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서다, 서른 번째의 봄 💬

| 서른 번째 겨울이 만나는 봄 |

곁에 서다
Stand With

감독 : 심상범
제작연도 : 2017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50분

상영일시 : 2025.12.4.(목) 오후 7:4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 서른 번째 겨울이 만나는 봄 |

서른 번째의 봄
Voices of the Thirtieth Spring

감독 : 심상범
제작연도 : 2025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26분

상영일시 : 2025.12.4.(목) 오후 7:4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기획의도

기차길옆작은학교 정기공연이 서른 번째를 맞았다. 공부방이 문을 연지는 38년이 되었다. 긴 시간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인정하고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서있는건 단순히 굳은 다짐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정기공연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이모, 삼촌들은 서로의 곁에서 서로의 다른 이야기, 다른 모습을 살핀다. 서로의 악기소리를 듣고 맞추듯 서로를 살피고 맞춰가는 과정속에서 곁을 확인하고 이어간다. 영화의 제목이 ‘곁을 지킨다’가 아니라 ‘곁에 서다’인 이유는 이모, 삼촌이 아이들 곁에 서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이들도 이모, 삼촌의 곁에서 힘을 주기 때문인 듯 하다. 서로의 곁을 확인하는 시간을 멈추지 않고 38년을 이어오며 서른 번의 공연을 마친 과정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30년, 곁에 서다

 

대화의 시간 기록 

심상범 감독

김재양 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이모

박하늘 기차길옆작은학교 삼촌

신석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김보석 한국농인LGBT+ (수어통역)

이종환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문자통역)

신석

안녕하세요? 네, 저는 <곁에서다>, <서른번째 봄>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에 사회를 맡은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신석이라고 합니다.

[박수]

오늘 대화의 시간에 누구나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수어통역에는 한국농인LGBT+ 보석님, 문자통역에는 AUD사회적협동조합 이종환 님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게스트 착석]

네, 세 분 간단한 소개 듣고 대화의 시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박하늘

안녕하세요? 기차길옆작은학교 졸업하고 삼촌을 하고 있는 박하늘입니다.

김재양

안녕하세요? 기차길옆작은학교에서 상근하고 있는 김재양입니다.

심상범

네, 저는 기차길옆작은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심상범입니다.

신석

먼저 제가 준비해 온 질문이 있어서요. 질문부터 말씀을 드리면서 시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떨리네요. (웃음) 두 작품 중 첫작품은 2017년 먼저 만들어진 작품이고 <서른번째 봄>은 올해 만들어진 작품인데 같이 보니까 제가 옆에 앉아서 이모, 삼촌들과 아이들이 같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듣는 시간 같았어요. 관객분들도 그런 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세 분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함께 오신 분들과 같이 보시면서 또 관객들과 보면서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심상범

저는 두 다큐 영상을 굉장히 많이 본 사람인데, 하나는 17년에 만들고 하나는 25년. 8년 정도 간격이 있습니다. 17년에 있었던 아이들 생각도 나고, 올해 지금 다니고 있는 아이들 생각도 나는데 2017년, 25년 사이 있었던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여러 가지 일들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안 좋은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일. 그리고 그 일들을 함께 겪었던 이모, 삼촌들,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고 코로나를 거치고 공부방 내에서 여러 가지 일을 거치면서 저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겪었던 시간들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서 새롭게 봤던 것 같습니다.

-김재양: 네, 저도 여러 번 봤던 작품인데요. 오늘 보면서 또 오늘 보는 순간에는 저와 이 작품. 딱 둘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보는데 또 내가 이 순간에 함께했던 시간들, 사람들, 그런 것들이 켜켜이 ‘나한테 쌓여 있구나’ 그런 게 다시 한번 이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되게 좀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더 벅차게 느껴지더라고요.

