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엄의 시간 |
곁 프로젝트: With you 1029
곁 프로젝트: With you 1029
감독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미디어팀
제작연도 : 2023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자막해설
상영시간 : 16분
상영일시 : 2023.11.19(일) 오후 4:5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3관
기획의도
이태원역 1번 출구에 가득한 포스트잇에는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가족, 생존자, 구조자, 떠난이가 ‘나’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그렇게 떠나보내서 미안하다는 동시대의 수많은 사람들… 포스트잇에 몇 자 글을 적는 것은 쉽고 간단한 행위일 수 있지만 그 쉬운 행위에 무겁고, 따뜻한 마음을 담는 사람들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추모와 애도의 과정이기도 하고, 참사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 또한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관객들을 비롯한 참여자 모두가 포스트잇 메세지 낭독을 통해 함께 애도하고, 추모하고, 치유하고, 회복해 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대화의 시간 기록
박이현 문화연대 활동가
권은비 미술가
센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수진 한국농인LGBT+(수어통역)
김규남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문자통역)
센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센이라고 합니다.
영화 어떻게 보셨나요? 여러 가지 마음들, 통해 있는 마음들로 공감하면서 보셨을거 같은데요. 그런 이야기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먼저 이야기 나눠주실 분들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태원역 1번출구 추모메세지 기록보존작업을 함께 해오신 박이현 문화연대 활동가입니다.
박이현
안녕하세요?
센
그리고 이태원역 1번출구를 기억과 안전의 길로, 추모의 공간으로 만들어 주신 권은비 작가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실 분들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옆에 계신 수어통역은 한국농인 LGBT 플러스 수진 님이십니다. 그리고 문자통역은 저쪽에 계속 띄워주시고 계신 문자통역은 AUD 사회적 협동조합의 김규남 님이 함께해주시겠습니다.
오늘 진행은 먼저 두 분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요. 그다음에 모든 관객분들과 함께 낭독 보신 것처럼 함께 추모 메세지를 낭독해볼 예정입니다. 입장하실 때 받으신 QR 코드를 통해서 오픈채팅방에 들어가실 수 있는데요. 그 방에 같이 읽으실 메세지 공유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곳에 남기고 싶은 메세지 남겨주시면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속에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서 쉽게 떨어진 종이에 무거운 마음을 적고 돌아갔을 사람들이란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는데요. 이태원 참사의 경우 희생자의 가족분들조차 혐오와 낙인 같은 것들 때문에 나서기가 힘드셨을 텐데요. 그래서 어렵게 남긴 포스트잇 메세지가 남다른 의미를 남긴 경우가 많았던 거 같습니다.
곁 프로젝트는 생존자, 구조자들의 곁이 되어야겠다 이런 의미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권리위원회에서 함께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래서 1주기가 되면서 그런 이야기들이 조금 더 많이 이태원 1번 출구에 포스트 잇를 통해 남겨졌던 거 같습니다. 그것들을 수거하고 정리하는 활동가, 그 과정을 기록한 영상으로 낭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로 그 공간을 꾸미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먼저 박이현 활동가님께 여쭤볼게요. 포스트잇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과정들을 쭉함께 진행해주셨는데요. 어떻게 진행을 하시게 되셨고 그리고 하시면서 들었던 여러 가지 고민이나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이현
참사가 있고, 지역 주민이나 활동가들이 1번 출구에 수많은 조화와 메시지를 정리하고 있었어요. 그 이후에 11일부터 이태원 기억 담기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을 모집해서 매달 두 회 정도씩 하고 있어요. 참여하시는 분 중에는 대학생분도 있고, 시민도 있고, 감독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를 하고 있고요. 괴록 보존 활동은 추모 메세지를 수거하고, 종이다 보니까 야외에 있으면 펄럭거려 날아갈 수 있고 한편으로 그 공간에 메세지 가득 차서 새로운 메세지가 붙을 수 없을 정도였어요. 새로운 메세지를 붙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도 했었습니다.
