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속의 일상, 일상 속의 전쟁 |
또 바람이 분다
Again the Wind Blows
감독 : 김태일, 주로미
제작연도 : 2022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캄보디아어, 아랍어, 보스니아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104분
상영일시 : 2023.11.18(토) 오후 1:3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3관
기획의도
[여성]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학살 벌어지고 지나간 자리에는 차별이 남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주하게된 폭력적인 상황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그중에서도 여성들은 끝까지 자신의 자리와 가족을 지켜내는데요 감독이 기획의도에서 표현한 ‘그것’이 무엇인지 관객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삶]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삶과 가치가 없는 삶, 차별받고 살아도 되는 삶과 귀한 삶이 따로 없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두렵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고 위험한 곳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이어집니다. 비참하기만 할 것 같은 생각과 다르게 온 힘을 다해 살아가고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기도 합니다. 부단히 이어내는 그들의 삶은 내 삶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어지는 과정들은 내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경계] 그냥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없어져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도 같아질 수 없고 하나 될 수 없는 다름이 사라지지 않지만 가깝게 지냅니다. 그런데 누구는 가깝고 누구는 없어도 되는 존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로가 다른건 어떻게 이해할 때 의미가 있을까요? 다름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대화의 시간 기록
김태일 감독
주로미 감독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신석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진영 한국농인LGBTQ+(수어통역)
김규남 AUD사회적협동조함(문자통역)
신석
안녕하세요? 관객과의 대화 사회를 맡게 된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신석입니다. 먼저 게스트분들 자기 소개와 각자 속한 곳에 대한 설명을 같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태일
추운 날 주말에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저는 또 바람이 분다의 연출을 맡은 김태일이라고 합니다. ‘상구네’라는 가족 제작 집단의 대표이기도 하고요. 돌이켜 보면 왜 내가 이런 식으로 작업을 했을까 약간 후회도 되는 것도 있어요. 돌아보면 그런 아무런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이런 생각을 안 가졌기 때문에 가족을 데리고 이렇게 작업을 하고 싶은, 만들고 싶다라는 의지 하나만 가지고 이렇게 왔었는데 다행히 무탈하게 이 작업을 마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옆에 있는 주로미 감독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함께 드리고 싶습니다.
주로미
안녕하세요? 주로미입니다. 옆에서 다 말씀을 해주셨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저한테 고맙다고 말씀을 하시니 당황스럽네요. 네, 저 상구네에서 엄마이자 함께 연출을 맡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뎡야핑
안녕하세요? 저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뎡야핑입니다. 저희가 팔레스타인에 몇 년에 한 번씩 현장 학습을 가는데, 실명을 쓰면 팔레스타인연대 관련 기록을 검색해서 입국을 금지하거든요.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실명이 아닌 활동명을 쓰고 있습니다. 저희 단체는 2013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도 평화 운동이 크게 일어났고 그때 여러 단체가 생겼는데 그중에 하나예요.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상황을 한국에 알리는 것과 팔레스타인의 연대 활동으로 현장에 직접 가는 두 가지 활동을 중심으로 해왔고, 몇 년 전에는 저희 단체 활동가들이 단체의 정체성을 정립하면서 “페미니스트 단체다.” 하고 저희를 규정한 바가 있습니다.
신석
먼저 관객들의 질문 전에 저희가 준비한 질문 몇 가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천인권영화제가 이번에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또 저희가 선택한 이유를 같이 관객들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려면 감독 두 분 말고 한 분 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까 해서 특별하게 뎡야핑 님을 모셨고요. 그래서 뎡야핑 님에게 처음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본인의 활동 경험을 통해서 보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을 거 같은데 영화를 보시면서 어떠셨는지 말씀해주세요.
뎡야핑
감독님들한테 엄청 신세를 많이 졌거든요. 저희는 현지식 먹으면서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는데 감독님들은 오래 체류하시니까 한국 음식들 많이 주셨어요. 저희가 팔레스타인 가면 현지분들한테 엄청난 환대를 받아요. 그런데 거기서 한국분들한테 엄청난 환대를 받았던 기억이 같이 갔던 모든 멤버에게 팔레스타인 환대와 더불어서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요. 2013년에도 팔레스타인 가서 찍으셨다는 걸 영화를 보면서 새삼 까먹고 있다가 생각이 났어요. 2013년에는 제가 몰랐으니까 그 상구 님이랑 소희 님의 애기 때 두 분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걸 보니까 그 모습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제가 못 본 사이에 어른이 되신 것도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제가 다른 지역은 잘 모르지만 팔레스타인에서 두 감독님이 정말 무대뽀라고 해도 되나? 아랍어를 못하시는데도 사람을 찾아가면서 만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다른 지역에서도 캄보디아나 보스니아에서도 그런 모습 보며 재밌었고, 팔레스타인에도 집시분들이 계세요. 로미분들 커뮤니티가 있어서 예전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영화 보면서 저는 그 로미분들이 자기네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있어서 인상깊었었는데 영화에서 그런 경험들을 떠올리고 생각하며 봤습니다.
