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르는 : 삶과 곁, 공존을 향해, |
문명의 끝에서
Anthropocene
감독 : 임기웅
제작연도 : 2023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70분
상영일시 : 2025.12.6.(토) 오후 2:0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3관
기획의도
‘문명의 끝에서’는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가?의 과정을 폐지 줍는 사람과 선별장 노동자의 손끝을 따라 서울의 쓰레기가 도착하는 인천 수도권매립지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도시개발의 욕망은 오랜 삶의 공간을 부수고 수도권매립지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폐기물을 남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도권에서만 매일 수만 톤의 쓰레기가 나오지만, 이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대부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무관심 속에 방치된 쓰레기 문제는 결국 사회적으로는 약자에게, 지역적으로는 소외된 지역에 몰린다. 노인 등 취약계층과 외국인 노동자에게 전가된 쓰레기 처리, 그리고 우리는 옆 동네에 있는 거대한 매립지와 소각장 문제는 애써 외면한다. 내 이웃이 겪고 있는, 우리가 감각 할 수 있는 영역의 쓰레기 문제를 이야기해본다. 쓰레기 문제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보는 지역적 문제이다
1부가 이 쓰레기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하는 그낌이었다면 2부에서는 재개발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재개발로 폐허가 된 곳을 지켜보면서 거기는 사람이 살았고 재개발로 인해서 도시가 버려지는데 그 버려진 것 안에 살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이 화두가 쓰레기만의 문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은 구조적이고 거대한 문제라서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더 이상 개인에게 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생산자들과 정부가 공공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건 단순히 쓰레기매립지의 문제가 아니야! 문명의 문제, 지구의 문제, 우리의 삶의 문제이고 미래의 문제야 라고. 거대한 쓰레기 소각장은 우리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왜 우리가 쓰레기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지, 이것이 단순히 쓰레기 처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 쓰레기 불평등과 도시 빈민
○ 재개발과 쫓겨난 사람들
○ 쓰레기 문제는 사회구조적 문제
대화의 시간 기록
임기웅 감독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창길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김보석 한국농인LGBT+ (수어통역)
강서영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 (문자통역)
창길
먼저 우리 나와주신 게스트분들 인사 먼저 할까요.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윤영
저는 빈곤사회연대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윤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임기웅
안녕하세요. 감독 임기웅입니다.
창길
임기웅 감독님은 인천에서 어린 시절부터 인천에서 자랐고 또 청년시절에 인천에서 여러 활동도 하셨고 또하 지역에서 마을이나 인천에 관련된 영화나 작품활동을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에 특별히 쓰레기 문제를 중심으로 한 <문명의 끝에서> 영화를 만드시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임기웅
2020년에 인천녹색연합 산하기구로 환경교육을 하고 있는 ‘이랑’이라는 단체에서 저에게 교육영상을 만들어달라고 의뢰가 왔었어요.그래서 자원재생순환센터 몇 군데를 돌아봤는데 그때 쓰레기 선별장에서 봤었던 모습에 충격이 너무 커서 교육영상 수준으로 끝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창길
저도 작품 보면서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김윤영 활동가님한테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문명의 끝에서> 영화 이야기를 할 때 대부분 환경 문제, 쓰레기 문제에 집중해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거든요.
이 작품이 작년에 국제환경영화제에서 대상받기도 했고 영화에서도 계속 나오지만 인터뷰를 하시는 환경운동 활동가분들도 그렇고 환경단체들에서도 공동체 상영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런데 인천인권영화제에서는 환경, 쓰레기만이 아니라 영화에서 다루는 다른 문제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문제, 도시의 문제 같은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싶어서 김윤영 활동가님을 게스트로 모셨어요.
