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라는 세계 |
미호의 여정
Miho’s Journey.
감독 : 섹 알 마문
제작연도 : 2023년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일본어 영어 영어자막 한국어자막해설
상영시간 : 65분
상영일시 : 2024.12.1. (일) 오후 3:10
상영장소 : 영화공간 주안 3관
기획의도
한국 사회의 매체나 언론이 ‘이주민’을 이야기 할 때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민을 이렇게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소비할 때 한국인들은 이주민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주민의 이주 동기와 체류자격 등으로 이주민을 판단하는 것은 이주하는 사람의 삶과 이들이 맺는 관계와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각자의 삶이 단순하지 듯이 이주자의 삶도 다양하며 유동적이고 복잡하다.
이주는 새로운 장소로 떠나고 정주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일이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더욱이 국경을 넘어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일은 두려운 일이지만 새로운 삶을 도전하는 용기이자 설레이는 기대이기도 하다. 이주민은 이렇듯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며, 책임감과 도전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한다.
어린시절 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가수로서의 꿈을 키워오던 미호는 자신의 음악적 성향이 맞는 동료를 만나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동료의 고국인 한국으로 이주를 결심한다. 자신의 새로운 음악 활동에 대한 욕구와 도전,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로 자연스러운 이주가 이루어졌지만 한국에서의 활동이 그리 여유로운 것 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이주자에 대해 환대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주자를 성, 인종 , 계급에 따라 차별하는 사회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힘겨움은 오로지 이주자의 몫으로 남아있으며 관계맺으며 공존하기 위한 노력은 상호적이지 않다. 이런 한국에서의 미호의 삶은 피곤하고 고단했을 것이다. 음악은 소통이 중요한데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강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상황이나 문화적 차이도 미호가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관계적인 측면이나 음악적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미호는 자신의 꿈인 가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실천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가수로서 이주민으로서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미호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녀의 꿈과 음악, 삶에서 부딪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대화의 시간 기록
섹 알 마문 영화감독
미호 한일부부밴드 파드마 pAdma
머큐리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수진 한국농인LGBT+(수어통역)
박세희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문자통역)
머큐리
아, 안녕하세요? 오늘 미호의 여정 이야기 손님과 함께 사회를 진행하게 될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머큐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박수)
그러면 오늘 영화 함께 이야기를, 영화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주실 이야기 손님을 앞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손님들 앞으로 나와 주세요. 일단 저희 앉아서 진행하겠습니다.
이제 한 분씩 각자 자기소개와 함께 관객들과 인사해 주시겠습니다.
미호
예,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던 미호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한국에 온 지 13년인데
파드마라고 하는 밴드에서 노래나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섹 알 마문
안녕하세요? 방금 영화 연출한 섹 알 마문입니다. 반갑습니다.
머큐리
네, 이야기 진행할 때 수어통역은 한국농인 LGBT+의 수진 님이 함께해 주시겠고 문자통역은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의 박세희 님이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관객분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 혹시,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질문들을 저희가 오픈채팅방에 들어가게끔 QR코드를 갖다가 입장권을 드렸을 거예요.
거기 들어가시면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물어보시는 거나, 질문할 수 있는 거, 소감 같은 걸 적어서 저희들한테 보내줄 수 있으니까 그걸 잘 이용해 주시기 바랄게요. 그럼 지금부터 이야기 손님들과 이야기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에게 먼저 질문을 드릴게요.
영화에서 미호 씨의 도전적인 모습이나 음악이 너무나 좋았고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이런 모습을 알고 영화를 찍으려고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감독님은 미호 씨의 어떤 점이 이끌려서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시게 된 건지 좀 궁금합니다.
섹 알 마문
일단 미호는 친한 친구중에 둘도 없는 친구고 가까이에서 본 지 10년이 되고 이 영화가 촬영이 한 3년 동안 했는데, 이전에 미호의 음악 하는 모습이나, 예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멋진 친구로 소개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처음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되고, 촬영하고 이렇게 영화가 만들어졌죠.