신석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이 있을까요?
뎡야핑
상구님이. 팔레스타인에 가자마자 한국 가고 싶다고.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애기가 가가지고 있기에 좀 힘들지 않았을까.
신석
다음으로 감독님 두 분에게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작업하신 지가 굉장히 오래되셨고 그러다 보니까 기억이 다 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작업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았던 인물이라던가, 경험, 이야기들이 있다면 말씀을 해주세요.
주로미
제가 기억이 남았던 거는 이 작품이 4개 나라를 모아서 만들어진 거였는데 그 전에 작품들이 하나씩 다 나와 있었었어요. 근데 그 작품에 나오지 않은 것들을 되도록이면 다시 편집하게 됬어요. 그때 작업하면서 몰랐던 이야기를 이번에 새로 편집을 하면서 발견했던 점이 있어서 저희도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어요. 광주 작업에서, 시장에서, 그때도 굉장히 오랫동안 그 시장에서 함께 저희도 먹으면서 한 8개월을 살았거든요. 그래서 어머니하고 그 당시에 5.18과 관련된 작품을 만들었을 때는 그 말을 들었던 기억에 없었어요. 근데 이번에 편집하면서 자신을 천민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말을 듣고 굉장히 가슴아팠거든요. 왜 그때는 그 말이 저희에게는 들려오지 않았었을까?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또 한 가지는 <또 바람이 분다>에서는 칼리다 의원이 나오지만 그 당시에 저희가 갔을 때 만나기도 하고, 인터뷰도 다 땄지만 그때 작품에서는 이분이 등장하지 않았어요. 근데 이분이 이제 이번에는 이분을 등장 시키면서 이번에 팔레스타인 그 문제를 접하면서 그때도 그 말씀을 하셨는데, 가자지구에 폭격이 있었고 매년마다 주기적으로 폭격을 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10년 후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현재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상황들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희도 들었습니다.
뎡야핑
제가 인권 해설에도 칼리다 자라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썼어요. 사실 팔레스타인 사람 대부분이 그런 거 같은데 한 사람의 인생만 보면 팔레스타인 민중이 처한 역사적인 조건들, 상황들이 되게 한 사람의 인생사에 다 담겨있더라고요. 본인이 모든 걸 겪지 않아도 가족과 친구들,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독님들의 전 영화 <올 리브, 올리브(All live Olive)>(https://hrflix.org/film/%EC%98%AC-%EB%A6%AC%EB%B8%8C-%EC%98%AC%EB%A6%AC%EB%B8%8C/)에 나오지만 본인이 수감됐거나 가족 중에 꼭 수감됐던 사람이 있고, 살해당한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이 칼리다 자라 의원은, 저는 사실 영화 보면서 다른 분들이랑은 좀 결이 되게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평범한 민중들인데 이분은 진짜 유명한 정치가란 말이죠. 그런 정치가로서 활동을 해서 이스라엘의 그 탄압은 평범한 민중이 받는 것과 또 다른 억압을 받고 있죠. 그 억압 때문에 자신의 딸 장례식에 못 갔던 상황을 뉴스로만 짧게 보고 지나갔는데 실제 장례식장에 간 건 영화에서 처음 본 거예요. 누구나 모든 사람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도 자기 정치랑 상관없이 고통을 똑같이 느끼는구나 생각을 했어요. 그분은 팔레스타인의 정당의 의원으로 국회의원 신분이지만 사실은 국회의원이 된 시점은 2006년의 일이고, 2006년 이후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선거를 허락하지 않았어요. ‘뭔데 이스라엘이 허락을 하고 마느냐?’ 싶으실 수 있는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식적으로 군사 점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얘기할 때 같이 ‘화약고’고 ‘폭력의 악순환이 항상 반복’되고 있고, ‘그 동네는 항상 그렇게 위험한 동네다.’ 이런 인식이 있어요. ‘이 문제가 워낙 오래돼서 복잡한 문제다.’, ‘한쪽만 가해자가 아니고, 가해와 피해가 같이 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잘못 인식이 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단순한 문제거든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50년 넘게 군사 점령하고 있고 이스라엘이 건국됐을 때부터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인종 청소하고 추방하면서 들어섰거든요.
그래서 그때로부터 지금 75년 동안 식민 지배가 이어져 오고 있는 상황이에요. 문제는 점령자와 피점령자, 동등한 두 당사자가 아니고 점령자와 피점령자라는 너무 명확한 권력 관계의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를 그 프레임을 그거를 머릿속에 두고 이 사건을 모든 사건을 보면 하나도 어려울 게 없습니다. 점령자에게 저항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야기인 거죠.