이렇게 수거한 것들을 A4용지에 잘 보존할 수 있게, 기존에 붙어있는 먼지나 테이프들 제거하고, 중성지에다가 최소한의 테이프를 활용하고 보존하는 활동, 그것을 분류하는 활동을 진행해왔고요. 앞으로 이것들을 디지털화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눈여겨봤던 것들은 저는 영상에서 잠깐 나오는데 주연 씨가 슬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고맙기도 하지만 죄송스럽기도 해가지고 저희가 이제 먼저 음료수를 사거나 하는데 웃어주시고 음료수 하나씩 더 챙겨주시면서, 집기들을 사용할 수 있게 빌려주시고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셨던 (편의점) 사장님이 기억이 나고요.
센
편의점 사장님께서는 아까 영상에서 보셨을 텐데 수거하는 작업할 때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뭐 하러 갈 때마다 음료수를 하나라도 쥐어주시고 필요한 거 없냐고, 도구를 갖다주시고, 따뜻한 마음이 들었던 거 같습니다. 아까 영상의 끝 부분이 약간 잘리는 거죠? 아닌가요? 그 마지막 부분에 담긴 내용은 10월 그날 28일이었죠? 토요일 날 할로윈 데이를 앞두고 1주기를 어떻게 추모할까 고민하다가, 프로젝트를 비롯해서 활동가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런 마음을 담기도 하고, 또 생존자분들이나 이렇게 계속 이태원에 살아가고 그 공간에 더 뭔가를 해나갔던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같이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이러한 일환으로 할로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왔던 사람들과 추모 리본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분장도 하고 시간을 보냈던 거 같습니다. 공간은 추모의 공간으로서 의미를 고민했던 과정들이 있었는데요. 작가님 이번에 1주기를 앞두고 추모 공간을 새롭게 조성을 해줬었는데요. 예전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독일이나 해외 여러 다른 국가에서는 희생자 추모 공간 같은 것이 우리나라에 많이 부족한 상황인데 그런 것들 어떻게 조성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말씀해주신 거 같은데 외국에 어떤 건물이 무너진 공간에 그 벽의 한켠을 허물지 않고 세워둔다거나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담긴 의자를 배치한다거나 얘기들을 해주셨던 것 같은데요. 이번에 기억과 안전의 길 조성을 하시면서 여러 가지 고민이 담겼을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담아주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권은비
일단은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그 참사 현장을 어디부터 어떻게 접근해서 새롭게 재구성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좀 많았는데, 사실 제가 일을 맡고 나서 그 길을 굉장히 여러 번 갔거든요. 그때마다 꼭 두세 장씩은 떨어진 포스트잇을 주웠던 것 같아요. 그니까 그때 느꼈던 감정은 참사가 일어났을 때 책임을 다 해야 하는 국가는 그 자리에 없었듯이 참사 이후에 희생자 기억하고 애도하는 과정에도 국가는 없구나 라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니까 아까 그 영상에도 나왔다시피 너무나도 무겁고 어려운 마음을 정말 대비되게 너무 가볍고 바람만 불면 날아갈 것같은, 그 시민의 마음이 그곳에 온전하게 머물지 못하는 것이 되게 마음이 아팠고요. 일예로 외국의 사례 아까 말씀하셨는데 이를 테면 9.11, 독일에는 여러 이제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있다 보니 다양한 기억의 공간들이 존재하거든요. 근데 제가 방문했던 그런 기억의 공간 특징 중에 하나는 꽃이 늘 놓여있다거나 아니면 뭐 메세지가 놓여있다거나 그것이 365일 계속 있는 모습이었어요. 그니까 뭐냐면 기억의 공간은 보통 기념비나 조형물을 만들어서 설치를 하고 하는데 설치하고 마치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사회가 그 기억 공간을 돌보지 않는 경우가 한국사회에는 많거든요.
