영일시 : 2022.11.26(토) 오후 1:3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11월 26일(토) 오후 1시 30분 <돌들이 말할 때까지> 상영 후
김경만 감독
백가윤 전 (사)제주다크투어 대표
신석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을 진행하였습니다.




기획의도

4.3에 대해서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한 사람의 말이라도 더 들으려는 사람들이 할머니들의 말을 듣기 위해 기다렸다. 할머니들은 특유의 입담으로 몸 깊숙하게 기억하는 4.3의 경험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할머니들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4.3속에서 여성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제주 사람들은 어떻게 강인한 마음을 지켜냈는지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4.3은 아름답지 않은 사건이다. 아름답지 않은 사건을 왜 기억하고 돌아보아야 할까? 거기에는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기억이 있고, 지금까지 돌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고, 되새기고 반성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미래가 있다. 그래서 김경만 감독과 같은 영상감독은 영상으로 기록하고 백가윤과 같은 활동가는 살아 숨 쉬는 생존자를 불러 사람들과 만나게 한다.
과거의 4.3이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미얀마 학살과 같은 다른 이름으로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다. 이름과 시기, 장소만 보면 각각 다른 이름, 다른 시기, 다른 장소의 일들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같은 선 위에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가 과거사를 통해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인간성을 고민해봐야 할 이유다. 아직 4.3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_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신석




대화의 시간 기록

* 일시 : 2022.11.26(토) 오후 3시 10분
* 장소 : 인천 영화공간주안 4관

김경만 감독
백가윤 전 (사)제주다크투어 대표
신석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수진 한국농인LGBT설립준비위원회
박세희 AUD사회적협동조합



신석
안녕하세요? 이번 관객과 대화 사회를 맡은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신석입니다. 반갑습니다. 우선, 시작 하기 앞서 통역하시는 두 분 소개 드리겠습니다.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의 수진 수어통역사님, AUD 사회적협동조합의 박세희 문자통역사님이십니다.
다음으로 게스트 두 분 직접 소개 부탁 드리겠습니다.


김경만
안녕하세요? 영화를 맡은 김경만입니다.

