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그라운드 Home ground

27회_인천인권영화제_상영작_홈그라운드_이미지

70년대 퀴어들의 은밀한 아지트였던 명동의 ‘샤넬’, 96년 오픈한 최초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 2000년대 초 10대 퀴어들의 신촌 공원. 그리고 ‘레스보스’를 20년째 지키며 퀴어의 노년을 맞이한 명우. 퀴어의 장소를 따라가다 보면, 정체성, 계보, 문화, 커뮤니티, 사회적 의미와 같은 말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다양한 삶의 맥락, 그 공간을 엮어 온 구체적인 얼굴들을 만나고 상상하게 된다.


| 평등의 감각 – 경계의 의미를 묻는다 |

홈그라운드
Home ground

감독 : 권아람
제작연도 : 2022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영어자막
상영시간 : 78분

상영일시 : 2022.11.25(금) 오후 7:3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11월 25일(금) 오후 7시 30분 <홈그라운드> 상영 후
권아람 감독, 터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식지팀장
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미니미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을 진행합니다.




작품해설

1996년,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가 오픈한다. 명우는 20년째 ‘레스보스’를 지키며 퀴어의 노년을 맞이한다. 영화는 재연 영상과 인터뷰를 통해 또 다른 ‘레스보스’들-70년대 퀴어들의 은밀한 아지트 명동 샤넬 다방, 2000년대 10대 퀴어들의 신촌 공원 등-을 소환한다. 그 장소들은 세상이 강제하는 젠더의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 몸들이 살아낸 삶의 흔적들이 공유되고 쌓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싸우는 몸들이 만들어낸 자생력으로 변화하고 이어지는 공간이다. 퀴어의 장소를 따라가다 보면, 정체성, 계보, 문화, 커뮤니티, 사회적 의미와 같은 말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다양한 삶의 맥락, 그 공간을 엮어 온 구체적인 얼굴들을 만나고 상상하게 된다. 그 고유함을 귀하게 여기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나 그대로 혹은 원하는 모습과 방식으로 살아가고 다른 이들과 연결되는 삶, 그 관계에 대한 욕망을 긍정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당신도 그러하듯이.



인권해설

흔히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로 1993년 12월에 창립한 ‘초동회’가 알려져 있지만, 사실 한국에서 최초로 결성된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는 1991년 조직된 주한 외국인 레즈비언 모임 ‘사포’다. 그러니 초동회는 엄밀히 말하면 한국‘인’이 결성한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이고, 그 초동회가 이듬해인 1994년 지정 성별 남성 퀴어 단체인 친구사이와 지정 성별 여성 퀴어 단체인 끼리끼리로 나뉜다. 친구사이의 창립 멤버이자 지금도 친구사이에 나오는 한 ‘언니’는, 1996년 끼리끼리의 소식지 <또다른세상> 창간호의 축사에서 “한국 동성애 인권운동 단체 발족의 시초는 여성들이었지 남성들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끼리끼리가 같은 해 문을 연 업소가 바로 영화 속 ‘레스보스’다. 기원전 7세기경 그리스의 시인 사포가 살았다던 그 섬의 이름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6~70대 ‘바지씨’, 즉 지정 성별이 여성인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를 오가는 존재들을 보고 잠시 부러움에 사로잡힌다. 현재를 기준으로 영화를 통해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60대 이상의 커밍아웃한 한국의 게이 남성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짐작건대 그 이유는 ‘강제적’ 이성애 결혼과 그에 따른 배당금의 유혹에 남성이 보다 손쉽게 포섭될 수 있었고, 그런 이유로 과거 비규범적 섹슈얼리티를 실천하던 남성들 중 대다수는 이성과 결혼하고 살았으며, 그런 분들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예나 지금이나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성애 결혼제도에서 남성과 여성 중 어느 쪽의 배당금이 더 큰지는 명확한 것이고, 따라서 지정 성별 여성인 퀴어의 경우 이성애 결혼에 대한 입장을 정하고 그것과 확고하게 절연할 결심에 대한 유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였으며, 그것이 역설적으로 오늘날 정식화된 성소수자 정체성과 운동의 규범에 보다 잘 들어맞는,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낸 영화 속 노년의 퀴어들을 마주할 수 있도록 만든 셈이다.

