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흐르는

30회 인천인권영화제를 열며

지난 겨울 어느 하루, 날카롭고도 뜨거운 밤이 참으로 길었던 날 

‘모두 멈춰!’를 선언한 그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살아갈 수 없는 불온한 존재라고, 애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나의 내일, 또 내일도 그저 자신들의 결정일 뿐이라고. 저마다의 취약함이 움켜 잡히는 존재의 틈이 되어 언제든 붙들려 나갈 뻔했다는 길지 않 은 안도감, 내 몸 구석구석을 더듬어 보며 불안해야만 했던 순간들에 밀려드는 수치심, 누군가는 담을 넘고 누군가 는 모이고 누군가는 외치고 또 누군가는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들던 밤. 

위태로움이 과연 나만의 몫인가를 묻는 수많은 나, 당신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채로운 빛을 밝히며 고단한 삶을 달래던 노래를 나누고, 낯선 듯 반가운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이며 함께하기 위한 평등 약속을 새기던 시간. 
차고 넘칠 때쯤엔 어김없이 흐르는 행진에 나를 긍정하며, 살만한 내일을 상상할 수 있는 광장. 
이 시간이 지나 상상한 만큼 변하지 않는 세계를 다시 만나는 때, 당신이 보며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으로 기록한다는 어느 카메라의 고백처럼 

나는 여전히 당신이 궁금합니다. 
마주하면, 시작되는 몫소리의 서사 

세상에 다시 없을 당신의 삶을 따라 가다 보면, 
그리게 되는 삶의 궤적 

우리의 관계는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며, 
상실을 안고 나아가는 애도의 힘 

만나고 포개지더니 이내 흐르는 까닭은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되는 당신이 있어, 

삶과 곁, 공존을 향해 흐르는 

인천인권영화제 30년, 
사람과 공존, 평화와 인권의 역사를 잇다. 
저항과 새로운 세계를 향한 길을 잇다.

서른 번째 스크린을 펼칩니다. 

표현의 자유, 더 깊고 너른 인권감수성과 대안영상이 펼쳐지는 공간, 누군가의 몫소리에 몸을 기울이고 이야기를 이 어가는 시간. 그렇게 펼치고 잇는 자리가 되고자 보내는 나날들. 

이것이 삶의 자리를 지키며 공존의 순간과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엮어나가는 당신들이 있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몫소리와 기록의 힘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늘 그렇듯이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공존을 위한 영상, 자유를 향한 연대 저항의 스크린은 꺼지지 않는다. 

2025년 12월 인천인권영화제를 일구는 사람들 드림

메인이미지 제작 : 차강 바느질 작가 ㅣ 촬영 : 정택용 사진가 ㅣ 포스터디자인 : 언제나봄그대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