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가족 Family by Chance 💬

| 다름과 연루 |

침몰가족
Family by Chance

감독 : 가노 쓰치
제작연도 : 2019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일본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93분

상영일시 : 2025.12.5.(금) 오후 7:2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기획의도

침몰가족이 보여준 혈연 관계, 육아 공동체의 비규범적인 상을 함께 바라보고 그것이 가능한 조건, 그것이 지향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질문해본다. 

“타인의 자유를 돌보는” 돌봄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를 잃지 않고, 나와 타인을 착취하지 않는 돌봄과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제도적 가족, 제도적 돌봄을 넘어선 빛나는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 품을 수 있는 욕망이 무엇인지 가늠해보자.

 

대화의 시간 기록 

나기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대표

타리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

이종환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문자통역)

타리

안녕하세요? 영화 즐겁게 보셨나요? 저희는 가족구성권연구소라는 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두 사람입니다. 오늘 진행을 맡은 타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나기

네, 저는 패널을 맡은 가족구성권연구소 나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박수]

타리

여러분과 함께 ‘나는 쓰치를 낳고 싶어서 낳았습니다. 집에 틀어박혀 종일 가족만 생각하느라 타인과 아무런 교류도 없이 살다가 아이는 물론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전단지로 시작이 된 <침몰가족>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는)침몰가족이라는 공동육아 공동체 역사를 담고 있는데요. 어쨌든 영화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동육아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아는 공동육아는 또 아니기 때문에 육아 말고 다른 것과 연결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영화 안에서 돌봄의 방식. 그리고 시민적인 유대와 결합의 방식. 그리고 위험한 것들, 안전한 것들을 어떻게 우리가 감각을 하고 새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뭔가 사람들이 모여서 추구를 하는 데 성공의 방향이 아닌 실패의 방향인데 ‘괜찮나? 괜찮은데?’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공동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되게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부분이 내 공간이 없다. 사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기도 한데요. 그것들을 <침몰가족>어떻게 다루었는가, 실제로 사적인 게 있는가, 없는가.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추상적인 개념, 가치들일 수 있는데 영화를 매개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갖게 되어서 저한테는 그런 점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자꾸 예시를 들게 되는 그런 영화이기도 하고요.

나기 님이 책을 갖고 오셨는데, <침몰가족>이라는 책도 나왔어요. 영화에서 다 다루지 못한 맥락, 역사가 책에 있습니다. 오늘 대화의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이 살아오면서 경험을 했던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거나 연결되는 느낌들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픈채팅방 질문을 남기거나 소감을 남겨 주시면 소개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안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알려 주시면 저도 (웃음)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문자통역이 진행이 되고 있고요. AUD사회적협동조합의 이종환 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박수]

네, 일단 이 영화가 영화제에서는 최초 상영인 것 같아요. 인천인권영화제가 영화제로서는 처음으로 영화를 상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게 2019년 영화인데 어떻게 보면 시차가 있죠. 그리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상영이 된 게 올 해(2025년)였어요. 올해 봄 5월이었어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영화상영을) 5월에 해 보자는 취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그동안 한국 관객을 만나기 위해서 영화제 출품도 하고 이런 저런 노력을 했었는데 소개가 안 되었고 책이 먼저 출간이 되었고, 이 책을 본 사람들이 영화를 너무 보고 싶은데 어떻게 볼 수 있느냐. 아쉬움이 있었다가 ‘커먼즈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쓰신 커먼즈연구자 한디디님이 감독님과 관계가 있어서 직접 한글 자막을 제작을 하고 5월에 상영회 추진을 하셨고 그 계기로 오늘 이렇게 영화제 상영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 또한 질문거리인 것 같아요. 왜 그동안 상영이 안 되었을까. 한국의 영화제들은 왜 이 영화를 수용하지 않았을까? 채택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가 한국적인 상황에서 연결이 되거나 안 되는 지점들이 있을까라는 그런 질문도 좀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저희가 가족구성권연구소를 5월에 상영회를 하면서 감독님이 내한하셨는데 함께 토크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공감대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나기 님은 그때 처음 보시고 어떠셨나요?

