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를 부수고 اک یوللار Cutting Through Rocks 💬

| 폐막작 |

바위를 부수고
اوزاک یوللار
Cutting Through Rocks

감독 : 사라 카키 모하마드레자 에니
제작연도 : 2025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아제르바이잔어 터키어 페르시아어 한국수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93분

상영일시 : 2025.12.7.(일) 오후 6:0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기획의도

사라가 남성 중심의 전통사회를 낡은 과거로 두고 평등의 미래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는 듯 녹슬고 무거워 보이는 대문을 고치고 있다. 사라는 이 문을 열고 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고 의회 선거에 도전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한다. 이 대문을 열고 자매들이, 마을 여성들이 사라의 집으로 온다. 사라는 혼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 변화를 바라고 변화시키자고 제안한다. 사라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얼굴엔 사라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 함께 할 희망이 가득하다. 마을 최초 여성 의원이 된 사라의 집은 정치의 장이자 혁명을 시작하는 곳, 여성들이 위안과 용기를 얻는 곳이다.

사라의 옷차림은 너무 눈에 띈다. 마을 여성들과 다른 그녀의 옷차림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입을 옷을 직접 고를 수 있었고, 오토바이를 타기 때문이다. 사라의 오토바이는 자유로운 이동이다. 그리고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것은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여성에게만 옷과 이동과 같은 삶의 기초적인 것들이 통제되는 것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사라는 알고 있기에 마을 소녀들에게 오토바이 타는 법을 가르쳐 준다. 나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고, 자신과 함께 ‘운명’이라고 강요된 것을 떨치고 미래로 가자고 제안한다.

옷과 이동과 같은 일상의 통제는 교육과 결혼까지 여성의 삶 전체로 이어진다. 여성의 몸은 전통이라는 이유로, 그것이 자연스럽고 운명이기에 ‘여자되기’라는 과업이 부여된다. 이 과업을 스스로 부정했을 뿐만아니라 소녀들에게 전파시키는 사라는 불온하고 불길한 존재다. 그래서 남성 전통사회는 사라가 ‘여자 아님’을 선포하고 싶다. ‘여자’라면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려는 이 강한 탄압은 한편으로 사라가 만든 균열의 파장이 얼마나 두려웠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사라의 불온한 실천과 다른 세상의 향한 정치가 언제나 성공하지는 않지만 사라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한계에 부딪히고 현실에 물러서기도 하겠지만 그녀들은 이미 알고 있고 말했다. “마을의 전통을 바꾸고 싶어요.”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는 자유를 알았다. 언젠가 누군가와 무엇이 될 수 있는 도전을 할 그녀들을 상상하고 응원한다.

 

대화의 시간 기록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

랑희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명혜진 이래봄 (수어통역)

이종환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문자통역)

랑희

안녕하세요? 30회 인천인권영화제 함께해 주신 관객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랑희입니다.

(박수)

지금 <바위를 부수고> 보셨는데 드디어 30회 인천인권영화제 마지막 작품을 함께 보셨습니다. 영화를 보신 관객분들이 저랑 같은 마음이 아니셨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주인공 사라와 그리고 사라의 혁명의 여정에 많은 분들이 매료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건 이 혁명이 성공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때로는 눈물이 흐를 때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마을의 여성들과 소녀들과 함께 혁명의 길을 이어갈 것 같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을 폐막작으로 선정을 하면서 우리 곁에도, 사라의 곁에 있는 소녀들 같이 함께 새로운 세상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그리고 일상의 투쟁을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 손님을 모시고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데요. 여러분께서 박수를 쳐 주시면, 크게 쳐 주시면 이야기 손님이 나오실 겁니다.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

관객분들에게 자기소개와 인사 나눠주시죠.

나영

안녕하세요? 저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나영입니다. 반갑습니다.

