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도 남도 아닌
Why I Left Both Koreas
감독 : 최중호
제작연도 : 2017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한국/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영어자막
상영시간 : 85분
상영일시 : 2019.11.23(토) 13:30/ 24(일) 17:0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3관(토) 4관(일)
기획의도
자유와 미래의 꿈을 안고 찾아온 대한민국. 목숨을 걸만큼 위험하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시도를 감행하고 남한의 땅에 도착한 탈북민이 33,000명이다. 그러나 이들 중 실제로 지난 10년간 탈남한 사람들이 2000여명이고 북한으로 돌아간 이들도 28명에 이른다. 사망자 대비 자살률은 남한의 3배 수준이라고 한다. 왜 이들은 떠났을까?
[북도 남도 아닌]은 이들이 떠난 이유가 남한 사회에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남한 사회의 시선과 태도가 이들의 삶을 구성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진영논리에 따라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취사선택하고, 북한을 ‘비정상’ 국가로 바라보고 상대적으로 남한을 ‘정상’국가, 우월한 체제로 바라보면서 그들이 남한 사회에 감탄하며 적응하기만을 요구해왔다. 영화 속의 탈북-탈남한 경계인들의 이야기는 이런 우리의 태도를 성찰하게 한다.
탈북민은 북한에서의 삶을 존중받지 못한다. 직업, 학업 등의 경력을 무시당하는 것은 난민, 이주노동자 등 또 다른 경계인들도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탈북민이라고 밝히기를 망설이고, 과거의 삶에 대한 부정으로 인정받는 상황이 반복되는 자기 존재의 부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분단체제가 만든 비극과 폭력성은 탈북민의 삶과 동시에 남한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한 사회의 삶의 방식이 착취적이고, 평등과 연대의 가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탈북민과 나아가 북한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감독이 영화에서 스스로 말한 “왜 그들에게 북에 대해서만 물었을까?”란 질문은 경계인들과의 공존을 위한 우리 모두에게 던진 질문이다. _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랑희
대화의 시간 요약
33,000여명의 탈북민은 한국사회가 만든 여러 사회적 이미지 속에서 살고 있다.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잘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탈북민의 각각의 삶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탈북민의 특수한 상황들 – 탈북과정에서 보수적인 기독교 영향을 많이 받고, 보안경찰과 국정원 등에게 상시적 감시도 받고 있는-이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만큼 앞으로 시민사회 등 탈북민 당사자들이 만나는 남한사회에서 다양한 삶의 접촉면들이 생겨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분단체제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고, 탈북자들은 분단체제가 만든 ‘조난자’들이다. 남한 사회의 삶과 정치 곳곳에 뿌리내린 분단체제는 탈북민을 부정적인 이미지와 고정적인 프레임에 가둔다. 분단체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분단체제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함께 연대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평화체제를 만드는 과정은 아주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문제이고 그만큼 탈북민 당사자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방적으로 ‘적응’을 강요받고 자신들의 북한에서의 삶과 문화를 부정해야하는 상황이 탈북민들에게는 언제 낙인으로 작용할지 모르는 긴장과 부자유를 만든다. 북한주민이 남한 사회를 이해하는 것만큼 남한이 북한주민을 이해하는 것이 공생이 가능하게 할 것이다. 평화의 흐름은 탈북민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변화를 만들수있을뿐만 아니라 남한사회의 변화 역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대화의 시간 기록
일시 : 2019년 11월 23일 오후 2시 50분
장소 : 인천 영화공간주안 3관
게스트 : 강곤 인권운동 편집장, 주승현 인천대학교 교수·탈북민, 최중호 [북도 남도 아닌] 감독
랑희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랑희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그동안 탈북민의 삶에 대해 너무 몰랐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돌이켜 보니 그냥 몰랐다고 하기엔 무관심에 가까웠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탈북민들이 한국사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려합니다. 함께 이야기 나눌 분들을 모시겠습니다.
세 분의 이야기 손님을 모셨는데요, 자기 소개를 간단하게 세 분께 부탁드릴게요.
강곤
저는 인권운동이라는 직설적 제목을 갖고 있는 인권관련 잡지를 만들고 있고, 별도로 국가보안법 문제나 탈북민조작간첩사건에 대응하고 있는 강곤입니다.
최중호
안녕하세요 저는 [북도 남도 아닌] 만든 최중호 감독입니다.