나기

원래 기사를 보고 알고 있었고, 유튜브에도 가족에 대한 영화에 대한 소개가 올라온 적이 있어서 너무 보고 싶어서 했는데 마침 또 그렇게 가족구성권연구소와 연결된 곳에서 상영을 같이하고 싶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 되게 놀라웠고, 처음 봤을 때 그냥 기대를 했던 대로였던 것 같아요. 기대 이상이기도 하고 (웃음) 내가 보고 싶었던 이야기. 집이 너무 폐쇄적으로 상상이 되잖아요. 시민적 돌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단체 내에서도 시민적 돌봄을 정말로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이야기했을 때 공간을 사실 폐쇄적으로 점유를 하고 있으면 그게 법적인 가족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이 퀴어 커플이어도 마찬가지고 (돌봄이) 사실 나눠지기도 어렵죠. 그걸 실제로 (실천)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저런 건 어떻게 가능할까? 캐릭터의 문제인가 우리가 참조를 해 볼 만한 실천인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타리

결론은 무엇인가요?

나기

결론이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 침몰 가족만 할 수 있는 저 때의 어떤 특수함이 만들어낸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저걸 참조점 삼아서 용기 있는 시도를 해 보면 얼마든지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애를 낳을 게 아니니까 애 낳은 사람이 기회를 줘야 하는데 누가 나에게 줄 것인가가 문제였던 것 같고 여담을 하자면 조카가 있어요.

조카가 이제 두세 살 정도인데요. 기회를 줘도 사실 힘들긴 하거든요. 애를 본다는 게 조카를 보니까 진짜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수시로 도망을 가고 싶어서 가끔은 전화를 안 받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서 더 많은 수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실제로 돌보면서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돌봄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단순히 공동으로 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보다 그 공동으로 하는 게 무엇이냐는 것에 대한 합의가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타리

기대치가 낮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고, 공동으로 한다는 것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갑자기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서 도입했던 2인 1조 제도를 생각을 했어요. 혼자 일하지 않게 하는 것. 육아에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2인 1조.

나기

2인보다 더 필요해요, 사실. (웃음)

타리

동시에 두 명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교대를 해야 하는 거죠.

나기

맞아요.

타리

교대를 생각하면 한 사람씩 생각을 하는데 동시에 둘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화장실을 가고 밥을 먹는 것 같고요. 그래서 이거는 되게 위험 노동이다. (웃음)

나기

3인 이상이어야 할 것 같아요. 부부가 둘인데 셋이 있어야 해요.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셋이 있어야 해요.

타리

동시 3인? 혁명적인데요!

나기

셋이 있어야 해, 셋이 살아야 해.

타리

육아의 대상까지 네 명? 네, 좋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대충 해야 한다는 게 있는데 <침몰가족>의 정서인 거고, 이 영화가 이제 일본에서 나왔을 때 ‘세상에 이런 일이’ 그러면서 사람들이 되게 관심을 보였대요. 그래서 처음에는 사이비 아니야? 왜 저렇게 친인척이 아닌 사람이 한 공간에 정기적으로 드나들면서 뭔가 할까? 그래서 지역의 경찰들도 의심스럽게 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행색이 그랬을 거 아니에요. 낙오연대들이 갔으니까 대부분 임금노동을 안하고 있었고, 돈을 벌려고 모인 사람이 아닌 것이 불온해 보이는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제 모인 사람들이 어디를 보고 있는가. 웬만하면 돈을 안 벌고, 웬만하면 일을 안 하고, 웬만하면 놀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아이를 돌본다. 이 방향 자체가 ‘세상에 이런 일이’죠. 잘 해야 하는데 잘 안 하려고 모인다?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고, 동일시할 수 없고, 감정 이입할 수 없는 대상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어쨌든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고, 사회적으로 가족 다양성 담론 안에 이색적인 어떤 공동체로써 소개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국을 통해 상영회도 하고 학교에서 틀어 주기도 하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되게 좋은 모델로써 이야기가 된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일본에서도. 이럴 수 있다. 그런데 한 명이 키우면 위험할 수 있었는데 도와줄 수 있다. 이 정도 미담이 있었는데 영화에서 발견이 되는 우연성과 성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돌봄의 반영이 되었다고 보시는 거죠?

