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

27회_인천인권영화제_상영작_뼈_이미지

| 애도의 시간 |


The Bone

감독 : 신나리
제작연도 : 2022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일본어, 한국어자막, 영어자막, 자막해설
상영시간 : 69분

상영일시 : 2022.11.26(토) 오후 5:0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기획의도

재일교포 하정웅과 일본 사학자 차타니 쥬로쿠는 일본 아키타 지역의 조선인 강제노역자를 기억하기 위해 40년이 넘는 세월을 고군분투해왔다. 감춰진 기록과 기억(증언)을 찾고 이것을 다시 기록하며 희생자들의 삶을 알리며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책임을 묻는 이 모든 과정이 ‘애도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이 시간에 연루된 이들은 조선인 강제동원자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할 책임이 있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다.

참사의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추모는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행위인 동시에 참사가 희생자만의 고통이 아님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행위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재난 참사 희생자에 대한 사회적 애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고 깊어졌다. 세월호 참사가 희생자와 유가족만의 안타까운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가진 문제를 드러냈기에 우리는 희생자와 직접 관계가 없더라도 세월호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고 기억한다.

애도가 그저 슬픔에 잠겨있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애도를 통해서 산자와 죽은자가 사회 속에서 연결이 된다. 마치 죽은 이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왜?”라는 질문이 우리를 엮고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진다. 그렇게 희생자들은 부재하지만 여전히 산자들과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

재난 참사에 대한 사회적, 시민적 책임과 함께 하는 애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했고 그래서 아직도 애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이에 대한 더 많은 의견과 고민이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애도의 시간’을 희생자와 함께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재난 참사의 당사자, 피해자의 이야기와 관객들의 고민을 이어보도록 한다. _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랑희




대화의 시간 기록

* 일시 : 2022.11.26(토) 오후 5시
* 장소 : 인천 영화공간주안 4관

마민지 코로나19위중증피해 유가족, 독립영화감독
정부자 (사)4.16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신호성님 엄마)
랑희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수진 한국농인LGBT설립준비위원회(수어통역)
박세희 AUD사회적협동조합(문자통역)



랑희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랑희라고 합니다. 방금 전에 보셨던 <뼈> 상영 이후에 관객과 대화 시간을 지금부터 진행하려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눠주실 분들 소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부자
안녕하세요? 저는 4.16 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을 맡고 있는 정부자입니다.

 

마민지
안녕하세요? 저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고 그리고 코로나19 위중증피해환자 보호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민지라고 합니다.

 

랑희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을 함께 하고 있는데 수어통역에는 한국농인LGBT 수지 님, 문자통역에는 에이유디 박세희님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오늘 영화 의미 깊게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일제시대 일본으로 강제 노역을 가게 된 조선인, 조선 노동자에 대한 사건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저희가 함께 나눌 이야기는 이 사람들을 40년 넘게 기억하고 또 기록하고, 그리고 이분들에 대한 삶의 기억들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한 진상규명과 책임을 묻는 이 40년의 시간들입니다. 이 시간을 애도의 시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현재 한국에서 참사의 피해자로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애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오늘 입장하실 때 받은 티켓 뒷면에 QR코드가 있는 걸 보실 수 있을 텐데요, QR코드를 찍으면 대화의 시간 오픈채팅방으로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오픈채팅방에 입장해 주셔서 저희가 같이 이야기를 먼저 나누는 동안 두 분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든가, 혹은 궁금한 질문 이런 것들을 남겨 주시면 제가 진행하는 중에 같이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제가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하는데요. 앞서 제가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하정웅 씨와 차타니 쥬로쿠라는 일본인이 40년 동안 끊임없이 걸어오는 애도의 시간들이 보여지는데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가족도 아니고 지인도 아닌 이분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시간들을 꾸준하게 이어가는 것일까? 굉장히 놀랍게 느껴졌고, 또 한편으로는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요. 두 분께서는 어떻게 영화를 보셨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호성 어머니께서 먼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부자
일단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습니다. 일본에 가서 그런 일을 당하셨는데 이것은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그 역사를 더 밝혀야 되는데, 일본인이 40년 동안 그렇게 진상규명을 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마지막 장면에 이름을 다 불러주더라고요. 과연 우리는,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은 뭘 하고 있는지 그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이 시대를 살면서 뭘 하고 있는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좀 반성하는 자리였습니다.

