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두 개인 집 A House with Two Yards

설수안 l 2025 l 다큐멘터리 l 74분 l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오세봉 할머니가 친정어머니에게 받은 상치(상추)씨를 받아 도시의 화분에 심었다. 상추를 기르기 위해 할머니의 마당을 들어서면 고양이와 전쟁 속의 사람들과 같은 주변을 돌봐온 할머니의 삶의 이야기가 들린다.


시놉시스

이웃에 살던 할머니의 상추씨가 도시의 화분에서 자라 대를 이루고 씨를 맺었다. 이를 바라보며, 그 씨를 준 할머니의 마당과 고양이, 발자국 소리, 그리고 마을의 장인으로서 주변 생명을 돌보던 할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할머니의 자랑 어린 옛 이야기들은 집터에 아직 남은 바람에 묻히고, 당시 시작된 몸의 통증은 몸 이곳저곳의 얽힘과 세상의 많은 할머니들이 남긴 보이지 않는 파장을 상기시킨다.

Synopsis

The lettuce seeds from an old neighbor have grown in a pot in the city and now bearing seeds. Watching them, I recall her yard  with the cats, her footsteps, and the craftwoman’s hands. Her voices still linger over the ruins of her house, while my pain from back then reminds me of the resonances.


| 몫소리의 서사 |

감독 : 설수안
제작연도 : 2025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74분

상영일시 : 2025.12.6.(토) 오후 1:30
상영장소 : 영화공간 주안 4관

대화의 시간
설수안 감독
미니미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작품해설

<마당이 두 개인 집>은 토종 상치 씨앗을 지켜 온 오세봉 할머니의 일상을 따라가며, 평생 공동체를 살펴 온 ‘살림 노동’의 얼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특별한 사건 대신, 오래 축적된 몸의 시간과 생활의 리듬을 통해 한 사람이 지탱해 온 공동체의 규모를 드러낸다. 

카메라는 할머니의 집 대문 앞, 앞마당, 방문 앞, 방 안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두 개의 마당’을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시골의 마당과 도시 화분을 잇는 통로로 확장해 간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의 몸에 새겨진 노동의 흔적과 밭일로 통증을 겪는 감독의 몸, 피아노를 연습하며 손의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이 서로 겹쳐진다. 또한 ‘상추’ 대신 ‘상치’라 부르고, 감독을 이름 대신 ‘씨앗애’라고 부를 때, 영화는 할머니의 사투리와 호명 방식을 그대로 품어 다른 이의 삶과 맺어지는 관계의 결을 세심히 보여준다. 

관객은 시간이 지날수록 잘 알아듣기 어려웠던 할머니의 언어가 서서히 들리고, 어느새 달라진 할머니와의 거리를 느끼며 관찰자로서가 아닌 연대감으로 다른 이의 삶과 마음을 상상하는 영화적 경험을 한다. 영화는 씨앗, 사투리, 굽은 몸과 봉숭아 물이 든 손톱처럼 사라지거나 사라지는 중인 것들을 다시 불러내 이름 없이 이어져 온 살림 노동의 시간을 오늘의 우리 곁으로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연결한다.

미니미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인권해설

당신도 당신만의 가이아 이야기를 쓰시라

이 고요하고 섬세한 영화는 관객들을 여러 갈래의 길로 초대한다. 영화는 무엇보다 결혼을 통해 다른 성씨의 부족사회에 이주해 가서 평생을 그곳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헌신해 온 고령자 여성 농부의 생애사로 읽힌다. 관객들은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주인공 ‘어머니’가 생을 마감하셨다는 걸 알게 되면서 생애사로서의 영화 의미를 좀 더 곱씹게 된다. 또한 우리는 한 여성 농부의 생애사라는 작은 우주 아래에서 여러 색감과 음색으로 들리고(세봉의 목소리) 보이는(감독의 카메라) 구체적 일상의 이야기와 정동을 만난다.