주승현
반갑습니다, 저는 인천대학교에 있는 주승현입니다. 저는 여기 나온 사람들처럼 고향이 북한인 사람이고, 영화를 보며 제가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공감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 저들의 어떤 삶이 한국에 와서 겪었던 일부분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마침 영화에서 나왔던 많은 탈북인들이 제가 아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영화를 좀 더 깊게 보게 됐던 거 같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랑희
먼저 제가 앞에 나온 세 분께 몇 가지 듣고 싶은 얘기에 대해 질문을 드릴거고, 진행하다가 관객여러분께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드릴 예정입니다. 먼저 제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어떤 얘기 나누고 싶은지 생각해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최중호 감독께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영화를 보다보면 어떤 고민과 과정에서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 소개가 되기도 하고 다양한 분들이 나오는데 촬영을 허락하면서도 우려하던 부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신 분들이 영화를 만들면서 걱정했던 부분도 있을 거 같고 또 감독께서 영화를 만들며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궁금해요.
최중호
영화에서 연출의도와 과정을 담아서 어느 정도 설명됐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기록입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 2007년에 탈북자를 처음 만나고 충격을 받아 북한 인권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1년간 했는데, 그 이후 사실 전혀 그런 것과 관련된 활동을 하지 않다가 우연히 만난 탈북자, 해외에서 만난 그분을 통해 조금 다른 시각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남한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에 더 중점에 둔 이야기를 들어서 그걸 기록해야겠단 마음 하나로 시작했고 완성한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 기록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2000년대 초반, 2010년대 초반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앞으로 통일이나 경제협력이나 남북관계의 미래가 더 펼쳐질텐데 그에 앞서 탈북 1세대의 2000년대 초반의 생활은 어땠고 그들이 정치적·경제적으로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해야겠다, 논문이 아니라 영상으로 해야겠단 생각이었습니다.
처음 경계하는 그런 부분은 당연히 있었죠. 저한테 소속을 물어 보기도 했고. 쉽게 말하면 제가 국정원이나 단체로서 접근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제가 어떤 의도로 만들려고 하는지 최대한 진정성있게 대화하고, 처음 한국에 있을 때는 카톡전화도 하면서 어느 정도 그 분들의 우려가 내려갔고. 실제로 만나고 나서도 우려가 있었지만,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불편해하는 분이 있었죠. 최대한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려고 했어요. 특별한 것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계속 듣는 것.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풀렸던 거 같습니다.
랑희
다양한 분의 다양한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소중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저도 탈북민과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보니 보수와 가깝다는 이미지들로 이해해왔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 또 그럴만한 다양한 삶의 배경이 있다는 것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며 곰곰이 생각한 건 이분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기 위해 용기를 내서 살던 곳을 떠나 남한으로 왔고 그것은 자유이기도 하고 삶의 목표이기도 한, 적극적 의지를 가진 분들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영화에 나온 분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대와 삶의 고민을 갖고 계신 분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남한에 살고 있는 여러 탈북민의 삶과 고민에 대해 저희에게 소개해주세요.
주승현
잘 아시겠지만 한국에는 3만 3천명의 북한출신자들이 있고, 다양한 호칭 속에서 한국사회가 만든 여러 사회적 이미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어디든 가서 탈북민들을 보는 우리 시각이 탈북민을 어떤 하나의 고정된 편견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3만 3천명의 숫자만큼 다양한 사연과 궤적을 통해 한국에 와있다는 것, 여러 가지 다양성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으로 접근해달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고정된 시각으로 이들을 보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말씀하신 것처럼 이들 대부분이 극우보수세력이라거나, 사실상 북한에 대한 이해나 정보가 전무한 국민들은 탈북자라고 하면 굉장히 열등하고, 영화에서 나왔던 거지같은 나라에서 살고 온 존재가 아니냐, 그래서 너희들은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 아니냐는 시각이 알음알음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벗어나고 극복하는 것이 탈북주민들이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첫번째 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탈북민들은 지금 북한에서 한국으로 오기까지 정말 많은 사정과 사연이 있고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비무장지대를 넘어서 한국에 온 사정이 있었고요, 아시겠지만 비무장지대는 함부로 넘어갈 수도 없고 넘어올 수도 없는 굉장히 죽음의 지대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 경로로 왔기 때문에 저도 사선을 넘어왔단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습니다. 제 주변 탈북민을 보면 중국이나 제3국을 통해 왔는데, 어쩌면 저보다 더한 고통과 죽음의 사선을 넘은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남한까지 오는 데 25분 걸렸지만 이분들은 매일, 매순간 고통과 죽음의 현장에서 수년, 혹은 10년 넘게 걸려 한국에 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 좀 더 잘 정착하고 잘 살아야 할 이유임에도불구하고 한국에 들어온 순간 그 모든 것이 꺾여 나가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고. 