신석
우리는 왜 이 사람들하고 연대해야 되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었거든요. 관련해서 관객 질문이 들어와서 읽어드릴게요. “뎡야핑 님에게 궁금해요. 저는 한국도 힘든데 왜 다른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서 활동을 하고 싶어 하냐라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뎡야핑 님도 그런 말을 들으신 적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뭐라고 답변을 하셨는지? 없다면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여쭙니다. 그리고 감독님들에게도 뭔가 의견을 듣고 싶다.”고 써주셨습니다.
뎡야핑
저도 감독님들 얘기가 되게 궁금한데… 저부터 얘기할까요? 저희는 뭐 옛날부터 북한이나 돕지 왜 그러냐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은 어렸을 때 일제강점기 때 우리 선조들이 독립운동 했던 거를 재밌게 읽었지만 역사 속의 낡은 이야기처럼 읽었어요. 그런데 제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하면서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싸웠구나 하고 새롭게 생생하게 다가오게 됐어요. 실제 저항하고 있는, 점령과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보면서 그냥 과거에 알았던 것도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몇 년 전에 엄청 감명 깊었던 게 김규식 선생이라는 독립운동가분이 프랑스에 조선의 상황을 알리러 가셨어요. 김규식 선생님 팀만 있는 게 아니고 한국에서 세 팀이 갔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는 비행기가 있고 그런 게 아니니까 두 팀은 도착을 못 했고, 김규식 선생님 팀만 간 거예요. 가서 세계의 사람들한테 우리 조선의 독립이 얼마나 정당한지 지지를 해달라라고 얘기를 하러 가셨는데 아무도 공감을 안 해주는 거예요. 자기네가 열강이고, 자기네와 이해관계는 없으니까. 김규식 선생님이 프랑스에서 활동을 1년 넘게 하시고 나중에 이제 떠나시게 될 때 마지막에 환송회를 하는 기록을 취재한 기자가 있어서 몇 년 전에 몇 십 년 만에 발굴이 된 거예요. 김규식 선생님이 엄청 울분을 터트리시더라고요. 프랑스는 자유와 해방과 그런 얘기를 하지만 사실 몇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이 이렇게 부당한 억압을 받고 있는데 이 환송회 자리에 온 사람 중에 거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규탄을 하고 가셨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 프랑스, 우리들도 그 조상들도 우리 문제를 우리끼리만 해결하는 게 아니고 세계의 연대를 구축해서 해결하려고 노력을 하셨잖아요. 그리고 근데 그 김규식 선생의 호소에 아무도 응답을 안 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은 그걸 보면서 저는 마음이 너무 아픈데 저희가 이제는 거의 뭐 100년을 가까이,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그 김규식 선생의 외침이 우리를 향하는 거 아닌가.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호소에 응답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태일
저는 뭐 이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가려져 있는 것들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렇게 작업하면서 민중의, 뭐 거창하게 ‘민중의 세계사’라는 타이틀을 걸었던 이유는 역사나 우리 안에 배제되거나 뭐 전쟁이라는 고통이 역사 책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생각을 깊게 해보면 일상의 삶 속에서도 많이 볼 수 있거든요. 근데 그런 고통과 아픔들을 최소한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고, 나도 그런 사람일 수 있다라는 생각과 상상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게 제가 뭐 만드는 작품이랑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이제 고민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저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어떤 우리가 모르는 타자의 문제로만 여긴다면 우리가 처해있는 남, 북한의 이 긴박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이러한 연대는 가져올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질 거 같거든요. 우리는 미래를 보면서, 현재의 문제를 가지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가는 이런 것들이 필요한 시점에 놓여있다고 저는 보고요. 팔레스타인 작업 할 때는 거기에 완전히 매몰되어서 있었는데 또 다른 보스니아나 이런 쪽으로 가다 보니까 또 팔레스타인 문제를 잠깐씩 잊곤 하지만 다시 보스니아에 살고 있는 집시를 통해서 ‘아, 이분들이 또 겪었던, 땅 없는 민족이 겪었던 이 고통과 아픔들이 어쩌면 팔레스타인이 겪고 있는 문제랑 집시들이 겪고 있는 문제, 그리고 이 땅에 가난으로부터 고통 받는 사람들과 뭐가 다를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계속 다큐를 만들면서 알아가야 되는 거고, 제대로 보기 위해서 생각을 많이 해야 되는 거다 보니까 분에 넘치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가장 중요한 거는 역시 ‘어, 저 사람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라는 이 생각을 가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석
