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A Leave
감독 : 이란희
제작연도 : 2020
장르 : 극영화
나라 : 한국
언어 : 한국어/ 한글자막
상영시간 : 81분
상영 : 2020.12.12(토) 18:30 / 13일(일) 12:30
대화의시간 : 2020. 12. 12(토) 오후 7시 50분
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토) 3관(일)
–
- 작성자: 랑희
해고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해고로 부정당한 노동과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고자 한 투쟁이 길어지면서 이들의 삶은 더욱 흔들린다. 1,882일째 투쟁하고 있는 선인가구 해고노동자들, 재복이 마주한 경제적 문제와 가족과의 긴장, 여전한 노동자의 현실은 부당한 해고에 맞서 삶과 노동을 회복하려는 모든 해고노동자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장기 투쟁 노동자들을 동정하며 바라보거나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질책하지만, 이들은 삶을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반복되는 투쟁과 연대의 시간이 미래를 확실하게 알려주지는 않지만 질기게 싸운다. 이 싸움은 잘못된 해고라는 인정과 당신들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응답을 기다린다. “왜 이렇게 오래 싸우고 있나요?”라는 질문은 이제 “왜 이렇게 오래 이들의 삶과 노동에 책임을 지지 않나요?”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장기 투쟁 노동자에 대한 시선과 의문의 방향을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이들의 노동이 존중받고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휴가가 일상의 삶과 공간을 떠나 휴식을 갖는 것이라면 해고노동자에게 휴가란 무엇일까? 재복에게 휴가는 거리의 투쟁 현장을 떠나 일상을 돌보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간이 되었다. 동시에 투쟁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을 얻기도 했다. 삶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투쟁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이들의 시간. 누구보다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해고노동자의 휴가를 통해 해고노동자들 삶-일상과 투쟁의 삶-의 회복을 함께 생각해본다.
대화의 시간 요약
오랜 해고투쟁을 했던 김경봉, 현재 투쟁을 진행 중인 차헌호 두 사람 모두 <휴가>의 재복이 딸들과 겪는 갈등, 경제적 어려움이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 같아 가슴아팠다. 그러나 이런 각자의 어려운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과의 갈등으로 투쟁 현장을 떠날 수 밖에 없지만 말할 수 없는 현실, 휴가 이후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해고 노동자가 자신의 일상과 관계를 돌볼 시간을 갖기 어렵게 했다. 재복의 휴가는 관계를 회복하고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만들수도 있는 가능성, 투쟁하는 노동자들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휴가>는 선인가구 해고무효 소송의 패소와 함께 5년째 해고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세 노동자가 절망스런 감정과 지난 투쟁에 대한 회한과 기약하기 어려운 미래에 대한 감정들을 보이며 시작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법적 투쟁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하기도 하지만 부당한 논리에 좌절하기도 한다. 이야기 손님으로 나온 두 노동자는 대법원까지 가야하는 기나긴 법적투쟁동안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져도 방치하는 노동부, 검찰, 정부에 대한 문제제기와 재판결과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의 무책임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법적 승소가 기업을 압박하는 힘을 끌어낼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투쟁이 승리할 수 없는 현실은 기업 하나의 문제를 넘어서서 이 사회의 노동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이렇게 오랜 시간 싸우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하고 시작한 싸움은 스스로 선택했던 정의를 포기할 수 없고 그것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긴 시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투쟁은 나의 존엄성을 비롯해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고 당당한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만들게 된다. 감독이 이들의 삶을 태도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열심히 살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노동자, 그리고 자신이 노동했던 도구조차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삶과 투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영화는 ‘휴가’라는 시간을 통해서 이들의 노동과 일상의 회복을 생각하게 한다.
대화의 시간 기록
* 일시 : 2020년 12월 12일 오후 6시 30분
* 장소 : 인천 영화공간주안 4관
이란희 감독
김경봉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차헌호 금속노조아사히비정규직지회
랑희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보석, 진영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
랑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휴가> 대화의 시간 진행을 맡은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랑희입니다, 반갑습니다.
현재 코로나를 많이 걱정하고 계신 상황인데도 관객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아마 이렇게 발걸음을 해주신 것은, 오늘 상영된 <휴가>와 이야기 손님으로 함께해 주시는 분들에 대한 관객분들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에 더욱 더 반갑습니다.