근데 진정한 기억 공간, 그리고 이제 기억 투쟁이라고 얘기하는 과정을 만드는 것에서 기억 공간은 굉장히 중요한데 그 공간이 그냥 그렇게 설치가 되고 완성이 됐다라고 해서 끝나게 되면 사실 진짜로 그 기억 공간이 있어야 할 존재의 이유가 일정 정도는 상실되는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면 베를린에 어떠한 희생자가 있었던 베를린 담장을 넘으려다가 희생된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기억 공간 같은 경우는 매일 꽃이 놓여져 있거든요. 제가 어느 날 궁금하더라고요, 이 꽃은 누가 둘까. 시민분도 있지만 행정 기관이 그 일을 수행하는 거죠. 그 얘기는 뭐냐면 그 공간을 방문한 그 국가의 사람들, 독일 사람뿐만 아니라 저 같은 외국인이 방문을 해도 이게 정말 오래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지금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구나. 그것이 행동으로 보여지고 있구나라는 것이 와닿으면서 그냥 과거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살아가고 앞으로 살아가는 일에도 그 일을 잊지 말고 그 일을 앞으로 다시 겪지 않으려면 어떤 걸 해야 될까라는 질문을 던진지는 거죠.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은 그러한 맥락으로 만들어야겠다고 했고, 방문해주신 분은 아실 텐데 3개의 게시판이 설치된 형태가 됐습니다.
포스트잇에 남기고 가는 형태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지금 저희가 이현 활동가님이나 다른 자원봉사자님이 하신 것처럼 시민들이 계속해서 시간을 내고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거기에서 계속 시민들이 소모가 되는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형태가 돼서는 안 되겠다라는 좀 고민이 들었고, 시민들이 참여하고 애도하는 것을 보장해주는 그런 공식적인 체계도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형태를 갖고 됐던 거 같습니다.
센
이런 잃어버린 사람들, 추모하고 애도하기 위한 고민들, 그런 것들이 사실어떤 이들의 부재가 왜 그들을 우리가 잃어버려야 했나 부분을 기억 투쟁, 애도 투쟁 이렇게 말한다고 하면 이런 것들이 사실 우리가 주변에 활동가들과 시민들과 작가분들과 이런 분들이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런것들을 보면 우리가 진상규명이라는 것을 요구할 때 그런 것에는 이런 애도나 기억을 포함해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는 거 같은데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온전하게 시민들이 고민하고 있는… 답답한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그런고민이 많이 있으셨던 거 같아요. 해주셨던 것 같아서 그런 질문 여쭤보도록 할게요. 활동하시는 과정에 그런 답답함들이 있다는 얘기들을 해주시는 것 같아서 그런 얘기를 조금 더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이현
참사가 있고 나서 거의 12시간 정도 만에 행안부 장관이 온갖 패키지로 요청하지도 않은 지원책들을, 상품권을 진열하듯이 대안을 내놨었잖아요. 희생자 명단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뭔가를 하고 있다는 뭔가 발표를 했었는데 실질적으로 국가가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사고고, 그 이후에도 그 발표, 이 추모 공간을 지키고 애도를 계속하는데 국가가 한 일이 거의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이태원 참사라는 말도 이제 못 쓰게 하고, 한편으로 영정사진조차 없는, 반쪽짜리 분향소를 만들어서 세우기도 했고요. 선포하긴 했지만 금지하는 형태지, 애도와 추모에 사람들이 더 많이 동참하게 하는 대응이 아니었다고 생각을해요.
그리고 이 참사 현장을 보존하고 추모 메세지를 아카이빙하고, 복원하고 하는 일도 국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 점에서 한편으로 시민들이 실망하고 비판만 하는 게 아니라 그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활동을 했다는데에 의의가 있는 거 같아요. 국가의 부재는 비판은 해야겠지만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활동을 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한편으로 또 이 수거 활동, 보존 활동에 참여를 한 걸 넘어서 이 메세지들도 함께 읽을 수 있는 활동들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곁 프로젝트도 그러한 면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센
감사합니다.