김윤영 활동가님은 이 작품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윤영
저는 이 작품이 환경영화제에서 많이 초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진행하는 도시영화제에도 꼭 초대가 되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결국 이 영화를 보고 제가 많이 생각했던 것은 보존하는 것보다 폐기해버리는 것이 훨씬 저렴한 사회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살다가 사라진 사람들, 또는 그 도시에 남거나 유입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들이 도시변화의 결과로서 경제적 편차로 이어지는 것처럼 쓰레기가 버려지는 방식, 그리고 생산되는 방식 여기에도 분명히 구조적인 배경이 상당히 많이 개입되어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할 때만 우리가 지금처럼 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창길
그래서 저는 보통 쓰레기 문제나 환경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에서 보이는 시선과는 약간 다른 것들이 <문명의 끝에서>에서는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업을 하실 때 어떤 부분에 집중하시면서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기웅
일단 쓰레기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다른 작품들이 거의 다 개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책 같은 경우도 쓰레기를 어떻게 분리수거를 잘합시다,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기는 합니다만 그런 이야기들은 제가 굳이 할 필요는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처음 재활용선별장에 갔을 때 느꼈던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쓰레기 선별장을 가기 이전에 소각장을 먼저 갔거든요. 소각장이 규모면에서는 더 웅장했습니다. 거의 한 몇 십 미터 되는 거대한 높이에 삼발이 같은 쇠로 된 집게가 쓰레기를 들고 옮기는데 그때 느낀 것은 충격이라기보다 와, 거대하다. 웅장하다.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나는 왜 선별장에서 더 충격을 얻었을까? 그리고 왜 마음이 거기에 더 동했을까? 라는 스스로의 물음표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각장에는 사람이 쓰레기를 만지지 않습니다. 소각장 직원분은 유리격벽으로 격리된 곳에서 기계의 손잡이만 조종을 하고 있는거에요. 사람이 쓰레기와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쓰레기에 대한 감정적인 느낌이 안 왔어요. 그런데 선별장에서는 어르신들이 쓰레기가 컨베이어벨트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데 그대로 맞고 일하시는 거예요. 그때 여기서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다 헤집고 고르는 모습을 보고 내가 그래서 충격을 받았구나, 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의 중심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로 가야겠다. 환경 문제이기도 한데 그거는 조금 다른 큰 문제라고 하면, 이 안의 속 주제는 사람에 초점을 맞춰주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창길
영상에서 보면 지금 말씀하시는 것처럼 쓰레기 문제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로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쓰레기 문제가 거기에 살고있는 약자, 빈민들에게 전가시키는 부분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이게 한국사회에서 빈곤이 확대 재생산 되면서 책임이 마치 개인에게 있는 것처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활동하시면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실제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윤영
영화 보면서 굉장히 많은 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었는데요. 저는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을 하면서 홈리스행동이라는 단체와 같이 사무실을 쓰고 있어요. 홈리스 야학도 하고 쪽방 사시는 분들하고 같이 식사도 나눠먹기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거리상담도 나가고 있는데요. 그렇게 만나는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정말 오랜 시간 노동을 하십니다. 특히 폐지수집노동을 하시는 분들 같은 경우에는 여력만 된다면 보통 12시간 이상 거리를 다니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 한번 신분증이 없는 분의 신분증을 한 활동가가 만들려고 동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도 굉장히 매일매일 오랜 시간 폐지수집노동을 하시는 분이었거든요. 그분이 아무리 찍어봐도 지문이 모두 다 닳아서 한 손가락도 지문이 나오지 않았어요. 경찰서에서도 이 정도로 지문이 심하게 없는 경우도 처음 본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이 사람의 게으름이나 나태함 때문에 네가 이렇게 된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저는 여기에서 조금 답답함과 아이러니를 느낄 때가 되게 많이 있는 것 같아요.
폐지수집노동에 대해서 정말 100키로를 모아야 천 원을 받을 수 있는 이러한 노동이 있다는 것과, 또 한편에 이런 것들을 둘러싼 다른 노동들, 쓰레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노동들이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있지는 못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저는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노동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기술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리고 굉장히 힘든 일인데도 그것을 감내하게 만드는 기술 중에 하나가 낮은 임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런 문제들을 같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길
대화의 시간 오픈채팅방에 올리신 글이 있어서 읽어드리겠습니다. 영상평을 올리셨네요. “영화 인상 깊게 잘봤습니다. 영상 잘 만드셨네요.”
