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Birthright: A War Story
감독 : 시비아 타마킨
제작연도 : 2017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미국
언어 : 영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101분
상영일시 : 2020.12.11(금) 18:2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기획의도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는 2010년 이후 미국 전역에서 주 정부, 법원, 종교 집단 등 권력 집단들이 결탁하여 ‘생명권 대 선택권’의 이분법적 구도로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에 대한 논의를 저해해온 과정들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에서의 2012년 낙태죄 위헌 결정, 프로라이프 의사회와 종교 집단들의 활동, “우리도 한때 태아였다”는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의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여성의 재생산권과 관련된 지원금 삭감, 주수 제한, 약사의 조제 거부 등의 규제와 같이 여성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전략적으로 통제해온 과정들과 그로 인한 신체적 고통, 사회적 낙인 등을 온전히 감내해야만 했던 영화 속 여성들의 이야기는 작년 정부가 제시한 입법예고안과 국회에서 발의된 일부 법안들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말한다. (세계보건기구, 1943) 여성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도미노가 무너질 것”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와 같이, 여성의 자기결정권, 임신중지 등이 얽혀 있는 성과 재생산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가 요구해야 할 권리와 제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_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아름
대화의 시간 요약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정부, 국회가 제시한 법안들은 여전히 임신중지 주수 제한, 상담 의무, 의사의 거부 등의 규제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는 임신중지 범죄화로 인해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신체적 고통, 사회적 낙인 등의 피해를 고스란히 이어가는 것과 같다. 차별, 강요, 낙인, 폭력 없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성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있는 임신중지, 피임, 성교육, 신체 통제권 등의 과제들을 풀어나가야 한다.
2021년 1월 1일 이후 ‘낙태죄’가 사라졌지만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사회 제반은 전혀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대화의 시간에서 나영 활동가가 남긴 말처럼, “단순히 임신중지에 관한 문제로만 보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과정과 연속된 문제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대화의 시간 기록
* 일시 : 2020년 12월 11일 오후 8시
* 장소 : 인천 영화공간주안 4관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아름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보석 진영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
아름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대화의 시간을 진행할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아름입니다. 대화의 시간을 진행하기에 앞서 한가지 양해 부탁드릴 사항이 있는데요. 오늘의 대화의 시간은 실시간으로 유튜브를 통해 송출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문자통역이 제공되지만 저희가 유튜브에서는 기술상의 제약으로 인해 문자통역을 송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후의 영화제에서는 이를 개선하여 누구나 제약 없이 접근 가능한 영화제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대화의 시간을 시작해 보려고 하는데요. 영화를 보시면서 다들 한국과의 이야기를 비교하면서 보셨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미국 전역에서 주 정부, 법원, 종교집단 등 권력집단들이 생명권 대 선택권의 구도로 여성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를 통제해 오며 그로 인해 발생한 여성들의 피해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온 미국의 현실에 대해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이러한 미국의 현실에 비춰 한국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그리고 마지막 대사에서 보실 수 있듯이 “우리가 개입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란 재생산권 정책 전략가의 말이 나오는데요. 임신중지 범죄화가 그간 보장하지 못하였던 권리들에게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재생산정의 활동을 계속해서 지속해온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나영 활동가와 함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사실 들어오기 전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에 대해서 발음을 잘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을 하면서 들어왔는데요. 발음이 어렵거나 이름이 긴 만큼 담긴 의미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나영
안녕하세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에서 활동하는 나영입니다.
사실 저도 활동을 하면서 단체 이름을 말 할 때 살짝 긴장하게 됩니다. 틀리지 않기 위해서. 사실은 이 단체의 의미를 소개하면 오늘 이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의 영화를 가지고 해야 되는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들을 많이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셰어의 활동은 2015년의 장애여성공감에서 제안했던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라는 활동에서 시작이 됐어요. 셰어 활동을 소개할 때, 항상 중요하게 말씀을 드리는데요 이 기획단의 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한국사회에서 ‘낙태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면적으로 바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낙태죄’는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의 형법을 들여와서 한국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처벌법 조항으로 남아있었는데요. 하지만 한국 정부가 가족계획 정책을 시행하면서 사실상 인구관리를 위해서 임신 중지를 국가가 오히려 조장하기도 하고 특정한 사람들의 인구 출산 자체를 통제하기도 하고. 그랬기 때문에 ‘낙태죄’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2010년에 자신을 프로라이프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임신중지 시술 병원들을 고발하고 그러면서 ‘낙태죄’라는 것을 한국 사회의 이슈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 그때가 저출산 정책이 강하게 추진되던 때였던 거죠. 이전까지는 병원에서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수 있었던 여성들이 갑자기 의사들이 처벌이 두려워서 ‘우리는 임신중시 시술 안한다”고 다 거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안전하게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이 없게 되어 해외로 가고 위험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됐어요.