 

랑희

오늘 이 자리에는 이야기 손님과 함께 수어통역, 문자통역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수어통역에는 이래봄 명혜진 수어통역사님이 함께해 주고 계시고요. 문자통역에는 AUD사회적협동조합 이종환 문자통역사님이 함께해 주고 계십니다. 대화의 시간은 제가 게스트분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여러분께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입장을 하실 때 받았던 티켓에 보면 QR코드가 있을 텐데요, QR코드를 찍으시면 대화의 시간 오픈채팅방에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오픈채팅방에 궁금한 점과 영화 관련해서 관객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를 남겨 주시면 제가 이야기를 진행을 하면서 소개를 시켜드리고 질문을 나누기도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영 님, 영화를 본 소감이 어땠을까 궁금한데요. 저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같이 봤던 극장의 분위기가 굉장히 뜨겁고, 에너지가 가득 찬 느낌을 받았어요, 저 역시 그랬고요. 혹시 영화 보시면서 어떤 장면이 인상적이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나영

저는 일단 사라에게 너무 매료되었고요. (웃음) 그리고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캐릭터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장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무래도 사라가 당선된 후 여학교에 찾아가서 여학생들과 계속 공부를 하자는 이야기를 했고, 여학생들이 앞에 나와서 서명을 남기는데 그때의 표정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후반부에 보면 그때 서명한 학생 중에 많은 학생들이 결국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나오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사라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을 하고 서명을 했던 그 순간은 이후에 계속 분명히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영화에서 사라와 함께 사는 학생이 부모님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어려움이 예상이 되지만 이혼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굉장히 굳은 의지로 그 과정을 겪어 나가는 것처럼, 그때 서명을 했던 많은 학생들도 또 어느 순간 그때 그 순간을 기억을 하고 자신의 삶을 투쟁을 하면서 찾아나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장면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습니다.

 

랑희

저도 소녀들의 눈빛, 표정을 잊을수 없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관객 여러분께서도 오픈채팅방에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았다’ 이런 이야기 남겨 주시면 서로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보셨을 것 같아요. 사라의 오토바이, 사라의 옷차림이 영화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상징으로 보이는데요. 오토바이를 질주하는 사라가 굉장히 멋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남성 중심의 전통 사회가 굉장히 뿌리깊게 있는 사회에서 여성이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것을 새롭게 보게 되는 영화였거든요. 그래서 영화에서 보여지는 젠더 규범이 일상의 통제 그리고 몸의 통제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영 님께 관련해서 좀 더 이야기를 더 들어 보고 싶어요.

 

나영

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영화에서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는데요. 사라가 당선이 되고 나서 마을 사람들이 같이 축제를 하잖아요, 그런데 남성들만 마당에 나와서 신나게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그 마당에 유일한 여성은 사라이고 다른 여성들은 집 안에 있고, 사라가 이 바깥의 축제를 즐겨야 하지만 안에 있는 여성들을 계속 신경을 쓰느라 카메라가 그 사이에 있는 사라의 표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여주는 장면이 나와요.

그 장면과 마지막에 굉장히 막혀 있지 않은 도로를 쭉 내달리는 마지막 장면들이 서로 대비가 되어서 보여지는 것 같아요. 사실 사라가 살아 온 삶 자체가 한 사회에서 여성의 젠더 규범을 어떤 식으로 필요에 따라서 이용하고, 관리하는지 굉장히 다양한 방식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거든요.

사라가 다른 여성들과는 다르게 옷을 입고, 오토바이도 타고, 공적인 어떤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노동력을 원했기 때문이죠. 계속해서 아들을 원하다가 사라 이후에 아들을 낳게 되니까 노동력으로써 딸을 아들처럼 키우기 위해서 오토바이도 가르치고, 건설 일도 가르치고, 아들만 갈 수 있는 곳에도 데려갔어요.

한국에서도 제가 굉장히 재미있었던 장면이 몇 년 전에 마포의 성소수자 단체가 백일장 같은 걸 했어요. 레즈비언들이 백일장에 당선이 되어서 본인이 쓴 글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중에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는 다니면서 보면 다 남자라고 생각을 하는데 부모님이 자기를 이렇게 키웠다는 거예요. 자기는 한 번도 여자답게 하고 다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고, 오히려 자기 동생이 언니처럼 하고 다니라고 맨날 부모님한테 한소리를 들었대요. 그 동생은 굉장히 꾸미기를 좋아하고 사회에서 여성으로 여겨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죠.