머큐리
그러면 미호 씨는 감독님이 멋진 친구라서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영화 찍자고 하셨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같이 찍어볼까, 하는 생각을 어떻게 하셨는지?
미호
음, 네. “친구라서 옆에서 카메라 들고 미호를 찍는다.” 하면서 카메라 들고 있었는데 저는 그냥, 친구가 옆에서 카메라, 핸드폰으로 찍거나 영상 찍거나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뭔가 대단한 작품을 만든다고 하는걸, 의식을 해본 적이 없었고 계속 그래도 마문 감독님이 지금까지도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어떤 작품이 될까?’하는 기대는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머큐리
그런데 영화를 이제 보셨을 때, 어땠어요?
저도 지금 얼굴이 화면에 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영화를 찍었을 때 본인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미호
좀, 스크린에서 큰 스크린에서 봤을 때는 이렇게 되었는데, 엄청 부끄러웠어요. 사실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저는 음악을 하고 있으니까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거나, 그런, 그걸 영상으로 보거나 그렇게는 하기가 좀, 익숙한 그런 거이기도 한데, 그래도 저의 이야기가 작품이 된 거예요. 그리고 기록이 된 거예요. 그걸 봤을 때는 좀 감동이었어요.
머큐리
감동이었어요? 마음에 드셨다는 얘기신 거죠?
미호
네, 마음에 들었기도 하고 아주아주 부끄럽기도 하고.
머큐리
어떤 점이 부끄러웠어요?
미호
2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아주아주 부족한 한국말. 지금 몇 번 봐도 사람들, 여기 관객분들의 귀를 막고 싶어요.보지 말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저의 맨얼굴이 많이 나오고 그런 것.
마음 준비를 안 하고도 계속 얘기를 할 수 있는 친구라서 제 맨얼굴이 계속 나와요.
머큐리
그래서 더 사실적이고 좋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의도하신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미호 님에게 추가로 영화를 보면 일본에서 음악적 파트너를 만나 결혼하고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셨잖아요? 그런데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 가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음악을 할 수 있는 걸 많이 기대하신 것으로 인터뷰에 나와요.
일본에서의 음악적 정체도 극복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한국에 도착하셨는데, 도착하시자마자 음악은 꿈도 못 꿨다는 대목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음악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당시로서는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였을 것 같은데, 당시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영화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당시에 어떤 미호 씨의 심정, 경험 이런 것들을 같이 함께 나누고 싶어요.
미호
처음에는 역시 외국에 여행을 가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래도 살려고 간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문화가 다르다고 하는 게, 이렇게 사는 데에 이렇게 힘든 게 있었구나.’라고 많이 느꼈고, 그리고 언어라고 하는 게, 여행할 때는 언어가 안 통해도 재밌잖아요. 그래도 생활하다 보면, 언어가 능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거예요.
그것에 많이 겁을 먹었고, 그냥 소통을 못 하는 게 아니라, 한국이랑 일본이라고 하는 게 많이 역사도 많이 있고 그래서, 좀 제가 조심스럽게 살아야 되는 부분도 있을 거 같고.그래도 그걸 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랑 부드럽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걸 겁을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음악을 한다고 했었을 때도 한국 사람들 앞에서 일본 사람이 제가 음악을 하면, 무대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혹시 “오지 마! 돌아가!” 하는 그런 반응이 있으면 어떻게 해?’ 라고 해서, 갑자기 많이 긴장도 됐었고. 네,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저도 한국에서 외국인이지만, 한국에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도 뭔가 의미 있는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그런데 조금씩 언어도 배우면서 여러 가지 뭔가 하려고 했는데 다 실패한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는 저는 역시, 음악만 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서. 그렇게 해서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을 때 그때 원만하게 사람들과 많이 사귈 수 있고, 음악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큐리
혹시 그때 마문 감독님과 만난 건가요?
