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월
Yellow Ribbon
감독 : 주현숙
제작연도 : 2019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한국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87분
상영일시 : 2019.11.24(일)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기획의도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피해자와 그의 가족)는 아니지만 참사를 목격하고 지금까지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세월호 참사의 연루자들이다. 참사를 만든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이든,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서이든 목격자들은 파괴된 세계를 보아버렸고 연루되면서 또 다른 당사자가 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참사를 통해 그 세계가 나의 세계였음을 확인했고, 참사의 당사자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나의 세계와 분리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우리는 원튼 원하지 않든 관람객이 된 무기력과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해되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에 대한 ‘왜?’라는 질문은 떠나지 않고, 이 파괴된 세계 속에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연루자들도 일상이 흔들리고 슬픔에 무너지는 트라우마를 겪지만 국가와 권력이 돌보지 않는 사람들을 돌보는 마음으로 각자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슬픔은 어떤 애씀의 마음이 되어 연루자들의 ‘나의 싸움’의 힘이 되었다. 잊지않기 위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곁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마음들이 참사의 기억과 함께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 마음들이 매년 만나는 4월 16일마다 조금씩 달라진 세계를 만날 수 있게 할 것이다. _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랑희
대화의 시간 요약
세월호 참사는 TV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우리를 목격자로 만들었다. 목격자로서 갖는 슬픔의 무게는 사라지지 않는데 국가는, 사회는 잊으라 한다. 점점 잊혀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감독은 자신과 같은 마음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당신의 사월]을 만들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목격했다는 것, 그것은 생명이 사라지는 순간을 무기력하게 바라본 것이며 그리고 그 희생자들의 다수가 18살이라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고통이 당사자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전이되고 확장하게 하는 경험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경험과 고통은 목격자들에게도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 트라우마를 인지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무기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힘을 만드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상실은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슬픔을 받아들이고 애도의 시간을 담담하게 봐야한다. 담담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회복을 섣불리 말하지 않고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지 하나의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에게 어떤 사회에서 살아갈 것인지를 묻고 있다. 정의에 대한 질문, 참사를 만든 사회의 책임에 대한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참사가 비인격적인 사건이 아니라 관련된 모든 사람의 삶이 변하는 사건임을,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에 주목해야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대화의 시간 기록
* 일시 : 2019년 11월 24일 오후 8시 40분
* 장소 : 인천 영화공간주안 4관
주현숙 [당신의 사월] 감독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랑희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랑희
저는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랑희입니다. 반갑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며 영화를 봤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는 모두의 참사라고들 많이 얘기하죠.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로부터 5년동안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속에서 나온 트라우마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회복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실 게스트분들 모시겠습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
두 분 소개 각자 부탁드리겠습니다.
주현숙
[당신의 사월]을 만든 주현숙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진
인권운동하고있습니다. 다산인권센터 박진입니다. 반갑습니다.
랑희
먼저 제가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가 관객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시간도 진행하려합니다. 먼저 저희가 나누는 동안 함께 이야기하고 싶으신 분은 말씀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감독님께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세월호 참사 이후에 이와 관련된 영화와 책 등 많은 것들이 있었어요. 참사를 다룬다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참사의 기억들을 잊지않기 위해서 그런 작업들을 이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당사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아니면 사건 자체를 다루는데 감독께서는 참사와 함께 했던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영화를 만든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주현숙
세월호 참사가 갖고 있는 특수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참사가 벌어졌던 시기가 권위적인 정권이기도 했고, 사건 초기부터 끊임없이 은폐하려거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거나 제대로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던 과정이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TV를 통해 생중계되먼서, 배가 침몰하는 모습이 생중계 되면서 사람들이 다같이 목격자가 되었고. 그런데 그게 해소되거나 나눌 수 있거나 제대로 애도할 수 있는 기간을 갖지 못했고.