나기

네, 책을 5월의 영화 상영을 했을 때 당첨이 되어서 받았는데 안 읽고 있다가 오늘 아니면 못 읽을 것 같아서 1시간 반 걸려서 오는 동안 읽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에 되게 재미있는 말이 있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쓰치 씨가 자란 <침몰가족>을 실험적이라고 하지만 (책에) 사실 모든 육아는 실험적이라는 말이 나와요. 누구나 다 첫 아이를 기르면 어떻게 기르는지 모르는 채로 기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조건과 환경에서 과연 내가 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를 사실 모른 채로 키우는 거잖아요.

그래서 딱히 여기에서(만) 실험이 아니라 모두가 실험인데 그런 마음을 가졌을 때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못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으면 사실 육아라는 게 고통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특히 남의 아이를 돌보고 있을 때 그것이 내가 잘못해서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혹은 잘못되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면 사실 참여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을 해서 호코 씨가 여기 영화에도 나올 텐데 뭔가 쓰치한테 문제가 생겨서 어떻게 할까 하니까 호코 씨가 오히려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처럼 뭔가 결정을 분명히 내리고 이 아이의 미래에 책임을 지는 결정권자가 엄마다-라는 위치를 가지지 않고, 우리가 다 같이 논의를 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이 방법으로 키운 대충 키운 아이가 알아서 잘 자랄 것이라는 믿음 하에 공동 육아 실험이 가능하다고 여겨지거든요. 그래서 실험이 있으려고 하면 모든 육아가 실험이고 결과가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 혹은 엄청 나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그런 낙관을 가지고 해야 이런 돌봄의 나눔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참여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책에 보면 (웃음) 참여를 했던 분들도 긴장은 했다고 해요. 영화에도 나오는데 ‘쓰치가 커서 날 때리러 오면 어떻게 하지?’ 그런 장면이 있는데요. 모든 사람이 아이에 대해서 조금씩 가지게 되는 거죠. 내가 한 행동, 말이 내가 얘를 이렇게 대하는 방식이 이 아이가 자랐을 때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모두가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이와 관계를 맺는 모두가. 하지만 그에 대해서 누구도 독점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결과가 우리의 육아 결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침몰 가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침몰 가족만이 나를 만든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다 그렇잖아요.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도, 이건 안 좋은 경우지만 부모가 아무리 스트릭트하게(엄격하게) 키운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아이가 접하는 다양한 환경에 의해서 다르게 자랄 수 있는데 SNS도 그렇고, 육아 자체가 모두 통제할 수 없다는 거죠. 그 결과물에 대해서 아이의 성장 자체에 대해서 너무 부담을 가지지 않는 것이 모든 양육자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타리

그러니까요. 그게 진짜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양육이 다른 돌봄과 약간 다른 차원인 거죠. 이게 미래의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이제 아동기에 받아야 할 어떤 정말 지원과 지지와 어떤 식의 양육, 행위가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다 전문가가 아니고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왜냐하면 그냥 내가 사는 것처럼 해도 될까?

왜냐하면 이게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도 생각이 나는데요. 그 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거쳐왔지만 내가 그 세계를 이해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세계와 접속을 하고 동료성을 맺을 수 있는 역량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불안감이 저에게도 사실 있는 것 같기는 하거든요. 그런데 부모라고 (역량이) 있겠어요, 그게? 낳은 사람이라고 있겠나.

나기

그러니까 의논할 사람이 많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을 해요. 내 책임도 내려놓으려고 하면… 모르잖아요. 제가 조카를 보면서 수시로 유튜브에 ‘물건을 집어던지는 아이 어떻게 훈육을 하나요.’ 2세, 3세 버전 찾거든요. 그런데 이 불안감을 나 혼자만 가지고 있다고 하면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뭐가 좋은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걸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해서 좀 그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요.

양육자가 고립이 되었을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이 그거 같아요.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지점도 그렇고요.