백가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육지 것이 겁도 없이 제주도 내려가서 4.3 관련된 제주다크투어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했습니다. 지금 현재는 진실화해위원회라고 하는 한국의 과거 국가폭력을 조사하는 국가기구에서 잠시 일하고 있습니다. 백가윤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신석
네. 영화 다들 잘 보셨나요? 저는 감명을 많이 받았는데요. 제가 지금까지 보던 4.3 영화들하고는 좀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다큐영화 같은 경우, 뭔가 비참한 사진, 영상, 또는 전문가들 이야기나 뭐 나레이션이 더 많았어요. 극영화의 경우에는 뭔가 더 잔인하고 서글픈 장면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돌들이 말할 때 까지>는 차분하면서도, 뭔가 다양한 감정들이 드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감명 깊게 봤어요. 백가윤 님은 4.3과 관련한 활동을 하신 관객으로서 어떻게 이 영화를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백가윤
저는 시사회 때문에 집에서 영화를 먼저 보고, 오늘 큰 스크린으로 보게 되었는데, 큰 화면으로 보니까 감동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눈썰미 좋으신 분은 알아차리셨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영화 후반부에 나와요. 모니터링 했을 때 왔다 갔다 제주도 갔던 적이 있어서 할머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어요. 또 과거의 4.3뿐만 아니라 재심재판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4.3이 여전히 끝나지 않는 현재의 이야기라는 걸 잘 드러낸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또 더 나아가선 다 눈치를 채셨겠지만 인터뷰하신 분들이 다 할머니잖아요? 중간, 중간 보시면 어떤 할머니가 말씀하실 때, 계속 옆에서 남자 어르신이 끼어들면서 “몰라, 몰라” 하는 거 들으셨죠? 여성 할머니의 목소리를 애를 써서 발굴하지 않으면 드러나기 어려운 과거사 현실인데 그런 부분을 영화에 잘 담아 내어주셔서 4.3 활동가의 입장에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석
네. 다음으로 감독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영화제목이 <돌들이 말할 때 까지>잖아요? 그러니까, 기록 관련해서 저도 활동을 오랫동안 꽤 했었거든요? 4.16 관련해서도 했었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도 기록관리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문서보다 구술을 기록하는 작업이 굉장히 어려운 작업으로 알고 있어요. 특히 쉽지 않은 게 그 사람이 정말 자기 속 이야기를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그 과정이 어렵다고 전해 들은 적이 있어요. 영화에도 나오잖아요? 말씀을 안 하시려고 했던 분이 ‘나 뿐만 아니라 특히 주변인에게, 자식에게 해코지 당하지 않을까’하고 걱정스레 말씀하시던 내용이 기억나요. 구술자가 사회적 불신이 강한 상태에서 말씀을 꺼내기 굉장히 어려우셨을 텐데 그걸 ‘촬영’까지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그런 과정에서 감독의 고민도 굉장히 많았을 거고 신경 쓰는 부분도 많았을 텐데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김경만
저로서는, 좋은 기회가 그냥 저에게 찾아왔다고 일단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 4.3 영화를 이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게 이제 제가 찾아가서 촬영을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언어도 통하지 않고, ‘제주어’니까 거의, 외국어나 마찬가지인 거죠.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겪은 사람에게 낯선사람이 “이런 얘기를 얘기해주세요.”한들 얘기해줄 수 있는 게 아닌 거예요. 제가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도, 모르는 사람한테 얘기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현지 분이 이제 저를 매개 해 주지 않으시면, 이 계획이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4.3 강연, <4.3은 말한다> 저자 선생님의 강연을 촬영할 기회가 생겨서 그 일을 계기로 해서 제주도에 있는 4.3도민연대 단체의 대표님에게 제가 소개가 된 거죠. 그 뒤에 대표님이 연락하셔서 “재심재판 관련해서 수형인 조사를 하고 있는데 와서 촬영할 생각이 있냐?” 해서 제가 기꺼이 가겠다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쉬운 이야기거나, 이야기를 듣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제가 처음에 촬영을 시작했던 게 2016년이에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게 된 게 2017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제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꺼려지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이제 이후에 몇 년 사이에 분위기가 어느 정도는 좀, 변화가 있었죠. 4.3에 대한 인식도 변화가 있었어요. 공식적인 행사나 그런 데서도 4.3에 대한 반성의 언어, 추모의 언어가 나오고 그런 분위기와 과정들이 언론에서도 많이 나오면서 4.3을 겪으셨던 분들이 말하기가 조금씩 더 쉬워졌던 측면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4.3도민연대 선생님들이 그 지역 분들이시고, 그 전부터 꾸준히 계속 조사 작업을 해오셔서 관계를 잘 맺고 계셨어요. 뭐 처음 만나는 분도 많이 계셨죠. 하지만 지역 사람이고, 언어도 되고 그러시다 보니까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주셔서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야기를 이끌어낸 건 제가 뭐 잘해서 그런 게 아니고 함께한 선생님들의 능력이었던 거죠. 그래서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잡아서 이렇게 계속 끌고 오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왜냐하면 계속 물어보지 않으면 대답을 안 해주시거든요.

끊임없이 계속 물어보셨고 같은 분도 2번, 3번 찾아갔던 적이 많이 있어서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촬영을 위해서 일부러 굉장히 심층적으로 만나 봤으면 좋겠다는 분들을 고르셨어요. 그 분들은 특별히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촬영할 수 있게 배려를 해주셨죠. 사실 면접조사를 굉장히 많은 분들이랑 하시기 때문에 한 분 조사할 때 짧게 조사하고 다음 분 조사를 하러 가셔야 되거든요? 그런데 촬영할 때는 다행히 제가 원하는 만큼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석
김경만 감독께 질문을 하나 더 하려 하는데요, 여러 가지 질문을 짜면서 감독 인터뷰도 찾아보고 이러다 보니까 다음 작품 이야기를 봤어요. 다른 수형소에 계셨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로 작품을 이어 가신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그 인터뷰를 보고 감독이 4.3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 “처음 시작을 할아버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끌어간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생각났요.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시작한 의도가 있으신 건지 그리고 또 할아버지들의 이야기하고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어떤 차이가 있어서 그런 건지 궁금했습니다.