 

마민지
저도 두 가지 정도 생각이 들었는데요.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 되게 인상적으로 봤어요. 오프닝 시작할 때 ‘나무들만이 이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증인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동상이 서 있고 나무들 사이로 혼자 왔다, 갔다 나무도 치우시고 기도하고 이름을 호명해주시는 그 이미지가 본인도 역시 나무들처럼 하나의 증인처럼 서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되게 인상적으로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았었고요.

그리고 애도와 기억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 사실 당사자가 아닌데도 이러한 사회적 참사,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계속 기록하려고 하고, 찾아내려고 하고, 문제화 시키는 과정을 따라간다는 것이 전 코로나19 유가족으로서 사실 부러움이 있었어요.

랑희
네, 부러웠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저려오고, 같이 또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방금 민지 님께서 기억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는데 영화에서 보셨던 것처럼, 요보나이 발전소 공사에 동원되었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무연고자 묘라고 이름 없는 묘에 하정웅 씨가 주인들을 찾아줬는데 위패를 하나씩 만들어주고 계속 추모하고 있고, 두 분 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도 마지막 장면에서 차타니 쥬로쿠 씨가 이름을,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주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장면이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건, 아마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겪은 지 우리가 얼마 안된 시기여서 더 그렇게 크게 와닿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최근에 이 참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름을 두고 어떤 혼란과 논란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애도를 하면서, 희생자들을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이 영화와 겹쳐져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호성 엄마께서도 비슷한 고민을 이미 하시지 않으셨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세월호 참사 때, 단원고 학생들의 이름을 굉장히 많이 불렀어요. 그 이름들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도 굉장히 많았고, 그리고 엄마, 아빠들은 지금도 여전히 누구의 엄마, 아빠로 불려지길 원하시고 계시거든요. 오늘도 호성 엄마라고 불러 달라고 말씀을 저한테 해주셨는데요. 그런데 아마 참사 초창기에는 자녀 분들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가 말씀하시는 게 부모님들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유가족들 사이에서 이런 고민들이 어떻게 이야기가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정부자
세월호 참사 초창기에는 아이들이 세월호 배에서 일어난 참사였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처럼 한 공간이 아니라서 수습하고 그런 시간들이 길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수습해서 올라 온 아이들에 대해서 그 아이를 위해 추모하는 게 아니라, 그 아이의 환경을, 부모님이 어떻더라, 안산은 또 공단지대가 많은데 공단의 아이들, 한 부모 아이들 그런 식으로 3류 드라마를 썼어요. 그래서 초창기에, 엄마, 아빠를 합치면 500명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자매를 합치면 1000명 가까이 되는 가족들이 정신이 없어서 다닐 때 그런 식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공개했죠. 아예 공개가 안 되는 이름도 있었고, 몇 명의 아이들은 대놓고, 아이를 상품화하듯이 3류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우리가 활동을 하면서,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현재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우리 호성이는 이랬어, 우리 은정이, 우리 지혜는 뭘 좋아했어, 가족들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면서 가족들은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을 공개했을 때 과연 유가족들이 그걸 허락했을까? 지금은 너무나 정신이 없을텐데, 누구 마음대로 이름들을 공개하지? 그것은 유가족의 의사를 정확히 들어서 공개해야 되거든요. 저희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저희들은 아이가 살아있는지 아닌지, 아직 수습이 안 된 아이들은 빨리 빨리 수습하려 하는데, 그거에 대한 국가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보상을 해주면 빨리 끝나겠지? 그런 식으로 모독을 한 게, 지금도 이태원 참사를 볼 때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세월호 참사 때는 우리 국민들이 함께 소리를 질러주고 일단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잖아요. 이태원 참사를 보면 국민도 그렇고 유가족들도 너무 아파서 그런지,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래서는 아이들이 왜, 서울 한복판에서 걸어가다 희생돼야 하는지 의문점을, 진상규명을 밝힐 수 없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유가족들이 많이 아파할 겁니다. 그러나 옆에서 국가도 진상규명을 하는 게 그게 애도고 추모거든요. 일방적으로 며칠 주고 추모하고 끝나는 것은 유가족들에게 한이 되어서,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 것이 되어서, 유가족으로서 그분들을 보면서 안타깝게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러면 안 되는데 생각이 들고 복잡한 생각이 들어요.

