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28회_인천인권영화제_상영작_딸에대하여_이미지

이미랑 | 2023 | 극영화 | 106분 | 한국어 한국어자막 자막해설 |

경제적 어려움으로 요양보호사인 엄마의 집으로 동성연인과 함께 들어온 딸. 두 사람과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 엄마는 요양원의 어르신을 돌보는 데 몰두해 보지만, 홀로 곤궁하게 늙어가는 어르신에게서 자신과 딸의 모습을 겹쳐본다.



| 원, 마주 잇다 |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감독 : 이미랑
제작연도 : 2023
장르 : 극영화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자막해설
상영시간 : 106분

상영일시 : 2023.11.18(토) 오후 1:2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11월 18일(토) 오후 1시 20분 <딸에 대하여> 상영 후
이미랑 감독,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연구활동가, 미니미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을 진행합니다.



작품해설

사람은 생애주기를 거치면서 누군가에 의존해 살아가는 ‘취약성’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는 취약성을 ‘돌봄’과 ‘관계 맺음’을 통해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러나 ‘돌봄’은 어느 순간 사적 영역을 넘어 산업화하여 ‘인간 존엄’을 기대하기 어렵고, 그래서 겪고 싶지 않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또한 혈연과 이성애 중심의 ‘관계 맺음’은 다양한 삶의 형태와 관계를 배제하고 있다.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요양보호사인 엄마가 자신의 돌봄을 받으며 홀로 곤궁하게 늙어가는 어르신에게서 자신과 딸이 마주하게 될 미래를 겹쳐보며 겪는 일상 속 당혹감과 모순된 감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동성 연인과 함께 엄마의 집으로 들어온 딸과의 불편한 동거가 보여주는 불화는 ‘다른 선택’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위한 물음을 던진다. 영화 속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견뎌내는 일상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는 ‘공존’을 바탕으로 한 ‘돌봄-관계’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미니미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인권해설

 <딸에 대하여>는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과 맞닥뜨린 질문, 혹은 항의나 투쟁의 배치가 달라질 수 있는 영화다. 사람의 어머니로 살아본 경험은 없지만 예순다섯인 나는 어머니의 처지에 신경이 쓰였다. 어머니는 속이 끓는다. 딸 때문이다. 딸은 어머니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고, 상상 언저리에만 가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그런’ 친밀성의 관계를 실천하고 있다. 어머니는 이에 대해 딸에게 대놓고 큰 소리로 뭐라 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터놓거나 의논할 수는 더더군다나 없다. 60대 초반인 그는 대학까지 나온 여성으로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도 있다. 웬만한 시민적 덕성은 그에게도 자기 이해나 사회생활의 중요한 요소다. 문제는 그 시민적 덕성 자체가 정상이니 비정상이니, 가족이니 남이니,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관습적 이데올로기와 자본의 가치에 휘둘린다는 데 있다. 일종의 허위의식에 포섭된 시민 의식이다. 그래서 관습을 거스르는 ‘비정상적’ 사건이나 현상이 남의 문제가 아닌 내 새끼 문제일 때, 더욱 쉽게 소통 불능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퀴어 당사자들은 이런 위치에 놓이는 부모를 ‘사회적 퀴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로서 가족 없는 이방인 아이들을 돕는 데 평생을 바친 제희를 돌본다. 어머니는 인지 장애증으로 외부와의 소통 기능까지 사라진 쇠락한 제희를 대놓고 비인간의 자리로 밀어내는 모든 비윤리적 제도에 힘껏 맞선다. 그의 존엄한 말년을 지켜주려 갖은 애를 다 쓴다. 딸에게는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괴롭히냐’며 부당하게 고통받는 피해자의 자리에서 ‘호소하는’ 어머니지만, 제희를 돌보는 일에서는 계약조건을 넘어서는 적극적 행위성을 발휘하는 모순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딸아이에게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 것 같아요’, 대화가 어려워진 제희 곁에서 어머니가 하는 이 말은 후회 밑에 자랑스러움을 감추고 있다. 모순을 가로지르는 어떤 전진을 암시한다. 제희야말로 누가 봐도 ‘공부를 너무 많이 한, 아마도 그래서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인생길을 간 여자’니까! 무의식적인 반어법으로 어머니는 제희와 딸의 ‘다른 삶의 선택’을, 이들이 추구하는 ‘다른 세상’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제희의 현재에 투사된 딸의 미래가 일차적 동기부여일 수 있지만, 제희를 돌보면서 경험하게 된 새로운 시민의 감각에 힘입어 어머니는 허위의식과 이율배반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나온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남들이 보기엔 헛산 것 같은 제희의 삶을 증언하는 서류와 카드, 감사패를 기를 쓰고 다시 찾아내는 어머니의 모습은 각성으로 변태(變態)하는 시민의 모습이다.

빈곤과 고립, 돌봐줄 사람 없이 홀로 내쳐짐으로 상징되는 비참한 말년의 예방책은 혈연 가족이 아니다. 적절하게 서로 챙기고 돌보며 ‘함께의 사회’를 만드는 친구, 동료, 이웃, 시민이다. 어머니는 이제 시민의 자리에서 주저 없이 큰 소리로 말한다. “어르신이 왜 가족이 없어요? 저도 있고, 어르신이 돌본 아이들도 있는데요!” 가족의 경계는 이동했고, 의미는 바뀌었다. 핵심은 가족이라서 언제든 갑자기 ‘보호자’로 호출되는 관계가 아니라, 돌봄으로 살피고 응답하니까 가족이 되는 시민 사이의 관계다. 이 깨달음을 체화해 가는 과정에서 어머니에게 가장 큰 지지대가 되는 사람이 딸의 애인, 레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딸은 어머니의 ‘가족 타령’에 저항하며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지만, 어머니의 끓는 속을 헤아릴 마음도 인내심도 없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인은 가까움과(딸의 애인이니까), 멂을(가족이 아니니까) 조절하며 차분히 설명하고, 알맞게 다정한 태도로 살핀다. 일상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나서서 돌본다. 레인의 돌봄은 소소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다. 영화가 힘겹게 해내는 이동과 재의미화는 제희를 돌보는 어머니, 어머니를 돌보는 레인의 구체적인 돌봄 속에서 한땀 한땀 성취된 것이다. “우리만 참는 거야? 우리만 참는 거 아니잖아.” 레인의 이 말은 모든 관계의 실핏줄은 마음 씀, 즉 돌봄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형태는 달라도 돌보는 사람은 모두 사랑의 포로임을 가르친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든 사랑은 돌봄 속에서 돌봄으로 꽃피나니, 사랑하자 돌보자.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과 인권연구소 창의 연구활동가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흰머리 휘날리며 – 예순 이후 페미니즘』, 『이미지 페미니즘』을 단독으로, 『돌봄과 인권』,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를 함께 썼다.



이미랑 감독


감독
이미랑 Lee Mi-rang

문예창작과 영화를 전공했다. <시>(감독 이창동 2010), <춘몽>(감독 장률 2016) 스크립터로 일했고, 단편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2005), <목욕>(2007), <춘정>(2013)을 연출했다. <딸에 대하여>는 첫 번째 장편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