이어서 이야기해 보면 여기에 나오는 나라만 네 나라이잖아요? 물론 한국은 지금처럼 이렇게 소통하시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마음의 벽을 허무는 작업들이 있어야 되고 또 다른 언어를 쓰시는 분들한테는 그 나라 언어도, 문화도, 여러 가지 역사나 이런 것들을 다 고민을 하셨어야 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작업 과정의 어려움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작업들을 혼자서 하신 게 아니라 특별하게 가족이 같이 운영을 하는 프로덕션이다 보니 영화에서는 싸우는 장면도 나오는데, 가족들간에 마음의 벽이 생기는 상황들을 다시 허물기 위해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떻게 노력을 하셨는지. 그런 부분을 얘기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주로미
저희가 한국 작품, 광주의 작품을 했을 때 언어 장벽은 없었지만 다 똑같은 거 같아요. 또 다른 어떤 벽에 부딪치게 되는데, 저희가 그 시대에 살았었기 때문에 저희는 대충 다 안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아, 광주에 내려가면 누구든지 인터뷰하기 되게 쉽고 빨리 끝날 수 있을 거야.’ 이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그 작품을 기획하고 마무리하는 데 2년이 넘게 걸렸어요. 막상 내려가니까 너무 어려움이 많은 거예요. 이미 오랜 시간을 지났기 때문에 그분들이 받아왔던 언론에 대한 불신, 또 (5.18에 대한) 이미지가 고착되어진 몇몇 사람들로 이어지는 것들에 대한 서운함, 이런 감정들이 너무 많으셨었는데 그 벽을 넘기 어려웠거든요. 5.18 선생님들 만났을 때 “저희가 애들을 데리고 이렇게 작업을 하는데 무슨 저희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하겠느냐.”며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들이 오죽하면 “야, 가족 사기단도 있었다.” 그러면서 저희들을 막 그래가지고 그 벽을 넘는 과정이 좀 오래 걸렸어요.
그런데 사실 언어가 통하니까 그거 정도는 그래도 저희가 부딪치면서 가능한데, 다른 나라에 갔을 때는 뭐 저희가 영어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 나라 언어를 아는 것도 아니고, 인삿말만 겨우 아는 정도로 갔었어요. 특히 팔레스타인 작업했을 때는 이스라엘 공항 통과하는데 굉장히 많은 어려움이 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저희는 아이들과 함께 왔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모습, 관광객으로 보였던 거예요. 그래서 입출국을 굉장히 쉽게 했었어요. 그런 장점도 있었어요. 저희 내부 안에서는 굉장히 티격태격 싸움을 많이 했었는데, 밖에서 작업할 때는 한 편 작업의 속도나 이런 게 어려움이 많고 힘들었지만 그 상대 분들을 만났을 때 가족이라는 모습이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모습에서 조금 더 마음의 문을 열고 저희를 받아주신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되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저희가 어린 나이부터 최근까지 20대가 된 아이들과 쭉 함께 했어요. 사실 저희는 그 작업 내내 굉장히 좋은 부모인 줄 알았거든요? ‘너네들이 이런 경험 어디서 해, 부모 잘 만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실은. 그런데 저희가 이번에 네 작업을 새로운 거를 쭉 편집하고 보면서 그렇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더라고요. 두 스텝들한테 너무 미안했고, 이 두 친구들 때문에 저희들 투덜거리는 작업자들이 그 시간을 잘 견뎌왔던 거 같아요. 지금은 두 친구는 각자 독립을 해서 저희를 떠났고 저희가 홀로 남아서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그 나머지 부분에서 저희 김태일 감독님이 말씀해주시면 될 거 같아요.
김태일
작업 전반적인 내용을 잘 말씀해주신 거 같아요. 저희가 그 작업에서 대상을 만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드려야 될 거 같은데 우리 상구가 가장 불만을 가졌던 부분이 “대책 없이 어떻게 그렇게 갈 수 있냐?” 가장 걸맞는 이야기인데요. 저희는 일단 어느 나라를 정하고 누구를 만날지, 지역은 어디로 갈지를 정하지 않고 갔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던 이면에는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숱한 사람들이 다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미리 작업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정해놓고 가는 거는 좀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졌고, 뭐 코디네이터나 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가 직접 선정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 눈에 맞는 사람을 찾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잠깐 얘기했지만 멜랑뜨레이 같은 경우 그 언덕에서 거진 두 달 가까이 농민분을 만나기 위해서 기다렸거든요. 기다렸다는 건 다른 게 아니고 지나가는 ‘저분이 우리랑 잘 맞을까?’, ‘좋은 사람일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계속 눈여겨보았어요. 인사가 ‘엘랑’이었는데 계속 ‘엘랑, 엘랑’하면서 언덕에서 기다렸는데 때가 되니까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작업을 하다 보니 이제 아들은 팔레스타인 갔을 때 아주 힘들어했었던 거 같고요.
저희의 작업 방식이 이렇다라는 걸 지금쯤은 이해를 했을 거 같다라는 생각은 드는데, 너무 약간 무모하기도 했었고, 너무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길이었어요. 다행스럽게 하여튼 가족이자 스텝이었지만 가족의 성격이 너무나 강했었는데, 그래도 제가 그렇게 카리스마가 없었는데 잘 따라주고, 별 탈 없이 와가지고 너무 하여튼 그게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이 드네요.