 

랑희
걱정의 말씀을 하셨는데 일부 유가족분들이 기자회견을 하셨더라고요. 진상규명을 요구한다고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신 것 같아요. 그럴 때 우리가 같이 더 힘을 보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민지 님도 어머님에 대한 기억을 민지님만의 방법으로 하고 계실 것 같아요. 그래서 어머님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마민지
네, 저희 어머니께서 유품을 많이 남기셨어요. 아직 제가 정리를 다 못했는데, 80~90년대부터 쓰시던 노트라든지, 제가 채식을 하는데 채식 레시피를 따로 만들어놓으셨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발견해 가지고 따로 처분을 못하겠어서 일단 다 남겨 놓고 있어요. 제가 첫 장편으로 만들었던 영화가 저희 가족에 대한 영화였어요.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글을 최근에 쓸 일이 있어서, 제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름 동안 쭉 글을 썼는데, 그게 저한테 되게 많이 이 어머니가 사라진 빈자리를 좀 치유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어머니와 저의 관계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어서, 지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책을 쭉 쓰려고 준비를 좀 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래서 유품들도 하나씩 보면서 어머니라는 사람이, 한 인물이 저한테 어떤 것을 남겼는지 좀 많이 생각을 했거든요. 좀 식상할 수 있지만 어머니가 too much한 사랑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 제 MBTI가 INFP였는데 사랑을 주는 것을 어머니를 보면서 많이 상기하게 되고 그 과정을 많이 살펴보게 되어서 이 부분을 사적인 방식으로 많이 풀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랑희
오늘 이 자리에서 얘기를 들으신 관객 분들은 민지님 어머니의 기록물이 책으로 나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 민지 님도 다시 떠오를 것 같고 민지 님의 어머님도 상상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기억이라고 하는 게 그 사람의 존재는 지금 없지만, 우리가 기억으로 함께 엮여서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애도와 기억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서, 끝부분에도 히메관음상이 나왔는데, 히메관음상이 어떻게 세워졌는가에 대한 얘기가 영화 속에서 쭉 나와요. 진실이 감춰지고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이 꽤 있었다고 얘기가 나오고, 하나오카 광산에서 매장된 노동자들의 위령비도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이렇게 추모할 수 있는 공간들 혹은 그 상징물이 쉽게 그 참사의 현장에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한국도 많은 참사가 있었지만 그 참사의 현장에 제대로 된 어떤 추모의 공간이 만들어지거나, 위령비가 만들어진 사례가 거의 없거든요, 그것을 만드는 것 자체가 싸움이 되기도 하는데, 세월호는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뭔가, 정부가 한 건 아니고 시민의 힘이 컸던 것 같은데 지금 광화문에는 없지만 기억공간도 있었고 세월호 기억교실도 존치하기 위해서 엄청난 싸움이 있었잖아요?

지금은 안산에 4.16 생명안전공원 만드는 과정에 있는데 이 과정도 순탄치 않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호성 어머니도 이 일을 맡아서 하시고 계신데 생명안전공원 만드는 과정들이 어떤지, 사람들께 한 번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정부자
지금 생명안전공원은 17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일단 아이들을 수습할 때 그 당시에는 정부에서 알아서 그냥, 생명안전공원을 좀, 깊숙한 데 하자고 했는데 가족들이 반대를 해서 아직 아이들이 다 수습되지 않았는데 왜 지금 추모공원부터 생각하느냐, 그래서 좀 미뤄 둔 상황이었고요.

그리고 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외쳤어요. 4월 15일 날 왜 안개 낀 바다를 배가 떠났는지, 왜 배가 기울었는지,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아이를 왜 구하지 않았는지 거기에 대해서 부모님들은 전국적으로 다니기 시작했죠. 일부 사람들이 세월호는 정치적이다, 천안함 때문에 보상금을 덜 받았다더라, 이런 식으로 말을 해서 안산에 소문이 많이 났습니다.

