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리 l 2025 l 다큐멘터리 l 28분 l 한국어 한국수어 한국어자막해설 한국어음성해설
내 이름은 소리다. 한소리의 소리는 엄마의 소리를 잘라낸다. 엄마의 소리를 튕겨내고 끊어내면서 엄마를 위한 선택이라며 소리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위로를 가장한 그 소리를 엄마는 또 잘 들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 앞에서 나의 소리를 소거하는 일이다.
시놉시스
내 이름은 소리다. 한소리의 소리는 엄마의 소리를 잘라낸다. 엄마의 소리를 튕겨내고 끊어낸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직후 내가 뱉어낸 소리는 엄마를 괴롭혔다. 외할아버지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소리의 폭력. 사과는커녕 오히려 더 뻔뻔하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엄마를 할퀸다.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웃으면 한다는 합리화를 하고,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다며 내가 행한 소리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런데 나는 어디론가 숨고 싶다.
Synopsis
My first name is ‘Sori’. It means ‘sound’ or ‘voice’ in Korean, and it sounds like the English word ‘sorry’. My sound(voice) cuts out my mother’s sound(voice). The sound I spit out right after my grandfather’s funeral tormented my mother. The violence of the voice completely ignores the fact that it takes time to accept the breakup with his maternal grandfather. Far from apologizing, I am more shameless. I rationalize that I should overcome the sadness of parting and laugh bravely, and justify the violence I did by saying that it was a choice to help my mother. But I want to hide somewhere.
| 당신이 있어, |
소리의 소리
I’m Sori, I’m Sorry
감독 : 한소리
제작연도 : 2025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수어 한국어자막해설 한국어음성해설
상영시간 : 28분
상영일시 : 2025.12.5.(금) 오후 6:00
상영장소 : 영화공간 주안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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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시간
한소리 감독
미니미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작품해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가 비상계엄과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지에 대해 소리(딸)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다.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며 순응할 거라는 길혜(엄마)의 태도는 소리에게 웃음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소외되고 버려지는 두려움 앞에 거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며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소리(딸)는 엄마와 세상의 소통에서 통역자 역할을 하고 있는 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엄마의 소리들을 지워냈던 그동안의 시간을 곱씹는다.
소통의 관계맺음 속에서 자신의 위치성을 관찰하고 반성하는 자전적인 영화는 서로의 시간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한 화해를 통한 두 사람의 성장이자 치유의 과정이다. 그 여정을 함께하다 보면 상대의 고유성이 지워지거나 배제가 익숙해져서 미쳐 감각하지 못한 불평등과 소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음소거 된 길혜의 대답을 알고 싶어 입 모양에 온 집중을 하게 되는 영화적 체험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상대가 필요한 만큼의 ‘기다림’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대신 익숙한 ‘효율’과 한쪽만의 ‘애씀’으로 유지되어 온 소통의 관계를 지속해 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미니미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인권해설
청각장애인인 길혜는 구어로 소통이 가능하지만 상대가 입 모양을 크게 하고 천천히 말해줄 때만 대화가 가능하다. 그런 조건 때문에 일상은 늘 제한되고 무엇보다 딸인 소리에게 크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딸의 말과 표정, 반응에 기대어 즉, 소리의 소리에 의존해 세상을 이해해 왔다.
길혜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가장 크게 의지하며 자랐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길혜가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깊이 의지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가족 안에서 반복되었던 경험 속에서 길혜는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이 멈춰버린 듯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내가 나대로 존재하면 관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라는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지웠고, 들키지 않기 위해 항상 타인의 말, 딸의 말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생존해 왔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고 언제든 버려질 존재라고 여긴 불안은 장애로 인해 배제되었던 경험들과 마주해 사람들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욱 조심하며, 더욱 말을 잘 들어야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었다.
만약 길혜가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독립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면 세상과 마주할 때 지금보다 단단하고 당당히 서 있었을 것이다.
한편, 소리는 엄마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기준과 이데올로기 속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덮어버린 순간들이 있었다. 이 작품의 촬영 과정은 모녀 관계 속에서 소리(음성)와 침묵, 감정과 권력, 위계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드러내며 소리 스스로에게도 자각의 시간을 제공한다.
(소리)
“25년 할 말 있어?”, “할 말 있어?”
그리고 길혜는 마침내 짧지만 자신의 언어를 꺼낸다.
(길혜)
“나”, “나”, “나”, “나는”
“날 위해서”, “잘해볼 거야”
이 순간은 길혜가 타인의 소리에 가려졌던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기 시작하는 첫걸음이다. 영화는 바로 이 시점에서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존재가 다시 말을 시작하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런 관계의 패턴은 농사회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가족이나 조직 안에서 다수의 청인들과 함께 있을 때 농인은 갈등을 피하고 배제를 당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맞춰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자신을 숨기고 들키지 않으려는 방식은 흔히 가면증후군(임포스터 신드롬)으로 이어진다.
길혜의 삶 같은 경우 가면증후군의 전형적 징후를 보여준다. 그녀의 상태는 개인의 심리 문제가 아니라 장애, 의존, 권력 구조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가면증후군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욕구를 말하고 의사 표현을 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침묵과 자기위축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가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다. 언어 접근성 보장, 가족 지원정책, 심리·정서 지원체계 마련 등 제도적, 사회적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혜원
연극·방송·홍보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는 농인 수어통역사·한국수어 강사

감독
한소리 Han Sori
청각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그녀와 세상 사이의 통역가로 위치한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을 곱씹으며, 자신의 위치성을 관찰하고 반성하는 자전적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기획의도
시간이 흐를수록 ‘소리’라는 내 이름은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내가 들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와 내가 수십 년간 잘 지켜온 규칙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것은 엄마와 나의 차이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소리 안에 엄마를 가두고 그녀의 고유함을 뭉개버렸다. 우리에게 벌어질 충돌을 두려워했다. 나의 소리는 엄마의 자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나의 소리가 엄마를 돕는다고 생각했던 오랜 시간은 허상에 불과했다. 이제는 그러한 비겁한 나를 드러내고 고백함으로써 엄마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직접 나서서 엄마의 소리를 대신하며 허상을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스스로 직접 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제는 엄마도 카메라를 든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뱉었던 날카로운 소리를 내 얼굴 위로 불러온다.
연출의도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터지고 나는 엄마와 긴급회의를 했다. 변화에 대한 엄마의 대처는 ‘네’라는 순응이었다. 그러나 그 말엔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고, 나는 그런 엄마 앞에서 비겁하고 폭력적이었다. 듣지 못하는 엄마 대신 소통해온 나는 엄마의 자리를 지우고 있었다. 이제 나는 그런 나를 고백하고, 엄마가 스스로 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카메라를 든 엄마, 그리고 나는 내 소리의 폭력성을 되돌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