-박하늘: 저는 일단 처음에는 저의 모습이 드러나는 게 쑥스러웠는데 점점 커 가면서 어렸을 때 공부방에서 느꼈던 힘이나 경험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그리워하는 것도 있고, 좋아했던 것들도 있는데 영상을 보면서 ‘옛날에 내가 저랬고 공부방에서 저런 활동을 했었구나’ 다시 한번 기억이 났습니다. 이모, 삼촌들이 어떻게 공부방 운영을 하고 어떤 걸 주고 싶어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면서 뭐랄까? 힘이 나기도 하는데 서럽기도 하고 좀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신석

서러운 건 뭐였는지 (웃음) 혹시 좀 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박하늘

어떻게 보면 저도 그렇고, 이제 아이들을 위해 그만큼의 힘을 쓰고 노력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늘 그에 대해서 감사하게 여기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그 정도의 애정과 그리고 지원과 좀 여러 가지 사용을 제대로 못 해 줄 것 같은데 제가 그걸 그만큼 받아왔다고 생각을 하니까 고생을 하신 것 같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도 있고 (웃음) 힘드셨겠구나. 울컥?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신석

네, 30년의 이모, 삼촌들의 마음을 잘 이해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요. 그러면 감독님도 삼촌으로 계속 활동을 하시는 거잖아요? 30년 동안 삼촌으로 활동을 하셨는데 처음에 활동을 시작하실 때는 어떤 마음으로 시작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곁에서다>에서 큰삼촌이 말씀을 하시잖아요. ‘내가 결국 곁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일이었다.’ 감독님이 지내오시면서 계속 마음에 남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변하는 마음들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것들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심상범

제가 신석님한테 질문을 받고 생각을 했는데 처음 공부방에 갔던 게 3월 초였는데 그때 여기 앞에 있는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인데 삼촌은 어떻게 왔냐? 저한테 물어봤는데 저는 그때 오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잠시 어느 곳인가 구경을 삼아서 왔는데 그때 재양 이모가 저한테 어떻게 왔냐, 내일도 오냐고 해서 굉장히 고민거리를 안고 집에 갔던 기억이 났어요. 어린시절 저도 만석동 판자집처럼 2층집이 있고, 아이들 경우 결핍, 돌봄이 없는 형태이기 때문에 제가 그때 24살이었는데 한참 이제 자신감도 많고 제가 막 되게 잘난 줄 알고 살았는데 제 안으로는 속으로는 되게 약하고 비겁한 마음이 있었어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결핍된 모습을 보면서 (저의) 어린시절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재양이도 그렇고, 오늘 보면서 이 아이들이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어떤 이론이나 그런 것보다 같이 이 아이들과 하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신석

네, 3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어쨌든 긴 시간을 함께 하려고 하면 대화가 잘 되어야 하잖아요. 꼭 항상 이렇게 웃으면서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그런데 아까 말씀을 하신 것처럼 코로나 지나면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고민이라든가 갈등이라든가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라든가 어떻게 소통을 하셨는지, 이런 소통의 방식들이 어땠길래 김재양 님은 영상에서 말씀하신것 처럼 온전하게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김재양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고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굉장히 다양한 일들이 극적으로도 생기고 속상하게도 생기고 다양하게 생기는데, 결국 이걸 함께 풀어가는 방식은 서로에 대한 진부하다고 할까요? 그건 사랑인 것 같아요. 우리가 같이 하면서 온전히 당신에게 쏟는 관심, 사랑. 이 마음 하나로 그 아픈 이야기라도 즐거운 이야기라도 그 어떤 이야기여도 함께 나눌 수 있고 때로는 너무 아프죠.

너무 아픈데 그런데 그게 나만 아픈게 아니라 같이 아프고, 같이 즐겁고, 그러면서 같이 또 한 고비를 넘고 이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온전한 내가 되고 나에게는 온전한 내 편이 있구나. 그런 것도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시간들이 저한테 어떤 내가 여기에서 얼마 동안 이걸 이렇게 할 거야. 이렇게 정해 놓고 저는 일을 한 적이 없거든요. 공부방에 오면서.