타리

그래서 저는 진짜 감정이입을 많이 한 포인트가 회의였어요. 운동권이니까 회의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어려운 거 있으면 회의의 안건으로 하고, 그나마 회의라는 틀이 있을 때 상의를 할 수 있고, 같이 평가를 할 수 있고, 이게 오로지 내 책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매번 확인 할 수 있고, 이런 게 진짜 약간 저에게는 생존술인 것이고, 생존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육아라는 상황에 던져지더라도 회의체가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우리가 부족하다고 하면 회의에 누구를 불러올까. 이런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따지면 제가 이거는 또 장애와 관련된 제도이기는 한데요. 어떤 장애인이 자신의 일상을 보조하는 사람들과 자신에게 필요한 어떤 또 다른 자원. 혹은 정서적인 지지. 여러 가지가 필요한데 이걸 한 사람에게 독박을 쓰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식의 활동지원 제도나 이런 학교 안에서 장학생 제도로서 완전히 이렇게 몰빵을 하지 않기 위해서 써클이라는 제도[1] 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를 위한 운영위를 운영 하는 거죠. 한 달에 한 번씩 모든 이해관계자. 그 회의 안에서 모든 안건을 다루고 그래서 부모도 한 표, 활동지원사도 한 표, 애인도 한 표, 친구도 한 표. 이렇게 해서 의견을 나누는 그런 제도에 대해서 듣고 되게 좋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그래서 육아뿐만 아니라 돌봄과 관련된 여러 가지 고립이나 고민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들을 여기에서 많이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나기

양육자도 중요하지만 돌봄을 받는 아이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쓰치가 그런 말을 하죠. “엄마를 피해서 도망을 가서 언제나 응석을 부릴 수 있는 다른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서 양육자뿐만 아니라 아이한테도 가족 내에서 내 부모가 아닌 피신처가 있는 것이 갈등을 대처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여겨져요.

제가 항상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 싶었거든요. 왜 어린이 동화에 보면 몇 년 만에 나타나서 이상한 장난감을 끌고 와서 허풍을 끄는 삼촌 캐릭터. 저는 늘 그런 캐릭터가 되고 싶었는데 (웃음) 그런 뭔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면서 옆에 있어서 웃겨 주고 부모님과의 어떤 긴장을 돌파할 수 있는 구성을 만들어 주는 그런 구속들이 있으면 늘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양육자뿐만 아니라 아이한테도 중요한 것 같아요.

타리

맞아요, 그리고 혈육이 아니라는 것도 참 좋은 자원 같아요. 혈육이면 이미 누구 편인 것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벌써 막 카톡방이 이야기와 질문들이 올라오고 있어서 함께 다루면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읽어 볼게요. ‘아이든 노인이든 노인을 돌보는 일이 오롯이 한 사람에게 맡겨지면 그 사람이 사회에서 고립이 될 정도로 큰 부담이 되는 것 같아요. 사회가 아직도 돌봄을 개인의 영역으로 규정을 짓고 그걸 오롯이 맡기기 위해서 정상 가족을 장려하고 유도하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런 돌봄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하면 어떤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혹시 관련해서 어떤 활동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되게 뭔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활동. 일단 궁금하실 것 같은데 연구소가 뭘 했는지 살짝 소개하자면 (웃음) 저희가 ‘연대와 돌봄의 법’이라는 보고서 작업을 했어요. 저희가 이제 생활동반자 등록법이 지금의 가족제도를 좀 넘어서기 위한 하나의 대안적인 법안으로 하고 작년에 실제로 발의가 되긴 했는데 법안을 열어 봤을 때 굉장히 커플 중심적이고, 한국 국적자에게 한해 있었고, 성인에게 한정이 되어 있었고, 그리고 장애인의 경우 제한적인 그런 법안이라는 것을 보고 역시 삼라만상이 담긴 삶을 법으로 지지를 하기 위해서 단 하나로는 불가능하구나. 법 제도의 법이 아닌 다양한 방식을 생각해 보자는 차원에서 생각했었고, 거기에서 좀 가져온 것이 커먼즈. 커머닝이라는 실천 방법과 상호 부조라는 방법이었어요.