미호
네, 그때쯤에 딱 마문 감독님을 만났어요.
머큐리
감독님한테, 영화를 보면 구성상 아버지, 아버님이 등장하시잖아요? 그리고 또 다른 것은 미호 씨의 음악적 여정 같은 경우가 크게 이제 나눠져 있는 걸로 보입니다.그래서 이제 영화에서 가족 관계에 대해서는 주되게 아버님이 등장하세요.
그런데 이런 구성은 미호 씨가 아버님하고 워낙 친밀하다 보니까, 찍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찍힌 건지, 아니면 가족에 대한 감독님이 어떤 연출 의도가 그래도 개입된 것인지? 거기에 대한 좀, 물음을 여쭤보려고요.
섹 알 마문
일단 이 영화는 3가지 키워드로 볼 수 있어요.
하나는 멋진 내 친구 미호와 가족이 일본에 있는 이주민의 이야기, 두 번째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이 될 수 있습니다.
국제결혼, 이주여성이라고 하면 우리가 동남아에서 많이 못사는 나라에서 결혼해서 오고, 그런 이미지 한국 사회에 많이 있긴 한데, 그런데 나는 항상 미호라는 친구가 과연 ‘한국에 왜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고 싶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주민이 한국에 이주하는 것에 대해서 ‘돈만 벌기 위해서 온다, 부자나라 이미지’라는 생각들에 대한 답을 한번 해줘야 된다고 생각해서, 미호를 선택해서 이렇게 의도적으로 이렇게 연출을 했고, 가족관계도 마찬가지. 미호가 아버지한테 물어보는 질문, 미호를 통해서 내가 하는 질문들이 제 아버지한테 제가 하고 싶었어요. 그런 거를 저희 아버지한테 못했고, 쉽지는 않았어요.
제가 언제 한, 몇 년,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래서 한, 7~8년 전부터 방글라데시 가면 아버지 손잡고 “아버지,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고 싶었어요.“고맙다고.” 그런데 못했어요. 매번 갈 때마다 준비하고 갔는데.가면 뭔가, 또 못하고, 또 돌아오고. 오면서 공항에서 울고. 되게 그랬었거든요.
그런 어떤 미호의 어떤 마음과, 그다음에 아버지로서 또 자기 자식을 다른 나라에 보내는, 아버지의 어떤 마음을 그 질문을 통해서 알고 싶었고, 미호한테 그런 기회가 있었고, 우리가 먼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먼저 상영되고, 미호가, 이제 한마디로 꼬셨죠. “너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물어보면 안 되겠냐.” 했는데 미호가 아버지한테 물어봐서, 오케이해 줘서, 모르겠어요. 영화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부모와의 관계라는 것이, 저는 답을 찾았습니다.
그냥 별 것 아니라도 자기가 그냥, 좋아하는 거에 대해서는 아무, 어떤 다른, 뭐라고 그럴까요? 이런 부분이 있어서 ‘보고 싶다? 그냥 보고 싶다.’ 이건 전에 몰랐는데 알게 되었어요. ‘가족이라는 건 이유 없이 보고 싶은 거구나.’ 관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머큐리
감독님의 어떤 원하는 것을 미호 씨를 통해서 풀었다,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네요?
섹 알 마문
원래 제가 만든 영화들이 보시면, 제가 저한테 궁금증이 있으면 ‘내가 주인공을 통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똑같이 생각할까?’ 그런 게 궁금해요. 갑자기 뜬금없이 왜 물어보냐, 영화를 통해서 많이 드러낸다는 부분에서 내가 미호랑 아무리 많이 얘기를 해봤는데 미호가 항상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얘기를 하니까 저랑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주민들, 뒤에 다른 친구랑 얘기를 했었는데 거의 이 부분에서 비슷해요.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아무리 돈을 많이 보내도 항상 부모님은 모르겠어요. 그거는 어떤 부모님은 다르겠지만, 그것도 미호의 말처럼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머큐리
가족이니까, 떨어져 있고 자주 안부 전하기 힘들어하는 상태이고.