신석
자식 된 입장으로서는 정말 공감이 갑니다.(웃음) 관객석에서 의견을 또 올려주셨는데요. 아까 질문해주셨던 분이 “타자와 연결감을 상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영화도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라고 의견을 남겨주셨고요. 또 다른 분이 활동을 하다 보면 여전히 국제사회에 국내의 문제를 알리는 데 집중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거 같아요. UN를 비롯한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시민사회연대도 한국 정부나 기업의 문제 제기를 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런 활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팔레스타인에 함께 연대하고 끊임없이 이스라엘이 국제사회로부터 문제 제기를 당한다면 지배를 끊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라고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꼭 그렇게 되길 바라면서 관객과의 대화를 계속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손 꼭 안 드셔도 되고요, 말씀해주실 분이 있을까요? 네. 직접 입을 열어주시네요.
관객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뭐랄까요. 영화를 보면서 약간 ‘우리’라는 말 있잖아요, 우리가 각자가 생각하는 어떤 범주가 있는 거 같은데 그걸 조금 이렇게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한번 넓히려는 시도, 아까 여기 의견주신 분도 있지만 상상을 해보게 되는 그게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평소 생각이 내가 우리라는 범주를 어디까지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돌아보게 된 거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이 여기 나오는 주인공분들, 각 국가에 계시는 주인공분들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한 자리에 화면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가 없는 분들일 텐데’라는 상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분들끼리도 서로 이런 모습들을 본인의 모습을 포함해서 (서로를) 볼 수 있으면 되게 좋겠다. 근데 그게 되게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요. 혹시나 (영화에 출연하신) 주인공분들 중에 혹시 영화를 보신 경우나 그런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주로미
저희가 이제 그전에 뭐 작업들, 나오셨던 분들, 캄보디아 같은 경우는 거기 현지에 아시는 분이 계셔서 그분을 통해서 그 마을에 가서 보여드렸었고요.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이제 뎡야핑 님이 해주실 거 같고, 보스니아 경우는 최근 만들었기 때문에 작업하고 있다라는 건 다 알고 계신데 아직 보지는 못 했는데 기회가 된다고 한다면 어떤 통로를 통해서라도 보여드리려고 지금 계획은 하고 있습니다.
뎡야핑
제가 아까 잘못 말했네요. 2014년에 했다고. 2017년에는 제가 팔레스타인 갔을 때 두 분 영화 <올 리브 올리브(All live Olive)>를 그 분 출연하신 분들 중심으로 보여드리려고 시골까지 갔잖아요. 아끄라바 이런 데도 처음 가보고. 그리고 나볼루스라는 큰 도시에서는 크게 상영회도 하고 그랬었어요. 그래서 일단 본인들이 나오니까 엄청 좋아하시더라고요. 출연자분들이 엄청나게 좋아하셨어요. 근데 제가 생각할 때는 이 지금 이번에 새로 만드신 영화에는 4개 시공간에 다른 여러 사람들이 나오니까 그분들이 서로 이렇게 자기 모습만 보는 게 아니고, 서로의 얘기가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를 각자 보실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질문 듣고 저희 다음에 팔레스타인 가면 이 영화도 상영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석
그러면 이번 영화에 나오신 분들은 이 영화가 나온 후에 한 번도 보신 적이 없나요?
주로미
지금 현재요? 네 아직 보신 분이 없어요. 광주에 계신 분들한테 말씀은 다 드렸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전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여전히 시장에서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시간 내기가 어려우시더라고요. 초대를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어요. 네.
뎡야핑
그럼 나중에 마지막에 에필로그 나오는 식은 언제 되는 거예요?
주로미
그거는 작년 5월인가? 한 번 저희가 내려가서 시장 어머니와 그다음 평화반점 그리고 만났던 분들 중심으로 가서 인사를 쭉 드렸었거든요.