임기웅
감사합니다.
창길
(웃음)
훈훈한 덕담 좋습니다.
NSI님이 올려주셨습니다. 강현호님도 올렸주셨는데요. “끝없이 효용성을 증명하는 바쁜 현대사회에서 사실조차 망각한 채 폐기하고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질문도 하나 주셨어요.
“과거의 현재, 전통과 새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선별해야 할 진정한 가치는 어떤 것일까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거의 철학적인 질문을 주셨는데 감독님이 답변을 해주시지요?
임기웅
저는 오래된 것에 대한 소멸에 대해서 이 작품을 만들면서 고민을 해봤어요.
어쨌건 영원한 것은 있을 수가 없고. 어떠한 것이든지 물건은 사라지기 마련이고 집들도 사라지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서 한번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찾은 대안 중에 하나가 태백의 옛탄광촌에 있는 아파트 이야기였습니다.
태백에 광부들이 사는 아파트 중에 화강아파트라고 있습니다. 화강아파트가 70년대에 지어졌는데 광부들이 사셨던 아파트가 오래 되어서 재건축을 해야 됐었어요. 그런데 그 아파트를 철거를 할 때 그냥 철거하지 않습니다.
그 아파트를 장례식을 치러줘요.
아파트 모양의 상여를 만들고 그 상여를 지고 가면서 주민들이 모입니다. 장례식은 화강아파트에 사셨던 주민들 그리고 전에 살았던 주민들, 그리고 탄광 노동자분들까지 오셔서 장례식을 합니다. 그때 한 분이 표문을 읽으세요. 내용은 ‘화강 아파트에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잘가시오 이런 말을 하는데 거기에 계신 분들이 전부 다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저는 이게 한국사회가 바라봐야 될 애도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개발이든 어떤 물건이든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물건이든 우리가 너무 쉽게 버린다는 것에 무감각해져있는데 태백의 화강아파트를 재개발을 할 때 그냥 재개발하지 않고 충분한 애도시간을 가졌던 것처럼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그런 거 아니었을까?
그런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있었다면 조금 더 건강한 삶으로 나아갈텐데,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도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해요. 어떤 시한부 인생을 살면 유가족들도 그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사고사나 자살이라든지 이런 거를 겪으면 그런 거를 못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많으시대요. 왜냐하면 시한부 인생은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받아들였거든요. 이 사람은 떠날 사람이구나, 하면서 떠나보내는 것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사고사는 그러지 않은 거죠.
그러다 보니까 역사의 많은 참사들이 있었는데 그 사고사가 있을 때마다 우리가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그렇게 불행한, 슬픈 시간을 더 많이 견뎌내온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찬가지로 재개발이라든지 이런 문제들도 우리가 떠나보낼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들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냈다기보다는 -저는 활동가가 이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백 마을지원센터 활동가분이 기획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활동가분들이 이런 면에서 참 귀한 활동을 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길
인천인권영화제 팜플렛에 보면 각 작품마다 인권해설이 있습니다. <문명의 끝에서> 인권해설을 김윤영 활동가님이 써주셨는데 그 글중에 콘크리트 건물이 실제로 100년 넘게 사용 할 수 있는데 우리는 20년, 25년도 채 안 돼서 없앤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좀 더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윤영
인권해설에도 있는 내용인데 한국의 아파트 내구연한이 30년으로 실제로도 그 정도로 사용이 됩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길게는 100년까지 사용하기도 하고 보통 70년, 80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렇다면 한국은 유독 아파트를 잘 못 짓는 걸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경제적 쓸모가 다했다는 거지요. 30년이 지나고 나면 건물을 완전히 없애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게 훨씬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경제적 연한에 맞춰서 그 정도로 짓게 되고 너무 튼튼하게 안 짓는 것입니다. 이런 게 이제는 모두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린 거죠.