그런데 그랬던 이유가 부모님이 여자들이 너무 꾸미고 다니고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면 성적 대상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단속을 했었던 거죠. 그리고 아들처럼 되기를 바라서 사라처럼 키워진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도 많이 있잖아요. 한편으로는 이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어떤 모습을 단속하기 위한 것의 다른 측면에서 노동력으로써 필요할 때 혹은 아들로서 역할이 필요할 때는 그런 방식으로 키우기도 하고요.

그렇게 자랐던 사라도 결국 결혼을 하는 과정을 겪게 되고, 또 이혼을 하고 나서 힘들게 여성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겪었고, 그리고 조산사로 일을 했기 때문에 한편으로 마을의 많은 사람들을 두루 알고, 마을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던 기반이 되기도 했고요. 그렇게 겨우 의원이 되고 나니까 또 이번에는 마을 원로회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사라가 하는 어떤 공적인 사업들을 방해하고, 직위를 내놓으라고 하고 사사건건 방해를 하죠.

결정적으로 저는 여기에서 중요한 장면이 있는데 사라가 법정에서 정체성을 의심을 받고, 성전환을 강요받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이란의 배경을 알아야 장면이 더 다가오는데 이란은 1980년대 중반부터 성전환이 인정이 되는 국가예요, 놀랍게도. 성전환 조건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동성애를 하면 최대 사형까지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트렌스젠더를 인정해서 정부가 성전환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동성애를 막기 위해서 성전환을 하게 하는 거죠. 그래서 사라가 겪었던 일은 여성으로서 공적인 일을 행했을 때 그리고 여성들을 돕는 일을 했을 때 사라가 하는 행동 자체가 성적 지향을 의심받는 일로서 여겨지고 그렇게 되면 이란 사회에서 반드시 처벌받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성애자 여성의 룰대로 살든가 아예 성전환을 하든가 이런 강요를 받고, 그런 강요를 통해서 사라가 하는 일들을 가로막기 위한 어떤 도구로써 사용이 되는 장면들이 너무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영화에서 보여지고 있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랑희

그 장면이 많은 분들에게 놀라움을 주기도 했었을 것 같은데요. 사라뿐만 아니라 많은 이란의 여성들이 그런 일들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놀랍고, 우리는 성별 정체성이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으로서의 의미를 많이 이야기를 해 왔는데 오히려 젠더 규범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이 된다는 것도 굉장히 놀라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 이 이야기를 좀 처음 들어서 알게 되었네요. 

그런데 어쨌든 사라가 그런 과정들을 겪는 게 여성을 대변한다, 혹은 여성답지 않게 이런 목소리를 낸다는 것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보통 여성 정치인은 여성만을 위한 정치인 혹은 소수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정치인은 소수자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만으로 많이 인식하게 되는데, 오히려 사라가 보여 주는 어떤 페미니즘의 정치라고 해야 할까요? 정치의 전략은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왜냐하면 선거 때 남성들의 지지도 굉장히 많이 받았었잖아요. 그래서 페미니즘 정치 관점에서 사라의 정치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나영

영화가 2025년에 완성된 영화인데 제가 찾아 보니까 7년 정도 영화를 촬영을 했었더라고요. 7년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히잡시위’가 있었던 시기거든요. 그 히잡시위의 배경도 단순히 히잡의 관한 시위만이 아닌 당시 대통령, 지금도 대통령으로 있는데, 48% 정도밖에 안 되는 지지율로 당선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당선된 대통령으로서의 정당성도 굉장히 취약하고 그만큼 지지율을 얻지 못한 지도자였는데, 대통령이 경제도 너무 악화를 시키고 그런 상황에서 ‘히잡시위’가 있었던 시기 동안 굉장히 많은 청년들과 성소수자들, 여셩들이 그런 통치에 반대를 해서 힘을 모으는 시기와 맞물립니다. 그래서 많은 시위들이 있었어요.