뎡야핑
(감독님들이) 인사를 진짜 열심히 하시는 거 같아요. 2017년에 팔레스타인에 갈 때도 선물을 전해주신다고 하셨는데 저희가 그때 배낭을 한 명씩 각자 자기 배낭이 15kg 제한이 있는데 선물을 꼭 전해달라고 하셔서 만났어요. 그런데 배낭을 하나를 갖고 오신 거예요. 이거를 다 나눠달라고. 그래서 그 선물을 진짜 감사하게 갖고 가서 저는 사실은 그전에 그렇게 감독님들처럼 사람들이랑 개인적으로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람한테도 선물을 잘 해드린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항상 제 짐만으로도 그냥 끝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두 분이 이미 사실은 작업도 다 끝났고 더는 또 만나기가 어려운 서로 상황인데도 이렇게 잊지 않고 한국의 선물은 이런 것이다라고 전해준 그 배낭 하나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주로미
저희가 그 작품 속 선생님분들을 만나는 데 지금까지도 다 국제 전화를 하기 어려우니까 페이스톡이나 이런 방법으로 계속 연대를 하고 있어요. 그 다음에 캄보디아에 계신 그 친구들, 뜨레인의 가족들은 핸드폰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소식을 알기가 어려워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찌 됐든 저희가 계속 국제 통화를 했었는데 최근에 없어졌는지 연락이 잘 안 되는데, 캄보디아에 한국분들이 계셔서 그분들을 통해서 소식을 계속 전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이제 작업은 작업이되 저희가 만났던 분들이 굉장히 저희들한테 마음을 굉장히 크게 내주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게 최소한이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팔레스타인 가신다고, 그 얘기 듣고 옳거니 잘 됐다 하고 (선물을) 싸서 소식을 전하는 거거든요. 더 많은 것들을 해드리고 싶은데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많고, 사실은 얼굴을 뵙고 이러고 싶은데 저희 이제 조건상 그렇게 되지 못하니까 기회가 되면, 얹어서 보내고 그러는데 하여튼 그분들이 저희에게 내어줬던 마음을 생각하면 아마 이 작품 속에서 만나셨던 분들은 항상 저희 마음속에 갖고 가게 될 거 같아요.
신석
저는 사실 엄청 이기적이어가지고, 남한테 별로 그렇게 신경을 잘 안 쓰는데 세 분을 보니까 많이 반성을 하게 됩니다.
뎡야핑
하나 추가하고 싶은데, 팔레스타인은 사실 75년이나 억압 받아왔다고 했잖아요. 팔레스타인에 대한 다큐나 영화, 작업들이 진짜 많아요. 세계적으로 많이 주목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런데도 여태까지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심각해지는게 통탄스러운 일이에요. 기자든, 감독이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니 사람들을 그냥 소비적으로 대하고, 가면은 끝인 경우가 많다가 아니라 그냥 다 그러죠. 그러니까 그런 문제에 대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야기들 되게 많이 들었거든요. 우리(팔레스타인) 이야기를 그냥 일회성으로 소비하러 온다고, 그냥 자기네 여러 가지 소재거리가 필요하고 그중에 하나로 다루고 한 번으로 소비되고 끝나는 거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감독님들이 정말 그거랑 완전 정반대되는 그런 감동적인 태도를 보여주셔가지고 더 너무 좋아요.
신석
영상에서 아이들한테 현지에서 일 안 한다고 막 뭐라 하시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그들과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하시는 모습들이 많은 분들한테 좀 울림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 또 의견이 하나 올라와서 전달 드리겠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나라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도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잠잠하고 담담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에 나온 곳들 어디에나 많은 고통과 폭력이 기억속에 몸에 새겨져 있고,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인터뷰하신 분들의 이야기와 눈빛 하나하나, 감독님들의 발걸음과 가족분들의 솔직한 이야기와 가족으로서 함께 애쓰는 모습에 희망이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리 있지만 영화에 나오는 모든 분들이 부디 조금 더 평화롭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뎡야핑 님 말씀도 감사합니다. 팔레스타인 상황이 더 좋아지길 바란다.”고 말씀주셨습니다.
저희 여기 계신 분들은 다 그렇게 바라고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희가 시간이 돼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정리를 할까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하나씩 질문을 드릴 건데요. 일단 감독님 두 분께 질문드립니다. 민중의 세계사가 제가 듣기로는 10부작 기획을 하셨다라고 하셨는데,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시는지, 활동이나 이런 부분들이 궁금하고요. 그 다음에 이미 아까 앞에서 말씀을 해주셨지만 다른 두 스텝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혹시 더 말씀해주실 게 있다면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뎡야핑 님에게는 앞으로 어떻게 활동을 이어가실지 소개를 해주시고 혹시 관객분들이랑 같이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태일
민중의 세계사를 기획했을 때 제 나이가 30대 후반이었거든요. 그리고 10년을 준비하고 작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는데, 이제 환갑이 됐어요. 체력적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10부작을 마치면 정말 나는 꿈을 이룰 텐데 이런 식의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거든요. 다시 무작정 해외로 떠나는, 내가 꿈꾸던 작업들을 해낼 수 있을까 이거는 되게 미지수로 남을 거 같다는 공포스러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러한 정권 정부 하에서 문화적인 지원과 이런 게 계속 줄어드는 이런 상황에서는 하기는 참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지만 뭐 만들고 싶은 내용이 해외에만 있는 게 아니라서 국내 작업을 현재 들어가서 2년째 작업 중이고요. 하여튼 좋은 날이 와서 5부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로미