그래서 제게 되게 명확히 기억나는건 1주기 때 그날에 평일 저녁 시청에서 집회가 있다고 해서 종로 사무실에서 걸어서 갔었는데요, 그당시만 해도 “경제를 위해 모든 걸 빨리 다 잊어야한다, 이만하면 됐다” 이런 식이어서 제가 갖고 있는 슬픔이 저만의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나도 빨리 잊어야되는데 왜 나는 이리 무겁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또다른 마음은 다른 사람들도 다 잊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런데 평일저녁이었는데 시청광장에 정말 사람이 가득 있었어요. 평소에 집회 한 번 안와봤을법한, 퇴근하고 온 사람들이 되게 많은 거예요. 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기억하고 있구나. 약간 벅찼던 거 같아요. 나만 이런 게 아니고 사람들이 아무리 정부나 언론이 얘기하더라도 각자 갖고 있던 마음이 있었구나.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시간이 자꾸 흐르다보면 말씀하신 것처럼 점점 지워지잖아요. 정부에서도 열심히 지웠고. 416운동이란 말이 되게 좋은 거 같은데 어느 순간 416운동이 유가족들만의 운동이 됐있었던 것도 있었고. 그래서 이 무거운 마음이 나만의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는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진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 작업하게 됐습니다.
랑희
어떻게 보면 감독이 말씀하신 그 마음들이 여기 와 계신 분들의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이렇게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여전히 그런 마음을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참사라고 하면 당사자를 떠올리게 되서 당사자 밖의 사람들은 당사자를 위로하거나 어떻게 도울까 그런 마음을 갖기 마련인데 세월호 참사는 그 슬픔과 고통이 당사자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전이되고 확장되는 경험을 우리가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됐을까 생각하게 돼요. 박진활동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박진
한국사회가 재난과 참사가 많은 사회에요, 생각보다. 2014년만 하더라도 세월호 참사 이전에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 그 이후에 장성요양병원 화재 등 계속 참사가 나고 있는데 유독 왜 나는 이 참사에 이렇게 마음이 쓰일까 이런 질문을 저는 저한테 많이 했었어요.
우선 제가 정리한 제 답은 두 가지인데, 우선은 참사 현장을 제가 계속 목격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모든 순간을 목격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이라는 것은 살아있던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는 감각. 그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뭐냐면 살릴 수 있었다는는 거잖아요.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저 안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를 우리가 그냥 망연자실 무기력하게 바라봤다는 점. 저는 이게 한 측면이라고 생각하고.
또 한 측면은 희생자의 다수가 18살이라는 것이 저는 큰 측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18살이라는건 나일수도 있고, 내 자식일수도 있고 , 내 조카 내 친구일 수도 있고 모든 사람에게 설명 가능한 나이였던 거 같아요. 그 참사가 타자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 깊이 다가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그렇게 제 마음의 정체를 가늠해봤습니다.
랑희
말씀하신 것처럼 이 참사가 마치 나의 것처럼, 고통과 슬픔이 나의 것인 것처럼 겪었기 때문에 감독님이 영화에서 트라우마라는 말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감독님은 영상활동가로서 계속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많은 아픈 일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활동을 하고 있고, 박진 활동가 역시 인권활동가로서 많은 피해자들과 함께 문제들을 해결하고 싸우는 그런 활동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겪고 고통을 겪는 순간이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혹시 세월호와 관련해서도 영화에서 말한 트라우마랄지,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다면 함께 경험을 영화에서처럼 나눠봐주시면 어떨까란 생각이 듭니다.
주현숙
우리가 슬픔에 자꾸 무게가 있단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슬픔의 무게가 위계가 있을 거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요. 왜냐하면 유가족이 갖는 슬픔이 내 슬픔에 비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자기 슬픔이나 자기 감정을 묻어두게 되요. 특히 영상활동가 같은 경우는 현장에 항상 있어야하는 경우가 많고, 인권활동가도 마찬가지로 같은 감정을 겪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자기슬픔을 얘기하지 못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끊임없이 계속 감정을 써야하지만 자기의 감정은 채워지지 않는 그 시간들을 갖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슬픔에는 위계가 없단 말을 하고 싶었던 거 같고.