그러다가 2012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소송이 한 번 있었고, 그때 사실은 소송을 제기했던 분도 폭력적인 남자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임신중지를 어렵게 할 수 있는 조산사를 찾아 간 거였는데. 병원을 찾아가기가 어려워서 조산사에게 찾아간 거였거든요. 그런데 이 폭력적인 남자친구가 여성을 일부러 고소를 해서 헌법재판소까지 가게 된 것이었어요. 그 사건에 대해서 4:4 합헌 판결이 나왔어요. 그러고 나서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낙태죄’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고,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결정권이 대립하는 문제인 것처럼. 여전히도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때는 더 그런 시각 외에는 없었던 상태에서 2012년이 끝났고요.
그리고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아까 말씀드렸던 2015년의 장애여성 공감 기획단 활동이 시작된 겁니다. 이 활동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까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결정권이 대립되는 문제로 보았고, 장애인의 권리와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마치 대립되는 것처럼 생각해왔는데, 장애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까지 ‘낙태죄’가 무엇을 통제해왔는지 다시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장애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는 국가의 가족계획정책, 인구통제 정책에 의해서 오히려 낳지 않아야 되는 존재, 새로운 아이를 출산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고, 그렇기 때문에 임신을 하고 출산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고, 자기 의사에 의해서 임신을 중지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던 거죠.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낙태죄’ 문제를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태아와 여성이 대립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관한 문제고 국가가 지금까지 국가의 목적을 위해서 누구를 통제하고 어떤 생명을 선별해왔는지에 관한 문제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어요. 그 이후로 계속 활동을 이어가면서 성과재생산포럼이란 단체 활동을 했고 작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 셰어라는 이름으로 단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에 담겨있는 성적권리, 재생산정의 이런 내용들이 셰어가 지향하는 방향인데요.
성적권리라고 하면, 굉장히 사적이고 조금 부차적인 권리로 생각되기 쉬운데 오늘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에서도 보시면 단순히 이 상황이 임신중지를 하는 하나의 상황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자신의 성적 권리들을 실현할 수 있는지와 관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그것은 누구와 성관계를 할 것인지, 그런 관계 안에서 누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관계를 위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지, 그런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지 이러한 상황과 관련된 문제고. 그래서 안정적으로 노동하고 주거환경과 다른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이 성적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재생산이라는 것도 단순히 임신, 출산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한 사람이 이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지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과정에 관한 권리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그냥 법이 “너에게 권리가 있어”라고 얘기한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죠.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조건들 속에서 이런 권리들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보장을 해야 하는 거고.
이제는 ‘낙태죄’가 폐지가 되고, 지금까지는 국가가 처벌을 통해서 이런 권리들을 선별해왔다면 이제부터는 처벌 없이 사회적인 조건들을, 불평등을 같이 바꿔 나갈 수 있는 권리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고 그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사회 정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셰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단체 소개만 너무 길었네요? (웃음)
아름
나영 활동가분께서 지금 낙태죄 폐지 운동과 그 사회의 흐름, 그리고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그 과정에 대한 권리로 확장시켜서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그래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신 수어통역사 두 분에 대한 소개를 하려 합니다. 제 오른쪽에 계신 분은 한국농인 LGBT의 보석님입니다. 그리고 제 왼쪽에 계신 분은 한국농인 LGBT의 진영 수어통역사분입니다. 저희가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2020년 인천인권영화제에서 다시 보신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이 상황이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다른 느낌이 드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혹시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나영
2018년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아직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이었고 한참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던 때였어요. 저희가 그 당시에도 낙태죄가 페지되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거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2018년에 이 영화를 상영할 때 감독님이 같이 오셔서 같이 이야기를 나눴었거든요. 감독님이 미국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면서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우리가 ‘낙태죄’, 임신중지에 관한 권리를 법적인 권리로서 확인한 것이 미국에서는 73년에 로 대 웨이드라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었는데, 사실은 그 결정 이후에 개인의 결정권이라는 것이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되면서 되게 후퇴하는 법안들, 결정권에 제약을 가하는 사회적인 장치들이 굉장히 많이 생긴 거죠. 이 영화에 나오는 상황들을 보면서 한국도 이런 상황이 생길 것을 고려를 해야겠다는 긴장감을 가졌었는데, 올해 이 영화를 보면서는 정말 확실하게 와닿는 것 같아요.