그런데 처음에 저한테 공부방에서 같이 일을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주셨던 이제 큰이모와 다른 이모 삼촌들이 계셨는데 그 손을 잡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냥 매순간들이 행복하고, 즐겁고, 그 순간들을 반복하면서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웃음) 질문에 제대로 답을 했는지 잘. 여기 앞에 서니까 굉장히 떨리네요. (웃음)

신석

네, 저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떨립니다. (웃음) 살짝 멍해졌는데요. 30년 간 두분이 생각을 하시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 떨리는 바람에 다 말씀을 못 하신 것 같으니까 더 이야기를 나누면서 꺼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의견이 있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작품에서 훌쩍 성장한 주인공을 보고 왠지 제가 그 시간에 그간시간을 지켜본 것처럼 반갑고 흐뭇했어요, 제 삶 속에서 내 곁에 서 준 사람들과 내가 곁에 서기로 결심한 순간들도 떠올라 뭉클한 부분도 많았고요. 영화 잘 보았습니다.’

여기 앉아 있으니까 같이 오신 분들 중에 영화에서 봤던 분들의 얼굴들이 보이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웃음)

다음 의견으로 ‘<곁에서다>는 제가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형식을 넘어 카메라에 대한 출연자들의 깊은 신뢰가 느껴지는 따뜻함이 오랜만이라서요. 제가 궁금한 건 오래된 아카이브가 나오는 데도 그것도 감독님이 기록을 하셨는지 정말 신기하게 느껴져서 여쭙습니다. 심상범 감독님에게 기록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이 제가 준비한 질문에도 있어 가지고 (웃음) 준비해 오셨을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심상범

예전 영상들은 제가 촬영을 한 건 아니고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 영상 집단이 있는데 거기에서 찍은 것들과 그리고 당시 서울영상집단이라고 하는, 당시 제 기억으로는 아마 대학생들이었던 것 같은데 그분들하고 그리고 공부방에서 그때 카메라가 없어서 후배 중의 한 명이 가져왔던 것 같아요. 촬영을 했고, 저희들이 이런 걸 뭐 하러 찍냐? (웃음) 그런 기억도 나고요.

나중에 카메라를 우연히 가지게 되어서 2000, 2002년부터 카메라를 찍었는데 그때 보니까 공부방 안에 테이프가 존재를 하더라고요. 찍고 주고 갔던 테이프도 있었고요. 그때 6mm 테이프로 찍었는데 그게 4천 원이거든요. 그걸 모으면 엄청난 양이었을 텐데 4천 원이 좀 비싸 가지고 찍고 찍고 또 찍고 그래서 찍었던 것들이 하나도 남지 않아서 아쉬웠고, 기록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하자는 건 아니지만 제가 카메라를 가지고 사람들을 볼 때 어떤 시선이잖아요? 카메라가 애정을 가지고 사람을 찍고 장면을 찍는 건데 저의 마음이나 애정이 가기 때문에 기록을 하는 것보다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컸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기록물로 저장이 되어 있었고, 지금도 저의 컴퓨터에는 예전에 찍은 장면이 많은데 가끔 저도 보고, 소중한 기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신석

영상을 보면 어떤 사람이 인터뷰에서 말을 하면 아까 말씀을 하신 것처럼 그 사람의 과거 모습도 나오지만 <서른번째 봄>의 경우 마지막 한 사람 한 사람 얼굴, 이름이 나오는데 엄청 애정이 많이 있고, 영화를 만드신 분과 작업을 함께한 분들이 서로에 대한 애정이 많다고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된 것 같습니다.