아무래도 작업을 하다보면, 제가 시작 전에 진행자와 잠깐 얘기를 했는데, “작업하다보면 토나올 정도로 많이 봐서 힘들어요.”라는 얘기를 했는데요, 보통 작업이 끝날 때쯤 마지막 영상들은 거의 한 클립당 200번은 본다고들 하거든요. 계속 그 모습을 뵈야하고 생각해야 하니까 그럴 때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힘들고. 현장에선 슬픔의 위계 때문에 힘들고.
그래서 건강하게 거리를 두는 것은 어떤걸까 계속 생각해야되고, 물리적인 것과도 연결이 많이 되니까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힘드니까 같이 작업하는 조연출한테도 힘들면 그만하라고 얘기한다거나. 그렇게 했던 거 같아요. 의외로 제가 세월호 작업한다고 하면 “힘든 작업을 하네.” 라고 얘기하시지만 사실 세월호 작업하기 전보다 하기 시작한 다음에 훨씬 더 좋았던 거 같아요. 작업하기 전에는 혼자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면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 사람들 만나서 얘기를 하고, 너무 신기하게도 어디서든 무언가 하고 계시는 거예요. 리본을 매고 다니시기도 하고, 무언가를 자기 삶에서 하시는걸 보는 게 더 위안이 많이 됐던 거 같아요.
저한테 힘든 시간이기도 했지만 이 작업을 하며 오히려 기운을 많이 받았고 그게 젤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가슴에 넣고 있지만 말고 자꾸 얘기하면서. ‘트라우마’라고 하면 얘기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게 되잖아요. 낙인이 되면 어쩌지 하는 그런 생각들때문에 주저하게 되는데. 그런데 ‘이게 트라우마야’하고 인지하면서, 인정을 하는 순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이 생기게 되는 것 같고. 그게 신기하게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가 그걸 다 봤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슬픔을 공유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연대할 수 있는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힘든 시간도 마주하니까 저에게 더 괜찮았던 거 같아요.
랑희
박진 활동가는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 활동도 했기때문에도 힘든 순간이 있으셨을 거 같아요.
박진
힘들죠. 힘들었던 거 같은데, 사실 저는 세월호참사가 나기 직전이, 기억하시겠지만 이명박근혜 시기였는데 되는 일 하나 없고 사람은 계속 죽고 쫓겨나는 시기였어요. 사실 인권활동가들이 대부분 일종의 정신적 피폭상태로 현장들을 계속 옮겨다니는 상황이라 제 정신건강이 안좋다고 생각할 때쯤 세월호 참사가 났어요. 좀 쉬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였는데요, 그때의 느낌은 제가 갖고있던 고통을 좀 더 큰 고통으로 뒤집어쓰는 느낌이었거든요. 그 후엔 좀 더 담담했던 거 같아요. 참사 성격이 슬픔이 기본정서이기 때문에 좀 거리감을 두고 자칫 내 슬픔까지 투사시키는 방식이어선 안되기 때문에 저는 좀 담담했던 거 같아요.
다만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질문을 듣고 하나가 생각났어요. 언제인지… 아마도 시행령 싸움을 할 때였던 것 같은데, 특별법 제정 후 시행령 싸움할 때 부모님들이 청와대 가려고 농성하고 있는데. 농성을 하고 조금씩 전진하다가 광화문 현판 밑에서 막혀서 농성을 하게 됐는데, 주로 엄마들이 있었는데 같이 있게 됐어요. 근데 엄마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니까 화장실을 가겠다고 주장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 경찰들이 보내주지 않는 상황이고 화장실을 가야한다고 싸우기 시작했어요. 너무너무 화가 나니까 그냥 거기서 바지를 내리고 거기서 일을 보기 시작한거죠. 근데 너무 화가 나서 그때 제가 국가인권위를 불렀던 거 같아요. 긴급구제신청을 하고 조사관들이 오고 그러다가 결국 엄마들이 이겼어요. 그래서 본인들이 가고 싶은 데까지 전진하시고 그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경찰은 간이화장실을 마련했죠.