섹 알 마문
어떤 관계에서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건 이유가 있어서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
머큐리
아버님도 그렇지만 이주, 결혼이주 여성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남편이 너무 안 나와요. 가족이고 다 같이 그리운데 남편은 왜 이렇게 소외시키셨어요? 남편이 안 찍는다 그랬어요?
섹 알 마문
그건 아니고, 저는 기본적으로 미호가 한국에서, 이제 미호를 통해서 “나는 한국이 고른 게 아니라 내가 골라서 왔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었고, 일본에서 나왔고 한국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싶었고 미호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 안에서 남편은 부분적이지, 메인으로 생각을 안 해서 형이 많이 삐졌어요.
머큐리
제가 볼 때 남편의 음악적 취향도 비슷하고, 엄청나게 영향력이 있는 것 같은데, 하나도 안 나오니까 궁금했습니다. 여기까지 할게요.
두 분께, 두 분에게 공통적으로 질문을 드릴게요.
영화에서 미호 씨가 말한 것처럼 굉장히 인상 깊은 대사가, “이주가 특별한 일이 아니고 점심 메뉴 고르듯 자유롭게 선택하는 일이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이 말이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막, 어렵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정말 살고 싶은 곳으로 쉽게 떠날 수 있고 거기에서 쉽게 정착하는, 이런 것들이 이주가 돼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사회가 그렇게 이주민한테 환대를 하는 사회는 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미호 씨가 마문 감독님보다 한국에서 이주자로 살고 계시잖아요?
같은 동료 이주민 분들과도 많이 친하실 거고, 그분들과 이제 자신의 입장에서 한국, 동료 시민이 되기 위해서 한국 사회가 갖추어야 될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좀 있었음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다면?
미호
저는 일본에 있을 때는 역시 이주민에 대해서 몰랐고, 일본도 지금 아직 한국이랑 비슷한 상황이긴 한데요.우리가 아직도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혹시 이주민일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아직도. 다 여기 있는 사람이 너무 똑같은, 자기랑 똑같은, 비슷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바로 옆에 또 다른 문화 가지고 있다,
또 옆 사람이 다른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 시대가 그렇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모르는 것 같아요.우리는 상상하는, 같이 살고 같이 일하고 밥 먹는 그런 상상을 하고 같이 지내는 연습 같은 거는 사람들이 많이 해야 될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뭔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되고, 뭔가 알릴 수도 있고, 그렇게 하는 뭔가 연습을 많이 해야 되지 않을까? 라고 저는 생각해요.
머큐리
한국 사람들이 연습이 필요하다?
미호
상상도 하고 연습도 하고.
머큐리
네, 감독님도.
섹 알 마문
네,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관계에 대해서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 얘기하고 싶고, 한국이 어느 순간부터 모든 관계에서 계산을 많이 하고, 그거는 누군가 좀 더 뭐라고 그럴까? 천천히 걸을 수도 있고, 누군가 빨리 걸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머리가 잘 돌아갈 수도 있고, 누군가 고마움도 생각 안 하고 살 수도 있고. 누군가가, 누구를 좋아할 수 있고 그런 부분에서 한국이 너무 계산적으로 자기 이득만 생각해서, 그래서 이주민에 대한 생각도, 고마워해야 되는데 이주 노동자의 경우에 우리나라 밑바닥에서 일하고 있고, “얘네가 대신에 돈을 많이 벌고 가잖아?” 모든 부분에서 돈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는데, 지금도 문화예술, “왜 돈을 문화예술에 투자하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 있는 정부도 마찬가지고. 그런 부분에서 좀 벗어나야 되고, 그냥 우리 사회에 들어오는, 여기에서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면, 동료이고 시민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했다, 내가 생각했는데 북한이랑 통일 얘기를많이 하잖아요, 통일이라는 얘기를 할 때 제일 첫 번째 나오는 얘기가 뭔지 알아요?