김경만
사실, 제주 4.3 수형인에 대한 영화를 한 편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이게 촬영하다 보니까 얘기가 너무 많고 깊고 무겁고 사람들이 얘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 알아야 되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도저히 한 편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뒤 늦게서야 제가 계획을 쪼개 가지고 이제 그냥 가능하면 여러 편을 만들기로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처음에 만들게 된 게 이번 영화고요. 할머니들만 따로 이제 구성을 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여성의 경험이라는게 특수한 측면이 있고, 특별한 측면이 있죠.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할머니들 스스로가 굉장히 말씀을 잘하세요. 그러니까, 이야기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시다고 할까요? 여러 측면이 있는데요. 일단, 이야기에 재능이 있으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겪으신 경험들을, 그게 굉장히 끔찍하고 처참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물론 그렇게 개인에게 소화가 된다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의 어떤 이야기로 체화하는 그런 힘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도 좋았고, 특히 이 다섯 분을 선택했던 이유는, 이 분들의 이야기가 피해자뿐만 아니라, 어떤 한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이야기로 저한테 많이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측면의 이야기, 혹은 그런 모습으로 저에게는 보여 졌기 때문에, 그러면 제가 이 분들만 구성해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동시에 이제 또 4.3에 대해서 사람들이 4.3에 대한 인식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목표기도 하니까.

(관객들이) 입체적으로 4.3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다섯 분의 이야기가 조금씩 색깔도 달랐어요. 그래서 이 분들의 태도나 어조가 좋아서 선택하게 되었던 것 같고요. 두 번째 영화가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가 성별로 나누지는 않았어요. 첫 번째 여성의 이야기,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특별해서 제가 하나의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두 번째로는 한국전쟁과 연결이 되는데, 한국전쟁과 4.3이 이어져 있는 이야기를 제가 하고 싶어 가지고, 그건 이제 제가 언제 완성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만들긴 해야 될 것 같고… 계획에 있습니다.

신석
네. 목소리를 들으려 하는 많은 분들의 노력도 있었고, 말씀을 잘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저희가 이런 자리에 모일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다음으로 백가윤 님에게 질문을 드리려 하는데요. 제주도에서 4.3과 관련해서 다크투어를 운영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운영하실 때 할머니들이 직접 나와서 같이 답사를 다니시는 분께, 답사지 설명도 하고 자기 경험도 이야기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맥락이 비슷할 수도 있지만 영상을 촬영해서 기록하는 것과 사람 대 사람이 직접 만나는 것은 다른 느낌이잖아요? 나름대로 굉장히 또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 어떻게 해서 이런 기획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백가윤
제주다크투어‘는 이름이 너무 여행사 같죠? 여행사는 아니고 비영리단체로 하면서 4.3의 내용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아까 말씀하신대로 실제로 현장에서 생존하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그리고 너무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까 너무 안타깝게도 우리한테 그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아서 오신 분들이 생생하게 그 목소리를 듣는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사실 책에서 배우는 역사 공부보다 현장을 다니고 기억하는 게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굳이 제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애써서 찾았다기보다는, 아까 감독님이 말씀하신 대로, 할머니들이 말씀을 잘 하세요, 기본적으로. 본인의 경험을 굉장히 세밀하고 세세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때 당시에 할머니들이 4.3 당시에 경험한 일, 그 이후의 삶까지 한 사람의 일대기를 4.3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는 타고나신 능력들이 있다고 해야 되나요? 그런 느낌을들을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약간 농담이지만, 4.3이 사회적으로 이야기되기 전에 초기에는 방송국에서 내려오고 이러면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마이크를 잡고 마을에서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말씀을 잘하시는 할머니들은)북촌에 있는 고완순 할머니, 동광 쪽 홍춘호 할머니가 대표적이에요. tv만 틀면 고완순, 홍춘호 할머니가 나올 정도로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데요. 고완순 할머니의 경우 4.3이 끝나고 나서 북촌 대학살 생존자신데, 너무 사는 게 힘드셔서 엄마 지갑에 돈을 훔쳐 육지로 도망가요. 그리고 만나서 결혼하신 분이 하필 군인이에요. 보험 왕까지 따면서 사시다가 연세가 들어서 다시 제주도에 내려왔다는 얘기를 해주신 경험을 갖고 있있어요. 홍춘호 할머니는 저는 빼앗긴 마을이라고 하는데요, 그 마을에서 마을 터를 다니면서 본인의 경험을 말씀해주시는데, 부모님이 다 4.3 때 돌아가시고,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서는 어쩔 수 없이 시집을 가신 상황에서 동생까지 딸린 상태에서 “시댁한테 죄스러워서 친정 부모님 제사를 부엌에서 몰래 지냈다”는 이후의 삶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주시는 할머니들이 계십니다.