그래서 커머닝의 경우는 이윤을 위해 생산을 하는 게 아닌 공동의 생활을 위해 공동으로 생산하고, 그 생산물을 다시 나누고 그것이 어떤 물리적인 생산뿐만 아니라 관계, 감정, 기억까지 함께 만들고, 기여할 수 있는 만큼 기여를 하고 함께 나누는 것을 지향하는 방법인데 공산주의와 비슷할 수도 있겠죠. 공산주의는 계획 경제적인 느낌이 있다면 그런 것들이 제외가 된 국가, 제도로부터 그것들이 담아낼 수없는 잉여의 영역들이 언제나 존재를 하고 그것들을 돌보는 방식으로 제안된 게 있는 것 같고, 상호 보완도 기존에 법 제도에서 제외된 사람들, 능력이 없다고 탈락한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위험에서 구출할 수 있을까 라는 방식을 생각하면서 가져왔던 키워드인데요.

그래서 정상가족이 있던 자리를 대체하는 또 다른 이름의 관계를 한 가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관계를 맺을 거냐고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거는 법적인 가족들끼리도 할 수 있는 거죠. 서로 상호부조적으로 우리 관계를 만들자. 혈연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모르는 사람이지만 우리가 어떤 공동적인 뭔가 돌보기 위해서 커머닝을 함께해 보자. 이런 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그런 식의 방법과 방향을 일단 고민을 했던 것 같은데요. 나기님은 이 질문에 대해서 혹시 생각이 나는 거 있을까요?

나기

제가 인권 해설에도 썼는데 항상 대안적인 돌봄을 생각하면 대안적인 돌봄조차 가족적으로 상상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공동체조차 우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를 책임지고 절대 헤어지면 안 되고 니가 나의 대안이 되어야 하고 내가 치매에 걸리더라도 인지 장애가 있더라도 장애가 있더라도 몸이 불편해지더라도 서로 돌봐야 한다는 상상을 하니까 그럴 사람을 찾기 어렵죠. 가족이 그걸 못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타인을 상상하면 그런 타인이 없는 것 같고, 타인도 대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저번 다른 자리에서도 말했지만, 전주에 비비라는 비혼여성공동체가 있습니다. 비비 공동체는 같이 사는 공동체는 아니고, 한 아파트 단지에 이제 각각 세대로 가까이 사는 분들이 공동체적으로 네트워킹을 하는 공동체인데요.

(비비공동체에서) 약속을 한 게 우리가 요양에 들어가야 하는 순간까지 책임을 지지는 말자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 공공의 돌봄. 공동의 돌봄이라고 하는 것, 시민적인 돌봄에서는 제도도 사실 빠트리면 안 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모든 걸 서로에 대한 어떤 커머닝과 상호 돌봄으로 해결이 되는 게 커머닝의 정신이 아니라 공공의 재원, 자원을 써서 제삼자,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더라도 돌봄의 자원이 있어야 하는 게 커머닝의 내용 중의 하나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우리가 돌봄이 가져가는 고립됨을 안 된다고 생각을 할 때 그것이 대안적인 공동체에서도 고립되면 안 되는 말과도 같고, 그것이 제삼자, 변하는 타인들 사이에서 나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저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했을 때 우리가 요양보험제도나 장기요양보험제도 등 그런 공공의 돌봄에 대해서도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리