저희가 이제 4부까지 진행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왜 국내에도 문제가 많고,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데 뭐 굳이 해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 그런 거 때문에 과정에서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었어요. 제가 남편한테 하는 얘기가 왜 10부작이라고 얘기를 해갖고 이렇게 고생을 시키느냐 제가 그렇게 말을 하는데, 저희 작품이 지금 4부까지 끝났지만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작품도 어쩌면 민중의 세계사 중에 한 이야기일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해외 작품, 국경을 뛰어넘든 아니든 그 이야기가 저희가 만나왔던 분들 통해서 알았지만 너무나 비슷한 삶이라는 생각을 해요. 문화만 다르고, 언어가 다를 뿐이지, 서로가 다 비슷한 삶들을 살아가고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려운 시기에, 모두 어렵지만 이 상황들 안에서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많은 고민들을 안고 가져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스텝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잘 가게 될 거 같아요. 저희가 옛날에는 얘네들 언제 독립 시키느냐 이런 얘기했는데, 그게 아니라 반대로 저희가 아이들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그런 심리적인, 정서적인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뎡야핑
저 아까 까먹었는데 광주에서 본인이 “천민인데 이렇게 찍어줘서 너무 감동스럽다”는 표현하신 선생님 보면서 저도 그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었거든요. 감독님들 작업에서 정말 팔레스타인 사람 자체가 뭐 취재하러 오는 사람은 많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정부들이 모두 지지하는 이스라엘이랑 대비했을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정말 목소리 없는 자들이라고 말하기 부족함이 없는데 그중에서도 정말 조명 받지 못하는 특히 이번 영화에 나오는 분들 목소리들을 들려주시는 게 가치 있어요. 이번 영화에서도 로미분들 이야기 처음 듣는 분도 있었는데, 너무 기대가 되고요. 그 이후에 또 컴플레이션 모아서 만들어주시면 재밌겠다는 생각과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까 전에 “팔레스타인 문제는 억압자와 그 억압에 저항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쉽다.”라고 얘기했지만 75년이나 됐었고 사실은 복잡해진 면이 없지 않아요. 팔레스타인 민중이 자결권을 인정하면 되는 거라 쉽다는 것일 뿐이죠. 사실 이 영화에서 나온 부분이 서안지구에 사는 분들 얘기고 지금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건 좁은 가자지구 얘기거든요. 그래서 가자지구에서 지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17년 동안 육해공을 봉쇄한 채 점령군이 폭격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고 이번에는 전례 없는 속도로 사람을 죽이는 그 속도가 전이랑 비교가 안 되는 상황이에요.
이 문제는 여러 번 있었던 일이에요. 2014년에도 2600명 가까이 학살을 했고, 불과 2년 전에는 가자 사람들 학살을 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계속 사회가 극우화 되고 있는데 저는 사실은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이 그렇게 극우화 되는 게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군사 점령 체제나 아무 변화가 없거든요. 저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죠. 100명 죽일 거 150명 죽이고, 이런 차이가 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원하는 건 150명을 죽이지 않고 100명을 죽이길 원하는 게 아니거든요. 죽이지 않을, 죽일 수 있는 그 이스라엘의 그 압도적인 파워 그 자체가 없어져야 된다고 얘기를 하는 거라서 이스라엘의 권력 변화가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번에 극우 정권이 들어서고 나니까 그 죽이는 속도가 전에 없다고 했잖아요? 너무 너무 충격적이에요. 사실은 이 극우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미국에서도 이스라엘의 극우 정권을 엄청 규탄을 했었어요. 왜냐하면 너무 노골적으로 전혀 가식도 떨지 않고, 노골적으로 사람들을 탄압하고 학살하니까. 그런데 그러면은 이스라엘이 극우 정권이 돼서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걸 보고 차이가 있구나 하고 처음에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 전례 없는 속도로 정말 사람을 죽이고 있는데도 미국이나 유럽의 모든 정권들이 전례 없이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거든요. 저는 이런 상황을 처음 보는데 (극우정권 이전에는) 최소한의 기만이나 위선적인 태도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이 편향된 게 아니고 ‘팀 이스라엘’을 만들어서 같이 싸우고 있어요. 지금 이 사람들을 공동정범이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행동을 하고 있어요. 이스라엘의 거짓말을 아무 검증 없이 서구의 정치가들이 계속 반복하고 있으니까 언론들도 똑같이 받아쓰기를 하고 있어요. 이스라엘의 거짓말이라는게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입증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똑같은 거짓말을 철회하지 않거나 또 새로운 거짓말을 그대로 계속 일부러 믿어주는거죠. 그러니까 극우 정권이냐 아니냐와는 상관 없이 미국, 유럽이 이스라엘이라는 존재 자체가 역사적으로 자기네들 제국이 해온 정착민들을 보내서 식민 모국으로서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하는 프로젝트의 일부로서 이스라엘을 여전히 그렇게 인식하고 있고, 유럽의 식민지 프로젝트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사람을 이렇게 죽이면 안 된다.” 