결정적으로는 그랬던 이유는 권력의 취약성을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하기 위해서 도덕 경찰이라는 것을 부활을 시켰어요. 그 도덕 경찰을 통해서 성적 단속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통치를 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촬영을 하는 동안 영화에서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사라가 지지율을 얻어가는 과정이 당시 그런 분위기와 맞물리지 않았을까. 영화에서도 보면 사라가 ‘젊은이들이 이 나라의 미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청년들의 지지를 굉장히 많이 모으는 과정이 보이고요.

저는 굉장히 사라가 머리를 잘 썼다고 생각을 하는 게 가스관을 연결을 하는 것으로 마을의 지지를 모았잖아요. 그런 다음에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 공식 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가스관을 집으로 들이기 위해서는 공식 문서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때 주택을 부부 공동 소유로 문서를 쓰게 만드는 과정들이 사라가 여성으로서 최초로 당선된 정치인이지만 필요한 가스관을 들여 오고 그 가스관을 계기로 함께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자원을 여성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과정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 여성 정치인으로서 사라가 만들어간 굉장히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것이 마을 사람들에게도 여성만 위한 정치를 한다는 게 아니라 마을을 위해 정치를 하고 그것이 마을 사람들 전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여성들과 같이 공동 소유의 집 문서를 만든다든지 힘을 함께 배분을 한다든지 중요성을 함께 마을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과정으로 만들어갔다는 것이 저에게는 좀 인상적으로 보였습니다.

 

랑희

오픈채팅방에 많은 분들이 들어오셨는데요. 말씀을 나눠주시지 않는 건 나영 님의 이야기가 관객분들의 귀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겠죠? (웃음) 질문을 남겨 주시면 이따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이야기를 하신 것과 연결되는데, ‘히잡 시위’ 말씀을 하셨어요. 사라의 언니들이 사라한테 “너는 혁명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 그리고 그 혁명이 사라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을 여성들, 소녀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더 혁명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라뿐만 아니라 이란의 많은 여성들이 이미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저도 간단하게나마 알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이란 여성들의 투쟁에 대해서 알려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영

이야기를 했던 ‘히잡 시위’를 가지고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원래 히잡이 금지가 된 것이 이란 혁명 이전잖아요. 그래서 왕조를 몰아내고 호메이니가 이란을 세우고 나서 권력을 잡으니까 히잡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만들었는데 그때 히잡을 의무화하는 법을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한 여성들과 그 시위를 탄압하는 역할을 했던 여성들 양쪽에 다 이란 혁명에 참여했던 여성이라고 하더라고요.

히잡이 원래 이란 혁명 이전에 굉장히 상류층만이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징이었기 때문에 이란 혁명을 함께했던 여성들의 일부 중에는 그런 계급적인 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상류층만 쓰지 않을 수 있었던 히잡을 혁명 이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히잡을 쓰도록 의무화를 하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요.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사실 히잡 반대 시위가 계속해서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주로 2019년 이후의 상황, 그리고 22년 사망을 했던 한 여성의 사건 이후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런 투쟁이 계속 있었고, 그럴 때마다 히잡은 하나의 투쟁의 도구가 되었지만, 히잡이 상징하는 맥락 안에는 이란 민중들의 투쟁이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투쟁이 또 더 많은 힘을 얻었던 측면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우리가 주로 서구의 눈으로 볼 때는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쓸 수밖에 없고 그것은 여성인권의 침해이니 이 여성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단순하게 다뤄지기 쉽지만,사실 그 안에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배경과 맥락 속에서 투쟁하며 싸워온 여성들이 있고, 그것이 사라가 나오는 것처럼 계속해서 저항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함께 달리는 소녀들과 함께 또 다른 투쟁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랑희

네, 기다리던 질문이 올라왔는데요. 질문 하나 드릴게요. ‘사라가 이혼을 지원했던 소녀가 법원에 가서 판사와 대화하는 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 판사의 말이 차별적인 것은 물론이고, 강압적이고 편파적이더라고요. 법과 제도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 배경에 대해서는 사회적 인식과 가치관이 차별을 기반으로 한다고 하면 같은 모양으로 구성되는 것 같아요. 나영 님이 활동하고 계시는 재생산 관련 활동 중에 이렇게 상식으로 여겨지는 법과 제도를 전복하는 시도가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생겨나는 일화를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십니다.