일종의 투쟁으로 돌파하셨는데, 인권위 직원들이 뒤늦게 왔는데 그때 눈물이 펑펑 나는 거예요. 주저앉아서 그렇게 울었어요 제가. 그렇게 운 적이 없었거든요, 그 투쟁을 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서럽지? 왜 이렇게 서럽고 왜 이리 눈물이 났나 생각해보니까 무기력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인권운동하면서 이정도도 이걸 못해냈나 싶은,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 한국사회가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것에 대한 억울함, 서러움 이런게 복받쳐서 그 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이후 제 결심은 부끄럽지 않게 싸워 당신들이 더 이상 이런 해괴한 일을 당하게 하지는 않겠다라는 결심같은 거. 그 날이 많이 생각나요.
랑희
결국 분노로 다시 한번… 두 분 말씀을 들어보니, 트라우마라는 말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결국 트라우마라는 것도 회복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트라우마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회복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두 분 말씀을 들으니까 감독님의 영화와 맞닿는 점이 자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많은 이야기들이 말해지고 들리는 것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민이 각자의 경험들을 말하고, 단원고 학생들이나 부모님 외에도 다른 피해자들이 있는데 아직 들려지지 못한 이야기들,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은 트라우마에 고민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셨는데 회복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주현숙
한국에 워낙 재난과 참사가 많은데, 용산참사 당시 제가 아이가 어려서 현장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어요. 그때 아마 1주기였던 거 같은데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인 넝쿨이 그 때 영상활동을 하고 계셨고 1주기 즈음인가 지나서였나, 다른 영화제에서 그 용산 관련 영화를 틀었어요. 그때 되게 눈물이 났어요. 원래 잘 울지만 사회를 보면서 제가 울어서 넝쿨에게 당신이 좀 해달라고 울고 그랬어요. 그때 넝쿨은 원래 쾌활한 활동가이기도 하지만 아주 쿨하게 얘기하고 했거든요. 그 이후 계속 생각했어요. 나는 왜 그 때 울었을까? 그리고 넝쿨은 원래 씩씩하지만 그때도 어떻게 씩씩했을까? ‘넝쿨은 현장에 있어서 그랬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마음에 슬픔이 있으면 누군가와 같이 뭔가를 하고, 현장에 있으면 물론 또 다른 슬픔이나 고통이 생겨서 힘들겠지만, 그것을 적어도 감정들이 무엇인지는 인지할 수 있고 나눌 수 있겠구나. 그렇게 되면 슬픔이 정체되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바꿔나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사실 세월호 작업도 상황이 여유롭진 않았지만 하면 좋겠다. 왜냐하면 저에게도 되게 숙제처럼 느껴졌고 누군가 얘기하면서 서럽게 우셨다고 했는데 준비 안 된 울음이 너무 많은 거예요. 세월호 얘기를 하면 갑자기 다들 울음이 터지고 각자의 경험이 있으니까. 저도 그랬는데, 이 작업을 해야 나도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힘이 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거 같아요. 회복이라는 건, 우선 열심히 책을 읽긴 했었는데요, 그걸 인지하고 자기가 그것 때문에 힘들다는걸 알고 주변과 나누고 뭐라도 하게 되면 조금씩 그 슬픔의 색이나 무게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노래 가사에도 ‘노란리본을 가방에 매고 있으니 우린 알아볼거야.’ 라고 했던 것처럼 그거 자체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도 지나가다 노란리본을 보면 되게 반갑잖아요. 서로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감정을 나누다보면 스스로가 당사자임을 확인할 수 있고 그러면 주변을 감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감각을 일깨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랑희
박진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드릴게요. 얘기를 듣다보면 슬픔을 지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회복에 관련해서 나름 저에게 깨달음과 같은 말을 들었는데, 작년에 고 김용균 집회에 참석했는데 어머님께서 “나는 사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슬픔을 안고 다른 삶을 살겠다.”고 얘기하신거예요. 저는 이 말을 듣고 회복은 이렇게 고민돼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어요. 많은 피해자들과 회복에 대해 고민했을 거 같고 본인도 고민했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진
저는 회복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요. 점점. 이 상실은 사실 시간밖에 약이 없더라고요. 시간이 그럼 상실 이전의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다가 보면 시간으로 인해서 다른 것들이 들어오니까 살아지는 것이고. 저는 본질적으로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참사의 희생자들을 어떻게 만나야하는지 전혀 알지 못할 때 미국의 신학자 월터 스토프 박사가 방한을 마침 했어요. 그분이 30년 전 아들을 총기사고로 잃은 유가족이신데 많은 분들이 물었죠. 참사 유가족들에게 우린 무엇을 해줘야 하느냐. 그분이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아요. “그분들은 안 괜찮아질거다. 그분들은 좋아질 수가 없다. 상처가 빈 곳을 메꾸지 못하고 살아질텐데 그렇다면 시민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괜찮다라고 말하지도 말고 힘내라고 얘기할 것도 없다. 힘도 안나고 괜찮아지지 않기 때문에 당신들이 할 일은 슬픔의 벤치 옆에 같이 앉아주는 것이다.”라고 말했거든요.