15년도에 안산 지킴이로 마을을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가족들도 안산에 내 이웃을 만나기 제일 힘들어 했습니다. 내 이웃인데 왜 이런 말을 하지? 더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오히려 가족들은 전국을 다니면서, 다른 분들한테 더 힘을 받고 왔었죠. 그런 활동들을 하면서, 지금 4.16 가족협의회 추모부서에서 엄마들 4명이 추모부서 활동들을 하면서, 정부도 만나고 안산시도 만나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예산이 충분히 내려 온 상태이긴 하나 항상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안산 시민이 반대를 한다고. 안산 시민이 반대하면 이건 안 지어주겠구나.

수업을 받으러 갔던 아이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희생이 되었는데, 산 속이 아니라 유가족만 찾아가는 게 아니라 도심의 한 복판에, 화랑유원지 미조성 부지에, 엄마와 아이들이 살았던 동네가 보이는 곳을 추모공원으로 만들자고 해서 타당성 조사까지 다 해서 토론회까지 다 거쳤어요. 유가족이 원하고 아이들이 다녔던 단원고가 보이는 이곳이 생명안전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5가지의 후보지 중에서 화랑유원지가 첫 번째로 결정되어서 지금까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 제일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반대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25개 동, 주민자치를 찾아다니면서, 그 분들을 만나서 공감 나눔을 하고 있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초창기에 그 분들도 봉사를 해주셨거든요,  가족들은 내 마을이 안산이 너무 힘들어서, 안산을 등한시한 것도 있습니다. 지금 찾아가면서 초창기에 우리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 봉사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도 드리고 지금 가족들한테 못 물어봤던 거 다 물어봐라, 거짓없이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는 얼마나 돈을 받았냐, 정치적이다, 이제 세월호가 순수한 유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저희들이 그 자리에서 가면 25명에서 30명이 마을 활동가 분들이 오시는데요. 그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국가가 보상금을 주지 않았다, 국가가 먼저 주고 국가는 청해진 해운에서 받을 거다, 우리 아이들은 18살에 최저임금, 8500원 그래서 그걸로 보상금을 받았다. 그런 얘기를 이제 하면, 우리가 다른 데서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엉뚱한 소리, 소문을 들었나 보다, 하고 그런 얘기를 하시고.

지금은 공동체 예산 받은 거 얘기도 하세요. 유가족만 쓰라고 나온 게 아니라 안산 시민들이 우리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 트라우마를 겪어서 시민과 함께 쓰라고 나온 돈이었고 안산 시민들이 우리 돈이 어떤 돈인데 허투루 쓰겠냐, 잘 썼을 거다, 그런 말씀을 하고 다니는데 그래도 만나고 함께 손잡아 주신 분도 있고, 지금까지 이런 여러 가지 활동들을 계속 고맙다고 하신 분도 있고, 앞으로는 안전사회를 만드는 데에 가족들이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생명안전공원이 잘 만들어져서 가족이 중심이 아니라 시민이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좋은 말씀도 많이 하셔서, 작년과 올해 다니면서 많이 가족들도 성장을 한 것 같습니다.

유가족들은 일단, 차질 없이 생명안전공원이 진행되도록 해야 하고, 안산 시민들과 계속 만나면서 생명안전공원 홍보도 하고 우리가 왜 안전사회를 만들어야 되는지, 그런 것도 좀 알리고 다니고 왜 아이들이 생명안전공원에 부지에 와야 하는 건지, 우리 아이들이 돌아올 때 안산 시민이 끌어안아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없잖아요? 부모님이 떠났을 때 안산 시민, 청년들이 아이들을 지키고 또 관리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들도 안산에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모든 참사를 겪으면 이 희생자를, 너무나 안타깝게 희생된 분들에 대해서 애도하고 추모하는 게 없어요. 그냥 죽은 자는 죽은 자로 끝내버리는데 그러면 진짜 벌 받거든요. 너무나 안타깝게 희생된 것에 대해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지 그런 게 없어서, 세월호는 끝까지 지킬 겁니다. 끝까지 지켜서 안전사회 만들어 가는데, 전국 시민 분들이 안산에 찾게 할 거고 다시 반복되지 않을 거점 장소로 만들 것입니다.