“경제국가인 한국이랑 북한이랑 통일되면 경제국가가 얼마나 한국이 이득이 남을 수 있나?”
그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같은 민족끼리 만나는 게, 좋아야 하는데 그것조차 우리가 경제, 돈.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돈을 빼고 사람 대 사람의 만남, 사람 대 사람의 만남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사람의 가치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새로운 구성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 거냐?
그거에 대해서 고민들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머큐리
그런데 아까 미호 씨가 말씀하셨듯이, 이주자가 되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을 못 해 보셨다는 말씀이 있잖아요. 한국 사람들도 대부분이 그런 경우도 많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저변에 깔려 있는 계산적인 모습들은 굉장히 많은 문제점이긴 한 것 같아요.
섹 알 마문
제가 생각하는 건 약간 다른데, 20년 전에 내가 이주민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면 이해가 가요. 지금은 미디어가 발달되고, 누군가 어디 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나라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람이 이전보다 인포메이션이 편리해졌거든요. 접근하기가.이런 부분에서 한국에서 방글라데시에 처음 올 때만 해도, “방글라데시에 달 몇 개 뜨냐?” 물어봤어요.
머큐리
방글라데시에 달 몇 개 뜨냐?
섹 알 마문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방글라데시라는 나라에 대해서 그 사람이 알지 못하니까, 상상을 안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이주자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안 해서 그렇지, 이거는, 내가 체험을 하면 알 수 있다? 그런 시대는 아닌 것 같다고, 내 의견이에요.
머큐리
아니 그러니까, 저도 체험을 안 해서 모른다기보다, 관심이 없거나 다른 쪽으로 관심이 있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을 굉장히 계산적으로 대하거나, 이용하려는 것 외에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려고 하는 자세가 되게 부족한 것이 아닌가?’라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했던 거고요.
질문이 막 들어와요, 지금.
제가 노안이 와서. 노랑조아님이 미호님, 한국에 지내면서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반감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나요? 있었다면 무엇이 가장 힘들었고 그거를 이겨내는 데에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있어요? 많을 것 같은데요.
미호
가끔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 사람이라고 하면 환영해 줘요. 그런데 가끔 역시 역사의 이야기, 그리고 네. 전쟁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많이 꺼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저만 그런 것 같은데,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특히 그런 말을 해요.병원에 가서 내가 아픈 데가 있어서 봐주면 좋은데, “그러니까 일본이랑 한국은 역사가…” 이러면서 병원 안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머큐리
의사가요?
미호
네, 병원의사는 좀 제가 아파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잖아요, “당신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기가, 제가 아픈데.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지?’ 너무 그냥, 참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머큐리
참고 극복하시는 겁니까?
미호
네, 참고 그냥 이 이야기가 넘어가는 것을 기다리고 그런 경우도 많아요.
머큐리
한국 의사들이 문제 많지만, 그런 쪽에서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미호님, pAdma 밴드 공연을 더 볼 수 있는 유튜브 사이트가 있나요? 질문 들어왔습니다.
미호
네, 유튜브에서 파드마 공연이라고 한국말로 검색해 주시면 나옵니다.
파드마만 검색하면 많이 나와서, 찾을 수가 없어요. 파드마 공연이라고.
머큐리
파드마 공용? 공연? 아, 공연.
파드마 밴드 이름 유래가 뭐냐고 질문이 들어왔네요
미호
연꽃, 연꽃인데 우리가 연꽃같이, 연꽃은 진흙 속에서 예쁜 꽃을 피우잖아요. 어떤 환경이라도 우리가 예쁜 음악, 그런 모습을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계속하자고 해서 파드마라고 지었습니다.
머큐리
음악에 대한 얘기는 조금 이따 종합적으로 여쭤볼 거기 때문에, 질문, 음악에 대한 질문들은 여기에서 잠깐 멈추겠습니다. 진짜 좀, 민감한 질문이 나왔는데요. 해도 될까요?