 

나영

셰어를 잘 아는 분이 질문을 하셨나 보네요. (웃음) 전복에 관한 문제도 있고, 지금의 법 인식이 얼마나 이제 실제 현실을 못 따라오는지도 있는데요. 하나는 헌재 재판을 통해서 임신 중지를 처벌하던 법을 비범죄화했죠. 형법 조항을 삭제했고 그래서 이제는 어떤 경우에도 임신 기간이 얼마가 되었든 사유가 있든 상관없이 임신 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를 통해서 겨우 그것이 위헌적이라는 결정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 법과 정책을 만드는 과정은 너무나 지난하게 지금 6년 정도 흘러왔거든요. 그런데 그런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정치인들이 어떤 현실인지 몰라요.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실제로 오랫동안 임신 중지는 불법이었기 때문에 사실 공식적인 실태 조사도 된 적이 없습니다.

실태 조사가 되면 실제로 병원에서 어느 정도 임신 중지가 어떤 의료 기술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치료가 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하고, 실제로 임신 중지를 하는 사람은 어떤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해서 어떤 후유증을 겪고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런 것들이 조사가 되었어야 하는데, 한 번도 그런 공식 조사가 할 필요를 못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된 적이 없죠.

지금까지의 조사는 대부분 전화나 온라인 설문조사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뭐가 필요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치인들도 모르고 심지어 의사들도 모릅니다. 의대 과정에서 임신 중지에 대한 부분은 그냥 통째로 집게로 집어두고 넘어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현장에 와서 이제 계류유산이나 다른 시술이 필요할 때 그럴 때 배웠다가 임신 중지가 필요한 경우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하고, 이익이 필요하면 하고 이런 식으로 했었던 건데 그래서 사실 다른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용이 되었던 임신 초기에 할 수 있는 간단한 시술 방법이나 약조차 한국에서 사용이 되지 않고 있죠. 

셰어가 작년부터 청소년, 이주민, 난민 임신중지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의료비 지원을 하려고 시작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의료비 지원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한 사람의 삶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엮여 있고, 예를 들어 어떤 청소년은 부모님이  학대와 방임을 해서 그 집에서 나와서 친구와 살고 있는데 15살입니다. 15살에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혼자서 병원에 갔을 때 지금 임신 중지를 하려고 가도 부모님을 데려오라는 것이고 혼자서 자신의 주민번호를 말을 할 수 없어요. 생년월일 말고 주민번호 전체를 알지 못합니다. 신분을 증명할 수 없어서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을 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과정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청소년이 임신을 하게 된 과정이나 임신 중지 이후 삶에 대해서도 아무런 기반이 없는 거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출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거든요.

출산을 했을 경우 미혼모에 대한 지원이나 이런 것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있지만 1년 정도밖에 안 돼요. 1년 지원을 받으면 이후 삶은 알아서 살아야 합니다. 이게 다 맞물리는 거예요. 임신 전, 중지, 중지 후를 미혼모 지원이라도 임신 중지 후에 이 사람의 삶을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는데 이런 개념이 없다 보니까 지금 법, 정책을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모릅니다.

그러니까 자꾸 어떤 법의 형식만 가져오는 거죠. 독일에서는 몇 주까지 허용한다더라, 상담을 어떻게 한다더라, 프랑스는 어떻게 한다더라. 다른 나라 법을 그냥 형식만 들여와서 그대로 가져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지금 벌어지는 현실을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도 될 수 없어요. 그런 부분을 비범죄가 되거나 하더라도 법 인식에서 아무것도 현실을 알지 못하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유산유도제를 이용을 해서 스스로 임신 중지의 과정을 할 수 있는 그런 운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셀프 매니지드 어보션이라고 해서 SMA 약자로 부르는데요. 이제 비범죄화가 되고 병원을 좀 더 쉽게 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말을 했던 청소년과 같은 사례나 그 사회에서 계속 사회 경제적인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이주민, 난민의 경우는 병원에 갈 수 있는 돈이 없거나 직장을 다녀서 시간이 없다거나 다른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까, 혹은 지역적인 제약 때문에 병원을 갈수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만 의지를 하는 게 아닌 우리가 커뮤니티 차원에서, 마을 차원에서 혹은 시스젠더뿐만 아니라 임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 과정을 서로 도울 수 있는 과정으로 만들기 위해서 법이나 의료 기관, 정책적 자원 틀을 넘어 스스로 도울 수 있는 그런 임신 중지의 과정을 만들기 위해서 또 다른 방식의 운동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랑희