저는 회복될 수 없다, 어떤 상실도. 다만 상실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을 그 사람은 계속 토해내야 하고 그 토해내는 과정이 애도의 과정인 것인데, 그것이 충분하지 못하면 살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사회는 그 애도를 기다려주지 않죠. 피해자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합니다. “이제 그만해라. 너 뭐 바라고 하는거냐.” 전혀 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이 슬퍼하는 순간에 그걸 담담히 봐 주는 것, 이게 어렵거든요. 담담히 봐준다는 것은 곁에 있어준다는 것인데. 슬픔이 이제 끝날 때가 됐다는 같은 얘기하지 말고, 회복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곁에 있어주는 그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랑희
영화에 나온 분들이 그렇게 곁에 있어준 분들이었다고 생각하고, 그 다섯 분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기 계신 분들도 곁을 지켰던 분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관객분들 중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질문이 있다면 손 들어주세요. 각자의 세월호와 관련된 자기의 이야기를 나눠주시는 것도 굉장히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까 우리가 말했던 것처럼 자꾸 말해야한다, 물론 입을 떼는 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얘기를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주현숙
영화제 협찬을 받아서 피스배지를 받았어요. 제가 원래 사려고 했는데 들켜서… 그래서 질문해주시거나 소감 나눠주시는 2분 선착순으로 드리겠습니다.
랑희
감독님이 이리 적극적으로 하라고 관객분들에게 요청하시네요.
관객 1
선물은 원하지 않고요, 사실은 굉장히 마음이, 제 트라우마가 다시 올라오는 슬픔을 겪었는데 그때 당시 저는 안산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해바라기센터에서 일했기 때문에 단원고 친구들 시신이 제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마지막 보내는 일을 했고, 가족들을 상담하는 일을 했는데 너무 많은 아이들의 영정사진과 엄마들의 통곡과 할머님의 울부짖음, 아버님들의 절규의 모습이 저를 너무나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했어요.
그때 한 30명 정도 트라우마 상담자들이 긴급투입돼서 상담하는 과정에서 저도 제 한계를 넘어서 ‘견디시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라고, 언젠가 치유될 거라고’ 했던 말 때문에 저도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우리는 그 엄청난 사건 앞에서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것이 가능할까. 옆에서 눈만 마주쳐도 서로 고통 속에서 견딜 수 없어하는 그분들에게 감히 상담이라고 하는, 위로한다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전달됐을까. 저도 많이 자책하고 힘들고 영정 아이들의 사진과 눈빛이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많은 엄마들이 울다가 쓰러지고 울다가 쓰러지고 할 때 병원에서조차 그 보호자들을 긴급지원하는 것까지는 되지 않았거든요. 제가 거기서 굉장히 분노하고 그 직장에서 잘릴 수 있는 상황까지 갔지만 이 부모님들을 지원해야 하고 링거라도 놔줘야 하고. 병실까지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분들이 영정이 있는 곳에서 링거를 놔달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센터 윗분들에게 많이 요구했는데…
저도 사실 많이 잊고 싶었고 잊으려고 무진 애를 썼고 그래서 그 이후 안산을 떠난 것도 그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미안하고 부끄럽고 나름 인권운동가라고 하면서 활동가로 살고 있지만 되게 무책임했단 생각이 들어서 반성의 마음도 들고요. 큰 목소리를 내며 운동의 물결에 있지만 너무나 부끄러운 저의 모습도 보게 되었고. 사회 부조리에서 우리가 피해자를 바라볼 때 피해자다움을 원하는데, 그런 의식을 우리가 바꾸는 것에 이런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작은 일상부터 우리가 깨어지는 변화가 일어났으면 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랑희
함께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관객 2
저는 질문은 아니고 영화를 본 소감입니다. 너무 잘 봤고 그동안 저도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는 시간이었어요. 저는 <꿈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인천 성소수자청소년들과 함께하는 공간에 있습니다.
