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주공 (Land and Housing)

봉명주공_스틸샷

1980년대에 조성되어 30여 년 동안 아파트 단지이기보다는 마을이었던 봉명동 주공아파트는 재건축사업으로 사라진다. 삶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자란 다양한 꽃과 나무들, 지나온 세월만큼 누적된 생활의 흔적들, 주민들이 들려주는 공간과 관계를 담은 기억들이 주민들의 이주와 함께 사라진다.


[시간의 겹]

봉명주공
Land and Housing

감독 : 김기성
제작연도 : 2021
장르 : 다큐멘터리
국가 : 한국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83분 23초

상영일시 : 2021.12.18(토) 19:0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3관



작품해설

1980년대 지어진 봉명동 주공아파트는 주민들이 마을과도 같은 공동체적 생활상을 이어온 곳이다. 커다란 나무들과 다양한 꽃과 채소들로 가득한 이곳은 주민들이 소중한 기억을 쌓아온 삶의 터전이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가족, 이웃과 더불어 공간을 가꾸고 구축한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맺어온 사람과 공간의 관계는 그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 삶의 기반이 되어 준다. 영화는 봉명 주공아파트단지의 생애를 담아내듯 역사와 특징들을 소개하면서, 재개발공사 전 마지막 풍경을 담아낸다. 이곳을 떠나는 아쉬움과 추억들을 이야기하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사람들의 이사와 잘려 나가는 꽃과 나무들을 보여준다. 재건축사업이 만들어 낸 단절과 상실은 공간의 개발이 무엇을 배제하며 진행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보풀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과일나무를 옮겨 심을 때 흙으로 감싸서 옮겨도 3년간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몸살을 앓는다. 그런데 사람을 옮기면서 그가 뿌리내리고 살아온 그 자리에서 뿌리에 달라붙은 흙까지 탁탁 털어서 앙상한 뿌리를 드러낸 채 아무 데나 던져버리는 것과 똑같은 철거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다.”(『신부와 벽돌공』 중, 제정구 저, 1997)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에서의 빈민운동을 하고, 1977년 철거민들과 함께 이주 정착 단지인 ‘복음자리 마을’을 만든 故 제정구 선생이, 개발로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상황을 과일나무에 비춰 한 말이다.

영화 <봉명주공>을 보며, 땅에서 점점 멀어져 하늘을 향하는 고층아파트를 선호하고, 아스팔트로 뒤덮여 흙을 밟아볼 일이 거의 없는 도시의 삶에서, 땅과 흙에 뿌리내리는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언젠가 아파트 5층으로 이사하게 된 선배가, 5층까지는 땅의 기운이 올라오는 층이라고 너스레 떨던 기억도 스쳐 갔다. 땅을 딛고, 뿌리내리는 게 삶의 본질인 듯하다.

획일적이지만 않은 집들, 그곳에서 땅을 디딘 다양한 사람들의 삶들, 심고 가꿔지기도, 자연스레 나기도 한 풀과 나무들, 집과 사람과 풀과 나무들이 함께 땅에 뿌리내린 삶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획일화된 고층아파트와 조경된 나무가 ‘푸르지요~’라고 말하는 폐쇄적 커뮤니티 단지로 뒤바뀐다. 그게 화려한 개발과 도시의 상징이 되고 있다.

모든 가구가 한 채씩 집을 갖고도 남는다는 통계가 발표되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집이 모자란다며 주택공급을 외치고 개발을 추동하고 있다. 원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주택공급을 늘려 집 없는 사람들이 집을 갖게 해주겠다는 아파트 개발의 장밋빛 거짓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누군가의 돈 잔치와 머물 수 없는 이들의 체념과 화가 가득할 뿐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개발 투기와 성남 대장동 개발 게이트까지, 투기적 개발에 분노하면서도, ‘영끌’과 ‘패닉바잉’이라는 각자도생의 부동산 소유를 향한 투기로 내달리고 있다. 부동산과 개발의 욕망은 그렇게 집과 땅의 독점이 가능한 시대를 쌓아 올렸다.

이 땅과 집이 부동산으로 둔갑하는 욕망과 독점의 시대에, 나무와 풀과 땅을 통해 뿌리내린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낭만주의적이라고 여겨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앙상한 뿌리를 드러낸 채 아무 데나 던져져서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부수고 짓기를 반복한 지난 50년의 도시 개발의 역사에서, 우리의 주거권이, 우리의 공간이 어떻게 약탈당해 왔는지를 말하는 데서, 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우리의 푯말을 탄탄하게 세워야 한다.


이원호 주거권 활동가,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