나아가 영화는 오늘날 분절된 성소수자 정체성의 범주 너머의 세계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바지씨’는 오늘날의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남성, 트랜스젠더퀴어, 혹은 남장여자 중 어느 한 정체성과도 서로 온전히 맞물리지 않는다. 마치 그 옛날의 ‘보갈’이 오늘날의 게이, 트랜스젠더 여성, 혹은 여장남자 중 어느 하나와도 1:1 대응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더불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가 서로 분리된 개념으로 정착된 오늘날에도 그 성소수자 정체성들을 넘나드는 몸에 얽힌 경험이 있다. 설령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이라도, ‘끼순이’와 ‘티부’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성별 비순응의 체험과 욕망과 그로부터의 사회적 낙인과, 그를 바탕으로 형성된 ‘우리만의’ 문화를 동성애자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하고 산다. 정도와 방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성소수자들은 저마다 세상이 허가하지 않는 성별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자신의 몸, 또는 지정받은 성별과 도저히 화해할 수 없어 그와 다른 성별로 스스로를 정체화한 몸이 주는 사태를 직면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몸과 가까워지기 위해, 저마다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 아무쪼록 “조금은 덜 외롭기 위해”, 성소수자들은 앞서 세상을 산 누군가가 제 품을 팔아 만든 문화와 공간에 자신을 기대어 살아간다.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친애하는 작가의 사진전을 보러 레스보스에 들른 적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사진전 외 다른 퀴어 행사를 전혀 열 수 없었을 시절이었다. 모이지 않는 것을 유일한 시민의식으로 명토 박은 방역당국의 지엄한 명 앞에, 우리의 공간이 그런 식으로 요약되고 유폐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목을 내놓고 ‘이쪽’ 공간을 드나들었고, 그렇게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마치 전쟁터에서 만난 동지들 같았다. 그리고 2022년 10월 말, 킹클럽과 레스보스가 있는 이태원 한가운데에서 백몇십 명이 다중밀집 사고로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매년 모이는 인파의 규모를 뻔히 알고서도 매년 취하던 조치를 끝내 취하지 않아서 생긴 참사였다. 희생자들 중에는 게이 남성도 있었다. 사람 한점 얼씬 못하게 해 말려 죽이더니, 이제는 사람들이 미어터진 채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참사 앞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참사가 발생한 시각 전후 이태원을 즐기고 있던 몇몇 퀴어들은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모든 전대미문의 광경 앞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가 모여서 논 것이 죄는 아니라고, 모여서 놀던 거기에서 생기던 의미가 분명히 있었다고, 머릿속으로 얼마나 수도 없이 그 말을 되뇌고 또 되새겼는지 모른다.

세상은 소수자에게 늘 전쟁과 같았고, 그 전쟁통 가운데서도 우리는 각자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렇게 지키고 싶은 것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알아보았고, 그들은 한번 알아본 그것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과 문화와 그곳에서 일어나는 친교와 놀이는 누가 뭐래도 “세상이 떠들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모든 숱한 괴로움과 참사 가운데 나를 붙들어 매준 것은 바로 그것들 하나하나를 새삼 기억해내는 일이었다. 내가 사랑한 곳, 내가 사랑한 문화, 내가 사랑한, 나와 비슷하거나 달라도 좋을 사람들로 가득 찬 광경이 무슨 까닭에선지 그렇게도 나를 안심시키던 곳, 그곳에서의 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나와 더불어 무언가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던 그 사람과 사람들.


김대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소식지팀장




감독
권아람 Kwon A-ram

MTF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과정을 기록한 <2의 증명>을 공동연출, 성소수자들의 사적 공간을 담은 <퀴어의 방>, 태국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의 이야기 <463 poem of the lost> 를 연출했다. 도시 이면에 놓인 소수자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