저는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건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국가폭력에서의 여성의 경험이라는 건 아까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분명히 다르고 훨씬 더 많이 묻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진실화해위원회라는 곳은 한국전쟁 이전 일제강점기 때부터, 그리고 군부독재시절까지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진실규명 신청을 받아서 조사하는 국가기구인데요, 제가 쭉 보면, 여성 피해자들이 없었을 리 없는데 신청이 안 들어와요. 예를 들면 학생운동하다 의문사 당하신 분들, 열사라고 부르는 수많은 분들이 대다수 남성이거든요? 이제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여성 피해자가 없지 않았을 텐데 어디 가셨지? 영화를 본 우리 모두의 숙제이자 과제지 않을까 싶어요. 감독님처럼 그 목소리를 애써서 발굴하지 않으면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을까, 그래서 그 영화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신석
마지막의 말씀과 이어지는 질문을 드리려 하는데요. 영화 보다 보면, 적극적인 활동을 하신 박순석 할머니께서 이게 역사로 남는 게 자기한테 너무나도 좋다고, 돈보다 더 의미를 갖는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사실 그걸 보고 전 충격을 받기도 했고 감명을 받기도 했는데, 반성을 많이 했어요. 저는 항상 남성들이 끌려갔던 것들, 죽어갔던 것만 상상했던 거예요. 상상이 잘 안 되었던 것들을 보게 되어서 충격적이었어요. 또 백가윤 님이 인권해설에 써주셨잖아요? 4.3에 다양한 여성들이 있었고, 우리 삶에 아직 계시는 것으로 써주셨는데, 어떤 여성들이 또 있었는지 그리고 그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고, 전하는 그런 활동들은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백가윤
4.3연구소 같은 단체에서 (유해)발굴하고 구술을 기록했던 게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33% 정도가 여성, 노인 그 다음에 어린아이가 희생되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때 당시에 돌아가신 분들을 기록할 때는 남성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기록될 수밖에 없었어요. 또 “4.3이라는 게 어떻게 조명돼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는데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피해자 상’이 있잖아요? 피해자들은 불쌍하고 처연하고 무기력한 존재고 그래서 우리가 그 사람들을 바라볼 때 이런 인식들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제주도에서 4.3을 오래 하셨던 활동가 분들은 저한테, “우리 제주 사람 불쌍하게 생각하지 마라. 우리 당시에 분단을 막기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 자주적으로 싸웠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꼭 하시거든요. 저는 4.3을 기억하는 분들이 4.3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해요. 강인함, 그런 것도 같이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나중에 제주에 오셔서저랑 같이 4.3다크투어 해보시면 더 많은 말씀을 나눌 수 있겠지만, 4.3과 한국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해주인민대회’가 있습니다. 이때 제주도에서 항쟁의 주역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김달삼 사령관이 제주도에서 투표용지를 모아서 올라갑니다. 월북을 하는 거죠. 전쟁 전이라 올라갈 수 있었던 건데 김달삼이 투표용지를 들고 해주에 갔다는 얘기만 전해지는데, 얘기하다 보니까 김달삼이 혼자 간 게 아니라 6명이 같이 갔는데 2명이 여성인 거예요. 궁금하잖아요? 남로당에서 어떤 역할을 했길래 이 사람이 같이 올라갈 수 있었던 거지? 저도 박순석 할머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제주 4.3이 ‘항쟁’으로 조명 받아야하는 이유, 통일운동으로 조명 받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여성들이 어떤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는 지에 대해 앞으로 더 발굴해 나가는 게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경만
저도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흔히 4.3 그러면 제주도 사람’만’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 같은데 아닌 것 같아요. 육지에서 ‘추수봉기’라고 있었는데, 그때도 4.3과 유사하게 저항이 있었고 군 학살이 있었죠. 그리고 4.3 이후에도 한국전쟁 때도 마찬가지로, 이제 빨치산이라고 하는 저항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한국전쟁 중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어난 학살 같은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80년 광주에서도 저항과 학살이 반복이 되었고요. 그 이전에는 한국군이 베트남에 가서 저질렀던 일들도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이런 것들이 다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국가가 자행했던 학살, 폭력, 범죄라는 게 사실은 그 이면에 어떤 인식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요? 뭐, 이제 아무나 빨갱이라고 부르고, 멸공이라고, 요즘에 흔히 그렇게 말하는 그런 인식들이, 어떻게 보면 되게 근본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별로 안 바뀐 거죠, 사실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을 정도로 그런 인식이 아직도 지배적인데, 그런 면에서는 여전히 우리가 사는 한국 사회가 앞으로도 계속 위험한 상태다, 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왜냐하면, 그런 어떤 폭력의 가능성이라는 건 늘 우리에게 옆에 있는 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4.3의 피해는 제주도 사람’만’의 문제는 아닌 거죠.