쉽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목숨을 걸고 왔는데 한국에 와서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사람이 많을 수 있나. 그럼 한국은 얼마나 힘들고 탈북자들에게 잔인한 사회인가. 그런 생각을 저도 많이 가지고 있고 주변인들도 그렇습니다. 그런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또 다른 결심을 한 사람들이 제3국으로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이 영화는 한국에 온 탈북민들의 삶과 동시에 떠날 수밖에 없는, 떠나서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삶을 조명하며 전체적으로 입체적인 구도에서 이들을 바라보고 여러 고민과 문제제기를 주는 작품 같습니다. 저는 굉장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이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결국 우리에게 와 있는 우리 국민이고,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남북이 평화를 찾거나 통일이 되면 함께 살아야 될 북한국민에 대해 미리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이들에 대해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각도 정리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랑희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이들의 다양한 삶을 다 이해하기란 어렵지만 말씀 속에서 우리가 단편적으로나 개개인을 떠나서 탈북민을 하나의 이미지 또는 덩어리로만 이해했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보면 남한사회에서 다양한 삶의 접촉면들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탈북민과 남한사회의 다양한 시민사회가 접점들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권운동하고 계신 활동가이기도 한 강곤 편집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곤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탈북민의 어떤 특수한 점 때문인가, 그것도 분명히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운동의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사회운동이라고 하면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 정부에 비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장애운동이 시작된 것이 거의 88년 서울올림픽 때, 건국하고 50년 동안 장애인들은 정부에 대해 비판하거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 채 살아오다가 근 50년이 지나서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탈북민은 95년부터 발생했다고 했는데, 영화나 주승현 선생님의 조난자들이라는 책을 보면 북한뿐 아니라 남한 체제를 객관적으로 보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제 나오는 것은 그나마 일찍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론 탈북과정에서 보수적인 기독교, 개신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개신교 신자가 되기도 하고 탈북과정에서 도움을 줬던 보수개신교와 반하는 입장을 내는 게 힘들었을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보안경찰, 국정원 등에게 상시적 감시도 받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 정착지원금도 받고.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회에 비판적인 이야기를 한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큐에서 인터뷰 응한 분들이 대단히 용기있는 분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야기가 터져나왔고 그럼으로써 시민사회와 탈북민 당사자들이 만나는 첫 발걸음이 시작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랑희
저도 이제서야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감독님의 영화를 통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관객분들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향후에는 탈북민과 남현 사회의 다양한 집단이 접점을 가지고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조금씩 변화가 있을 거란 기대도 갖게 됩니다.
영화를 보며 분단체제를 떠올리게 되는데, 저는 남한에 살면서 분단체제라고 하는 걸 많이 인식하진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냥 오랜시간 갈라져서 살아왔던 것에 익숙해져버린 삶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보며 오히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탈북하고 다시 탈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내가 사는 사회가 대체 어떤 사회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이 분단체제라는 것과 떼어낼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단체제가 남한사회에도 미치는 영향들이 크기 때문에 이들을 밀어내는 힘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분단체제가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주승현
우리는 분단국가에서 혹은 분단체제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라고 볼 수 있고요, 탈북자들은 분단체제가 만든 ‘조난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도 분단환경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탈북자와 우리 국민 간의 연계는 분명히 있다고 보고, 여러 문제는 사실 우리가 분단체제를 반추하고 극복하는 생각을 가지며 함께 연대하는 것 자체가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분단되지 않았으면 탈북자라는 존재도 없을 거고, 또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느끼는 여러 어려움도, 사회적인 이미지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얘기했던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사건 등 남북관계가 좋지 않을 때 이들에게 작동하는 분단프레임은 “너희들은 믿지못할 존재이고, 빨갱이냐 또는 간첩이냐?” 이런 질문들입니다. 그래도 저는 어른들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여러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본인이 선택한 것이 이 사회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로부터 그리고 그 부모들로부터 받는 그런 것들은 정말 트라우마고 상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미래에 부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분단체제를 내가 넘어서야겠다 또는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제3국으로 나갔지만, 승철이 얘기한 것처럼 자기는 제3국에 있지만 가족은 북한에 있고,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어디에 가든 분단체제는 평생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여서 굉장히 우울한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답은 얼마정도 영화가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것이 무엇이냐? 