다음에 이제 혹시 또 뭔가. 그러면 제가 준비한 질문을 좀 더 해도 될까요? 네, 하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다음으로 박하늘 님한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학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여기 영화에서 보면 처음에 이게 무슨 공부방이냐, 애들이 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런 놀이, 활동이나 이런 걸 하시면서 그게 자신한테 힘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영화 초반에요. 이게 또 공부방에서 있을 때 내가 느끼는 것과 그리고 지금은 만나는 사람이 넓어졌잖아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아, 내가 저 사람과 다르구나, 다른 경험을 했구나, 이게 나한테 힘이구나’ 느끼실 것 같은데 언제 그런 걸 느끼는지 경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하늘

생각보다 느끼는 건 굉장히 많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올라가면서 제가 공부방에서 배운 건 이제 다같이 함께하고, 이제 평화, 존중, 차별이 없는 세상이나 그런 것들을 배워 오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주변에 친구들이나 사람들은 그냥 그거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없더라고요.

자기가 생각을 하는 거로 그냥 마음에 안 들면 안 드는 거고, 이게 싫으면은 거로 판단을 하고, 그래서 사실 많은 갈등이 있지만 (웃음) 말이 잘 안 나오네요. 네, 밖에 나가서 겪는 거와 공부방에서 겪는 게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공부방에서 같이 하면서 배워 오고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 계속 간직을 하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박수]

신석

제가 긴장을 많이 해 가지고요. 게스트분들도 너무 긴장을 하신 것 같아서 죄송스럽습니다. (웃음) 다시 한번 이제 요청을 드리자면 어!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마침 제가 드리려고 했던 질문과 비슷한 질문을 또 질문을 해 주셨어요.

만수동 친구분께서 ‘영화 잘 봤습니다. 저희 어릴적 생각도 잠시 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박하늘 님에게 공부방 삼촌이 된 결심과 과정을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궁금했던 게 졸업을 하면 다 삼촌이 되는 건지? 아니면 삼촌이 되는 과정이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거든요.

박하늘

저도 삼촌이 되겠다는 결심이라는 걸 딱히 한 적은 없고요. 그리고 삼촌이 되기에 과정도 사실 잘 몰라요. 제가 삼촌인지도 잘 모르겠고 (웃음) 제가 받아왔던 것들이니까 이제 가끔씩 초등부 내려가서 봐야 하면 보고, 어디 가야 하면 같이 가고, 단순하게 제가 할 수 있는 거니까 아이들한테 받았던 만큼은 사랑을 다 못 줘요. (웃음) 그런데 이모, 삼촌들이 해 왔던 것처럼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옆에 있어 주는 건 해 줄 수 있으니까 제가 아직 삼촌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심상범

저희들의 경우 공부방에서 자라지 않고 커서 왔고, 하늘이의 경우 공부방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모, 삼촌들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성격도 다르고, 관심 분야도 다르다 보니까 아이들에게 쏟는 여러 가지 애정, 관심이나 다를 수 있는데요. 저는 이제 공부방에서 자라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어른으로써 만나고 있지만 하늘이는 어렸을 때부터 만났고 초등부를 다니면서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게 친구들을 대하고 아이들의 집, 가정, 학교에서 일들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아이들을 만나서 주는 어떤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주고, 깊이 있게 만날수 있는 것 같아요. 저보다 훨씬 더. 되게 지금 쑥스러워서 말을 못 하고 있거든요.

신석

역시 30년의 연륜이 느껴지는 발언이었습니다. 궁금했던 게 공부방이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아니라 이모, 삼촌이라고 부르게 된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왜 그렇게 부르시는지 궁금했거든요.

심상범

아마도 호칭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예전에 거기 나오는 큰이모.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20대에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에게 부모 역할을 하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선생님과 부모 사이의 아마 어떤 중간의 어디로서 이모, 삼촌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신석

저희가 질문이 올라왔는데 잠시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보노보노님께서 ‘동아리별 오디션은 계속 이어지고 있나요? 노래패를 하고 싶은 친구가 계속 떨어지면 오디션에 해결방법이 있을까요?’ 김재양 님께서 답을 못 하신 부분을 여기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김재양