신석
네. 이제 좀, 중간에 관객 분들의 의견을 받아보고 싶은데, 지금 질문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혹시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뭔가 전하고 싶은 말이나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지금 하나 주신 질문이 다음 질문하고 좀 같이 엮여서 같은 질문인 것 같아서, 같이 질문을 드리려 합니다.

닉네임 베개를 부비적 대는 라이언이라고 하는 분이, 질문을 주셨어요. 영화제목이 <돌들이 말할 때까지>다 보니까 생존하신 할머니들이 이 말을 할 때까지 얼만큼 오랜 시간과 고통을 몸으로 겪고 버텨내셨을지 계속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중간 중간 할머니들이 이야기하실 때, 말을 고르며 침묵할 때, 할머니들의 침묵을 그대로 담은 경우도 있고 침묵 사이 제주도 풍경을 담은 경우도 있는데 침묵 사이나 이야기 시작과 끝에 제주도 풍경을 넣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목과 와닿아 인상적이라 질문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질문하셨는데, 저도 이 질문이 와 닿았어요. 처음에는 제주도 영화니까 제주도 풍경이 나오나보다, 멋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보다 보니까 화면은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오는데, 할머니는 군인들이 불을 지르고 뭐 총을 쏘고,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걸 보면서 ‘이야기랑 겹치는 장면들이구나’ 하고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이제 활동가 중에 1명은 제주에 현재 풍경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과거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런 연출이 더 몰입감 있게 느껴지고 좋았어요. 여기 계신 분들도 다들 그러신 것 같은데 이런 연출을 하시게 된 의도나 생각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경만
아무래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표현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는데요. 제주도가 직접적인 4.3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4.3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보고 싶기도 했었죠. 자연은 아름답지만 4.3은 아름다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그런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딘가로 데려갈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저도 처음 촬영을 할 때는 그 이야기의 장소를 찾아갔었죠. 그런데 그 장소로 찾아가 봤더니 4.3의 분위기가 없는 거예요. 아니 뭐, 개발을 너무 해서 달라지기도 했고 70년도 더 지났으니까 과거의 자취가 아예 없는 거예요. 그런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개발도 너무 심하고 그랬으니까요. 이걸 보여주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기에 자막만 달아서 과거에 어디였다는 그런 의미는 전달할 수 있겠지만 역사적인 기록을 위해서는 그래야 될 필요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이건 만드는 영화라서 영화는 좀 다른 측면으로 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지고, 제가 이렇게 선택했던 거고요. 그러니까 때로는 이야기 속에 어떤 바로 그 장소인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면 주정공장도 있고 그런 곳도 있는데 그런데 꼭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큰 틀에서 제주도니까, 제주도 전역이 4.3 피해를 입은 장소이기 때문에 어떤 그런 4.3의 아우라와 분위기가 있다는 게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주로 계절감을 주로 생각하면서 촬영을 많이 했었죠. 봉기나 5.10 선거 반대운동 같은 경우, 봄의 분위기나 생명력이랑 잘 어울리잖아요? 초토화 작전이나 학살은 겨울에 집중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겨울의 혹독한 추위 분위기를 통해서 그런 어떤 감정 같은 것들이 전달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전에 제주도가 그렇게 추운 곳인 줄 모르고 갔다가 겨울 촬영 중 추위를 많이 느끼긴 했지만 촬영하는 사람으로서는 행복했죠. 저런 것을 촬영할 수 있어서 기뻤고, 저런 것을 촬영하면서도 스스로도 4.3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기도 했어요. 실제로 4.3 때 완전히 불바다가 된 중산간에서 찍은 적도 있었으니까요. 하여튼 그런 생각에서 많이 자연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신석
장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다크투어도 4.3과 관련한 장소들을 다니는 거잖아요? 갑자기 생각난 질문인데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에 가면 4.3에 대해서 점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선으로 이어지는 그런 느낌을 받는 장소들이 있을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꼭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 이런 장소가 있을까요?