지금 정부가 낸 개정안, 사실상 개악안이죠.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개악안을 보면 이 영화에서 우려하는 내용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처벌 여부와 상관없이 여성들의 임신중지에 관한 접근성을 낮출 수 있는 다양한 조항들이 들어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상담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거나 그 상담 확인서를 받아가야 한다거나 의사는 그 상황에서 임신중지 시술을 거부할 수도 있고 거부하면 다시 또 상담 기관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는 이런 식의 조항을 만들어 놓은 점. 그리고 상담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24시간이라는 숙려기간을 또 의미없이 두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개악안부터가 이런 구체적인 제약 조치를 두고 있고요.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국민의힘에서도 개악안을 두 의원이 발의했어요. 한 의원은 임신중지를 6주까지만 허용해야 된다는 법안을 냈고 이것을 미국에서 심장박동법이라고 부르는 법안이거든요. 미국에서도 이 법안 자체가 로 대 웨이드, 연방대법원에서 결정했던 그 헌법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해서 위헌 여부가 미국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는 법안이에요. 그런데 이걸 그대로 한국에 가져와서 적용하겠다고 국민의힘 의원이 제출한 안이 있고요.
또 하나는 의료인 거부권.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의료인의 거부를 마치 양심적인 권리인 것처럼 하고 있어서 실제로 병원에 가도 다시 접근성이 제약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의 법안을 냈다던가. 혹은 이런 식으로 굉장히 다양한 접근성을 제약하는 법을 내고 있고. 이게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최근 엊그제 나온 크리스천투데이 기사를 보면 성산생명윤리연구소라고 대표적인 프로라이프 단체가 있는데 이 영화에서 보면 안티초이스라고 해요 프로라이프라고 하지 않고. 그러니까 선택권을 반대하는 사람들로서 이 분들이 세미나를 하면서 미국의 프로라이프 단체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배워야 한다며 강연을 열고 있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규제 조치들, 접근성에 제약을 가하는 조치들을 그대로 한국에 가져와서 제출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고. 그래서 올해 이후로도 여러 법안의 개정 과정을 보면서 같이 싸워 나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게 됐어요.
아름
저도 나영 활동가와 같이, 이 영화를 보면서 정부 입법안에 있는 주수제한, 상담의무, 의사의 진료거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것이 어떻게 여성의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권를 제한하는지에 대해 여러 사례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저희에게 주어진 과제가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를 실현가능하도록 위해 우리의 권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앞에서 임신중지, 피임, 성교육, 그리고 신체통제권 등 모든 것을 도미노라고 표현하는 걸 영화에서 보셨을텐데요. 이와 같이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문제다 보니 이 권리를 구체화하는 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셰어는 최근에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해설집을 공개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해설집을 읽어보면서 “임신중지 전면 비범죄화 이후 우리가 요구해야 할 권리와 제도의 모습이 더욱 구체적으로 상상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 부분이 기억에 남았어요. 그래서 셰어가 이 기본법을 제안하면서 중요시한 기본원칙이 무엇이고 그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법안에 대해서 담고자 했던 지점들이 있다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나영
일단 진행자께서 말씀하신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은 PDF 파일로 셰어 홈페이지 들어가시면 다운 받으실 수 있고요. 조항, 조문만 있는 파일이 있고 해설이 같이 곁들여진 파일이 있습니다.
저희가 차강폭낙이라고 줄여서 이야기하는데, 차별 강요 낙인 폭력 없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성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법안의 취지로 두고 있고요. 그럴 때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법에서 권리를 보장하겠다 선언하는 차원이 아니라 사실 아주 구체적인 불평등과 차별의 조건을 어떻게 바꿀 건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지금 아주 구체적인 상상들, 현실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되어야하는 건데요. 지금 전국의 산부인과 병원이 1300여개가 있어요. 그런데 그중 390여개 정도가 서울에 있습니다. 나머지 지역들은 100개가 안돼요. 그 다음으로 많은 곳이 대구인데 89갠가 있습니다. 제일 낮은 데 중 하나가 전남지역의 산부인과가 몇 개일까요? 19개 있습니다. 그런데 전남 지역에서 산부인과가 19개인 상황에서 어떠한 여성이 직장을 다니며 다른 아이들까지 같이 양육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부의 개정안처럼 임신중지를 해야 되는 상황에서 상담을 받야야하고 확인서 받고 24시간 기다려 병원가고 병원에서 거부하면 다시 상담기관에 가야 되는. 이런 상황은 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시 몇 달이고 상담기관과 병원에 가기 위해 반차 월차를 내야 하고. 그것이 또 여성의 노동조건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이런 문제들과 다 연결된 문제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법적으로 규정하는 차원을 넘어서 실제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의 현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권리보장의 내용으로 넣어야 하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이것은 노동조건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교육환경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 관한 문제들 하고 다 연결되는 문제가 되는 거죠.