앞 자리에 모시진 않았는데요. 감독님의 또 다른 작품인 귀귀퀴퀴를 통해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이미 가지셨기 때문에 오늘 자리에는 모시지 않았는데요, 관객석에서 함께해주고 계십니다. 감독님들 일어나셔서 잠시 인사 한번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두 분 다 같이 해주시면.
안녕하세요? 저희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 미디어팀에서 활동하고 팀원이고요. 피해자 권리위원회랑 같이 포스트잇을 남겨져 있는 그 벽에 대해서 어떤 미디어로서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함께 낭독하는 영상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거를 총괄로 연출해준 분은 이분입니다.
아, 네 저 저는 영상 편집은 제가 하고 연출하게 됐지만 다 어떻게 보면 같이 만들 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제가 들어왔는데 마지막 영상 잘린 거 아니냐고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좀 더 그 낭독과 메세지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 가지 기록들을 하고 또 여러 가지 영상들을 다 나오는 상황에서 포스트잇에만 좀 집중해보는 시간, 부족하게 만들어 봤습니다.
센
감사합니다. 세 편을 만들어서 합쳐주신 영상이었는데요 제가 합쳐지기 전에만 봐서… (….) 관객들 보니까 눈시울이 붉어진 분들도 계시고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러면 약간 이야기를 나눠보았고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면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많을 거 같은데요. 낭독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그전에 궁금한 점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두 분 있으시면 받아볼까요? 오픈채팅방에 제가 약간 늦게 입장했는데요. 남겨주신 분이, 방금 손 들어주셨나요? 아닌가요? 그러면 바로 낭독으로 이어가보려고 하는데요. 혹시 아직 방에 공유가 됐나요? 안 됐나요? 제가 지금 다시 공유해드려 볼게요. 늦게 들어오신 분도 계신 거 같아서요. 잠시만요.
파일을 열어보시면 이현 활동가님까지 여러 가지 메세지 중에서 같이 읽어볼 만한 메세지들 추려주셨는데요. 꽤 여러 장이 되니까 돌아가면서 읽고 싶은 만큼 읽어주시고 다음으로 넘겨주시면 될 것 같아요. 먼저 앞에 계신 분들, 시작해보면서 뒤로 마이크를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현 님부터 해주실까요?
박이현
생존자 메세지랑 호명하는 메세지로 나뉘어 있는데요. 희생자들 이름은 여기서는 다 마리라고 호칭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낭독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고 현장 피해자이자 생존자입니다. 구조 후 정신을 차려보니 정신없이 심폐소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정신을 차렸더라면, 한분이라도 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속상함이 큽니다. 제 앞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던분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구조될 때는 숨이 멎은 상태였습니다. 저도 당시 죽은 것처럼 여유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힘이 조금 더 셌다면 들어올려서라도 살릴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나도 그날 이곳에 있었어. 두 세시시간 남짓한 차이로 나는 살아남았어. 단순한 우연으로 너희들을 핑계삼아 내가 삶에서 도망치려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 내가 너무 비겁하고 후진 것 같아서 너희들을 마주하기도 참 미안해. 그래도 그래도 그냥 꼭 와봐야할 것 같아서 이렇게 왔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아무말도 그 어떤 말도 건넬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눈에 담고 갈게. 너희들을 우리가 감히 교훈삼아야할까. 나는 그냥 너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권은비
사고날 기절했었던 사람입니다. 코로나 이후로 가장 활발했던 이태원 모습이 가족들, 친구들과 즐기던 이곳에서 정말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안타까운 사고입니다. 미안하고 하늘에서는 편하게 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이루고 싶었던 것들, 미루어 놓았던 것들, 얼마나 많았을까요? 저 역시 그날만큼은 놀고 싶어 이 거리로 왔었을 뿐인데 운이 좋아 살아있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꼭 그곳에서는 좋은 것만 보고, 느끼며 편안하시기를…
센
그리고 뒤쪽 감독님들부터 뒤로 돌아가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혹시라도 중간에 원치 않으시면 그냥 마이크를 넘기셔도 괜찮습니다.