오늘 대화의 시간 함께 이야기해 주실 손님들 모시고 이야기 들어볼 텐데요, 인사는 각자 해주시는 걸로 부탁드립니다.
바로 옆에 계신 김경봉 님부터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김경봉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기타를 만들다 해고돼서 13년 동안 투쟁하고 마무리했거든요, 콜텍에서 근무했다가 지금은 비정규직 노동자의집 꿀잠에서 상근 활동하고 있는 김경봉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란희
네 안녕하세요, 영화 <휴가>를 연출한 이란희입니다. 반갑습니다.
차헌호
경북 구미에서 왔습니다. 일본 기업 아사히글라스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해고되어 6년째 투쟁하고 있습니다.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지회장 차헌호입니다, 반갑습니다.
랑희
그리고 오늘 수어 통역으로 함께해 주시는 통역사분들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국농인 엘지비티(LGBT)의 보석님, 진영님 함께해 주시고 계십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영화 보시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을까 되게 궁금해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고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다루는 영화를 볼 때, 투쟁 현장의 어떤 아픔, 처절함을 다룬 영화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 편인데요, 그에 반해서 제가 <휴가>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일상을 계속 포착하고 있는 감독님의 일관성이 많이 느껴졌었어요. 처절하고 비애감이 있는 그런 현장 속에서도 삶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해고노동자들을 비춰준 것에 대한 어떤 감사함,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께 먼저 제가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이 영화에서는 해고된 노동자, 선인가구라는 회사의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인데, 사실은 그동안 연대해오셨던 콜트콜텍의 투쟁 이야기가 모티브라고 알고 있어요. 감독님의 전작 <천막>도 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였고, <천막>을 상영했을 때에도 관객분들이 이것은 연기인가, 다큐인가 헷갈려 하면서 무엇이 진짜냐는 이런 질문들도 많이 했었습니다.
다큐가 아닌, 이 투쟁의 이야기들을 극영화로 풀어낸 데에는 감독님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고, ‘휴가’라는 것으로 농성 현장을 떠난 곳에서의 이야기로 풀어낸 데에 대해서 감독님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담아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란희
네, 일단은 다큐가 아니라 극 영화로 만든 것은 제가 다큐를 못 만드는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극영화로 만드는 것이고, 왜 그러면 ‘휴가’라는 구조가 이야기 안에 들어오는가. 원래는 연대했다고 하긴 좀 그렇고요, 제가 계속해서 관찰을 해왔던 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가지고 실제로 있었던 일들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악기를 만드시던 분들이 해고가 된 다음에 악기를 연주하면서 투쟁하는 이야기들로 시나리오 작업을 굉장히 오랫동안 해왔는데, 주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가지고 영화로 하는 것에 여러 우려들을 말씀해 주셨고, 생각해 보니 그런 우려들이 정말 짓누르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정말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게다가 또 예산상의 문제로도 그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그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을 어떤 형식으로 할 수 있을 건가 생각을 했을 때, 농성장에만 주인공이 계속해서 있으면 어쨌든 투쟁과 관련된 에피소드만 계속 나올 것 같고. 그래서 주인공을 농성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야 된다, 그래서 ‘휴가’라는 장치가 필요했고 휴가를 가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로 그렇게 만들게 됐습니다.
랑희
그래서 그 ‘휴가’라는 설정이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 영화를 보시면서 포착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첫 장면에 선전전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때 지나가는 시민들이 나오는데 김경봉 님이 지나가는 시민으로 등장 하세요. 그동안에는 콜트콜텍 투쟁의 주인공으로서 영화에 등장을 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엑스트라로 등장을 했는데, 사실 제가 듣기로는 감독님이 <휴가>에 출연하는 것을 제안을 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고사를 하셨고 대신 여러가지로 촬영을 하는 데에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는데, 연기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장기투쟁 노동자들처럼 잘 표현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연기지도도 하셨나요?