이 영화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상황들이 나오지만 사실은 미국에서 이렇게 프로라이프 운동이 먹힐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구체적인 사회적 조건과 관련된 운동으로 이후의 운동들이 같이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낙태죄’ 폐지 이후에 해야 할 일들도 이것을 단순히 임신중지에 관한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과정과 다 연속된 문제로 봐야 하고. 임신중지에 관한 지원도 이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더 살피는 문제가 되어야 하고.
예를 들어서 처벌이 더 강하고 규제가 강해질수록 사회적으로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봐야 하는 거죠. 그래서 청소년이라면 이 청소년이 임신중지를 하게 되는 상황들을 같이 봐야 되고 임신중지를 시술하거나 약을 먹고 끝나는 게 아니라 후속적으로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같이 봐야 하는 것이고. 그런 생각들이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난민, 폭력이나 학대 상황에 있는 사람들, 성소수자까지 다양하게 연결되는 고민이 앞으로 계속 이어져야 할 거 같습니다.
아름
저도 셰어가 제안한 해설집을 보면서 단지 임신중지에 대한 이야기를 여성의 이야기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맥락 속에서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를 실현가능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하려면 구체적인, 장애인, 이주민 등 다양한 삶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더욱 더 많이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들 셰어 홈페이지에서 기본법안과 해설집을 볼 수 있으니 다들 읽어보시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글로 해설집을 읽어보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 있어서 이러한 제도가 보장되고 우리가 누릴 수 있다면 어떻게 삶의 변화가 생기고 우리의 건강을 챙기면서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조금 들어서 실제로 셰어가 제안한 기본법안과 유사한 다른 나라의 실행하고 있는 사례들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사례들에 있어서 실제로 그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나영
사실은 법적인 형태만 굉장히 참고가 많이 되는데 실제로 법의 형태는 똑같아도 실제로 어떤 방식의 사회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나라마다 되게 다르거든요. 저희가 제일 참고로 하는 나라는 캐나다예요. 캐나다 같은 경우 한국이 비슷한 상황이 될 가능성 있는데, 1988년에 연방대법원에서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비슷하게 임신중지에 관한 처벌이 헌법에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고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나왔어요. 그 이후로 법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처벌법도 생기지 않았고 권리보장법도 생기지 않았어요. 몇 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사회적 논의들 속에서 제정까지 가지 못한 것이죠. 88년 이후로 처벌법이 없는 상태로 40여년 지난 거예요.
그런데 캐나다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국회의원들 중에 일부는 낙태 처벌법이 없어지면 낙태가 남용될 거다 이런 식의 얘기까지 하고 있는데. 캐나다는 1988년 이후로 법이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의료인들과 사회적으로 여러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질적인 조치들을 만들어내면서 정책을 바꿔왔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캐나다의 임신중지율은 한국보다도 낮고 의료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접근성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지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면서 지원들을 많이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법 얘기를 하면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예를 들면 정부의 개정안을 보면 동의에 관한 조항이 있어요. 병원에 갔을 때 16세 미만이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장애가 있다고 간주되는 사람이 왔을 때 스스로 동의 능력이 없다라고 간주하고 제3자가 그 동의를 대신할 수 있게 하려는 조항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강조하는 방향은 이 사람에게 당연히 동의의 역량이 없다고 전제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기본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동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오히려 전제로 하고 그 사람의 동의를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장애인이나 청소년 혹은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났다면 의료인들이 역량이 없다 간주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수어 통역이 필요한 사람이 왔으면 수어 통역을 제공해야하는 거고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면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거고. 오히려 의료인들이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이 구체적으로 우리가 바뀌어 가야하는 방향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캐나다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은 저희가 작년에 캐나다의 여러 의료 기관들에 가봤는데 실제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희가 그때 한창 동의에 대한 고민도 많이 있어서, 캐나다에서 가는 의료 기관마다 “청소년이 오면 동의 여부는 어떻게 확인하나요?” 물어봤는데, 가는 곳마다 그분들이 너무 당연한 걸 왜 물어보니? 이런 표정으로 얘기하시더라고요. “우리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이더라도 자기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고 그 당사자가 이런 상황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어떤 방향들을 앞으로 계속 만들어가야 될 거 같아요.