 

랑희
안산이 참사 현장은 아니지만 희생자들이 살아왔던 공간이라는 데에서 굉장히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추모의 공간, 애도의 공간이 슬픔의 공간만은 아니라 또 지역사회에 같이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또 회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의미도 굉장히 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생명안전공원이 완공이 잘, 원하시는 방향대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코로나19 위증증 사망자, 희생자의 경우 사실 제대로 추모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는 더 코로나19를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요, 이런 특정한 지진이라든가, 홍수라든가, 이렇게 지역적 재난과는 다르게 코로나19는 전국적이고 전 세계적이기도 한 재난이어서, 그러면 이 분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은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이런 고민도 듭니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이미 이런 움직임이 있어요. 런던에서 가족들이 템즈 강변에 빨간 하트를 그려 넣는데, 이 하트 하나가 사람 1명의 생명을 의미하고 런던 한복판에 18만 개의 하트가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 장면을 보고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코로나19 희생자 유가족으로서 추모의 공간을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마민지
어떻게 보면 지금 저희가 추모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거든요. 저희 유가족끼리 모여 있는 방이 있어요. 여기 계신 분들이 어떻게 보면, 같은 질병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저희가 뉴스에서 코로나 얘기를 많이 찾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 올 초까지만 해도, 유가족들이 겪었던 건, 병원이 없어서 구급차를 타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녀야 되고 격리병동에 부모님이 계시다 보니까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저 같은 경우에는 어머니께서 에크모라는 장치를 달고 계셔서, 중환자실에 계속 같이 있었는데 나중에 돌아가셨을 때 코로나19 사망자로도 통계에 잡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코로나로 돌아가셨지만 코로나19로 인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고 증명서가 나왔었고 이런 상황이다 보니까 유가족들끼리 모여서, 저희들끼리 어떤 심정인지 알잖아요? 갑자기 격리되어서 부모님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고 비닐백에 쌓여서 화장되신 게 트라우마로 남는 상황이라서, 어떨 때는 채팅방에서 울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웃을 때도 있어요. 이런 것에 대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요즘 매일, 매일 유가족 분들이 선물을 서로 보내 주세요. 이번에 설탕에 졸인 밤도 보내주시고 엄마가 김치 못해 주시니까 김치도 해주시고 선물, 택배를 매일매일 받아요.

추모공간을 만든다는 게 1차적으로 유가족끼리 모여서 서로 뭔가 같이 공통의 슬픔을 나누고, 그리고 기쁨도 같이 나눌 수 있으면 되게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주변에다가도 “저희 어머니가 코로나로 돌아가셨어요” 하면 다들, “백신 안 맞으셨어요?” 이렇게 물어보시고 “너무 운이 나쁘시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말하시는데요. 의료사고로 인해서 돌아가신 분이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개인이 자기 건강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각자 개개인이 질병을 통제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운이 나빠서 그냥 돌아가셨다, 이렇게만 다들 이야기를 하시거든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다 같이 얘기를 하고 다 같이 안타까워할 수 있는, 운이 나빴다고 놀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슬퍼해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랑희
항상, 이태원 참사에도 그랬던 것처럼 참사의 원인을 개인에게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 굉장히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또 동시에 애도는 굉장히 슬픈 마음만 표현해라, 슬픈 거니까, 가족을 잃었으니, 지인을 잃었으니 얼마나 슬프겠느냐? 슬픔을 표현해라, 하지만 정치적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이런 메시지들을 굉장히 많이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까 호성 어머님도 얘기를 하셨지만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순수한 유가족, 순수한 애도. 누군가 여기 개입되어진 거 아니냐? 바라는 거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로, 애도는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어야 된다, 근데 또 모여서 눈물 흘리면 안 돼, 같이 흘리면 안 되고 홀로 집에서 조용히 눈물 흘려야 되는 것처럼 얘기가 될 때마다, 사람들은 막 움찔움찔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애도가 아닌가? 다른 건가? 이런 생각을 스스로 품게 되는 것 같거든요. 세월호 유가족 분들이 이렇게 순수라는 프레임에 계속 초창기부터 압박을 계속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앞에도 순수 유가족 얘기를 하셨는데요. 저는 그럴 때마다 유가족 분들이 스스로 긴장하게 되고, 또 유가족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고. “우리가 이렇게 해도 돼? 이러면 사람들이 순수한 유가족으로 안 보면 어떻게 하지?” 이런 걱정도 꽤 있었을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서 별로 그런 것에 게의치 않고 거리에 나오시고 정부를 향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셨는데 참사 초창기 이런 순수,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가족 분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고민과 의견들이 있었을 텐데 그 과정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셨는지, 그리고 결국에는 그런 것들을 신경쓰지 않으시고 거리에 나와서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어떠셨어요?