우리가 급 임신 중지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 영화에서도 보여 준 것처럼 여성의 일상, 몸을 통제하는 방식들은 제도, 법 바깥에서도 굉장히 촘촘하게, 하나의 어떤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연쇄고리 안에 놓여있는 문제로써는 다른 문제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영화에서 소녀들이 학교에 가는 문제나 옷을 입는 문제나 결혼을 하는 문제나 어디로 자유롭게 가는 문제든 이런 것들이 다 엮여서 일상을 혹은 생애 전반을 이렇게 뭐랄까요, 강요를 하거나 규제를 하는 것으로 보여 줬던 것처럼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서 임신과 출산의 문제가 한국에서도 다르지는 않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혹시 영화를 보시면서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았고, 멋졌어요, 잊을 수 없어요’ 라는 것들 같이 나눠 주실 분들이 계실까요? 손을 들고 같이 영화의 소감을 나눠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영화를 보시는 기분이 어떠셨나요? 저는 굉장히 에너지가 넘쳤는데 우리 이야기가 진지했나 봐요. (웃음) 열띤 에너지를 기대를 했는데 제가 너무 가라앉힌 게 아닌가 생각을 하는데 영화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눠 주실 분 계실까요? 손을 들어 주셔도 좋습니다.

네, 제가 가라앉힌 게 분명합니다. (웃음) 여기 올라온 오픈채팅방에 감상이 하나 있어요. ‘초반에 사라가 선거 운동을 할 때 남자들이 듣겠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는데, 온갖갖 과정을 겪은 뒤 마지막에는 부모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을 보면서 멈춰 있는 것 같아도 변화는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처럼 느껴져서 뭉클했습니다.’ 이런 감상을 남겨 주셨는데 제가 관객분들의 입을 다 다물게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혹시 같이 이야기를 나눠 주실 분이 계시다면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여 주셔도 괜찮습니다.

 

나영 

뭔가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이 보이는데.

 

랑희

제가 말문을 열지 못하게 한 것 같아요. 앞에 이야기가 너무 진지했나요? (웃음) 네, 손 들어 주신 분 계십니다.

 

관객

아까 설명해 주신 대로 동성애를 막기 위해서 오히려 성전환을 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좀 문화적으로 충격적이기도 했고, 논리적으도 충격적이기도 한 부분이었던 것 같고, 이게 25년에 공개가 되었던 영화라는 점에서도 놀랍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질문을 맨처음에 하고 싶었던 것은 ‘이게 도대체 몇 년도에 찍은 영화인가요?’ 이게 굉장히 궁금했고, 현재진행형인가도 굉장히 궁금했었는데 앞에서 설명해 주셔서 놀라웠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아직도 이런 문화적인 억압, 제도적인 억압에 의해서 여성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안 계셔서 조금 아쉬운 점도 있지만 사라라는 주인공이 25년 현재에 이어 내년에는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좀 궁금한 면이 있습니다.

 

랑희

네, 제가 자세히는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사라는 의원으로 임기를 다 마친 걸로 알고 있고요. 여전히 마을 주민들. 여성들과 함께 일상의 투쟁을 이어나가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더 보탤 이야기가 있을까요?

네, 임기를 잘 마쳤습니다! (웃음) 그리고 영화를 보면 그런 기대가 되지 않나요? ‘사라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여전히 마을 여성과 소녀들과 함께 계속 이 마을의 바위를 부수면서 살아갈 거다.’ 이런 기대가 저는 생기게 되는데 여전히 그런 거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더 이야기를 나눠 주실 분 있으실까요? 제가 손을 들라고 하니까 손을 들기 싫으신지 오픈채팅방에 남기셨어요. (웃음)

 

나영

수줍은 관객들이군요.

