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 Colorless, Odorless

이은희 l 2024 l 다큐멘터리 l 55분 l 한국어 중국어(만다린) 영어 타갈로그어 한국어자막해설

반도체 산업 재해 피해자들의 업무 기록과 아카이브 자료를 따라 카메라가 포착할 수 없는 냄새와 물질의 작용을 추적한다. 최첨단 전자산업 현장의 위험은 철저하게 감춰져 있고, 재해는 다른 몸과 장소에서 반복된다.

시놉시스

<무색무취>는 반도체 산업 재해 피해자들의 업무 기록과 아카이브 자료를 따라 카메라가 포착할 수 없는 냄새와 물질의 작용을 추적한다. 과거에 관한 증언은 현재의 증상에 포개지고 재해는 다른 몸과 장소에서 반복된다.

Synopsis

<Colorless, Odorless> follows the work records and archival materials of victims of semiconductor biohazards, tracing the smells and effects of substances that cameras cannot capture. Testimonies of the past overlap with current symptoms, and the disaster repeats itself in other bodies and places.

| 노동, 사람의 일 |

감독 : 이은희
제작연도 : 2024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중국어(만다린) 영어 타갈로그어
상영시간 : 55분

상영일시 : 상영일정 2025.12.4.(목) 오후 7:30
상영장소 : 영화공간 주안 3관

대화의 시간
이은희 감독
이종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작품해설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워치, 가전기기, 자동차까지 이제 반도체 칩은 생활 속 대부분의 전자기기에서 빠지지 않는 부품이고, 이러한 전자기기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생활을 더 편리하고 풍족하게 해주는 반도체의 이면에는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는 수많은 노동자가 있다. 삼성과 같은 기업들은 반도체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하지만 ‘영업비밀’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의 필요성마저도 감추고 알려주지 않는다.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화학 물질로 인한 위험은 노동자들이 희귀암과 같은 질병에 걸리고 나서야 세상에 드러난다. 그러나 아픈 몸만이 유일한 증거인 피해 노동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없었다면 이조차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발병하고, 2세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질환이 산업재해임을 밝히고 기업의 책임을 묻기 위해 노동자들은 지난하고 힘겨운 시간을 투병과 투쟁을 동시에 해왔다.

반도체 산업재해 피해자들이 빼곡히 기록한 업무 기록은 무색무취 화학 물질처럼 감춰져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동 현장으로 이끈다. 감독은 아카이브 자료와 함께 소음과 액체의 이미지를 통해 알아채기 어려운 위험을 감각하게 한다. AI로 구현한 거대한 반도체 공장에서의 노동을 보면 내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낯설게 쳐다보게 된다.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인권해설

<무색무취>가 상영되는 2025년은 AI, 반도체 산업의 대대적인 육성 정책이 강조된 해입니다. 12.3. 내란으로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도 국회는 삼성 등 재벌기업의 이해를 전적으로 반영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 지원 특별법(일명 반도체특별법)’을 조속하게 통과시키기 위해 분주했습니다. 2월엔 삼성, 하이닉스의 세금을 6조나 깎아주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4월에는 민주당 주도로 반도체특별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어 12월 안으로 본회의 통과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특별법이 노동3권 엄격준수 조항을 포함해 노동권을 침해하고 기후 위기 시대에 과도한 물과 전기를 반도체 공장에 끌어 쓰는 문제에 우려를 표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아무런 검토조차 없습니다.