 

정부자
초창기에 너무나 바보처럼 살아서 대한민국이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아이를 그렇게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는데, 도저히 못 있겠더라고요. 궁금해서, 집에서 아이 목소리도 들리고 아이가 책상에 앉아 있는 것 같고, 이게 약을 먹어도 안 돼요. 잠만 자고, 밤이 되면 울고. 그런 상황이어서 엄마들, 아빠들 따라서 나갔어요.

서울도 가보고 국회도 가보고 했는데, 이상한 거예요. 아니, 우리가 자식을 이렇게 잃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했는데 경찰이 막, 우리를 둘러싸고 버스로 에워싸고 해서, ‘이게 도대체 뭐지?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250명이 있는데 엄마, 아빠의 성향도 다르겠죠. 어떤 분들은 울고만 계시고 집에만 계시는 분들이 있고 저 같은 경우, 집에만 있으면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요. 아이가 언제 오나 쳐다만 보고, 내 아들하고 비슷한 체격의 안경 낀 아이가 있으면 쳐다보기만 하고 그럼 이상한 아줌마라고 느끼겠죠. 제가 살고 싶어서 이유를 알고 싶어서 뛰쳐나왔어요.

그때는 이 분노가… 누군가 말해줘야 하는데 말을 안 해줘요. 가는 데마다 버스로 가려버리고, 자식 잃은 부모들한테 대한민국 경찰들은 왜 이렇게 대하지? 누군가 나와서 얘기도 안 하고. 그래서 뛰쳐 나가서 차라리 그때는 죽고 싶었어요. 우리를 누군가 공격하고 이렇게 했으면, 아마 죽었을 거예요.

그래서 물 대포도 맞고 다 했습니다. 정부가 그러면 그럴수록, 부모들은 분노가 터져 죽기 살기로 싸웁니다. 정부가 모르고 있는 거예요. 유가족들을 저렇게 내버려두면 안 돼요. 나중에 불씨가 커진다니까요. 분노가. 그런데 우리 때는 너무나 공격하고 그래서 오죽하면 부모님들이 안산에서 걸어서 서울까지 갔겠어요? 폭발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미치겠는 거예요. 누가 나 건드려 봐, 같이 죽자 이런 식이 되어버렸거든요.

이런 부모도 있고, 집에 있는 부모의 경우 내가 싸워야 하는데 국가 상대로 어떻게 하지? 국가가, 누군가 우리 아이들 앞에서 사죄하는 사람도 없어, 부모님들이 무조건 잘못했대. 용기 내서 싸우는 부모님들을 보고 집에만 있는 부모님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맞아, 이건 국가가 잘못한 거야, 많은 아이들이 희생된 이유는 알아야지, 그래서 부모님들이 이거저거  안 가렸습니다. 자식이 없는데, 내 인생이 끝났는데 그때 당시 그렇게 생각했고요. 지금은 이태원 참사 있고 국가가 좀 바뀌고 있는데 이태원 참사 관련된 부모님은 만나보지 못했어요.

우리가 자식을 잃었는데 이분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더 조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다려줘야 된다. 처음에는 자식을 잃고 나면 옆 사람을 의심하게 돼요. 나의 전부인 자식을 잃었는데 누가 와 있으면 그것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지 않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봐요. 내가 의심병에 걸려 있는데, 내가 아픈데, 그런데 우리 곁에 활동하시는 분들도 8, 9년이 되도록 함께 해주신 분들이 있으니, 지금도 이 분들을 보고 가족들이 치료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다른 참사 관련된 가족들도 얼마나 가슴이 아플지 느껴져요. 이 분들이 앞장서서 목소리를 낼 때, 저희가 먼저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이 분들이 필요할 때 저희들이 달려갈 준비는 하고 있어야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엄마들은 싸움꾼들만 남은 것 같아요. 내 자식은 가고 싶지만, 우리가 시끄럽게라도 해서 이 대한민국이 안전한 사회가 되어서 미래세대에서 아이들이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랑희
이렇게 자꾸 순수함을 따질 때는 분명히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들이 뒤에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계속 경찰에게 맞고 부모가 어떻게 저럴 수 있냐고 정치권이 공격하는 것은 진상을 규명하거나 책임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것을 요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가장 정치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요.