 

랑희

그런 거 같아요. 하나 소개를 하고 싶네요. ‘저는 사라의 어머니에게 마음이 많이 갔어요, 아들과 딸의 싸움에서 자초지종이 어찌 되었든 딸을 말리는, 말릴 수밖에 없는… 저희 엄마 생각도 나고, 사라 엄마가 사라 편을 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그리고 싸우기 싫다고 공동명의를 거부하는 아내도 마찬가지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고… 변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은 더 변화가 커지길 바랍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감정을 이입하는 그런 순간들, 그거는 내 삶에서 보여지는 어떤 면들과 닿을 때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이분께서는 우리 엄마 혹은 나의 모습과 겹쳐지는 그런 모습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 분의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멋진 영화 잘 봤습니다. 의원 선거날 사라를 지지하는 남성 청년들이 많아 보여서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구성원으로서 부러웠습니다.’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선거 결과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는 걸 보면 다수는 변화를 바라지만 권력을 가진 소수가 변화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러운 마음 저도 동감합니다. 혹시 나영님도 관련해서 나눠 주실까요?

 

나영

저는 사라의 집으로 왔던, 이혼을 했던 소녀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 소녀의 아버지가 굉장히 소극적이잖아요. 자기 뜻이 아니었다고 말을 하는데 그 장면도 저는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러니까 흔히 생각을 하기에는 그 집안의 남성들이 강제로 다 강요를 하고, 여성들은 서로 서로 안타까워하고 이럴 것 같지만, 사실 많은 부분이 그런 식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아요. 조혼이나 할례라든가 이런 것들이 계속 유지가 되고 있는 이유는 여성 억압적인 것에만 있지 않고, 영화에서도 나오겠지만 조혼을 하게 되는 가족의 경제 상황이 같이 맞물려 있는 거죠.

그리고 계속 그것이 서로 악순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의 갈등하는 모습, 소극적인 모습도 저는 인상적이었고, 영화에서 사라를 지지하는 남성들도 그런 사회적인 상황들을 함께 겪으면서 거기에서 어떤 지점에서 사라에게 정치적인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남성들이 스스로 위치가 취약하다고 하면서 젠더 갈등인 것처럼 몰아가는 그런 상황이 대비가 되어서 이야기를 해 주시니까 생각이 나네요.

그리고 아까 운전 이야기를 하신 거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운전을 하러 가지 못 하게 되어 있었던 나라가 최근까지 사우디아라비아였는데 사우디도 이미 10년 전에 허용이 되었는데 운전만이 아니라 일단 공적 장소에 나가는 거 자체가 여성들에게는 많이 금지가 되어 있었고, 어떤 것을 배우는 것이 일찍부터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운전을 못 하게 되는 것은 운전 자체를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배움을 계속 금지를 당하고 공적인 자리에 여성끼리 가는 것을 금지당하기 때문에 맞물려서 그렇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랑희

관객 여러분께서 드디어 오픈채팅방에,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남겨 주시고 있어요. 늘 그렇죠. (웃음) 그래서 영화 끝난 뒤라도 이야기를 나눠 주시는 거 좋고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올라왔어요. 나영 님 못 보셨으니까 말씀을 드릴게요. ‘공원은 결국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졌을까요?’

 

나영

동그라미라고 생각해요. 사라가 이겼을 것이다.

 

관객들

동그라미요.

랑희

다들 동그라미로 되었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시는데 어떤 분이 답글을 달아주셨어요. ‘네모로 지어 놓은 거 사라가 부수어서 동그라미로 짓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이제서야 대화방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 어쩌면 좋아요? 이제 마무리를 하고 폐막식도 해야 하는데 지금 뒤늦게라도 오픈채팅방에 오신 분들이 서로 영화의 이야기를 남겨 주시면 아마 영화 이후에도 같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분들이 나눌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를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데요. 우리가 잊지 못하는 소녀들의 표정들 있었잖아요. 교실에 우리 마을의 첫 여성 의원 사라가 왔어요. 그래서 선망과 동경의 표정들로 바라보고 사라가 나만 특별한 게 아니다, 우리 모두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공부를 하고 미래를 꿈을 꾸자고 말했죠.