저희가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까지 매년 공연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이제 아이들과 오디션을 보고, 패를 나누고, 가을, 겨울, 초봄까지 함께 연습을 하고 벚꽃이 피는 완연한 봄에 공연을 올리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쭉 해 왔는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저희가 공부방 문을 열고 처음으로 정기 공연을 못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충격이었는데 그러니까 코로나 3년을 보내고 다시 이제 코로나 이후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이 코로나 전에 했던 공연의 방식과 틀과는 좀 다른 형태의 공연을 이제 올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게 뒤의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이제는 초등부가 함께 다함께 공연을 꾸리고, 중등부가 다함께 공연을 꾸리고, 고등부가 함께 공연을 꾸리는 방식으로 약간 공연을 준비를 하는 틀의 형식이 조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말씀을 하신 것처럼 노래패를 하고 싶은데 이제 못 하는 경우도 있고, 인형극을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경우도 있고, 자기가 생각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못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죠. 중요한 건 내가 꼭 이걸 하고 싶어서 나는 이걸 할 거야. 이렇게 고집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해서도 너는 충분히 잘하는 게 있고, 우리가 함께 이것을 준비해 나가면서 이렇게 멋지게 완성을 할 수 있고, 그런 걸 배우고, 나누면서 그거를 몸으로 가을, 겨울, 봄의 시간들을 함께하면서 ‘내가 이거를 원했지만 이것도 좋구나, 나는 이걸 할 수 있구나.’ 그걸 몸으로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신석

갑자기 질문이 마구 올라오거든요. 저희가 시간이 아직 남긴 했는데 다 이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갈 수도 있다. (웃음) 생각을 해 주시고 그렇다고 지금 작성을 하시는 분이 그만두셨는지 그만두지는 마시고요. 작성해 주셔도 됩니다. (웃음) 질문 순서를 바꿔서 전달을 드리자면요.

안용진 님이 질문을 하셨어요. ‘그걸 가르치려면 이모, 삼촌도 연습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90, 2000, 2025년 아이들이 접하는 문화가 다를 것 같은데 차이를 느끼는지 새롭게 알게 된 아이들의 문화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심상범

한 마디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 같아요. 90,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대부분 아날로그였는데 디지털로 넘어오고 핸드폰의 시대이다 보니까 지금이 아이들이 접하는 문화, 예술의 경우도 굉장히 짧고, 가볍고 그런 느낌을 받고요. 예전보다.

예술이라는 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연하게 해 주기 때문에 굉장히 공부방에서는 중요한 일이고, 작업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각자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이런 것들을 찾아서 아이들과 만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이모, 삼촌들도 많이 성장을 하고,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 이렇게 예술도 서로 발전을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석

그럼 반대로 박하늘 님께서는 어떻게 느끼시는지? ‘이모, 삼촌들이 좀 느리네?’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뭔가 역으로 다르게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하늘

문화요? 그렇죠, 제가 보고 다루는 문화와 이모, 삼촌들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생각을 해 오시는 문화랑 다를 수도 있는데 그런데 점점 이모, 삼촌들이 맞춰 주시는 것 같아요. 이제 바뀌어 가는 시대나 아이들의 변화나 그거에 맞춰서 아이들에게 잘 해 주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고, 조금 더 젊은 이모, 삼촌들이 알려 주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의 문화. 애들이 왜 그러고, 무엇을 보았길래 그런 행동을 할까? 그런 걸 조금 더 젊은 층의 이모, 삼촌들이 이거 같다고 이야기를 하면 이제 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고쳐나가는 것 같습니다.