김경봉
전혀 아니고요. 저는 몰랐거든요. 연기를 좀 해줬으면 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저는 연기할 수 있는 그런 건 아니었던 거 같아요. 아무래도 전문 배우고, 현장에서 느낌은 살릴 수 있겠지만 그분들과의 호흡이 있고 또 느낌이 틀릴 수도 있는 거고. 투쟁이 마무리로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같이 할 수 없는 이런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못하게 된 것이고. 그리고 선전전 하는 모습을 찍는데 정말 우울해 보이더라고요. 오랫동안 찌들어 정말 하기 싫은, 그렇지만 알려야 하는 우울한 얼굴들을 보고 있었어요. 정말 우리가 마지막에 이런 찌든 모습, 이런 걸 본 것 같고요. 선전전할 때 보시면 알겠지만 선전지 받고 바닥에 버리는 거, 그런 거 있었으면 좋겠다 말씀드려서 그걸 넣은 것도 있고. 이런 것들만 했지 그렇게 제가 크게 많이 도움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 당시 투쟁사업장이 많이 없어서 좀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그때 강남에 삼성 김용희 동지 투쟁이 있어서 거기다 요청을 했고 거기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같이 협조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랑희
우울한 표정이 장기투쟁 노동자의 현실을 잘 드러냈다고 하니까 뭔가 슬프기도 하고, 어떠셨을까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5년째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로 나오고 있는데, 김경봉 동지는 13년을 싸우고 이제 투쟁을 정리하셨고, 차헌호 동지는 6년째 싸우고 있거든요. 근데 영화에서 재복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가는데 투쟁하는 5년이 비어 있는 거잖아요. 일한 시기가 없으니까. 그 5년 동안 뭐 했냐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아, 많은 노동자들이 저런 일을 겪을 수 있었겠다’ 그 비어 있는 기간, 일하지 않는 기간,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두 분 노동자분께, 김경봉 동지와 차헌호 동지 두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건, 영화 속에서 두 분이 보시면서 ‘마음이 와닿았다, 내 이야기 같다, 혹은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런 장면이 있었다면 어떤 부분이었을까 궁금해요. 김경봉 동지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면 어떨까요.
김경봉
영화를 지금 두 번째 봤습니다. 게을러서 두 번째 봤는데, 사실 거기서 산재사고가 났는데 이제 재복이라는 그 친구가 산재신청을 요청을 하지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배었던 것들이 스스로 나온 것이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인상도 깊었지만, 솔직히 오래 투쟁하면서 아이들과의 갈등 문제, 또 이런 것들이 굉장히 복잡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이 굉장히 마음이 아팠고 와닿던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헌호
아… 두 번 뭉클했고, 세 번째는 눈물이 주룩 흘렀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딸 둘하고 대화하는 장면들인데, 저희 집을 그대로 갖다 놓은 거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딸 둘이 있는데 25살, 18살이라서 거의 똑같고, 영화에 나오는 둘째 딸은 또 닮기도 엄청 닮았어요. 아… 그래서 우리 집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좀 살자”, “우리는 생각 안 하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 이런 이야기를 그대로 와이프한테 그리고 애들한테 실제 들은 이야기고. 그래서 너무 마음 아프게 봤습니다.
랑희
네. 그래서 재복의 이야기가 저는 단지 재복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투쟁 현장에 있는, 특히 장기투쟁하는 노동자들 모두의 상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서처럼 특히 경제적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또 그로 인해서 가족과의 관계들이 어려워지는 상황들을 겪게 되잖아요, 여기 계신 두 분뿐만 아니라 같이 투쟁하는 동료들도 그런 일들을 겪고 있을 것 같아요. 차헌호 동지에게 묻고 싶은 건 그런 이야기들을 동료들, 동지들간에 서로 하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런 이야기들이 서로 이야기가 되는지, 혹시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면 이런 문제들을 좀 더 잘 해결해 내는 방법들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어떠신가요?
차헌호
가장 어려운 게 경제적인 문제, 그 다음에 가족관계, 이런 문제들인데… 사실 잘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우리 동지들이 저한테도 얘기 안 하고. 저도 와이프가 투쟁 기간에 수술을 했어요. 근데 저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리고 우리 동지들도 집에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잘 이야기하지 않아요. 제가 좀 놀란 사건은 저희가 조합원이 22명이 있는데 재판을 하면서 다 탄원서를 제출을 했습니다, 재판부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탄원서를 작성했는데 저희가 22명 중에 5명이 돈 벌러 갔어요. 생계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1명이 쓴 글을 제가 가지고 왔는데 일부분만 읽어드리면, 제가 이걸 보고 엄청 울었습니다.