누가 이 산업을 이끌고 있는가. 반도체 산업은 어떤 산업인가. 많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영화 <무색무취>를 보고자 하는 분들에게 재벌, 자본, 정치적 이해를 먼저 이야기하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노동자들이 왜 여전히 똑같은 백혈병에 걸려 죽고, 같은 직업병으로 신음하는가, 왜 넘어진 자리에서 또 계속 넘어지는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 산업의 문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입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님의 아버지가 당시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며 꺼내신 말씀은 “2인 1조로 일하는 설비에서 딸과 동료 둘 다 백혈병으로 사망을 했는데, 삼성은 단돈 500만 원을 주고 죽음을 덮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 죽음이 산업재해 같다는 의심을 품은 아버지가 삼성에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끈질기게 싸우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반도체 산업의 빛만을 쫓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황유미 님을 시작으로 정말 많은 노동자들이 똑같은 백혈병이나 혈액암, 뇌종양, 각종 암과 희귀질환으로 숨지고 지금도 투병 중에 있다는 진실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이 산업의 실체가 제대로 보입니다. 이 산업은 첨단 기술 산업이기 이전에 수백, 수천 종의 유해화학물질과 방사선 등으로 반도체를 생산하는 유해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유해산업이 우리 미래의 먹거리라 강요하는 정치권에 저는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자녀들을 반도체 공장에 보낼 수 있을까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에서 하루 8시간, 12시간씩 주야 교대로 근무해도 괜찮은지를요.

영화 <무색무취>에는 그렇게 일한 삼성반도체 여성노동자가 희귀종양을 앓고, 반도체 노동자의 자녀들이 2세 질환(자녀산재)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과거를 떠올리며 기억만으로 모든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외주 하청 노동자, 해외 전자산업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누구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어떤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했는지 노동자들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황유미의 죽음으로부터 수많은 피해자들의 존재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알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직업병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증언을 하고,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건강을 짓밟고 선 반도체 산업, 자본의 이해가 노동자의 권리보다 더 우선시되는 사회 속에서 더 이상 당하고 싶지 않은, 생명과 건강, 그리고 우리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반올림은 피해자들과 함께 진실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종란

2007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스물셋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여성노동자 고 황유미 님의 억울한 사연을 접한뒤로 ‘삼성반도체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18년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반올림에서 직업병 피해자 상담과 노동자 건강권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

이은희 감독

감독
이은희 Lee Eunhee

이은희는 기술 환경과 개인,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며, 현대 기술의 메커니즘 탐구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다룬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연출의도
전자제품의 핵심 요소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먼지를 비롯한 제반 환경 조건이 통제되는 공간을 의미하는 ‘클린룸’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청결하게 세정 및 소독된 이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종종 건강에 심각하게 유해한 화학물질에 노출되고는 한다. 즉각적인 참사와 달리 화학물질의 축적으로 인한 질병은 외관상 눈에 띄지 않은 채 세대에 걸쳐 느리게 발병한다. 시큼하기도 하고 달큼하기도 했던 냄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청정하다’는 것은 생산의 안정적 극대화를 의미할 뿐 신체의 안전과는 동떨어진 의미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최첨단 기술 현장의 보이지 않는 독성과 그 위험을 증명하는 것은 오직 클린룸을 드나들며 노동해 온, 물질이 통과하는 몸과 희미한 냄새의 기억뿐이다.

〈무색무취〉는 반도체 산업 재해 피해자들의 업무 기록과 아카이브 자료를 따라 카메라가 포착할 수 없는 냄새와 물질의 작용을 추적한다. 이를 위해 취약함에 노출된 아시아의 여성 및 이주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과거에 관한 증언은 현재의 증상에 포개지고 재해는 다른 몸과 장소에서 반복된다. 다국적 기업이 인건비뿐만 아니라 안전성 기준 및 규제 대응 비용을 낮추기 위해 제조 공장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함에 따라 산업 재해 또한 전 지구적으로 옮겨진다. 미래는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구체적인 몸과 물질 사이에 얽힌 무언가가 아닐까? 작업은 첨단 기술 산업이 점점 외주화되는 노동 환경의 위험과 착취의 세계화를 선도하는 가운데, 이에 맞서는 피해자, 활동단체, 노동조합의 연대의 지형을 그려본다.

Credit

프로듀서 · 김신재
연출 · 이은희
촬영감독 · 정그림
음악감독 · Noddy Woo
번역 · 김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