신석

웃으시는 분들이 나잇대와 상관이 없이 웃으니까 기분이 좋네요. (웃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준비한 질문과 맞닿는 질문이 딱 맞닿지는 않지만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모, 삼촌들이 처음 공부방을 시작하면서 아이들 곁에 사는 삶을 선택했다고 말을 하세요. 개인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고 하나의 사명을 위해 삶의 초점을 분명히 하는 건데 30년 후 세월 동안 개인의 삶에서 다양한 사건이 오고 갔겠지요, 후회와 힘든 부분은 없었나요? 조율을 어떻게 하셨을까 궁금합니다.’ 이게 제가 질문을 드렸던 건 영화에서 보셨다시피 <곁에서다>에서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들어보면 먼저 이렇게 나를 우리를 위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고, 친구분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데려가시고 그러면서 뭔가 다른 분들의 곁을 사람의 곁을 지키려고 하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모습들을 뭔가 보이셨는데 그런 매 순간 그런 결심을 결정하고 실천하고 이렇게 하는 게 저한테는 좀 굉장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쉽지 않다고 저는 느껴지거든요. 어떻게 그렇게 살아오셨는지 물론 아까도 말씀을 하셨는데 좀 더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김재양

아까 하신. 그러니까 좀 전 말씀 중에 귀에 딱 들어오는 게 ‘포기’라는 단어거든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무엇인가 포기를 했다? 내가 이거 때문에 이걸 못 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진짜 그렇게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오히려 저는 거꾸로 생각을 할 때가 더 많아요. 생각보다 정말 몸으로 배우고 느끼는 때가 더 많은데 ‘내가 이거를 해서 너무 즐거워. 내가 이걸 해서 이 사람들이 내 옆에 있어서 너무 행복해. 이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게 너무 좋아, 다음에 또 뭐 하지?’ 이런 것들이 더 컸어요.

그것들이 오히려 제 삶을 더 풍성하고 굉장히 크게 만들고, 또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의 학부모님들께서 가끔 이제 저희가 뭘 했어요. 이렇게 연락을 하면 “선생님, 너무 힘드셔서 어떡해요? 선생님, 고생 많으세요”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진짜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고, 그리고 제가 이거를 하면서 제가 제 삶에서 나의 삶이 더 풍요롭고, 풍성하고 그렇다고 느끼기 때문에 계속 해서 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아니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어떤 직장을 가지고 그 안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을 하고 그런 삶을 살았다면 나 김재영이라는 사람의 삶은 어땠을까? 오히려 그 삶을 살았을 때 내가 지금처럼 이렇게 풍요롭게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 대답은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이 오히려 나를 더 풍요롭고 단단하고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2002년부터 공부방에서 공부방 3학년 때 큰이모를 만났고, 이제 거기에서 초등, 중등, 고등 졸업을 하고 바로 직장생활을 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다가 같이 공부방을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2002년에 받아서 하고 싶다고 선택하고 나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건데 이 지금까지 오는 시간이 정말 약간 감독님께서 말씀을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는 행복한 시간도 있었고, 힘든 시간도 있었고, 다양한 많은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곁에 항상 누군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있었고, 이모, 삼촌들이 있었고, 함께하는 우리가 있었고, 그 시간들이 나를 받쳐 주었기 때문에 정말 이렇게 시간이 1년 지났네, 2년 지났네. 이런 계산을 못 해 보고, 그냥 여기까지 이렇게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제가 머리로 배우고, 뭔가 글을 통해서 배운 게 아니라 몸, 마음으로 배운 거기 때문에 곁에 선다는 것이 저에게도 자연스럽게 나와서 누군가에게 “계속 같이 하자, 같이 해 줘서 고마워, 우리 이렇게 하자.” 이렇게 곁에 있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웃음)

[박수]

신석

네, 소감을 남겨 주신 게 있어서요. 읽어드리겠습니다. ‘보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저도 잠깐 그 속에서 아이로 지내 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님에게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이거 굉장히 대답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요. 공부방을 다니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물어보셨거든요.

박하늘

다 행복했는데 제가 계속 공부방을 생활을 하고 지내오면서 가끔씩 생각이 나는 건 원래 제가 제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잘 안 하는데 제일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제 이야기를 꺼내고 나니까 이모, 삼촌들이 저를 좀 더 잘 이해를 해 주는 과정도 생기는 것 같고, 그에 대한 신뢰도 생기는 것 같고,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함께해 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저는 공부방에서 매 순간 함께하던 순간이 행복합니다.