재판장님, 저는 제가 왜 투쟁하는 걸 잠시 멈추고 생계를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하여 쓰려고 합니다.
(어렵다, 이거…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2015년 사측의 일방적인 해고로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난 해고노동자입니다.
저도 이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 실업 급여와 전국에서 도와주는 분들의 힘으로 2년 가까운 시간을 거리에서 투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모아둔 돈도 다 써버렸습니다. 100만원 가량의 돈으로는 제 처지가 너무 열악했기 때문입니다.
해고당하기 전부터 저에겐 빚이 있었고, 다달이 고향 부모님께 생활비를 조금이나마 부쳐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본인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셨고, 어머니는 신용불량자 상태여서 소득이 없었습니다. 고향집도 경매에 넘어가 그것을 제가 빚을 내어 지켰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고 요양원에 계시다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 중이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지금도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걸 썼을 때 돌아가셨거든요, 아버지가. 아… 그래서 사실 이 친구가 생계를 갈 때는 그냥 투쟁이 힘들거나 투쟁이 하기 싫거나. 그냥 이렇게 가볍게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런 어려움이 있었던 거죠. 저희는 몰랐고… 하… 힘드네요.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랑희
차헌호 동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릴까요?
사실 경제적인 어려움은, 해고를 당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이잖아요. 지금 노동을 하고 있어도 다들 편치 않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는데.. 해고를 당하고 그리고 노동에 대한 어떤 자기 존중에 대한 부분들을 회복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과정이다 보니까 오히려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더 말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아픈 건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나누지 못하고 있다는 거겠죠.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하면 같이 나눌 수 있을까 이런 것들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장기투쟁이 되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빨리 이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이 종료될 수 있도록 바꿔내는 것이 오히려 이 삶과 노동을 회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 그 글을 들으면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이 마음이 아프셨을 거라 생각이 들고요. 아까 저랑 이야기할 때도 미안함이 묻어나시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감독님한테 다시 한번 질문을 좀 드리려고 해요.
휴가라는 영화에서 선인가구 해고노동자들, 특히 재복이 중심이 돼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재복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러 간 가구공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규모의 가구를 만드는 현장에는 재복뿐만이 아니라 재복과 같이 일하는 청년 노동자도 있지만, 실제로 등장하지 않고 대사로만 등장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것 같아요. 추방되었다고 하는 것 보니까. 미등록이주노동자가 그곳에 있었고 그리고 현장실습을 나오는 학생이 또 그 공간에 등장을 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자꾸 그 공간에 어떤 새로운 노동자들이 등장할 때마다 관리를 하시는 분이 나와서 처음에 오는 사람에게 늘 반복적으로 아주 짧게 이야기하는 멘트가 있죠.
이렇게 해라, 이렇게 안전하게 신어라, 청소를 해라. 이런 멘트를 반복적으로 짧게 하는. 이런 걸 보면서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 이야기의 설정이 특별하게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요. 감독님은 어떤 의미로 이 사람들을 담았는지 궁금합니다.
이란희
일단 그 관리자로 나오는 우진 같은 경우는 지금 객석에 앉아 있는데요, 근데 그 사람 같은 경우에는 이 공장에서 일한 지 굉장히 오래됐고 그래서 이 공장에서 필요한 매뉴얼에 굉장히 익숙한 사람.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매뉴얼에 익숙해서, 그곳에 새로 오는 사람들이 그곳이 얼마나 낯설고 모르는 곳인지를 몰라요. 그러니까 자기 속도대로 막 떠드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새로 들어온 사람 입장에서는 못 알아듣는데, 앞에서 이걸 금방 알아들어야 되는 것처럼 떠드니까 주눅이 드는것 같고요. 그런 방식으로 했었고.
더군다나 재복같은 경우에는 원래 일을 많이 하던 사람인데 5년 동안 일을 하지 않으면서 그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감각이 좀 떨어진 상태, 그러다 보니까 우진이라는 관리자가 그렇게 빠르게 뭔가 매뉴얼을 빠르게 읊어댈 때 살짝 멍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대답도 잘 못하고. 게다가 우진이는 사적으로는 친군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공감하면서 인터넷 검색도 하던 친군데 공장에서 만나니까 완전히 다른 얼굴로 매뉴얼을 읊어대는 걸 보면서 아마 재복이가 상당히 당황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우진이는 그렇고요.