저는 개발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무엇부터 회복을 해나가야 될까? 생각하면, 일단 속도를 늦추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너무 빨리 결정하고 결정이 되고 나면 다른 의견들은 다 무시가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법이 한정하고 있는 것은 땅과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뿐입니다. 이 공간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은 아예 보장되지 않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까 우리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도 까먹고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속도를 늦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땅과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 공간을 공유했었던 사람들에게 의견의 권한을 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창길
이 작품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가 쓰레기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라고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했다면 2부는 저는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거야? 라고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2부에 나오는 김동균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재개발로 인해서 도시가 버려지는데 버려지는 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이야기를 던지는데 감독님은 김동균작가를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임기웅
영화 속에서는 감독의 철학이나 이상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격’을 페르소나라고 하잖아요. 김동균 작가가 그런 역할을 해준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달라고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생각도 있어서 김동균 작가를 섭외를 한 게 있었어요.
김동균 작가 같은 경우는 재개발에 대해서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혐오까지 하는 친구예요.
그러다 보니까 키워드가 맞았는데, “저는 도시를 버리고 있는 게 되는 것이죠,” 라는 말을 했을 때 이거다 란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이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면서 원하는 질문이 나올 때 짜릿해지는 순간이 있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비둘기 장면입니다. 떠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비둘기에 대입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광장시장이 뒷배경으로 나오잖아요. 그때 비둘기를 하염없이 찍고 있는데 동균 작가님이 그 이야기를 했을 때는 저도 짜릿한 것이 있었어요.
또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라고 생각해보면 인근 지역이 대부분 상대적으로 싸니까 대부분 인근 지역으로 많이 가시기도 하세요. 그리고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으시니까 돌아가신 분들도 꽤 있으십니다. 등장하셨던 분 중에 이종인 어르신 분은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이 그분한테 유작처럼 뒷모습이 나온 그런 작품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창길
이 문제는 김윤영 님도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윤영
저는 보면서 몇 가지 통계가 떠올랐었는데요. 2009년에 서울시에서 뉴타운재개발지역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게 있어요.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에는 정말 많은 뉴타운 재개발 지역들이 선정이 됐었거든요. 그래서 거의 동이 통째로 재개발에 들어가는 이런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뉴타운 건설 전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균소득이 어떻게 변했는가, 집평수는 어떻게 변했는가 하는 통계 가운데 제 눈길을 사로 잡은 것은 전세 4,000만 원 미만의 집 비율이 개발 전에 서울 지역 뉴타운 개발 지역에서 평균 83%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발 이후에는 이게 0%로 떨어지게 돼요. 그러니까 뉴타운 개발이 끝나고 나면 원래는 이 지역에 4,000만 원 미만의 보증금을 가지고 한 가족이 살 수 있는 확률이 83%였다면 개발 이후에는 0%가 되는 거였다는 거지요.
개발 이후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였다고 생각해요. 같이 보면 좋은 통계는 2006년에서 2019년 사이에 저소득층의 주거지가 어떻게 변했는가에 관한 것인데요. 저소득층들이 살고 있는 주택의 유형 가운데 비주택 그러니까 고시원이라든지 쪽방, 여관, 여인숙, 비닐하우스 같은 집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중이 2006년에서 1.5%였습니다. 저소득층 가운데. 그런데 2019년에는 7.1%로 올라요. 4배가 넘게 오르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저는 되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2006년부터 2019년 사이에 우리의 도시가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굉장히 발달했지요.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더 열악한 곳에 살 확률은 높아진 거예요. 이 모순 속에서 이 발전이 누구에게 귀속되고 누구를 멀리 떨어뜨려놓고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영화라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가 매년 동지날마다 서울역에서 거리와 쪽방에서 돌아가신 분들 추모제를 열고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서울 지역에서 돌아가신 무연고자분들을 같이 또 추모하는 행사를 함께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빈곤과 무연고 사망은 관련이 깊습니다.