신석

네, 감사합니다. 저희가 시간이 이제 거의 다 되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질문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 세 분이 길게 말씀을 해 주셔도 되는데요. 감독님께서는 지금 이제 제가 알기로는 화수동 마을 기록을 지금 하고 계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뭔가 차기작을 포함해서 기록 활동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앞으로는 어떤 것들이 이어질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두분도 앞으로 어떻게 뭔가 계획이 있으시다면 좀 나눠 주시면 좋을 것 같고, 그리고 관객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질문이 들어오지 않아서 혹은 (웃음) 뭔가 이것 만큼은 내가 이야기를 하고 끝내야 되겠다는 전달을 하고 싶다는 말씀이 있다면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심상범

저는 <곁에서다>가 2017년에 만들어졌는데 그거는 다큐멘터리보다 30년이 되면서 공연할 때 기차길옆작은학교를 관심을 가져주시면 관객들 대상으로 만든 영상이라서 지금 87년에 시작을 했으니까 지금 몇 년이죠? 찍었던 기록들 화면들 영상들을 모아서 제 생각으로는 40년 정도 되었을 때 기차길옆작은학교. 당시에 아까 젊은 시절 큰이모, 큰삼촌이 나오지만 20대에 만났던 사람들이 다 60이 넘고, 환갑이 되어가기 때문에 죽기 전에 한번 (웃음) 기차길옆작은학교가 있었고, 이런 활동을 했었고, 이런 갈등, 행복,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들을 제가 능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튼 그거는 남겨 보고 싶고요.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인천인권영화제가 30년 되었잖아요. 영화제를 30년을 지역에서 해 온다는 건 굉장히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들리는 이야기로 조금은 아는데 너무 힘든 일을 해 왔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 공부방도 그렇고 인천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해 왔던 여러 곳들이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를 하겠지만 계속 자기의 중심을 가지고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인권영화제도 계속 내년에 또 하면서 40, 50년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박수]

김재양

저는 기차길옆작은학교의 김재양 이모이고요.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 저는 김재양 이모입니다. 공부방을 지키면서 아이들을 계속 만나갈 계획이고요. 지금 영상에서도 그렇고,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특별하고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을 해요. 그게 기차길옆작은학교를 통해서 만난 이모, 삼촌이 있었고, 아이들이 있었고, 그게 저를 되게 특별한 삶을 살게 해 줬는데 앞으로도 저의 그 특별한 시간들을 계속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요.

굉장히 단절된 세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그 세상 속에서 우리가 손잡을 수 있는 사람. 어깨를 기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 큰 선물을 안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박수]

박하늘

앞으로의 저의 계획은요. 일단 열심히 대학생활을 해야 하고요. 그리고 이모, 삼촌들처럼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들 곁에 서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아이들이나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저는 지금까지 계속 함께해 온 이모, 삼촌들 곁에 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계속 뭔가 모르는 게 있으면 같이 배워 주고, 더 힘이 되어 주고 제가 받아 온 힘을 서로 공유를 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박수]

신석

세 분 덕분에 오랜 시간 곁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영화관이 10시에 닫아야 해요. 저희가 대화의 시간은 여기까지 마무리를 하고, 조심히 집에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혹시 아직 그래도 시간이 좀 있으니까요. 같이 오신 분들한테 한 마디씩 하고 싶은 말씀 혹시 없으신지요? 갑자기 그 생각이 드네요. 없으세요? 너무 많이 하셔서. (웃음) 박하늘 님 혹시 있으세요? 없으세요? 사랑한다고 이렇게. (웃음) 마이크를 켜셔서 제가.

심상범

일요일 11시 반에 기차길옆작은학교 중등부들이 만든 단편 영화가 있습니다. 상영을 하는데 그때도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수]

신석

오늘 대화의 시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앞에서 이야기를 해 주신 세 분과 그리고 통역을 함께해 주신 두 분에게 박수를 치면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