그리고 그 다음에 거기에 나오는 여러 노동자분 그러니까 실습생, 미등록 이주노동자, 그리고 지금 잠깐 알바를 하러 들어간 재복이, 이런 사람들 같은 경우, 그리고 또 있죠. 술집에서 만난 친구 용접공 그 친구. 이 사람들은 다 정규직이 아니에요. 이 사람들은 잠깐 일을 하고 끝나는 사람들이죠, 다. 용접공도 자기가 뭐 엄청나게 먹고 사는 방법이 확실한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사람도 어쨌든 한 달 일하고, 일주일 일하고, 6개월 일하고, 3개월 일하고 이런 사람이거든요. 대부분이 다 그래서 굳이 가구공장에 정규직을 넣을 이유가 별로 없어 보였고. 그러다 보니까 다 그렇게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것 같고요.
그리고 사실 통 크게 보자면 정규직도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쌍용자동차, 지엠자동차 등 우리는 많이 보고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공무원 빼고는. 그래서 뭐 어떤 의미에서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요.
랑희
해고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동시에 언제든지 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사람들, 현재는 일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불안정한 노동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서로 만나서 노동을 하고 또 연대를 하는. 아까 말씀하셨지만 산재를 권하면서 ‘이것은 너의 권리야, 노동자로서’라고 얘기하는 것이 일종의 자신의 투쟁의 경험이 연대로 확장되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는데요. 그런 것들이 영화 안에 담겨 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이 해고무효 소송의 패소를 시작으로 하고 있죠. 그래서 천막 안의 세 노동자가 굉장히 절망스럽고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들을 갖고 있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이 되는데요.
실제 콜텍이 패소를 했었었던 경험이 있잖아요. 그때 경험이 또 겹쳐졌었을 것 같아요.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물론 회사를 상대로 싸우기도 하지만 법적 투쟁을 또 같이 함께 하고, 또 법적 투쟁이 갖는 의미가 분명히 있죠. 물론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그 투쟁이 갖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김경봉 동지께 질문은 그 때 경험들, 법적 투쟁의 경험들이 어땠는지, 어떤 의미였는지 투쟁의 과정에서,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김경봉
법적 투쟁은 상당히 중요하죠. 꼭 법으로서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승소를 한다는 것은 자본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거든요. 저희 콜텍 같은 경우도 매년 수십억의 흑자를 내던 회사였거든요. 그럼에도 지노위 이겼고 중노위 패소하고, 다시 고등법원에서 승소를 했거든요. 고등법원에서는 회사 건실하고, 해고 회피 노력도 없고. 회사가 너무 건실하기 때문에 다른 거 뒤져볼 필요가 없다고 했거든요. 해고가 부당하다고 했는데, 대법원에서 이제 미래에 도래할지도 모를 경영위기, 온 것도 아니고 미래에 도래할지도 모르는 경영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해고가 가능하다고 해서 패소한 거거든요.
그때 당시 현대차, 콜트가 똑같은 날 대법 판결 받았는데 승소를 했고, 저희 콜텍만 그때 패소를 한 거거든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고, 정말 축제 분위기 같았던 현대라던가 콜트는 축제 분위긴데 저희들 때문에 웃을 수도 없는 이런 상황이었어요. 사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법은 자본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밖에 안되는 거고. 그걸 이겼을 때 좀 더 힘차게 투쟁을 진행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수단밖에 되지 않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희들은 그런 아픔을 겪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로 인해서 그 법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끝까지 투쟁해서 결국은 마무리를 짓는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져도 싸움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랑희
아사히글라스도 지금 재판중에 있죠?