플로어
이태원 참사때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그때는 그렇게 대형사고가 난 줄 모르고 압구정 가서 놀았는데, 지금은 그게 뭔가 죄책감이 듭니다. 그 시간에 희생자들은 생사를 달리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게 안 믿기고 너무 마음이 안 좋아요.
하고 싶은 거 많은 꽃다운 나이 내 또래들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먼저 갔다는 게, 그때 얼마나 아팠을지 가늠조차 안 돼서 슬프고 황망합니다. 오늘 이곳에 다시오니 3번 출구 앞 횡단보도에 쓰러져 CPR 받고 있던 여자분이 너무 생각나고 눈 앞에 아른거려요. 어떻게 되셨을까. 금요일에는 마냥 즐거웠던 기억, 토요일에는 아비규환 현장이 생생한데 오늘 이곳의 공기는 또 다르네요. 유가족들의 슬픔과 비통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그들이 얼마나 아팠을지 참혹한 현장이 다시 느껴져요. 앞으로 인생 무궁무진한데 먼저 간 친구들아. 내가 그대들 몫까지 열심히 살게. 더이상 아프지 말고 평온하길.
저는 고인이 된 당신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집에서 들뜬 마음으로 머리를 하고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하느라고 친구와 시간을 미뤘고 친구가 차가 막힌다기에 카페를 들렸고 해밀턴 뒷골목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앞을 거의 다다랐을 때 소방관분들과 경찰관분들이 인파 사이를 빠르게 지나쳐가더군요. 하필, 할로윈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조차 코스프레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내 앞에서 당신들이 그런 참변을 당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제 휴대폰과 소지품이 떨어졌고 골목을 벗어나라는 참에 휴대폰이 없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다시 그 자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을 누일 곳은 차디찬 길거리 바닥이었습니다.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경찰관분들은 목이 터져라 인파를 뒤로 밀어냈지만 입구마다 볼려드는 그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기란 정말 어려워보였습니다.
서있는 제 발 끝에 사람을 눕혔고 현실이 아닐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눈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찬 바닥에 누워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현실성이 없어 반쯤 정신이 나가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전 계속해서 그 시간, 그 공간으로 갑니다. 그때 내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미는 사람들을 못하게 했더라면 당신들이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이듭니다. 그저 즐거운 날이어야만 했습니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비극을 겪어야만 했는지 정말 너무 미안합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가슴이 아픕니다.
미안합니다. 꼭 좋은 곳으로 가시고 편히 쉬십시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날 이후 처음 이곳을 찾았어요. 그때의 기억이떠올라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구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지레 겁 먹고 도망가서 죄송해요. 좀 더 용기 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부디 편히 쉬시기를 바라요.
오늘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따고 왔어요. 사고 이후로 남일 같지가 않아 너무 힘들었는데, 이렇게라도 하면 이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서요. 제가 사랑하던 이 이태원 거리에서 이토록 많은 젊은 영혼들이 떠나가다니 이루말할 수 없는 깊이의 슬픔이 몰려와요.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세요. 당신들의 아픔을 맞기 못한 이 국가에서 부끄럽게 살아가는 한 국민으로서 앞으로 더 크게 용기를 낼게요.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거나 우울함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을게요.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고 맞서 싸워서 두 번 다시는 이런 참사가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할게요.