나는 생태 위기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이 이야기의 나지막한 그러나 뚜렷한 맥박을 느낀다. 전 생애 동안 가부장제와 고된 농경사회의 밀려드는 일 속에서 탁월하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자의 자리에서 (이방인인) 자신과 (새로 맺은) 친족과 (버려둔 채 있었던) 밭을 지켜냈을 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대소사와 의례에 중요한 기여를 해 온 여성 농민의 이야기는 이제 전격적인 전환을 요청하는 인류사의 맥락 속에서 아름다운 한 편의 가이아 이야기로 읽힌다. 이 가이아의 이야기 속에서 세봉의 이야기는 단 한 명의 여성 생애를 넘어 생태 시민의 탄생이라는 맥락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생태 시민은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적 재앙에 직면해 과거에나 현재나 구조적 불평등의 자리에서 가장 큰 ‘희생’을 떠안게 된 여성 농민의 역설적인 변혁의 힘을 가리킨다. 여성-농민-운동이 위치한 (시민권, 소유권 등의) 권리 기반 맥락을 생태 위기를 중심으로 재편할 때, 토종 씨앗을 지켜온 고령자 여성농민의 엄연한 존재는 다른 전망의 열림이다.

세봉이 토종 상추 씨앗과 그 재배 방식을 ‘씨앗애’에게 물려주려 애쓰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낭패를 겪을 때, 그건 단순히 사적으로 속상한 일이 아니라, 전 세계 생태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의 문제다. 세봉에게 상추 씨앗은, 어린 나이에 고향에서 ‘뿌리뽑혀’ 낯선 곳으로 시집간 딸이 그곳에서 새롭게 잘 뿌리내리도록 어머니가 전한 모계적 지역 지식과 문화 전통의 ‘유산’이고, 세봉은 이 씨앗을 지켜내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지켜냈다. 그런데 지금은? 단지 세봉의 생이 끝나기 때문이 아니라, 상추의 세대 간 생애를 지켜줄 생태계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세봉도, 세봉의 씨앗을 지키고자 하는 씨앗애도 ‘숭고한 비극적 정조’를 떨치지 못한다. 그러나 ‘내 손을 봐라.’ ‘내가 이런 여자(였)다.’라고 말할 때 관객인 나는 부르르 전율하며 세봉의 존재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는 현재 진행형으로 새로 등장해야 할, 등장하고 있는 생태 시민들을 향한 강렬한 촉구와 연대의 몸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이어짐의 환하고 따스하고 분명한 예시가 바로 감독 씨앗애가 세봉과 맺는 관계이고, 또 그가 몸을 매개로 펼치는 질문과 성찰, 경험이다. 음은(존재는) 단독자로서는 들릴 수 있는 음이 될 수 없다. 머리가 손을 지시하는 게 아니라 손이 저 스스로 행위한다, 손을 자유케 하라. 몸의 한 곳이 안 좋아지면 다른 곳들이 같이 움직이며 다양한 의미에서 ‘협력’한다.

감독의 느낌과 질문, 깨달음은 선배 생태-돌봄 시민 세봉의 두텁고 밀도 높은 삶과 여러 갈래로 엮이며, 최근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에코 페미니즘이나 신유물론 혹은 포스트휴먼 페미니즘 등의 이론적 사유를 조용히 손짓하고, 이 모든 질문을 ‘생태 돌봄’의 기본 원리와 실천으로 모은다. 관객들에게 ‘당신도 당신의 가이아 이야기를 쓰시라’, 평화롭게 너무나 평화롭게, 그래서 거부할 수 없는 끌림으로 청한다.

김영옥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저자. 『돌봄과 인권』 공저자.

60대 후반의 당사자 페미니스트로서 노년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몸의 경험을 중심에 둔 노년 인권과 세대 간 연대, 그리고 누구나/아무나 받고 하는 돌봄에 관심이 많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노년과 질병, 아픈 몸, 돌봄 등에 대한 여성주의 담론과 이론화를 모색했고, <인권연구소 창>에서 돌봄과 인권의 근본 관계를 새롭게 근간 짓는 데 몰두하고 있다

설수안 감독

감독
설수안 Seol Suan

2007년 <불편한 식사>로 먹거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해 <씨앗의 이름>, <불편>, <씨앗의 시간> 등의 설치 비디오 및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땅을 중심으로 한 관계, 살림 노동 등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작업 중 시작한 텃밭 농사를 지속하며 순환의 삶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연출의도
돌봄 노동을 해 온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적 이야기틀로 담으려 했다.

연출 · 설경숙
촬영감독 · 이희섭
음악감독 · 유지완 김오키
색보정 컬러리스트 · 김형희
사운드 · 표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