차헌호
네. 저희는 178명 비정규직이 노동조합 만들었다고 178명 전부 문자 해고되고 하청업체는 바로 폐업을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노동부에서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17억 8천만 원의 과태료도 부과하고 검찰이 기소도 했고 불법파견으로. 그리고 법원에서 직접 고용하라고 1심도 이긴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금 2심이 진행되고 있는데 6년이 흘렀어요, 그 사이에. 근데 아사히 글라스는 벌금도, 단 한 명(의 복직)도, 어느 것도 이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은 여러 사업장에서 보여주듯이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야지 인정하는 게 현재의 우리 사회인 거죠. 그래서 대법원 판결까지 고난의 길을, 결국은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삶이 무너지는 고통을 견디며 확정판결을 받아봐라, 이게 지금 노동부, 검찰, 정부의 행정기관이나 사법기관이 방치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요즘 어렵게 어렵게 고공농성하고 투쟁을 해서 합의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서 다시 합의를 이행하라고 싸우는 경우도 허다하고. 그래서 이런 상태에 있는 거죠. 근데 법으로 지면 더 심각한 상태가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랑희
그래서 법적 투쟁이 승소하면 물론 정당성? ‘우리 투쟁이 옳았어!’ 라고 하는 어떤 힘이 되는 것도 분명히 있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무엇을 정의라고 바라봐야 할까, 내가 지금 이 하나의 회사와 싸우고 있지만 단순히 이것은 하나의 회사와 싸우는 문제를 넘어서서 이 사회 노동의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과를 기다리는, 그리고 결과를 이행하길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너무 큰 고통이 되는 것 아닌가? 사실 돈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버티기 마련인 거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관객분들께서도 함께 이야기를 전해주시거나 묻고 싶은 이야기나 그런 것들이 있다면 이야기를 잠깐 들어볼까 하는데요. 혹시 여기 나와계신 이야기 손님분께 질문이 있거나 질문이 꼭 아니어도 영화를 어떻게 봤다 이런 이야기도 좋습니다.
혹시 전할 말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계실까요?
관객
영화 감사하게 잘 봤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몰입해서 주인공분이랑 나아가서 해고 노동자분들의 삶에 대해서 감정이입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영화에서 좀 관심 있게 봤던 것은 감독님께서 역설적인 것들을 풀어내시는 것이 관심이 생겼습니다. 일단 영화 제목부터 ‘휴가’인데, 해고 노동자들의 휴가를 풀어내시고 그리고 주인공분의 이름도 재복인데 현실적인 상황은 재복인 것과 거리가 있고. 그중에서도 영화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역설적인 게, 저는 선의의 의도로 한 행동이 결국에는 오히려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역설적인 것으로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준영이라는 청년 노동자에게 산재라는 제도를 알려주었는데 오히려 해고를 당하고, 나와 내 가족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시작한 노동운동이 지금으로 봤을 때는 경제적으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역설적이라고 보았는데… 감독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재복이 도시락을 철탑 위 노동자에게 올려주는 것으로 연출을 끝내셨는데 그 재복이란 주인공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했던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이란희
저보다 두 분이 하실 수 있는 대답인 것 같고… 근데 일단 저는 의도가 뭐였냐면요, 제가 원래 처음에 기타를 만드시던 분들이 기타치는 공연을 보고 그냥 연예인처럼 매혹되어 거의 팬심 같은 걸로 쫓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던 건데… 근데 취재 차원에서 계속 옆에서 관찰도 하고 스토킹하듯이 SNS를 다 뒤지고 하다 보니까 정말로 어른스러운 어른들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취재를 하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이런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왜 그런 이야기를 써? 뭐 이런. 그런 거 있죠? “너무 무거워! 왜, 답답한 걸 그렇게 쓰고 있어?”부터 시작을 해서. 그리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러 다큐멘터리나 이런 것들을 보면, 실제로 그 가족문제나 경제문제나 굉장히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투쟁하셨던 분들이 사실 만들어놓은 이 모든 것들을 우리가 누리고 사는데 이분들을 너무나 무시하고 심지어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그런 모습들을 다큐멘터리에서 굉장히 많이 봤어요.