그런데 무연고분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명단을 모으다 보니까 저희가 몇 년 전만 해도 100명 정도였는데 작년에는 300명 정도됐어요. 숫자가 너무 많이 늘어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올해에는 450명 정도가 된 거예요, 서울 지역에서만 한 해 동안 무연고로 사망하신 명단이 그렇고, 여기에 홈리스 거리나 쪽방에서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에 포함되지 않는 홈리스분들을 더하면 500명 가까이 되는 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무연고로 죽어간다는 것, 그러니까 가난이 관계를 잃는 일과 동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에 무연고 사망자 중에 실제로 연고가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고독한 삶과도 저는 같은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개발과정에서 쫓겨나고 밀려나고 함께 살지 못하고 자신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이웃들과 헤어진 경험을 반복해서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뺏고 있는가?
최종적으로 타인과 이어질 가능성을 뺏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길
오픈채팅방에 올려주신 글들 2개 읽고요. 마지막 질문으로 두 분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객이라고 써주셨네요. “건축 폐기물의 문제를 짚어주셨던 것이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건축 폐기물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도시재개발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짚어주셨던 것이 좋았어요. 동시에 몇 안 되는 결정권자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수없이 많은 이들의 삶이 좌우되는 점도 와닿았어요. 건물을 자주 무너뜨리고 새것을 짓지 않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영화에서 짚어주셨는데 제도와 동시에 어떻게 풀뿌리운동이 필요할지? 많은 이들이 몇 안 되는 결정권자들의 생각과 결정에 맞서 어떠한 상상력과 행동들이 필요할지 고민이 깊어지네요. 그런 점에서 지금 이야기해 주신 태백의 아파트 이야기가 상당히 무척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평을 올려주셨어요.
또 하나는 “인천에서 청소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서 더 몰입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데 아마 여기에 계신 분들도 자신이 배출한 쓰레기양이 어느 정도 되는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나눠주신 것처럼 개인의 책임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지만 너무 쉽게 버리는 현재의 쓰레기 문제를 일상에서 자주 나눠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될까, 함께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쓰레기산도 보이지 않고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비가시화된 세상의 단상을 영화를 보며 더 느꼈습니다. 특히 커버링, 오늘 수고 등 분리수거 없이 막 버리게 하는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어 문제의식이 있던 중 영화를 보게 되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외주화되면 될수록 쓰레기는 내손에 닿는 문제가 아니게 되는데 쓰레기는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쓰레기가 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더 많이 보셨으면 좋겠고 추천 많이 드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런 장문의 평을 남겨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이야기 하면서 마무리를 하도록 할게요.
임기웅
태백아파트 같은 경우는 유튜브에 화강아파트라고 검색해보시면 나옵니다. 40분 다큐라서 검색해보면 보실 수 있고요.
마지막에 질문하신 분이 쓰레기 외주화라는 좋은 질문을 해 주셨어요.
김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님과 이야기하다가 나온 얘기중에 학교수업에서 잘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청소로 벌을 주는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이게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청소는 자기를 꾸미는 일이거든요. 우리가 샤워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도 나를 가꾸는 것인데 요즘 쓰레기를 외주화한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쓰레기는 자기가 치워야 되는 것 아닌가? 교육현장에서 조차도 외주화를 주고 업체고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 직접 치워야될 것들을 우리가 노동을 너무 평가절하시키고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좋은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윤영
저도 사실은 같은 생각을 합니다. 직접 내가 이것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 대면하지 않는다는 것 그럼으로써 세계가 마치 나아졌다고 착각하는 것 이런 것들을 저는 유의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도시의 풍경은 번쩍거리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졌다면 그 변화는 이상하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 같아요.
보통 재개발은 낙후되었으니까 해야 된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서 거기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낙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심지어는 분리되어야 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재개발현장을 가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개발지역으로 지정이 되고 나면 진짜 지어진지 2,3년도 안 된 빌라가 바로 허물어지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시장이 과연 합리적인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과연 시장이 정말 합리적인 일을 해내고 있는가?
그런데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떤 것들을 중요한 가치로 이야기를 하면서 사회를 변화를 시켜야 될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고요.
사실 요즘처럼 코스피도 올라가고 집값도 상승하고 이럴 때 저희 같은 활동가들은 너무나 설 자리가 없습니다. 자꾸 나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잘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나쁜 소리를 하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쨌든 이렇게 올라가는 집값이 결국에는 불평등을 양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창길
오늘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상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기웅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