얼마 전 20년 전 인천에 있었던 인현동 화재참사사건를 추모하는 자리가 이었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그게 생각이 났어요. 그 당시 정부와 인천시도 사망한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해 줬는지. 20년이 지나도, 현재 정부에서도 잘 안되고 있잖아요. 그런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철학자가 말했듯이 우리가 옆에 있어주는 것, 연대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에 대한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랑희
20년이 지난 참사도 잊지 않고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단 생각이 듭니다.
관객 3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에서 살고 있고 인천 섬을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는 OOO입니다.
사실 저의 고향은 제주도입니다. 그래서 그 사건을 들었을 때 왜 하필 제주도 가는 배였을까? 저 개인적으로는 지워지지 않는 일이었고 집에 일이 있어서 갈 때마다 기억해야하고. 세월호 사건 일어나고 나서 직장 다니면서 늘 섬을 다니면서 기록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연안여객터미널을 한 달에 두 번은 가게 되는 상황이에요. 세월호 있었던 자리가 지금은 텅 비어있는데요, 배를 타면 거기를 꼭 쳐다보게 돼요. 방송으로 봤던 장면이 떠오르고. 저도 비슷한 또래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 감정에 오버랩됐다고 할까요. 그래서 거기 가보기도 어려웠고 그분들이 모여 계신 현장에도 차마 갈 수 없었던. 저 같은 분들도 많았을 거예요. 너무 비슷한 상황이고 같은 또래의 자녀를 너무나 억울하게 잃은 부모님, 차마 그분들이 있는 곳에 가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던 게 그 이후로 제가 배를 탈 때마다 인명구조함이 몇 개가 있고 구명조끼가 몇 개가 있는지를 다 조사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실제 오늘 탄 인원과 이 안의 구명장비들이 어떻게 준비돼 있는지 묻고 다니니까 선장님이 되게 이상하게 보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지금 이런 상황들을 누군가는 확인해보고 싶다고. 그런 일화가 있었고 배에서 일들이 생겼어요. 아저씨 두 분이 나오시더니 구명조끼 입는 법을 설명하더라고요. ‘아! 이제 뭔가 변화가 생기는구나.’ 그 전에는 특히 배를 타면 자기 집으로 가는 분도 계시지만 등산하시는 분들이 반 이상이에요. 늘 배를 타면 그냥 자리에 앉기도 전에 돗자리 깔고 술판벌이는 게 1차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배를 내려서 도착하면 이미 다 취한 상태. 그 상태로 등산을 하는지 뭘 하는 진 모르겠지만 그런 분위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로 많은 분들이 조금 조심하고. 또 인천연안터미널 배들이 좌석제가 강력하게 시행됐어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간이 흐르니 다시 되돌아 오는 거에요. 배가 출발했을 땐 비상구를 열고 나가지 말라고 해도 담배 피우러 나가시기도 하고. 구명조끼 입는 방법도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어요. 우리는 너무 많이 이런걸 잊어버리고 살고있지 않나. 저도 다큐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걸 기록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젠가 다 잊혀지게 되거든요.
기록하지 않은 역사는 기억도 안 해줘요. 그래서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기록사업이 이어져야 하는데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고통을 갖고 있는 것들을 많은 시간을 들여 기록했을 감독을 생각하면 되게 아프고. 트라우마로 남으셨다고 했는데 앞으로 그걸 어떻게 이겨나가실지 개인적으로 걱정되고요.