코로나19도 사실 전 세계적인 위기였음에도, 재난이었음에도, 코로나19로 사망하신 분들, 희생자 분들에 대해서  피해자로, 재난이나 참사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은 결국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희생자들을 어떻게 존엄하게 대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희생자가 존엄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이 분들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사실 존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유가족 분들이 피해자들의 존엄을 위해서, 또 유가족들의 미래의 삶을 위해서, 하고 싶은 말 혹은 요구하고 있는 것들이 있으실 것 같은데 저희에게도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민지
오늘 오기 전에 오늘까지 사망자가 몇 명이신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는데, 올 여름까지만 해도 사망자 수가 몇 명이다 보도가 많이 되었을 것 같은데 오늘 확인해 보니까 총 3만 명 정도 되더라고요. 전 세계적으로 추이를 봤을 때 한국은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이게 가시화가 되고 있지 않은 이유가 뭔지 유가족끼리 주변 시민들에 대해서 실망을 많이 했어요. 왜 이걸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지? 왜 기억을 아무도 안 해주지? 심지어 이태원 참사가 있었을 때는 이태원 참사는 다들 봐 주는데 우리는 왜 안 봐주지? 이렇게 까지 다들 마음이 힘들었거든요?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되게 얘기를 많이 했었던 것 중의 하나가, 부모님들이 돌아가신 것이다 보니까 다들 5년 먼저 돌아가신, 10년 일찍 돌아가신 건데, 운이 나빴네 그렇게 얘기하는 것들에 대해서 상처가 되게 많으시고, 그래서 한동안 이걸 우스갯소리 삼아 우리들끼리 말했던 게 ‘K 고려장’이라고 농담처럼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아무도 얘기를 안 해주니까.

사실 그 전에는 통제가 많이 되고, 격리한다든지 정부에서 시스템을 계속 만들어서 뭔가 관리하려고 하는 그런 통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억울함이 되게 컸었다고 하면, 최근에는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되고 나서는 아예 없었던 것처럼 그냥 일상으로 다 돌아가 버리고 일상회복을 얘기하면서 떠나간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다들 서러움이 되게 아직도 많으세요.

 

랑희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지금이라도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분들에 대한 관심을 우리가 어떻게 더 높일 수 있을지 좀 적극적으로 고민을 더 해봐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코로나19 환자가 많이 보이지 않다 보니, 마치 이제 끝난 것처럼 여겨지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사망하신 분들의 가족 분들만 더 고립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애도가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애도하지 않으면 희생자와 그의 가족들, 지인들이 고립된다, 그리고 점점 잊혀지고 그분들은 상실에서, 우리가 상실을 완전히 회복하는 건 아니지만 상실을 끌어안고 살 수 있는 어떤 힘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애도가 그저 슬픔에 젖는 것을 넘어서, 과거를, 왜 우리 곁을 떠났지? 이런 과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를 나아가게 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 호성 어머니께서는 애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다시는 이런 사회를 만들지 않게 노력할 거라고 말씀하셨고 민지 님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잊혀지는 것이 없기를, 감염병의 위기를 많은 사람들이 저버리지 않게 하는 것들이 미래를 이끌게 하는 힘이 되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채팅방에 올려주신 글들을 제가 잠깐 읽어 봐 드리겠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느꼈고 신호성님 어머님과 마민지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우리 사회가 참사에 대한 추모를 너무 못하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 사회적 애도라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데 어제까지 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너무 사적으로만 인정하고 공적으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함께 슬퍼하고 생각도 대처도 함께 해나가야 할 문제인데, 반드시 함께 힘을 모아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대처와 애도를 진행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차타니 쥬로쿠 선생님과 하정웅 선생님의 외롭고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오랫동안 지켜내신 용기와 돌아가신 분들의 삶을 존중하고 아끼는 애도의 마음이 참 놀랍고 울컥하는 마음이 크게 들었습니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닿는 큰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용기겠죠. 두 분과 감독님과 함께 하신 분께 존경의 마음을 남깁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감독님에게도 또 잘 전달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글을 또 더 남겨주실 분이 있으실까요? 네, 좀 기다려 보는 것으로 해볼까요? 여기가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나가시는 길에 안내 부스에서 작은 메모할 수 있는 종이를 드려요. 거기에 오늘 같이 나눈 이야기에 대한, 혹은 영화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남겨 주셔도 좋습니다. 지금 오픈채팅방이 있는 것처럼 <뼈>를 만드신 감독님이 투병 중에 계시거든요. 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걸 들으시고 기뻐하셨어요. 함께 자리하지 못하신 것에 대해서 아쉬워 하셨는데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감독님께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메모에 남겨주시면 저희가 감독님께 전달해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두 분의 이야기가 굉장히 진지해서 많은 분들이 집중해서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이제 저희가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혹시 마지막으로 더 관객 분들에게 나눠주실 말씀이 있으면 한마디 나누고 저희가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호성 어머니께서 먼저 한마디 나눠주실까요?