한국 정서상 시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떠신지? 누가 이걸..
미호
진짜 이주민, 특히 결혼이주민한테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민감하지만 그래도 아주아주 중요하고 자기의 인생이 걸려 있어요.
그것도 처음에 힘든 게 있었죠. 어떻게 사귀면 되는지 몰라 갖고 일본 사람끼리라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약간, 이렇게 뭔가 돌아서 이야기를 하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간다,
좀 부드럽게 간다고 하는 걸 알고 있잖아요.그런데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고맙다, 고마워요.”라고 하는 말은 나오는데, “죄송합니다, 이거는 못합니다.”라고 하는 말을 할 때, 어떤 식으로 하면 관계가 안 좋지 않게 전달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한국 분들이 정이 많아서 가족이 된다고 하면 그날부터 가족이잖아요? 그런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본 사람은 천천히, 몇 번 만나서 관계가 좀 많이 깊어지고 가족이 되는 그런 과정이 있는 것 같은데, 저의 시어머니도 “아이고, 미호야~” 처음 만날 때부터 그러셔서 저는 “잠…잠깐만요.” 이렇게 말하게 되는,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그렇게 했던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것도 많이 경험하면서, 지금은 그래도 서로 좋은 거리감을 가지면서,
머큐리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미호
네네.
머큐리
지금도 잘 지내고 계신다, 그런 말씀이신 거죠?
그런데 저는 한국에 어떤 일반 보통 여성분들, 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문화적으로 좀 차이가 있으니까, 미호님은 더 힘드셨겠다.
미호
맞아요. 자기 가족들이 자기 나라에 놓고 왔을 때 남편 가족만 같이 많이 친하게 지내는 것도 조금, 기분이 안 좋았어요. 자기 엄마, 아빠는 버리고 왔는데.
머큐리
버리고?
미호
버리진 않았어요. 격하게 말하면 ‘놓고 왔는데 여기 있는 남편 가족한테만 잘해줘야 되나?’ 이런 고민도 있기도 하고. 제가 뭐, 어른이 많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람이라서 많이 그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머큐리
네, 질문 계속하겠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아까 파드마 다들 영화 보고 관객분들도 “파드마가 뭐냐, 파드마 공연 어떻게 보냐” 이렇게 말씀해 주신 것 보니까, 확실하게 각인은 시키신 것 같아요.
파드마 그룹 활동을 하고 계시고, 영화에는 이주민밴드 지구인의 노래라는 활동도 좀 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인터뷰하면서 제가 느낀 건, 미호 씨가 음악 활동에서 관객과의 소통하는 부분, 그다음에 음악적 취향이 맞는 동료와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게 느끼시면서 음악을 하시는 것 같은데 일본에서 음악 하시는 거 하고, 한국에서 이주하시면서 음악 하는 환경이 확 달라져 버렸잖아요?
이주하면서 어떤 미호 씨 음악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거는 제 사감인데 영화 맨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가 사실은 ‘이 영화와 미호 씨의 여정을 관통하는 어떤 가사와 노래가 아닌가?’ 싶어 가지고, 너무, 너무 좋았거든요.음악이 미호 씨에게 주는 힘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미호 씨 음악 세계에 대해서 좀 듣고 싶어요. 이주하면서, 음악적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미호
엄청 많이 바뀌었습니다. 노래를 들으시면 많이 아실 거 같아요.그때까지는 제가 음악한다고 하는 장소가 다 지하에 있는 라이브 클럽, 하우스, 그런 곳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한국에 온 후에 공연하는, 활동하는 장소가 시민들이 있는, 시민들 앞에서 공연하는 기회가 많아졌고, 야외에서 하는 경우도 많고요.
어린이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지나가는 그런 장소에서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맑은 하늘 아래에서 공연을 해보니까 아주아주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음악이 완전 바뀌었고, 음악이 밝아졌고, 그리고 지금 다시 음악을 한국에서 하고 난 후에는 이주한 저의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어져서, 그런 가사가 들어있는 음악을 많이 쓰게 되어서 음악 가사 내용도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머큐리
그리고 이제 음악이 미호 씨에게 주는 힘 같은 게 있으면?