그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체제가 우리에게 강요한 것, 작동되는 메커니즘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분단체제가 탈북자들을 만들고 그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씌워주는 것 외에도 우리에게도 분단체제의 영향은 우리 삶에 다 들어왔다는 것. 그것을 알 수 있는 영화로 보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생겨나는 많은 사건들은 다 따라가보면 분단체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가 분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1차적 피해자들이 있지만 우리가 이걸 바로 잡거나 극복하지 못하면 나중에 우리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연대하고 공동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강곤
사실 분단체제를 온몸으로 경험한 1세대들은 한국전쟁을 겪었고 이산가족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많이 이야기하셨지만 돌아가시고 70년이 흐르면서 분단체제라는 것이 남한에서는 공기처럼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도 못느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3만 명의 탈북민들은 매순간 분단체제를 온몸으로 느끼고 계신 분들이고, 한반도 평화에서 이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가 오키나와와 남한사회를 비교하며 쓴 [두 섬 :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섬이 아니라고 착각하는데 한국에서 외국을 가려면 배나 비행기를 타야합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나 사상적 혹은 철학적으로 섬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로지 전 세계에서 한국사람만 북한을 가지 못하고 북한의 영화, 뉴스, 신문을 못 봅니다. 갇혀있는 것, 차단되어 있는 것이 바로 분단체제죠.
문재인 정부에서도 최저임금을 올린다,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하면 자유한국당에서 빨갱이다, 공산주의라고 얘기합니다. 이 말도 안되는 색깔론, 이것들이 먹혀들어가고 그런 정당이 30% 이상 지지를 받고 제1야당이 되는 것이 바로 분단체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너무 익숙해서 못느껴지지만 우리 삶과 정치 곳곳에 뿌리박혀있는 분단체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런 다큐멘터리가 중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랑희
저도 정말 익숙해져왔던 거 같습니다. 영화를 통해 익숙해져왔던 우리의 삶을 낯설게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저에게 중요한 말이 있었는데 바로 감독님이 스스로 하신 말이었습니다.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데 뭐라고 하셨냐면 “왜 우리는 그들에게 북에 대해서만 물었을까?”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을 영화에서 했습니다. 저도 그 질문이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감독님이 영화를 마치고 시간도 많이 흘렀는데 이 질문의 답을 찾으셨나요?
최중호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계속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냥 단순히 어떤 개인에 대해서 그 사람의 북한에서의 인생, 탈북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다큐엔 없지만 최승철씨께서 통일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백분토론 같은걸 하면 통일을 주제로 하고 토론할 때 토론자들이 대부분 북한에 자원이 어떻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뭐고 이런 얘기를 합니다. 거기서 보여지는 갑을관계 같은 것이 그 질문과 비슷하단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옳고 정답이고, 번영해서 세계경제 순위 어쩌구, 우리가 잘났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반대인 북한에 대해선 당연시 하는거죠. 우리를 따라와야 하고, 우리가 맞고. 그런데 최승철씨와의 만남이 저한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줬어요. 왜 나는 북한에서의 생활, 쉽게 말하면 잘못된 점을 듣고 싶다는 거죠. 그리고 탈북과정. 왜냐면 자극적이니까.
북한에 대해 많은 영상물들이 있습니다. 다큐도 많고 실제 극영화들도 있는데 거의 모든 영화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북한의 잘못된 부분과 탈북과정입니다. 국제적으로 상을 받기도 하고 잘 팔리고 자극적입니다. 얼마나 탈북이 위험했고 그걸 겨우 넘어온 이야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북한체제의 모순. 반대로 그들이 남한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깨달음을 승철과의 만남에서 얻었고 나레이션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왜 우리는 그동안 북한에 대해서만 물었을까.
최근에도 사건이 있었는데 항상 이런 자리에서 얘기하는데, 탈북자 임지현씨라고 북한으로 되돌아간 분이 있습니다. 북한 방송에서 기자회견한 것이 나오고 나서 남한 방송에서 엄청 물어뜯었죠. 특히 종편들이 간첩이다, 당연히 조작설이고 성인배우설 등 다양한 억측들 나중엔 다 아닌 것으로 경찰에서 발표했지만. 그런 것들이 다 그 질문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여기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궁금하지 않고 “간첩 아니야?” 또는 개인 흠집내기 등 너무 안타까운거죠. 봉천동 탈북자 모자가 죽은 채로 발견된 사건이 8월에 있었는데, 집에 전기 체크하시는 분이 사람이 계속 없고 하니 신고해서 봤더니 죽은 채로 발견되었죠. 그것도 정치적으로 이용합니다. 광화문에 분향소 차려서 수많은 보수단체들이 그걸 또 이용을 하는 거죠. 정작 그 사람들이 여기서의 삶에 대한 관심은 없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만 급급한거죠. 저는 승철과의 만남을 통해서 깨달아서 함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걸 끄집어 내서 말씀해주시니까 감사하더라고요. 다른 대화의 시간에서 그것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포인트를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랑희
여러 얘기를 들어봤는데 관객분 중에서도 궁금하신 점이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손 들어주세요.