제도를 무시하거나 그냥 뛰어넘는 것이 또 모두에게 대안일 수 없는 거죠. 지금은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자원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어요. 이 영화에서도 번개처럼 호코 상이 여기를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섬으로 가시죠. 그때 이제 쓰치 상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어머니는 또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각자 자기 일을 하고, 누군가 키우고, 돌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라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 둘의 생활 또한 가능했던 그런 장치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한국에도 이런 가족 공동체 혹은 육아 공동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 하셨어요. 사실 일단 먼저 전해 드리고 싶은 건 저희가 인트리라는 미혼모단체와 영화를 함께 보고자 상영회를 했어요. 그래서 저는 인트리 활동가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는지 너무너무 궁금했어요. 그런데 최 대표님이 영화를 미리 보시라. 당일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고 보내드렸는데 잠을 설쳤다고 하더라고요. 온갖 상념, 감정, 회환과 이런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20년간 키우면서 그렇게 싱글맘으로 언론에 커밍아웃을 하고 인트리를 만들고 지금 회원이 800명이라고 합니다. 800명이라는 회원은 정말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여성들이 대부분이고, 지지자들도 있었겠지만 그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고 하고, ‘내가 정말 원한 게 저런 게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대요.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도 동시에 하셨던 거죠. 남성들이 육아에 참여를 하는 게 부러웠대요. 인트리는 미혼모들의 공동체거든요. 육아 책임이 결국 여성에게 주어지고 남성이 책임을 회피하고 떠나는 자리를 매우기 위해서 서로 서로 정말 지지하고 지원을 하고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어떤 편견에 맞서서 강한 여성이 되어야 했고, 생계도 책임을 져야 했던 그런 걸 보면서 단순히 음양의 조화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렇게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식의 (실천이) 저게 다양성이 아닌가라는 느낌인 것 같고, 그리고 저런 게 정말 한국에 있었으면 미혼모에 대한 낙인이 더 강화가 되었을 것 같다. “저거 봐라, 저렇게 지내는 게 미혼모가 하는 일이 아니냐” 이런 식의 편견이 강화되었을 거 같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미혼모끼리 모이니까 저게 안전해 보이고, 그냥 좀 안쓰러워 보이는 이미지라는 거죠. 그게 불편한 거죠. 그 이미지. 안전해 보이는 이미지가. 그래서 그러면서 이제 본인께서는 그래도 이렇게 조직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게 페미니즘 영향이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셨던 것 같고요. 그래서 같은 사례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코멘트를 전해 드리고 싶었고요. 이런 비슷한 사례 있을까요?

나기

공동육아를 하는 공동체는 사실 기사로도 많이 나오고, 저희가 너무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공동체들도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과 <침몰가족>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트리에서도 부러움과 많은 상념이 들었다고 하는데 이 침몰 하우스로 가기 직전에 호코 상도 여자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우리 둘이 이제 공동육아를 하자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는 결국 엄마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로 살고 싶지 않고, 엄마라는 정체성만으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가족 관계라는 것으로 계속해서 우리가 해석이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우리만의 공동 육아 공동체를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다메롄 사람들에게 제안을 하고 침몰 하우스라는 걸 꾸려서 더 많이 끌어 들인 것도 있거든요.

방점은 같이 육아를 한다는 것보다 내가 이 태어난 아이와 엄마로서 관계를 맺을 것이냐의 결정에서도 되게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 같아요. 공동 육아를 하는 곳은 많지만 공동 육아 공동체에서 엄마라는 지위를 내려놓고 싶다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쓰치 씨는 나는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야마상과 호코상만 있는 건데 그런 관계였기 때문에 이 침몰 가족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 육아는 많이 하고 계시지만 정말 이게 아이와의 관계에서 엄마가 아닐 수 있는가, 아빠가 아닐 수 있는가. 이게 쟁점이지 않을까.

타리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같고요.

나기

우리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죠.

타리

알려지거나 조직적으로는 못 봤던 것 같고, 형태적으로는 혈연 관계처럼 보이지만 우리 인간 대 인간으로 살아 보자. 이런 식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최현숙 작가님과 같은.

네, 그러니까 이게 또 어머니가 성적 존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엄마와 자녀의 관계를 확 깨 버리는 그런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한 것 같아요. 엄마가 섹슈얼리티가 있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출산과 육아로 이어졌을 수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이 없는 섹슈얼리티가 상상을 하는 내가 엄마를 직면을 했을 때 기존의 관계와 같을 수 없다는 것들이 있고, 그래서 정말 예전인데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연구 모임일 때 어머니라는 신화를 쓴 책을 쓴 분이 어머니의 자위에 대해서 공론화를 해야 한다. 어머니의 외도 이런 이야기 다 필요 없고 자위가 핵심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신게 생각 나네요.