백가윤
4.3평화공원 등 오시면 갈 수 있는 전형적인 유적지가 600개에서 800개 정도 있다고 해요. 육지에서 오시면 제주 공항이나 제주항으로 오시는게 대부분일 거예요. 70년이 지난 이후에도 가장 많은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이 제주 국제공항이거든요? 육지에서 여러분들이 오셔서 제주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사실 제주공항이 가장 큰 학살터였어요. 제주항도 지금은 현대 아파트가 들어와 있어요. 주전공장터라고 해서, 예전에는 형무소가 작으니까 사람들을 많이 넣을 수 없잖아요? 할머니들이 전주형무소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그때 당시 여성들은 다 끌려가면 전주형무소, 어린 아이들이나 10대가 끌려가면 인천형무소, 성인 남자들은 여러 군데 나눠져서 수감돼요. 그 사람들이 다 제주항 앞에 있는 공장에 갇혀 있다가 거기에서 배를 타고 육지로 끌려가거든요? 제주도민들한테 제주항은 어떤 곳이에요? 세월호가 들어오지 못한 곳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사실 제가 육지에서 오시는 분들이 공항이나 항으로 들어오는데, 어디든 제주 땅으로 들어오는 순간, 여러분은 4.3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거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는 제가 제주에 와서 너무 막 신나게 다니지 말고 항상 무거운 마음을 갖고 다니라는 말은 전혀 아니고요, 다만 제주도가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셔라, 그 제주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땅이 된 것은 그 이후에 살아남은 우리 제주도민들의 노력의 결과다, 이런 말씀을 같이 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나중에 제주에 오시면 아까 물어보셨는데 유명한 유적지, 평화공원은 반드시 가셔야 하고, 그 외에도 숨겨진 유적지들이 제주다크투어 웹사이트에도 많이 올라와 있으니까 찾아봐 주세요. 또 필요하신 분들은 따로 영화제를 통해서 질문 주시면 알려드리기도 하겠습니다. 제주에서 다양한 모습들을 많이 보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신석
이렇게 좋은 말씀도 듣고 제주다크투어에 대한 홍보도 함께 겸사겸사하게 되었네요.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돼서 마무리를 지으려 합니다. 제가 질문을 짜면서 느낀 건데, 제가 성격이 엄청 경주마 같더라고요. 제가 듣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만 짜게 되어서, 관객 분들에게 좀 게스트 분들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두 분이 하지 못한 이야기,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 한 마디씩 더 듣고 오늘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경만
네, 뭐 저는 영화를 만들다 보니까 확실히 역사라는 게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반성하지 않으면 현재가 나아질 리가 없는 거예요. 지금까지 발생한 문제가 사실 고스란히 미래로 가게 되니까, 우리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는 거겠죠? 그런데 역사라는 걸 알고, 거기서 생각하고 반성을 한다면 ‘그 만큼은 우리가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너무 살기 힘든 한국이라서, 좀 더 나아지려면 반성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고요, 아무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백가윤
저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과거사 운동을 하는 건 매 순간 우리의 인간성을 시험하는 일이다.” 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보통 저희 기행을 오신 분들도 “너무 슬퍼요, 4.3 어떻게 해야 돼요?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울고 돌아가시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어보고 가세요. 항상 저는 답하는 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4.3과 똑같은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 하실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얘기를 해요.

저희가 관객과 얘기하고 있는 지금 순간에도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 뿐이지 전 세계적으로 4.3 사건 같은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미얀마 문제나 여러 가지 형태의 국가폭력들이 4.3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을 뿐이지, 여전히 일어나고 있어요. 전 영화를 보시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4.3에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 마음들을 꼭 가져주시길, 또 다른 이름의 4.3을 기억해주시길 당부드리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드리겠습니다. 감독님의 영화로 앞으로 많이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석
말씀하셨듯이 아직도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런 상황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그리고 4.3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전해주시는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관객과의 대화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