관객 1
감독님의 고뇌와 흔적이 보여서 잘 봤고요, 사회에 또다시 잊고 있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불합리한 모습들이 담담한 나레이션과 함께 의미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제작과정에서 많이 힘드셨을 거 같은데 그게 궁금하고, 또 탈북자께서 유리벽 안에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도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싶은데요, 우리가 좀 더 유리벽을 깰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중호
감사합니다.
우선 첫 번째는 제작과정에서 살짝 얘기 드린대로 경계심이 있었는데 그걸 허무는 것이 어려웠고요. 또 하나는 탈북자들의 대표성입니다. 이들이 3만3천명을 대변할 수 없고 극소수 일부고 떠남을 선택한 사람들이죠. 여전히 한국에 남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그 분들이 대표자로 보이는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왜냐면 우리나라 언론이 탈북자라는 집단을 하나로만 보고 그 안의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다른지, 그 다양성을 크게 집중하지 않는 것이 있어서. 그래서 이 분들이 하는 얘기가 대표성을 띄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는 점. 그리고 저렇게 떠난 사람들 얘기를 우리가 들어야 하냔 지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분들이 해외 나가면 당당하게 “저는 북한을 1998년에 나와서 대한민국에 2006년에 들어와서 살다가 이제 독일에 살고 싶어서 왔다.” 이렇지가 않고 대한민국 여권을 숨기고 새롭게 시작하는 겁니다.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서 왔다는 거짓말을 해야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또 어떤 분들은 남한에서 잘못을 저질러서 떠난 분, 빚이 있는 분도 많고요. 그래서 그런 분들의 얘기를 우리가 굳이 들어야 되냐는 얘기가 있었어요. 저도 고민이 안됐던 것은 아닙니다. 가서 만나뵙고 얘기하면 카메라가 꺼졌을 때 본인이 남한에서 잘못했던 얘기를 하기도 하고. 고민과 혼란은 있었지만 저는 결과적으로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분들은 상황이 구조적인 결과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분들을 이렇게 내몬 사회와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어요. 물론 그분들의 행위를 그 이유로 합리화를 할 순 없지만 사회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유리벽과 관련해서는 많이 여쭤봐 주시는 부분인데 저도 고민을 많이 하지만 답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다같이 노력해야 되는 부분이고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정책이 생기기도 하고, 봉천동 모자 사건 이후에도 복지부가 빠르게 대처해서 대책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뭔가를 통해서 탈북자뿐만 아니라 코너에 몰린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고 다같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그런 답변을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랑희
유리벽에 대한 부분들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어서 이야기를 나누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분들이 건네주실 말이 있으시면 손을 들어주세요.