 

정부자
일단 감독님이 아프시다니까 마음이 안 좋습니다. 감독님 빨리 나으세요. <뼈> 영화 속 일본 활동가 두 분을 보면서, 나도 자식을 잃은 부모지만 활동가가 되었잖아요? 바르게, 우리 아이들 이름에 누가 안 되도록, 진짜 힘든 싸움일텐데 우리 미래 세대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고 아무 탈도 없도록 부모님들이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마민지
저는 두 마디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먼저, 지금 사실 코로나가 끝난 상황은 아니긴 하거든요? 거리두기를 안 하고 있긴 하지만 네덜란드에 얼마 전에 갔다 오긴 했는데, 매주 확진자가 300, 400명밖에 안 나와서 마스크를 벗고 다니더라고요. 한국은 아직도 5만 명이 확진되고 있고 오미크론 유행할 때랑 사망자 추이는 비슷한데 우리가 묻어두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카톡 방에 매일매일 너무 많은 분들이 들어와서 올 초에 했던 얘기를 반복해서 하고 계세요. 그런 부분들이 되게 안타까운 것 같고요, 그래서 3만 명이 돌아가셨으면 주변에 3, 4명이 친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숫자가 굉장히 많은데 이걸 왜 우리가 얘기하지 못하고 있을까, 나는 정말 코로나 때문에 돌아가신 사람은 처음 봤어, 이렇게 얘기하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 속상한 부분이 많고 감독으로서는 얼마 전에, 네덜란드에 암스테르담 국제다큐 영화제 갔다 왔는데 암 투병으로 어머님을 잃으신 감독님과 죽음에 대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왜 죽음을 기록해야 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도 감독으로서 코로나19라는 사건이 어떻게 사회에 기억되어야 하는지, 제가 어머니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뭔가 만들어 보고 싶다는 자극을 굉장히 영화를 보면서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정부자
저도 한마디 더, 저도 추모부서에서 부서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다보니 민지 감독님이 기록, 또 책을 낸다고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 250명 책을 내주면 좋겠다, (웃음) 그렇게 해도 될까요? 소중한 아이들을, 지금 기록들을 보면 교복이 250개 다 똑같아요. 그러면 부모들의 마음을 달래 주는 게 아이들의 집에 있었던 추억을 기쁘게 이렇게, 우리 아이가 마지막에 힘들게 떠나서가 아니라 아이하고 지냈던, 그 18살까지 지냈던, 태어나서 얼마나 부모한테 기쁨을 줬는지, 추억을 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씀을 듣고 너무 좋다, 우리가 그것을 해야 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자리에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상입니다.

 

랑희
공개적으로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네요. 코로나에 대한 기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얘기를 듣고, 코로나19와 관련된 영상을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또 새로운 제안을 받으셔서 감독님이 할 일이 굉장히 많아지셨네요. 우리의 인연으로 감독님이 향후에 작품 활동을 한 번 더 기대하면서, 우리가 같이 오늘 만난 것도 이 애도의 과정에서 하나의 또 기억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세월호 참사와도 또 우리가 언젠가  거리에서든, 어디선가, 혹은 기억의 공간에서 만나게 될 수 있을 것 같고, 코로나19 위증증 희생자의 경우, 우리가 앞으로 새롭게 더 많은 기억을 해야 할 참사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기억과 애도로 출발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오늘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네, 오늘 대화의 시간, 이렇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