그러면서 이번에 <휴가 >만들 때는 작정을 한 거죠. ‘엄청 멋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볼 테야.’ 그러니까 엄청 열심히 살고 엄청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그리고 자신이 노동했던 도구조차, 끌 가는 장면이 나중에 나오잖아요. 그것조차도 엄청 소중히 여기는 사람, 줄자조차도 엄청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렇게 만들어버리자라고 생각을 했고 또 그게 잘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제 그 욕심이 아주 잘 완성된 것 같고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싸우는가 관련해서는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몰라요. 그걸 연출 의도로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두 분이 그 말씀을 해 주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랑희
아마 말씀해 주셨던 그 질문은 이 영화를 함께 보는 데 있어서 오늘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해요, 사실 저희가 가장 마지막에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조금 더 기다려 주시면 아마 두 분이 대답을 해 주실 거라고 생각을 들고요.
그전에 그래서 아까 말씀하셨듯이 역설적으로 휴가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이란희
아 그거는 말씀드릴게요.
휴가라는 역설적인 것. 그러니까 뭐냐하면. 어떻게 보면 휴가는 일을 하다가 피곤하면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 돈 되는 일을 하지 않다가 휴가를 한다고 하면 그게 무슨 휴가야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기준이 수입이 있는가 없는가로 휴가를 사람들이 생각하게 됐다는 거죠. 그러니까 임금이 없고 수입이 없는 노동을 하다가 쉬는 것은 휴가로 취급하지 않는다. 근데 실제로 휴가라는 것이 필요한 것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피곤해서 쉬어야 되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시나리오를 2달을 썼어요. 1주일은 쉬고 싶어요, 휴가를 가지고 싶어요. 근데 제가 두 달 동안 시나리오를 쓴 게 누가 한 달에 백만 원, 이백만 원 월급 주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저한텐 휴가가 필요하죠. 그래서 농성의 일상을 가지신 분들도, 그리고 현장에서 활동가로서 먼가 사회적인 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는 분들도, 그리고 대표적으로 다큐멘터리 감독님들도, 세월호 같은데 현장 가서 엄청나게 찍잖아요. 그분들도 휴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꼭 돈을 버는 노동을 하다가 휴가가 필요한 게 아니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휴가’라는 제목이 역설적이지 않은 제목일 수도 있다고 생각돼요.
랑희
그래서 13년을 투쟁하시는 동안 실제로 휴가를 가지신 적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경봉
개인적으로 휴가를 머 푹 쉬어야겠다고 떠나 본 적은 없고요. 주위에서 여비를 마련해서 잠깐 휴가를 갔다 온 적은 있어요. 갔다 왔는데 안 좋은 기억만 있고요. 휴가가 아니더라고요. 휴가는 기분 좋게 갔다 와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휴가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휴가를 가본 적이 없어요.
랑희
왜 휴가를 가 보실 생각을 안 하셨어요?
김경봉
머 가면 또 못 돌아올 것 같고. 휴가를 가면 가서 나 휴가야, 집에다 해준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나 휴가야 하면서 집에서 쉴 순 없잖아요. 일을 하다 보면 또 돈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그럼 가기 싫어지고, 또 몸이 멀어지면 맘도 멀어진다고 그런 거 같아서 휴가를 못 가는 거죠. 보내주는 사람은 가면 안 돌아올까 봐 못 보내주고. 그렇기 때문에 휴가를 못 가는 거죠.
랑희
아사히글라스도 휴가 없나요?