관객 2
저는 가볍게 왔는데 영화 보면서 과제를 하나 얻은 느낌입니다. 단순히 영화를 보고 끝난 게 아니라 뭔가 한 사람으로서 과제를 얻은 느낌입니다. 유리벽이라는 질문은 저도 하고 싶었는데 하셨으니 앞으로 후속작이나 계획이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최중호
비슷한 주제로 작품을 또 하나 하고 싶습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탈북자들은 어떠한지 조명하고 싶고, 사실 작품에 관심 가져주시는 점은 ‘이들이 어떻게 해외에서 살고 있을까? 왜 해외로 갔을까?’ 해외라는 부분이 매력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않아 있는데 본질은 이곳에서의 그분들의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촬영은 사실 시작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최미란씨라고 계신데 영화 잘 보셨냐고 여쭤보니, “사실 저 15년 만에 처음으로 영화관을 가본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여기서 15년을 사셨는데 영화관을 가 본 게 처음이라고요. 제가 초청하지 않았으면 안 갔겠죠. 거기서 너무 큰 갭이 느껴졌어요. 그걸 줄이고 싶기도 하고 다큐가 정답인지 등등 여러 생각을 했는데 여기 사시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고, 최근에도 뵈었는데 그 분이 저도 사실 올해 1월에 수술을 큰 걸 받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서 봉천동 모자 얘기를 하면서 제 처지도 똑같았나는 얘기를 했어요. 그분도 병원에서 수술하고 나서 퇴원하는데 700만원이란 금액을 보고 낼 수도 없고 왜이리 많이 나왔냐고 여러 방법을 찾아서 시청, 동사무소 등등을 가봤다고 합니다. 봉천동도 똑같았어요. 엄마가 여러 곳을 다녔는데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고. 이분도 사정이 같았습니다. 병원이 치료비 부담해줄 수 있단 제도가 있다고 해서 갔는데, 2004년 이후 탈북자만 가능하다는 이런 안내를 받고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주변 지인에게, 카드를 3명에게 빌려서 나눠서 내고 지금도 지인들에게 갚고 있어요. 그분은 식당에서 그릇을 닦는 일을 합니다. 약봉지가 엄청 쌓여있고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그런 분들에게 초점을 맞춰서 후속작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랑희
앞서 초반에 주승현 교수께서 얘기했던 각자의 삶들의 이야기들과 닿는 것 같네요. 이렇게 얘기를 듣다보니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봤던 남한을 떠난 사람들, 남한에서 어렵게 사는 삶들을 보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힘든 상황으로 몰았을까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주승현 교수께서 더 잘 알겠지만 남한에 왔으니 남한사회에 적응해야한다, 이런 노력을 해야 결과가 올 테니 적응하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그런 모습들이 사실 또 다른 경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난민, 이주노동자에게도 똑같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남한사회가 일종의 ‘이것이 정상이다, 이게 맞다’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일방적인 태도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 ‘적응’이라고 하는 것이 탈북민들에게 어떤 것일까요?
주승현
한국사회에 오면 하나원이라고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하나원은 이 사람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 수 있다고 기관에서 판단하고 이후에 한국에 살기 위한 기초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하는 통일부 산하 기관입니다. 거기서 처음 입소하고 퇴소할 때까지 들었던 얘기가 한국사회 적응, 정착에 관한 것입니다. 강사가 와서 얘기 하는게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라야 살 수 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않으면 이제 패배자가 된다.”는 식의 교육을 많이 시킵니다. 그러다보니 이 분들이 처음에 든 생각은 ‘무조건 하라는 대로 잘 하지 않으면 삶을 보장받을 수 없겠구나.’ 입니다. 그런 것들이 저는 안타깝고요.
그리고 그 중 하나는 한국사회가 작용하는 것 이외에는 생각하지 말라는 공포스러운 위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탈북자에게 북한은 가족이 있거나 고향인 곳입니다. 자기는 어쩔 수없이 북한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익숙하고 내 몸에 내화된 부분이고 거기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데, 노래를 여기서 잘못 들으면 간첩으로 오해받을 수 있고 북한음식을 아직 잊지 못했다고 하면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라는 꼬리표가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혹은 북한말씨나 용어를 쓰고 싶지만 그렇게 쓰는 순간 바로 낙인되는 것이 있습니다. 너는 탈북자라는 꼬리표… 그런 것 때문에 늘 항상 긴장을 해야 합니다. 말실수하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고. 정착했다고 표면적으로는 얘기할 수 있겠지만 내면적으로는 안정된 삶, 원하던 자유가 제대로 있는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요즘 사람들 만나면 먼저 명함을 줍니다. 명함을 주면 나를 확인시킬 수 있는데, 제가 명함을 주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제 명함에 보면 교수, 박사라는 타이틀이 있거든요. 그거 없이 그냥 탈북자 주승현이라고 하는 순간 노숙자들까지 와서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게 안 끝납니다. 처음에는 그런 것도 다 이해했는데 제가 그 얘기를 다 들을 여유가 없다보니 그냥 명함을 주는 거죠. 명함을 보는 순간 사람들이 다 태도가 달라집니다. 대화하고 존중하려고 해줍니다. 그럼 다른 탈북자들은 얼마나 곤욕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부분이 두번째라면 세 번째는 결국 탈북자는 사실 북한주민들이 뒤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통일까진 아니여도 평화의 시대가 와서 남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오고가는 시대가 열린다면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모든 걸 강요할 순 없잖아요. 왜냐면 강요하는 순간 반대로 나올 것이고 전쟁하자고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우리를 이해하는 것만큼 우리도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공생과 상생이 가능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정착할 수 없는 문제도 다룰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방적인 것만 강요하는 문화도 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랑희