(추모메세지입니다)
세월호 때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고 했는데 지금 또…
안녕하세요, 아이 둘 키우고 있는 엄마에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서 자식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라는 거 너무 잘 알아요. 부모님들 마음이 무너질거라는 거 자식 먼저 보내고 얼마나 힘들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같이 울고 같이 슬프하는 게 최선이라 미안하고 많이 마음이 아파요. 그곳에서 있게 해서 많이 죄송해요. 푹 쉬어요. 사랑해 얘들아.
언니, 오빠들 그리고 친구들아. 편히 쉬길 기도할 수 밖에 없어서 미안하고, 어쩌면 미래에 나와 연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터무니없게 보낸 것에 정말 미안하고 가슴이 막막해. 그리고 ‘마리’야. 물론 내 친구는 아니지만… ‘바리’가 너 많이 생각해. 수련회 와서도 슬픈데 슬픈 티를 안 내더라고. 그래서 내가 다 속상하더라. 가서 편히 쉬어.
아직도 얼얼하고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어서 상상하기도 뭔가를 느끼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덤덤하기까지 했어요. 정말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당신들을 조롱하고 탓하고 자극적으로 소비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목소리가 당신들이 있는 곳에는 닿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은 점점 더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곳이 되어가고 아무래도 지금보다 좋아지기는 어려워보이지만, 그래도 조금만 다시 아기로 이 세상에 돌아오셔서 그날 밤에 느끼셨던 공포와 고통은 다 잊고 잃어버렸단 남은 생을 다시 온전하고 걱정없이 찬찬하게 누리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가실 수가 있는지… 말도 안 되는 일이 자꾸 일어나지만 절대 무뎌지지 않고 정직하게 슬프하고 분노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안전한 세상이 되길. 안전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렇게 무거운 것인줄 미처 몰랐어요.
그 무엇을 해도 떠나간 당신은 돌아오지 못하시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또 다른 당신들을 돌보고 지키겠습니다. 고통 없는 곳에서 행복하세요.
어떤 말을 써야할지 내가 감히 편지를 적어도 될지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아직 관련 뉴스를 보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는 저는 ‘아침 숙취에 깨며 어제 즐거웠던 일들을 떠올리며 키득거리다가 엄마한테 등짝 맞아야 할 너네들의 사고뉴스에 마음이 아프다’는 글귀를 보았고, 공허한 마음의 실체를 알게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와 함께 사진 찍고 춤추며 놀았을 수도 있을 그대에게 명복을 빌며, 어느 누가 잘못이 있겠거늘… 잘잘못 따지지 않고 당신들의 안녕을 빌 뿐입니다. 가까우면서 먼그대들과 함께할 날을 기다리며 당신들의 가족,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친구들아 거기선 편히 숨 쉬어.
‘마리’야. 눈오리 같이 만들었던 게 눈이 펑펑 쏟아지니까 생각나더라. 엄마, 아빠 그리고 너 예비 신랑이 많이 보고 싶어해. 붙잡지 않을테니 꼭 한 번 꿈에라도 찾아와. 안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위에서는 따뜻하게 지내고 있어. 너의 사랑하는 오빠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비록 당신들은 가버렸지만 남은 이들이 당신의 가족들의 남은 삶이 꼭 행복하길 바랍니다. 정말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죽음은 너무나 허무했지만, 남은 이들의 마음에 가장 큰 울림을 주시고 슬픔을 주셨습니다. 당신들의 죽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걱정마시고 천국에서 꼭 행복하세요. 남겨진 가족들도 너무나 힘들겠지만 그들만은 남은 삶동안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어쩌면 내가 죽었을지 모르는 세상 속에 너무나 아픔을 느낍니다. 가족분들 꼭 살으셔야 합니다. 이겨내셔야 합니다.
‘마리’야, 너무 늦게와서 미안해. 졸업 축하하고 행복해야 해. 끝내지 못한 졸업작품도 너무 멋졌어.
