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랍게 Comfort

보드랍게 Comfort 스크린샷

박문칠 | 2020 | 다큐 | 73분 | 한국 | K KS KSL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였던 김순악. 전쟁 후 마마상, 식모, 엄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왔다. 그녀의 이야기를 미투 당사자들의 증언 낭독, 애니메이션, 활동가 인터뷰와 엮어 김순악의 삶을 재구성한 영상은 그녀가 우리에게 듣고 싶었던 말의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개막작]

보드랍게
Comfort

감독 : 박문칠
제작연도 : 2020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한국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한국수어자막
상영시간 : 73분

상영일시 : 2020.12.10(목) 18:30 개막식 후 상영/ 13일(일) 14:2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목) 3관(일)


10일(목) 6시30분 개막작 <보드랍게> 상영 후
박문칠 감독,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미니미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이 진행됩니다.



작품해설

<보드랍게>는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김순악의 해방 이후의 삶을 드러낸다. 그동안 ‘침묵의 시간’이자 전시 성폭력 피해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미학적인 연출과 증언들로 재조명하면 서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미투 당사자들의 낭독과 김순악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순간들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과 미투 당사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젠더 폭력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순악은 위안부 운동을 접하면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생기고, 활동가들과 미투 당사자들은 인터뷰와 낭독을 통해 그녀의 삶을 헤아려 본다. 영화를 따라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피해자’를 넘어 ‘존엄’한 존재로서의 자리매김은 공감과 연대로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_미니미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영화 <보드랍게>는 전적으로 한 여성의 일생과 그 여성이 살았던 한 시대(1928-2010)의 역사로 전개된다.

김순악,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경위부터가 ‘억울’한 그의 일생은 내내 ‘강퍅한’ ‘운명’에 휩쓸리는 것처럼 보이다가 말년에 청자를 만나고 ‘전수 가능한 이야기’가 되면서 다른 방향으로 들어선다. 그 자신도, 남들도 그가 ‘강퍅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강퍅함은 나름대로 강퍅한 ‘운명’에 대응해온 생존투쟁의 결과다.

“내가 당했던 일이 뭐지?” – 강퍅한 운명의 도가니 한가운데서 평생, 이 질문이 들끓었다. 70대가 되었을 때 국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었다. 그것은 일본의 성범죄였다고. 2001년 74세에 ‘위안부 등록증’을 받으면서 비로소 그의 삶은 ‘운명’이 아니라 ‘역사’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국가’를 액자에 넣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걸어두었다. 등록증/국가 ‘덕분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안부 묻는 사람들도, 화투 치는 지인들도 생겼다. 그가 웃기 시작한다. 노래도 하고 춤도 춘다. 그에게서는 이제 강퍅한 기운이 아닌 수줍은 기운이 피어난다. 인생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듯이. 그와 인생 사이에 ‘국가’가 들어서니 발현된 이 평화. 영화는 이 대목에서 본격적으로 질문들을 풀어놓는다.

그가 평생 싸운 저 깊은 병, 고통이야말로 그와 인생 사이에 ‘국가’가 들어서는 바람에 생긴 것 아니냐고. 그런데 그 병을 낫게 해주는 것도 국가라고? 그 국가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영화는 또 다른 질문도 남긴다. “내 가슴 속에 천불이 인다, 해도 그 불이 어떤 불인지 온전히 공감하진 못한다”라고, 김순악은 고통의 절대성을 토로하는데, 그의 구술을 읽는 젊은 미투/스쿨미투 활동가 여성들은 공감한다고 이해한다고 눈물 흘리며, 계속 연대할 거라고 다짐한다. 물론 성폭력을 당한 공통의 고통이 그와 이 여성들 사이의 공감과 연대를 매개한다.

그러나 고통은 묘한 이중적 선회를 그리는 무엇이다. 타자에게 가 닿아야 하지만, 가 닿았다고 믿는 순간 튕겨 자아에게 되돌아오는 것, 그것이 고통이다. 전달되어야 하는 필연성에 전달될 수 없다는 실패가 내재하는 것이다. 고통의 이 모순 때문에 보드라운 영화 <보드랍게>는 전혀 보드랍지 않다. 보드라울 수가 없는 것임을 보드라운 톤으로 역설한다고나 할까. 김순악 여성인권활동가는 최종적으로 ‘군위안부역사 전승자’로 삶을 정리했다.

‘나를, 내가 겪은 일을 잊지 말라’며 자신의 전 재산 반을 ‘위안부’기억공간 건립기금으로 내놓았다. 놀라운 생의 마감이다. 후대 여성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유산(legacy)이 있을까. 잊지 않는 건 어떻게 가능하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지? 성폭력 문화를 전면적으로 바꾸겠다고 용기를 내는 여성들은 ‘계속 기억되기를 요청’하는 군위안부생존자/활동가/전승자와 어떻게 연대하지? 여성과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젠더폭력에 맞서 매번 후배여성들은 일어설 것이다. 이 여성들 각자에게, ‘우리’에게 도달한 김순악 선배활동가의 유산에 목이 멘다.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이야기꾼의 정체성으로 듣고-읽고 쓰고-말하는 일을 한다. 하나이지 않은 노년의 삶, 노년의 인권과 세
대 간 어울림, 케어 등을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