미호
힘은 역시 음악은 힘밖에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점도 매일매일 힘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아까도 말했듯이, 한국에서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저한테 할 수 있는 게 음악이고, 음악이 딱 하나가 원래 하고 있었던 음악이 있으면, 사람들이랑 오늘도 이런 장소에 제가 있다는 것도 기적 같잖아요?
그런 일이 많이 생기는 거예요.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음악하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도 저한테 주고, 계속해서 저를 응원해 주는 게 음악인 것 같아요.
머큐리
음악 할 때 작사, 작곡 다 하시나요?
미호
네, 작사, 작곡하고 편곡은 남편이 하고. 남편이랑 같이 가사랑 곡 만들 때도 많아요.
머큐리
파드마가 두 분이신 거죠?
미호
네 기본적으로 2명이서 하고 있고 서포트 멤버로 가끔씩 멤버가 들어와요.
머큐리
지구인의 노래 팀은
미호
네, 뭉크라고 하는 몽골 남성이 최근 한국에 있고, 그리고 멜이라고 하는 친구는 코로나 끝난 후에 바로 미국으로 본국으로 귀국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활동을 안 하고 있습니다. 다 잘하고 있어요.
머큐리
계속 음악에 대한 질문을 들어오고 있습니다. 음악은 어느 시간대에 만드시나요?
밤에, 아침에, 낮에 이런 게 있잖아요? 음악적으로 떠오르는 때.
미호
그거는 좀 날마다 다르네요. 가끔씩 일어나자마자 음악이 떠오를 때도 있고요,
그런데 노래하고 그러는 건 오후나 저녁에 많이 합니다.
머큐리
언제부터 싱어송라이터셨냐고.
미호
계속해서 음악을 하고 노래하고 찍고, 그런 걸 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저의 노래를 만드는 게 18살 때였던 것 같아요.
머큐리
18살 때부터 작곡을 하시고, 음악을 하셨다, 말씀하셨네요. 나중에 유튜브 계정을 누가 찾아 가지고 파드마, 벌써 찾아서 올려주셨어요.
여기 계신 분들은 이거, 유튜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소감문도 올려주셨는데 제가 읽어드릴게요.
영화 잘 봤어요. 인천에서 이런 인권영화제에서 보니까 더 좋았답니다.
저도 일본 출신자로서 공감할 점이 많았고요, 앞으로의 음악활동이 더욱 기대가 되네요.
마문 감독의 작품도 그렇고 우리의 목소리를 이 사회에 더 내준 것에 다시 감사하고,
앞으로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이렇게 소감문 남겨주셨습니다.
관객분들 중에 혹시 ‘내가 마이크 잡고 이분들과 얘기할 수 있을까?’ 생각하시는 분들 혹시 계실까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두 분께 공통 질문드리겠습니다.
미호 씨의 경우, 향후 공연 일정이나 앨범 발행 등 어떤 음악적 일정이 있는지 그게 좀 궁금하고요. 감독님은 새로 기획하거나, 구성하고 계신 영화가 있으신지?
장난처럼 또 누구 쫓아다니고 계신 거 아니에요? 친구들? 그런 게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미호
공연 같은 거는 거의 다, 올해의 공연들이 거의 다 마무리 가까이 되었어요.
보통 한국은 추워서 겨울에는 공연을 많이 안 하는데, 또다시 내년에 준비를 많이 해야 될 것 같고요. 그리고 음반을 준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파드마 옐로우라고 하는 음악을 발행했어요.
옐로우라고 하는 건데 파드마가 원래 락밴드였잖아요? 그런데 한국에 이주민으로서 저도 뭔가 일본 사람으로서 자기 나라의 음악을 뭔가 할 수 있어야 되겠다, 라는 생각도 있었고 여러 나라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져서 월드 뮤직 같은 걸 하는 파드마가 있어요.