결혼을 일찍 하지 말자고 약속을 받았는데 많은 여학생들이 결국 조혼을 했어요. 그리고 사라가 시련을 겪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내가 너무 큰 변화를 바랬던 것인가’라는 슬픈 마음을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가 우리가 기대를 했던 것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슬프지 않는 건 사라와 함께 미래를 꿈꾸었던, 사라의 모습을 보았던 그 소녀들이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기억을 잊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인거 같아요. 그때 품었던 꿈을 간직하고 사라와 함께 계속 바위를 부수는 일들을 꿈을 꾸고 도전을 하면서 살지 않을까라는 것들. 영화를 보면서 기대를 했는데요, 사라의 투쟁도 이어질 것 같은 기대.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마지막으로 함께 같이 나눠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영

사라가 학교에 가서 학생들한테 자기 옷 입은 거 보여 주잖아요. 그리고 책상에 발을 턱! 올리잖아요. 그것도 충격적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거 보고 떠올랐던 장면이 있는데 가수 이상은 씨가 저의 중학교 선배예요. 그런데 이상은 씨가 한 번은 중학교 때 정말 아무것도 없는 운동장에 공연을 하러 온 적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들 올라가는 단상 있잖아요. 단상에 올라가서 이상은 씨가 걸터 앉아서 다리를 흔들흔들하면서 너무 자유로운 모습으로 노래를 불렀거든요. 그 장면이 사실 제 인생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친 장면 중 하나예요. 저도 주변에 어머니나 동네 작은 골목길에 살고 있었던 많은 분들의 삶이 정말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어머니도 그렇고, 이웃집 할머니, 옆집 아주머니 모두 그런 굉장히 가부장적 억압 속에 이혼을 하고 고생을 시키고 떠났던 남편이 병 들어서 돌아오면 수발하고 그런 모습만 보다가 이상은 씨 모습을 봤는데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아마 영화에서 사라를 만난 소녀들이 평생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갈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그런 소녀들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고, 또 하나 하고 싶은 말은 우리가 이란 사회는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이고 아직 해방되지 않은 사회라고 생각을 하고 말기 쉬운데요.

사실 이란 사회를 계속해서 고립을 시키는 국제적인 힘이 또 작동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계속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 사회가 더 폐쇄적이고 고립이 되고 그런 외부의 어떤 공격에 맞서서 자신들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계속 그런 정치를 정당화하고 있는 과정이 여성들의 억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은 이란 여성들 너무 힘들고 억압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서 머물지 않고 함께 해방을 생각을 할 수 있고,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사라가 싸우고 있는 그리고 사라와 함께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이 되고, 함께 투쟁을 할 수 있는 이란 여성들과 이란 사회 해방을 위해 함께 관심을 계속 가질 수 있는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돌아가 보면 좋겠습니다.

(박수)

 

랑희

앞으로 이란 뉴스 관심있게 볼 것 같지 않아요? 오늘의 이란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오늘 계기로 들여다볼 것 같고, 먼 곳이지만 여기에서 같이 응원을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마지막 준비된 영화까지 함께하셨는데요. 막판에 이야기가 오픈채팅방에 올라오고 제가 다 같이 나누지 못해서 아쉽지만 우리가 같이 이렇게 흥겹게 또 마무리를 할 수 있어서 기쁘고요.

30회 인천인권영화제 준비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극장에 가지 않는 이 시대에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뭔가?’ 극장에서 볼 때 느껴지는 같이 보는 우리, 서로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같이 보게 되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에너지, 교감, 교류 이런 것들은 여전히 중요한 것 같아요. 오늘 그 시간 이곳에서 함께 만들어 주시는 관객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화의 시간 끝나고 폐막식이 이어질 테니까 끝까지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