말씀을 듣고 보니 많이 씁쓸하고 부끄러워지네요. 저희 영화제 자료집을 만드는데 각 영화별로 인권해설을 실어요. [북도 남도 아닌] 인권해설은 강곤님이 써주셨는데, ‘영화를 통해서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적나라한 거울을 얘기해주셨는데요, 이런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강곤님이 본 거울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강곤
한국사회가 정말 인간에 대한 모욕이 넘쳐나고 혐오가 일반화된 사회입니다. 탈북민은 정말 혐오의 대상이 되기 좋은 조건에 있는 소수자입니다. 어떻게 좀 더 나은 탈북민의 지위와 인권현실을 개선할지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번째가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법정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이고, 통일부에서 탈북자라는 말 쓰지 말자고 공모해서 만든 말이 새터민. 저는 이름을 붙일 때는 당연히 그 사람이 뭐라고 불리고 싶을지 물어봐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거죠. 한 탈북민 연구자분이 자기는 ‘북향민’이라고 불러줬음 좋겠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고향인 사람’이라는 거죠. 저는 이런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거울 말씀하셨는데, 학교에서 이른바 예전에 안보교육을 했고, 이제는 통일교육, 평화교육을 하지만 여전히 교육내용은 비슷합니다. 초등학교는 “북한에 컴퓨터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런 내용으로 가르친다는 거죠. 평화를 위해 한국사회가 무엇이 바꿔야하고 무엇을 준비해야할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통일되면 뭐가 좋을까요?’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거죠. 이를 테면 북한을 하나의 새로운 식민지로 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성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독일식 통일을 얘기하는데 탈북민들은 다 독일식 통일에 대해 반대합니다. 독일의 경우 통일 전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한 분들이 5백만이고,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한 사람이 50만 명이었습니다. 한국은 이제 3만 명 인거죠. 독일식 통일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정도로 교류협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교류협력의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하고 그것은 남북, 북미관계도 바뀌어야하니 당장 우리 힘으로 할 순 없지만 주승현 선생님이나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듣고 그런 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중호
사실 남한의 탈북자가 설 곳이 없는 거 같습니다. 존재를 무시하고, 예를 들면 남북정상회담을 하며 수많은 시선이 쏠렸을 때도 배제된 딱 한 명은 탈북민 기자였습니다. 불편한거죠, 그 자리에 끼게 하기에. 그 예시가 딱 탈북민의 위치인 것 같습니다. 너네 조용히 하고 있어. 이런 게 있는 거 같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고 그들에게 중요한 건데 그들에게 정작 묻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불리는 이름인데 남한의 수많은 다른 전문가들이 모여서 얘기하고 있는 것. 이런 현실이 바뀌어야 하고, 이것의 시작은 정말 기초적인 것부터 바뀌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다큐 이 버전에는 빠져있는데 대안학교 탈북자 선생님이 왜 아이들이 자신에게 말도 안하고 한국을 떠났을까하는 마음에 찾아가서 만났을 때 영국사는 친구 집에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북한노래를 스피커로 크게 틀어놓은 거죠. 선생님도 놀래서 이런 노래 듣냐고 하니 아이들이 “선생님, 여기서 저희 아무 눈치도 안 봐도 됩니다.” 최승철씨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영국에서는 인공기를 흔들어도 아무 문제없다고. 자유로운거죠.
한국사회에선 자유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편견들 때문에 정체성을 지워야 하는 거예요. 같은 맥락으로 하나원에서 다 물 빼라고. 하나원이라는 곳에서부터 바뀌어야 하고 학교 교육에서 바뀌어야 하고. 인식 자체가 바뀌어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을 중심에 앉혀야 합니다.
랑희
얘기를 듣다보니 탈북민들이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온다고 하는데 정작 자유가 없던 곳으로 온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자신의 역사와 태어난 곳, 삶의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이야기들과 삶의 궤적들을 다 부정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비참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사실 뜻밖이었는데 평화체제에 대한 얘기가 많이 오고갔고, 순조롭진 않지만 그런 기류들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조심스레 생각하는데요. 평화체제라고 하는 것이 어떤 국가에 대표하는 사람의 선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면 구성원들이 평화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고민이 많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얘기를 포함해서 관객분과 나누고 싶은 한 마디를 마무리로 부탁드리면서 정리하려 합니다.