두 가지의 장르를 가지고 있는 밴드인데, 그래서 월드 뮤직 쪽의 음반을 작년에 발매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락적인, 락의 음반을 발매하려고 지금 준비 시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 작업을 지금 계속하고 있는데요.
그건 아마 마문 감독님이 많이 얘기해 주실 것 같아요.
머큐리
마문 감독님이 왜 음악 작업 얘기를? 월드뮤직이 하나 있는데 파드마에, 그게 옐로인가요?
미호
파드마 레드로 내려고 해요.
머큐리
세계 음악 쪽은 옐로우, 락 쪽은 레드인데 레드를 준비하고 있다, 말씀하시는 거죠? 인천에도 같이 활동하는 분도 있다고,
미호
저는 3년 전부터 인천에 거주하고 있어요.
그런데 인천에서도 가끔씩 음악 활동하고 있었는데 인천의 뮤지선 싱어송라이터인 강홍구라고 하는 친구랑, 그리고 저랑 남편이랑 인천에 거주하는 뮤지션 3명, 일본 쓰시마 아나요?
대마도를 중심으로 많이 활동하는 그 일본 친구가 있는데 사미센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는데
4명으로 밴드를 만들었어요.
플로팅 아일랜드를 만들었는데 인천 섬과 일본 섬을 연결하는 걸 많이 시도하려고 하고, 올해 첫 번째 공연을 했으니까, 앞으로 일본에서도 하고 한국에서도 하고, 다른 나라하고 3개의 섬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머큐리
그러면 그 그룹은 옐로인가요?
미호
그건 플로팅아일랜드, 옐로도 섞여 있고 레드도 섞여 있습니다.
머큐리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고 계신 미호 씨의 미래가 더 힘차게 뻗어 나가길 기원드리겠습니다. 감독님도 뭐, 일정 있으시잖아요?
섹 알 마문
네, 저는 올해 처음으로 장편극 영화로 도전을 했고, 10월에 한 달간은 촬영이 끝나서 지금 편집 작업을 하고 있고, 그래서 아까 미호가 음악 얘기를 해달라 했잖아요?
미호가 음악감독으로 <빠마>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때도 미호가 참여했었고 미호가 이번에도 얘기하니까, 하겠다고 하고, 저도 미호의 음악 좋아하거든요.저에게는 첫 장편 극영화가 될 거고, 기회가 되면 내년에 좀 정리해서 개봉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언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머큐리
촬영은 다 끝나신 거고?
섹 알 마문
촬영은 끝났고 이주 노동자 한 사람한테 “개인의 삶에 남는 것이 뭐냐?”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고, 주인공이 한 4명으로 구성돼 있는 그냥 90분짜리 영화입니다.
머큐리
그 영화도 저희 인천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될 수 있었으면 너무 좋겠네요.
그런데 그러면 영화음악 감독님은 지금 미호 씨고, 혹시 제목은 저희한테 알려줄 수 있나요?
섹 알 마문
빨대.
머큐리
빨대…
네. 내년에 혹시 우리, 마문 감독님의 장편극 영화 빨대, 90분짜리가 인천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많이 기대해 주시고요. 왜 웃으시죠? 오늘 유쾌하게 이렇게 이야기 이끌어 주신 감독님과 미호 씨에게 감사드리고, 이 자리를 계속 지켜주신 관객 여러분 덕분에 이 자리가 빛나는 것 같습니다.
관객 여러분께도 감사드리면서 오늘 이야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 인천인권영화제 무료 상영하지만, 재정적으로 여러분들의 후원이 굉장히 이제 많이 필요한 상황에 있습니다.혹시 나가서 저희 기념품이나 이런 거 둘러봐 주시고요.
후원 계좌도 저희가 홍보하고 있으니까 들어가서 많이 좀 후원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모든 일정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