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된다. 그곳에 있던 한 여성은 귀향 후 ‘리틀보이’ 김형률을 낳는다. 원자폭탄 피해 2세를 대한민국 최초로 알린 김형률의 12725일간의 생의 기록과 외침을 따라간다.
[전쟁속의 일상 – 탈핵·반전·평화]
리틀보이 12725
Little Boy 12725
감독 : 김지곤
제작연도 : 2018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한국/ 일본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100분
상영일시 : 2019.11.23(토) 15:3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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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미국과 일본, 한국 사이의 권력관계로만 이해할 때, 원폭 피해자들은 종종 잊혀진다. 원자폭탄은 당시 일본 히로시마 인구 34만 명 중 1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반인권적 재앙이다. 또한 일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조선인들도 피폭으로 인한 피해를 받았다. 이 중요한 사실을 은폐하고, 잊는 국가와 사회 때문에 원폭 피해자들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를 개인이 떠안게 된다. 국가 권력의 폭력과 사회의 배타적인 차별로 인해 원폭 피해자들은 대를 이어 고통받았다.
김형률은 원폭 피해자 2세다. 원자폭탄으로 인한 피해만을 강조하는 일본의 사회 분위기와 미국의 책임을 묻는 것이 어려운 한국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원폭 피해자들의 대를 잇는 피해 상황을 공론화하고, 국가의 책임을 묻는 데에 앞장섰다. 원자폭탄을 국가 간의 권력관계뿐만 아닌 반핵과 평화, 인권 문제로 이해하고, 전환하려 한 첫 발걸음이었다. 그의 삶은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원폭 피해 당사자 2세와 3세, 그리고 그 이후 세대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서연 소금활동가
인권해설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70만 명의 10%인 7만 명이 조선인 원폭피해자임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2세, 3세, 심지어 4세까지의 대물림의 고통은 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 일본 모두 원폭피해자의 유전에 대해 말하기 힘든 차별적인 환경을 조성했고, 그 배후에 미국이 있다. 국가권력의 폭력과 사회의 배타적인 차별에 의해 원폭피해자들은 대를 이어 고통받고 있다.
한국의 원폭피해2세 운동은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전 ‘김형률’ 회장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한국사회에 1세, 2세 등 전체 원폭피해자문제를 알리고, 대물림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특별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 힘쓰다 2005년 5월 29일 고인이 되었다. 그가 열어준 원폭피해자 전체운동과 2세운동의 길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가 남긴 많은 글들 중에서 그의 주장을 집약한 것은 다음과 같다.
“다양한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환우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과 미국의 핵 헤게모니 전략에 의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원폭피해자들이다. 자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양한 질병과 장애로 생존권과 생명권까지 위협받으며 지난 60년 동안 부당한 국가권력으로부터 정체성과 인간성을 부정당해 왔다. 이것은 명백한 국가권력의 폭력이며 인권침해일 것이다. 한·미·일 정부는 원폭2세환우들에 대한 ‘선지원·후규명’으로 생존권과 생명권을 보장하라!”
2003년 8월, 그는 <원폭2세환우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2004년 실태조사가 실시되었고,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원폭피해자2세의 기초현황 및 건강실태조사’를 발표했다. 발표에 의하면, 원폭2세들은 같은 나이의 일반인에 비해 만성질환과 우울증, 각종 암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원폭1세의 사망한 자녀 299명 중 156명이 10살 이전에 사망했고, 사망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경우는 182명(60.9%)에 달했다.
실태조사를 이끈 그의 노력은 특별법으로 이어졌지만, 그렇게 바라던 특별법 제정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보내온 이메일에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늘 썼듯이 그의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에게 이어지는 실천의 몫이 남았다. 2005년 4월, ‘한국원자폭탄피해자와 원자폭탄2세환우 등의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가칭)’ 제정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원폭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2016년에야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2세 등 후세 문제가 빠져서 개정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앞으로 과제는 많이 남아있다. 북쪽의 원폭피해자문제, 일본과 다른 국적을 가진 원폭피해자들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도 국경을 넘어 연대해서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도 한일 공동대응도 필요하며, 이를 위해 한일 공동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10% 생존한 원폭1세가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문제 해결의 시급성과 함께 그분들의 증언채록작업도 계속되어야 하고,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원폭2세 등 후세를 위해서 ‘선지원·후규명’도 절실하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원폭피해가 없기 위해서는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후세에 널리 알리는 다양한 기념사업과 평화교육이 계속되어야 한다.
강제숙 김형률 추모사업회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