강곤
오늘 탈북민을 다룬 것에서 주제가 벗어나는 느낌도 들지만, 감독님 말대로 정상회담 과정에서 탈북민 기자가 배제되는 이런 문제, 사실 조심스럽고 어려운 문제예요. 이번에 북한에서 두 명이 나포돼 왔다가 살인혐의가 있어서 다시 북송시켰는데 시끄러웠죠. 헌법에 의하면 북한주민은 자동으로 국민이 되는데 그럼 그들을 한국의 재판정에 세워야 하나? 증거에 접근할 수도 없고 현장에 가볼 수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 있나. 다 한국국민으로 취급해주는 것이 맞나? 그럼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를 보장해야하나? 사회복지서비스를 북한 주민이 요구하면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나? 이런 여러가지 물음표들이 남아있고 정말 잘 준비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쉽지 않고 그래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늘 도돌이표지만 그러하기에 탈북민 당사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요구하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정답이 무엇인지 늘 귀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평화체제와 관련되서 남북만 잘하면 되는 문제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동북아의 문제, 탈북민만이 아니라 일본의 재일조선인, 유라시아의 고려인 등 흩어진 이들과 어떻게 같이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한편으로 윗세대들은 환영하고 울컥했던 문 대통령의 “우리는 70년을 헤어져 살았지만 오천년을 함께 살았다”는 발언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주민들을 배재시키는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체제로 가면서 탈북민이 아닌 또 다른 배제되는 사람은 없는지 이런 것들 것 대해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승현
평화체제나 평화시대가 얘기되고 있는데 저는 사실 국민뿐 아니라 탈북자 분들도 다함께 이런 부분에 대해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탈북민들의 한국사회 삶에 대해 한국사회가 먼저 건강성을 가지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사회가 예전에 군부독재나 엄혹했던 시기에 늘 피해자들은 존재했습니다. 분단을 빙자하며 피해자를 만들어왔는데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로 발전하고 건강성을 회복할수록 더 이상 국민에게 핑계를 댈 수 없는 사회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뒤로 돌릴 수 없는 건강성을 회복해야 하고, 그런 것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된다면 탈북민들의 삶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탈북민 스스로가 한국사회에 기여하고 동참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어떤 지원이 필요하고 연대가 필요한지 생각을 해야합니다.
두번째로 평화체제, 평화의 흐름이 탈북자들에게 굉장히 희망을 줍니다. 거기에 동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탈북민들이 제일 힘들었던 시기가 천안함 등 남북관계가 안 좋았을 때입니다. “너네 북한은 왜 그러냐, 너는 간첩이냐” 이런 것들이 그 때 터져나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바뀌고 평화의 흐름에 들어가는 순간 탈북민에 대한 우리국민의 대우가 달라집니다. 말을 먼저 걸려고 하고 뭔가 함께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려는 그런 부분들이 결국 우리뿐 아니라 탈북민들에게 굉장히 좋은 부분입니다.
세번째는 그것을 넘어서려는 또 다른 것은 평화의 상대, 북한 주민들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북한주민을 우리가 제대로 모르면 평화체제나 평화환경을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잘 알려면 탈북자들을 통해서 일수도 있고 이들과 함께하는 작업들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이나 평화체제 정착 나아가 성공적인 통일을 이루는 데에도 필요한 하나의 과정과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중호
할 말을 다 했네요. 남북정상회담 열렸을 때 독일에 사는 탈북자가 카톡을 보냈어요. “감독님 설레서 잠이 안 옵니다. 저 어쩌면 부모님 만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저희는 뉴스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냐 없냐의 문제인거죠. 중요한 역사의 순간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너무 뉴스로만 보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감하는 것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탈북자들이 어떤 마음일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 공감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카메라로 담으면서 공감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작년 런던에서 승철씨를 다시 만나서 술 한 잔 하자고 해서 갔는데 편지를 가져오면서 북한에서 편지가 왔다고. 엄마가 편지를 써 준 것 입니다. 그걸 읽으며 우시는데 참… 편지가 몇 년만에 온 거예요. 편지를 받는 것도 정말 운이 좋아야 가능합니다. 대부분은 그런 것조차 할 수 없죠. 그런 부분들이 많이 알려지고 이해하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관심이 결국 중요한 거 같습니다. 제대로 보고, 관심을 갖고 공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랑희
영화와 긴 이야기 시간까지 함께 해주신 관객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 같이 이야기해준 이야기 손님들과 수어통역을 함께 해준 수어통역사분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평화와 공존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간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