8년전 세월호에서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법과 행정 미비로 또 수많은 청춘이 희생되었습니다.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려면 나라는 바뀌어야 합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글을 쓰려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무슨 말이 필요가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나도 거닐었던 이태원 길에서, 나와 비슷한 너희가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졌단 게 도무지 믿기질 않아. 여기에 있진 않았지만, 너무 마음이 아팠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반복되다가 하염없이 울기도 하고. 이제야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게 조금 실감이 되더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뉴스를 보고 도저히 믿기질 않았어.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그렇게 하루 종일 멍하니 있다가, 다음날 평소처럼 눈이 떠지고, 화창한 날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을 하는데 진짜…
유가족 분들께. 안타깝게 희생된 젊은 친구들.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어찌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저 참담한 심경입니다. 말 한마디 꺼내기 조심스럽지만, 날벼락 같은 소식에 애타고 좌절하셨을 유가족분들 심정 생각하면 저 역시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고 눈물이 맺습니다. 얼마나 애타셨을까요.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실까요. 차마 헤
아릴 수 없겠지요. 하루 아침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슬픔, 가늠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겠지요. 그저 죄송합니다.
먼 발치에서라도 유가족분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동조하고 같이 울고 있겠습니다. 저의 작은 말이 유가족분들께 소소한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참사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마리’야, 보고 있니? 나 오늘도 왔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도 지금처럼 널 잊지 않을게. 너의 생일 5월 4일. 너의 기일 10월 29일. 너무너무 보고싶어. 무진장 사랑해.
‘마리’야, 내가 너무 오랜만에 왔지? 최근에 왔을 때 추모공간 조성한다고 포스트 잇 수거해갔더라. 매번 올 때마다 너한테 꼭 편지 한 장씩 쓰고, 오면서 또 다시 이 골목에 오면 내가 그동안 너에게 쓴 편지 보면서 그때의 그 감정을 떠올리곤 했었는데, 아쉽더라. 슬프기도 하고.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내 친구 ‘마리’. 이런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너는 지금 뭘 하고 싶어했을까? 뭘 하고 있었을까? 아직도 너한테 넌 그 흔한 “천국 가”라는 말이 안 나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 건지, 믿기가 싫은 건지.
센
네, 여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하나 더 읽어볼까 하다가 시간이 어느 정도 돼서, 폐막식을 해야 해서 마무리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오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 그전에 그래도 마지막으로 같이 읽어주신 분들 소감도 함께 나눠보고 싶긴 했었는데 그렇게까지는 어려울 거 같고 그래도 함께해주신 분들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짧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이현
기록 보도 활동 이어가고 있고요.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매달 2회 정도씩 주말에 진행하고 있으니까요. 말씀해주시면 활동 참여할 수 있는 텔레그램 방링크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은비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10.29, 정비 과정인데요. 웹페이지에도 남길 수 있습니다. 현장 방문하셔서 QR 코드 찍으시면 웹상에서도 메세지 남기실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메세지 봐서 또 게시판에 새롭게 교체될 시민 메세지로 전시가 될예정이니까 혹시라도 관심 있는 분들은 그렇게라도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센
잠시 까먹었네요. 채팅창에 남겨주신 의견이 있었는데요. 마리라는 이름 쓰지 않고 실명 썼으면 좋겠다 하시고 이유가 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실까요?
박이현
당시에는 가명을 써서 모두의 일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서 특정 희생자를 호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때는 그런 의도로 마리라는 이름으로 통칭해서 썼었습니다.
센
숨기고 싶어하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었고요. 그런 의미를 담아서 진행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우리 곁에는 상실을 누군가를 잃고 상실을 경험한 이들뿐만 아니라 뭔가 훼손을 겪은 생존자분들도 곁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이 자리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 끝나고 나서 폐막식이 4관에서 진행될 예정인데요. 참사와 관련된 영화이니까 시간 되시면 같이 함께 감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천인권영화제는 아시는 분들은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모든 분들이 함께 같이 관람을 하실 수 있도록 무료 상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후원이 지속해나가는 힘이 되니까요, 많은 후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