아름
나영 활동가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희가 이 법안이 개정이 되고 어떤 식으로 조항이 만들어져 있는지 볼 뿐만 아니라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이에 대해서 조금 더 정보를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적극적인 행동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대화의 시간 얘기를 하고 있는데, 관객분들께서도 궁금하신 질문이나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감상이나 이런 것들이 있으실 거 같아요. 그래서 혹시 얘기하시고 싶은 부분이 있는 분들은 손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없으실까요? 편안하게 이야기 나눠 주셔도 좋아요.
그러면 저희가 다음 질문으로, 시간이 짧다보니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질문들 많이 생각했는데 그 중 얘기하지 못했던 질문들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영화에서도 계속 나오는 게 태아의 생명권, 그리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권리 대 권리의 문제로 바라보면서 여성의 권리는 부수적인 피해라는 표현들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한국에서도 프로라이프 사건들에 대해서도 나영님께서 설명해 주셨는데 한국에서는 낙태죄 폐지운동의 흐름에서 이러한 생명권 대 선택권이라는 구도를 어떻게 대응하고 이에 있어서 구호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나영
얼마 전에 닷페이스라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재밌는? 재밌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닷페이스 연출자에게 어떤 사람이 이런 주제로 방송한다는 것을 알고 악플을 달았대요. “낙태를 찬성하다니 생명을 존중할 줄 모르는 너는 자살이나 해라”라고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에서도 보면 프로라이프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임신중지 시술하는 의사들을 트렁크에 폭탄을 넣는 등 공격을 하잖아요. 캐나다도 수월하지만은 않았던 게 몇차례 임신중지 클리닉의 의료인들을 총기로 위협한 사건들이 있었대요. 사망하지 않았으나 알고 보니까 그 사람들도 미국의 프로라이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말은 프로라이프인데, 이 생명권이라는 것이 너무 협소하게 이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되고 있는 거죠.
단편적으로 시작하면서 모자보건법, 한국 ‘낙태죄’ 역사를 이야기했지만 사실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처벌하고 거기에 대한 제한적인 허용 조항으로 부모에게 장애가 있을 때는 임신중지를 해야한다고 규정하는 것이나 아니면 태아에게 장애가 있을 때는 임신중지를 해도 된다고 이것이 허용 조건으로 들어가는 제도가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국가가 생명을 선별하는 태도인 거죠.
왜 태어나는 것만이 생명인가? 오히려 지금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삶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선행되어야 이런 관점 속에서 앞으로 태어날 생명에 대한 권리들도 같이 보장될 수 있는 거거든요. 이렇게 생각을 바꿔야 될 거 같아요. 그래서 2015, 16년 이후부터는 여성의 “나의 몸 나의 권리” 이런 식의 구호 대신에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봐야 우리 사회가 처벌로 전가하는 대신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이런 얘기들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될 거 같아요.
아름
마지막으로 낙태죄 폐지 운동은 생명권 대 선택권이라는,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저해해온 흐름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셨고, 그에 대해서 임신 중지 전면 비범죄화를 위해서 ‘낙태죄’ 폐지 운동을 진행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그 구호를 바꿔 왔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오늘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그리고 배제하지 않고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를 누구나 자유롭게, 그리고 건강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남은 과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 막막하다는 감정도 들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오늘 나영 활동가와의 이야기, 그리고 관객분들과의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우리가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원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그 가능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던 거 같아요.
이제 대화의 시간을 마무리하려 하는데, 이 어려운 시기 서로 마주하며 서로 존엄 평등 연대를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신 관객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기본법안과 해설집 자료, 가이드북 등을 볼 수 있으니 오늘 나눈 이야기들과 함께 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한가지 당부드릴 사항이 있는데요. 저희가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의해 극장이 9시에 닫기 때문에 9시 이전에 퇴장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수어통역사 한국농인 LGBT 보석님과 진영님, 그리고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나영님과 함께 이야기한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