저는 광화문 광장에도 못 가다가 세월호 기록관이 만들어지고 나서 시민활동가로서 방송뉴스를 제작하는 것도 하고 있어요. 그래도 뭔가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단원고 아이들 한 명씩 이름을 부르는 노래가 있는 걸 겨우 촬영해서 뉴스를 제작했고, 그 세월호가 출발했던 연안부두에서 노란우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촬영을 다 못 마칠 거 같았는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를 노란우산을 쓰고 리본형태로 서서 노래를 부를 때 끝까지 못 찍을 줄 알았는데 그걸 찍어서 뉴스로 만들어 보냈을 때 어쩌면 책임회피 같았지만 그래도 나로서 할 수 있는 뭔가 하나는 해냈구나 하는 걸로 저 스스로를 되게 위로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많은 사고가 생기는데 너무 많이 잊어버리는 거 같아요. 그래도 이런 기회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사회 다양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마음에 영화제 다녀온 사진 같은 것도 페북에도 계속 올리고 있는데, 조그만 역할이 많이 퍼졌으면 좋겠고요. 기록해주신 감독님께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또 하나의 역사를 기록해주셔서 감사하고 저 또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이라도 하나하나 기록하는 일을 좀더 열심히 해보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랑희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세월호를 맞닥뜨리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이 각자의 경험으로 남아있을 것 같고, 그 수많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들은 듣고 느낀 것은 지금 말씀해주신 분들 모두가 슬프고 힘들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하셨다는 것이예요. 그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고 목격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나아가려는 연루자로서의 책임감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중요한 책임은 진상규명이고, 지금도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진상규명은 책임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참사에 대한 책임도 각자가 갖고있는 생각들이 다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두 분께 각자 세월호 참사의 연루자로서 갖고 있는 책임, 우리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무리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두 분께 이야기 부탁드릴게요.
주현숙
영화에 안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진 않지만 사실 ‘세월호 사건이 안전의 문제이기만 한걸까?’ 라는 질문이 제게 중요하게 다가왔어요. 세월호 사건은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란 생각이 많이 들고 아직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라는 생각이 최근에 더 많이 들었어요.
어떻게 죽었는지조차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왜 죽었는지도 아직 이야기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게 다 밝혀지고.
일자리에서 부당하게 더 많은 일을 하거나 안전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고 안전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주변에 정의롭지 못한 순간에 예전보다 더 예민하게 바라봐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세월호를 416운동이라고 자꾸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 사회에 있는 안전부터 시작해서 노동, 환경 등 정의롭지 못한 것을 자꾸 찾아내는 운동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그리고 그게 세월호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거기까지 나아가면 참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진
저도 감독님 영화 보면서 나와 세월호참사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하게 됐고 저는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참사 이후에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에 대해 알게 됐거든요.그래서 그 사회를 위해 더 살아가게 될 거 같고.
세월호 참사났던 그 해에 판교 환풍구 사건이 났었어요. 다 아시죠? 공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환풍구 위에 올라서면서 하중을 못 이겨서 무너져서 많이 돌아가셨는데, 다들 뉴스 보면서 첫마디가 저를 포함해서, “거기 왜 올라가….” 저도 무의식적으로 얘기했는데. 그 얘기를 되게 오래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누구나 올라가기 좋은 곳에 있었거든요. 외국은 접근할 수 없게 장치한다거나 높이가 다르거나 했는데 우리는 무방비상태였고사람들은 올라갔고 무너졌고 죽었고.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사회가 책임을 다한 이후에 맨 마지막에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는다. 저는 앞으로도 이런 참사나 산업재해 등 모든 재난에서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건, 이 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 그게 바로 세월호참사가 우리사회에 던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렀잖아요. 어떤 칼럼에선 304명 희생자 이름을 호명했는데 인권의 사건이란 그렇습니다. 비인격적인 사건에 명칭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터졌을 때는 구체적인 사람의 역사가 끝나는 것이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에 주목하는 사건임을 우리가 이후에 기억하는 약속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랑희
오늘 영화는 다섯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등장하는 영화란 생각이 들고요, 오늘 함께 하셨던 분들과 이후에도 또 세월호 이야기로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감독님의 이야기도, 세월호의 이야기도 이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고요.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눠주신 분들 앞으로 또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준비된 자리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하신 두 분과 수어통역해주신 선생님께도 감사의 박수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