그리고 저는 이제 <열개의 우물>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인천 지역에 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정말 힘든 열악한 상황에서 맞벌이를 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열악한 (육아환경) 그리고 인천 지역의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그런 일자리에 투입이 되는데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까 빨갱이로 몰려서 엄청나게 탄압을 받는 와중에 그 여성들이 기르는 아이들이 또 그런 (육아)공백 상태에 있는 것들을 보고 의식적으로 어떤 여성 활동가들이 그 지역에 들어가서 공동 육아를 해내고 그러면서 이제 여성 노동자와 공동 육아를 하는 여성 활동가와의 관계들을 보여 주는 것인데요.

정말 일본도 그렇게 운동을 했던 상황이 있었을 텐데 이미 낙오연대가 운동하는 방식과 당시 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독재, 자본에 맞서 정말 빡세게 운동하는 그 사람들이 육아를 어떻게 생존 투쟁으로 이걸 해 왔는가. 이런 정서는 정말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어쨌든 우리 사회에서 이런 되게 진보적인 운동으로써 이야기했던 맥락은 지역아동센터, 빈곤 지역의 여성 노동자들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것도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과 기존의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어떤 고군분투. 사이에서 어떤 젠더 정치. 이렇게 의미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두 가지의 방향의 차이나 이런 것들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기

지금 이런 게 어렵겠다고 싶은 건 <침몰가족>에서 쓰치 씨가 어린이집에 맡겨졌을 때 침몰하우스의 다른 돌봄이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찾으러 가는데 요즘 안 되잖아요, 이런 게. 그쵸? 유괴 위험도 있고 해서 주양육자가 아니면 아이를 데려갈 수도 없고 학교에도 못 들어가요. 운동회 때 다 같이 가서 응원을 하는데 운동회도 못 가요, 사실. 그래서 이런 풍경이 이 시대의 약간 느슨함을 허용했던 측면이 있기는 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지금 그래서 호코 씨와 다른 돌봄이들이 쓰치 씨한테 혹은 다른 유치원 선생님들한테 누가 친부모인지 주양육자인지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는 서술이 나와요. 그런데 지금은 주양육자가 지정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주양육자가 허락을 해서 이 사람이 몇 시에 데리러간다고 확인을 해야지만 데리러 올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나눔은 또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용인이 가능한 육아 시설이 있기는 해야 되겠죠.

타리

이게 위험담론과 연계가 되는데 사실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쓰치 씨가 남자아이라서 가능했던 게 아니냐.’ 그리고 위험한 건데 위험에 대해서 어떻게 감각을 하고, 다룰수 있을 것인가가 이것을 현실적인 거로 상상이 되어서 중요한 문제인 것 같거든요.

어쨌든 쓰치 씨는 이런 질문을 직접 받았고, 항상 집에 한 명 이상 있었기 때문에 대문이 열려 있고 현관문이 열려 있었지만 안전하다는 감각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기 님도 이런 질문을 받아 보신 적 있나요?

나기

항상 나오는 질문인 것 같아요. 언니네트워크에서도 마찬가지로 상영회를 했었는데 같은 질문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 여자아이가 있었던 것도 나오는데 그 질문이 나왔다는 게 우리가 어떤 양육과 안전과 위험을 생각하는 감각이 특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패싱이 되는 거죠. 있었는데도 잘 자랐는데 불행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에 등장을 하지 않지만 다른 여자아이도 있었다고 책에 등장을 하고요. 그래서 여러 아이들이 있는 공간이었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감각은 더 열림으로 인해서 줄어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들어요. 아이도 하나가 아니고, 어른도 하나가 아니고, 아이도 여럿, 어른도 여럿인 상황이 위험에 대한 감각을 상쇄시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리

저는 어쨌든 시설이나 가출팸이나 가정폭력이나 이런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 그리고 집안에서 영유아가 사망을 했는데 알려지지 않았다거나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더 강하게 하는 것 같아요. 외부인이 전혀 들어갈 수 없고, 고립된 상황이 가장 위험의 취약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고, 물론 그것만의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침몰가족>이 열려 있는 상태가 위험이 무엇인가 다시 고민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나기

더 많은 목격자를 의미 할 수도 있죠. 더 많은 개입. 위험이 있다고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위험을 중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도 저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타리

그리고 회의가 잘 되어야 되겠죠.

나기

육아 노트가 있다고 하잖아요.