하다 못해 “민간인은 보호를 해야 한다.” 이런 위선적이더라도 질서가 있었는데, 원칙이 지금 완전히 무너진 걸 보고 저도 인간에 대한 신뢰가 사실은 무너졌어요.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이 시스템을 아예 무시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질문에 지금 저는 답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전례 없는 속도로 사람을 그렇게 죽이니까 세계적으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목소리가 그 속도에 비례해서 커지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끼고 있거든요.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들이 2013년 이라크 침공한 이후로, 20년 만에 그 규모를 능가하는 전 세계 분노한 민중들이 길거리로 뛰어나오고 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사실 저는 지금 26일 일요일 2시에 종로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3차 집회를 하거든요. 사람들이 이렇게 집회를 여러 번을 하는 것도 집회를 할수록 원래 사람들이 줄어들잖아요? 그런데 1차 때보다 2차 때 더 많이 나왔고 3차 때는 더 많이 나오실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서울에 와주실 수 있으면 같이 결합을 해주시면 좋겠고, 인천에서 이걸 그 운동을 조직하고 싶은데 그 역량이 제한돼서 못 하겠다는 분이 계셔서 그런 단체들이랑 연결해서 함께해주시면 좋겠어요. 특히 영화제는 7월 7일 집단 학살이 시작된 이후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한국 시민 사회 긴급행동”이라는 연대체를 급하게 만들었는데 거기에 인천인권영화제가 지금 들어와 있거든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당장 휴전에 응하라라는 요구에 한국의 180개 넘는 단체들이 연결되어 있어요. 계속 늘고 있고요. 공동 주체라는 게 큰 단체만 받는 게 아니고 자기가 속해 있는 책 읽기 모임 이런 데서도 가입하실 수 있거든요. 공동 주체라는 건 꼭 실무를 나눠야 되는 건 아니고, 한국에서 나의 문제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거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라서 자기가 속한 공간에서 같이 공동 주체로 가입할 수 있게 서로 독려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자지구를 긴급하게 지원하는 모금함을 어제부터 시작을 했어요. 사실은 10월 7일 이후에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 후원이 엄청 많이 들어왔어요. 그 후원을 다 조직하지 않았는데… 너무 바빠서 여력이 없었어요. 그런데 후원금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제가 그 후원 10월 7일 이후에 들어온 후원금은 가자지구에 보낼 예정이거든요. 저희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후원하신 분들이 많은데 가자지구에 이렇게 연대하고 싶은 마음들을 받아서 지금 105개 단체가 긴급 차원에서 모금함을 시작했으니까 그것도 같이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저희가 이스라엘이 75년 동안 이스라엘을 향해서 국제사회나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특히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는데 이 상황이 더 나빠지기만 했어요. 저도 운동을 한 지 20년이 됐는데 20년 동안 상황이 계속 더 나빠져서 사실은 내가 운동을 뭘 하고 있는 건지 회의감 느낄 때 많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싸우고 있기 때문에 감히 제가 그만두고 그럴 수 없었어요. 저희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기본으로 하고 있는 운동은 BDS 운동이에요. 이스라엘이 어떻게든 멈추지 않으니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군사 점령지에서 철수하도록 그리고 국제 보편 인권법을 지키도록 보이콧하자는 운동이에요. 개인들의 차원에서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군사 점령 식민지배와 관련된 기업들을 보이콧을 할 수 있고, 그리고 기업에서 투자, 펀드 같은 걸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관련돼서 투자 철회를 할 수도 있고, 이스라엘 기업과 관계를 끊을 수 있고, 국가 차원에서 무기를 판매하지 않는다거나 단교를 선언하거나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그 식민 지배를 그만두도록 강제하자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거는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백인이 흑인을 지배하던 그 사회를 보이콧 운동으로 전 세계가 단결해서 결국 그 아파르트 체제를 철폐한 경험이 있거든요.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그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게 그냥 내가 생각할 때는 내가 특별히 이스라엘과 관련된 게 없으니까 내가 뭐 소비자로서 보이콧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렇게 보통은 생각을 많이 하시는데, 그게 아니에요. 지금 당장 이 집단 학살을 막게 하려면 더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이콧 한다는 선언을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만약에 내가 학생이면 내가 속한 학교까지는 힘들지만 우리 동아리나 아까 말한 책 읽기 모임 이런 차원에서도 이스라엘과 관련된, 이스라엘을 보이콧 하겠다라고 선언을 하시고 그 선언문을 공유해주시면 그거를 팔레스타인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한테 엄청 큰 힘이 되거든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를 그쪽에 알리는 것도, 그래서 세계적으로 회람되게 하는 것도 중요해요. 저희가 한국에서 엄청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보면서 한국에도 이렇게 크게 연대 운동이 있을 줄 몰랐다고 놀라고, 출판계에서도 보이콧하려고 노력을 하고 계시고 다양한 분야에서 하시고 계시니까 자기가 있는 분야에서 어떤 선언을 조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석
오늘 보신 영화가 평화의 바람이 한 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