차헌호
저희는 여름휴가가 1년에 3일. 회사 다닐 때도 3일이었거든요. 그래서 개별적으로 3일씩 개인적으로 가고. 안 가는 사람이 일정을 하고 농성장을 지키고 하는데, 이 영화 보고 좀 생각이 좀 들긴 해요. 민주노총이 6년을 일하면 6개월의 안식휴가를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희도 일정을 잡을 때 매주 일정을 굉장히 타이트하게 잡거든요. 아무것도 없으면 연대라도 가서 간담회도 하고. 이렇게 애써 일정을 매번 빡빡하게 잡긴 하지만, 휴가를 간다 쉬어야 되겠다는 한 번도. 개별이 길게 재복이처럼 열흘 동안 휴가를 간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치유도 하고 가족들과 관계도 좀 좁히고 할 수 있는, 해고자도 휴가를 믿고 휴가를 갈 수 있지 않겠냐라는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근데 반대로만 생각한 거죠. 정말 안돌아 올까 봐 아니면 우리 투쟁이 축소될까 봐 이런 걱정만 한 거지, 정말 사실은 개인 개인을 돌보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랑희
이란희감독님의 휴가 영화가 널리 널리 상영이 돼서, 우리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모두가 돌아가면서 앞으로는 휴가를 좀 갈 수 있도록 이런 인식들이 마련이 되면 참 좋겠구나.. 얘기를 들으면서 들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흘러가서,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오늘의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기도 합니다. 아마 13년 내내 들었을 질문이기도 할 것 같고요.. 왜 이렇게 오랫동안 투쟁을 하나요?라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그 질문에 대답이 참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경봉 동지께서 먼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경봉
아까 재판, 미래 이야기 했지만 정말 우리가 13년간 이렇게 투쟁을 할 줄 알았으면 안 했겠죠. 근데 투쟁은 시작됐고. 처음에는 회사가 너무 건실하니까 우리가 분명 이길 수 있을 거야, 하고 하다 보니까, 그게 또 안 통하니까, 아이 씨 억울해서 못 살겠네, 패소도 하고 이거 억울해서 못 살겠네, 분명히 회사가 흑잔데 억울해서 못 살겠다. 한번 해보자. 더 길어지니까 지금까지 왔는데,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데. 또 수많은 동지들이 친구처럼 형제처럼 가족처럼 이렇게 앞뒤에서 끌고 밀어주는 그런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차헌호
노동조합도 해보지 않은 동지들이 처음에는 실업급여 주는 6개월 정도만 한번 싸워보고 싶다 는 마음으로 다들 시작을 하죠. 길어봤자 1년 안에 끝내고, 1년만 투쟁하고 그만둔다 이런 마음으로. 지금 있는 동지들도 다 이야기하더라고요. 근데 싸우면서 정리되는 거는 결국은 우리가 옳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고 싶은 게 있는 거고. 그리고 도저히 여기서 포기하고 다른 삶을 선택하기에는 자기 스스로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어렵지만 그런 길을 가는 것 같고.. 근데 한 가지는, 지금 당장 손에 잡히는 게 6년 동안 하나도 없지만,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을 얻은 것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비정규직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무시당하고 맘대로 해고당하고 이런 존재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굉장히 소심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고. 그래서 공부를 못해서 비정규직이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노동조합 만들고 나서 내가 공부를 못해서 비정규직이 된 게 아니구나, 구조적으로 비정규직이 문제가 있구나 그런 것을 알고. 그리고 기본적으로 헌법에 나오는 인간의 권리나 존엄성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이라는 창을 통해서,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구나. 모든 사람은 존엄성을 가지고. 내가 누구에게도 무시당할 이유가 없구나라는 것을 이 투쟁을 통해서 경험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 동지들이 예전에 현장에서 회사가 조끼 입으라면 조끼 입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했던 그때의 눈빛하고 지금의 눈빛하고는 완전히 달라져 있죠.
그래서 남은 인생도 투쟁이 이기던 지던 남은 인생이 저는 다르게 살아가는 우리 동지들! 가치관도 바뀌었고 자신도 훨씬 더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소중하게 얻은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점에서는 우리 투쟁이 굉장히 당당하고 후회 없는 투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랑희
오늘 나오신 두 분 말고도 전국의 많은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분들이 계실 거에요,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그분들의 노동과 삶이 우리에게 잘 전달되고 함께 또 연대할 수 있고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이 들었고요.
하루빨리 노동자들의 노동과 일상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장에서 노동자로서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시간이 조금 넘었는데요, 원래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어요. 여기 계신 분들도 관객분들하고 시간만 되었다면 2시간은 충분히 이야기하고도 남았을 것 같은, 이야기가 많은 영화였습니다. 아쉽게도 극장이 코로나 2.5단계로 방역 수준이 높아지면서 9시까지만 극장이 운영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아쉬운 맘을 안고 대화의 시간을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요. 관객 여러분들께서도 모두 건강하게 돌아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대화의 시간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제가 시간이 없어서 깜빡 잊었네요.. 오늘 여기 오신 분들 중에 특별하게 소개해드리려고 했는데요..
김경봉 동지와 함께 투쟁하고 노동했던 장석천 동지와 임재춘 동지가 함께 이 자리에 계십니다. 잠시 일어나서 인사 나눠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빨리 퇴장을 안내해 드려야 해서 잊고 정리를 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진짜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