타리

진실하게 써야 하고, 은폐되지 않아야 하고, 강제로 침묵을 시키지 않아야 하고 쓰치가 정말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이야기 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육아는 커녕 어릴적 어린이집에 맡기는 거조차 안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라는 얘기를 해주신 관객분이 계신데요. 부모가 길러야 제일 좋고, 안전하고, 예전에는 정말 70년대 약간 한가장 모델에서는 부인이 안 키우고 왜 어린이집에 맡기냐. 문제다. 이런 분위기를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나기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마스다 미리의 <여탕에서 생긴 일>이라는 만화책이 있는데요. 거기 일본에 목욕탕 옛날 목욕탕이 나오는데 항상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베드가 있었대요. 그래서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씻기기 어렵잖아요. 혼자 아이를 둔 채로 씻기 어려우니까 그래서 공중목욕탕에 아이를 둘 수 있는 베드가 여러 개 있고, 거기에 아이를 두고 엄마들이 씻고 올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돌봄을 나누는 약간 그런 행동들의 단초는 여기저기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70년대.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이런 게 있지만 그런 목욕탕 문화도 있었다.

타리

한국의 공중목욕탕은 없었던 것 같은데 부럽네요. 일본에서 목욕 문화가 많이 발달을 해서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어렸을 때 목욕탕에 안 좋은 기억 있잖아요. 빨리 씻어야 하는데 때 때 미는 거 아프고 그래서 항상 울고 (웃음) 아무튼 그렇습니다.

또 읽어 볼게요. ‘혈연 중심 가족과 달리 공동체 구성원은 헤어질 수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서로의 끝을 예측하면 살아간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예외적이거나 이상한 일로 치부를 하는 현실이 답답했거든요. 영화 속 사람들은 남도 아닌 관계에서 끝을 함께 예상했을 텐데 함께 살기를 선택했습니다. 모순 같아 보이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용기, 태도가 가족이라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너무 공감하고요. 그래서 우연히 만났고, 이유 없이 만났고, 그리고 헤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런데 있는 동안 어떤 책임을 나눌 수 있다. 이게 제일 매력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우연히 태어나고, 우연히 돌봄을 주고받고 우연히 가족이 되었다. 부모 자식 관계도 우연이 아니면 운명이라고 하는데 사실 우연이잖아요. (웃음) 그래서 진짜 안 맞으면 헤어지거나 혹은 1, 2년 정도 안식월 제도 이런 거 도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는 것 같고요. 특히 동거인 가족인 경우는요. 이렇게 좀 요약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주최축에서)시간이 다 되었다고 합니다. 채팅창에 못 남겼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 있는 분 계실까요? 직접 해 주셔도 좋습니다. 마이크가 갈 것입니다. 없으실까요? 네, 그러면 나기 님에게 마지막 말을 청해 보면서 나기 님 말 끝날 때까지 생각이 나시면 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기

제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웃음) 저도 똑같이 쓰치 씨한테 상영 끝나고 했던 질문인데 <침몰가족>이라는 형태를 자신의 삶에서 실행해 보실 건가요라는 질문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또 다른 문제이지 않을까라는 답을 들었는데요.

이게 정말 타인과의 거리 유지. 거리를 어느 정도로 유지를 하고 이 온도를 어느 정도 유지를 할 것인가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아이와의 관계도 그렇고, 같이 돌보는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고, 항상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아요. 호코 씨는 그런 사람일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이것이 너무 뜨겁지는 않은지, 멀지는 않은지 사실 이것을 고민을 하다 보면 이것이 침몰가족과도 같은 어떤 다른 방식의 돌봄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꼭 아이를 육아를 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그래서 좀 그런 관계 맺음의 태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본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느낌을 가지셨다면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타리

네, 감사합니다. <침몰가족>에서 우리가 차용을 하고 싶은 기술이나 방식이 있다면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적용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차기작이 또 어머니와 할머니와의 관계를 다루는 영화를 하고 계시다고 해요. 그래서 또 기다리고 있고 기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시간은 이렇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나기

(침몰가족 도서를 보이며) 책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여러분, 책을 읽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