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너츠 (Gendernau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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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지어 살아가는 하이에나는 여/남성의 생물학적 차이와 사회적 성역할 수행이라는 인간사회 규범을 뛰어넘는다. <젠더너츠>는 이분법적인 고정된 성역할 수행에 맞서 투쟁하는 199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퀴어들과 커뮤니티를 소개한다. 거대한 트렌스젠더 우산 아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퀴어들의 삶과 예술, 실천적 실험을 엿볼 수 있다.


[높낮이 없는 새땅을 위하여]

젠더너츠
Gendernauts

감독 : 모니카 트로이트
제작연도 : 1999
장르 : 다큐멘터리
국가 : 독일
언어 : 영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87분

상영일시 : 2021.12.18(토) 20:3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12월 17일(금) 오후 7시20분 상영하는 <젠더레이션>과 연결되는 작품으로
<젠더레이션>상영 후 대화의 시간이 진행됩니다.


작품해설

젠더너츠는 ‘젠더(Gender)’와 ‘우주비행사(Astronaut)’의 합성어로 제목처럼 1990년대 말 샌프란시스코 퀴어들의 젠더를 가로지르는 탐험을 따라간다. 젠더교란자 맥스, 인터섹스 히다 빌로리아,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포르노 배우 애니 스프링클과 전직 누드모델 토네이도, 트랜스젠더 연구자 수잔 스트라이커와 샌디 스톤 등의 도전과 실험이 정주하는 샌프란시스코. 젠더교란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다양한 사이보그들의 실험을 지켜보면 단순화된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소수 도시에만 존재했던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는 퀴어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발붙일 수 있게 했고, 이곳에 퀴어 커뮤니티를 형성해 젠더 규범에 대한 교란과 도전적 실험을 만들었다. 이들이 속한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는 새로운 기술과 몸, 정신을 넘나들며 젠더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상상을 이어간다.

넝쿨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커뮤니티의 힘을 다시 고민하기

퀴어 커뮤니티 혹은 트랜스젠더퀴어 커뮤니티가 실제하는지, 망상에 가까운 허상에 불과한 것인지는 논쟁적일 수 있다. 하지만 망상이라고 해도, 나의 커뮤니티가 존재한다고, 그것이 극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것에 불과할지라도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면 이는 무척 큰 힘이 된다. 지배 규범을 문제 삼고, 기존 질서를 위반하는 실천을 하고,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을 만들고자 할 때, 이를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이는 든든한 토양이 된다. 혼자서 저항한다면 그것은 헛소리로 취급되겠지만, 나의 주장을 함께할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면 나의 주장은 집단의 의견으로 재구축될 수 있다.

199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기록하고 2000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젠더너츠>는 커뮤니티의 힘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퀴어 이론과 트랜스 이론의 최전선에서 혁신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들은 영상과 공연, 에세이, 논문, 그리고 또 다양한 형태의 매체를 통해 이원젠더체제와 이성애규범성에 도전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모색했다. <젠더너츠>는 한편으로 트랜스젠더/퀴어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의 1990년대 활동 내역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젠더너츠>는 그들이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어 협업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 친했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기존 체제를 자연질서가 아니라 억압 체계로 재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직접 실천한다. 이런 실천에서 그들은 단독으로 행동하기보다 자주 함께 하고, 각 실천의 의미를 적극 해석해준다. 이런 일련의 장면은 그들이 개별적으로 탁월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커뮤니티의 힘이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증명한다. 혼자라면 포기했을 수도 있는 도전을, 함께 하기에 서로 독려하며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 미국에서 1990년대는 퀴어운동이 가장 활발하고 널리 확산된 시기라고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함께 구축한 커뮤니티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는 이미 이 영화를 여러 번 봤었다. 볼 때마다 감상평이 달랐다. 어떤 땐 1990년대 샌프란시스코 트랜스 운동의 역동성과 에너지에 열광했고, 어떤 땐 급진적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샌프란시스코라는 지역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커뮤니티의 힘을 고민한다. 이것은 한국에 트랜스 커뮤니티가 부재한다거나, <젠더너츠>에서 재현하는 것과 같은 커뮤니티가 없어서가 아니다. 크고 작은 트랜스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곳곳에서 한국 사회를 바꾸기 위한 운동을 역동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내가 <젠더너츠>를 보고 커뮤니티의 힘을 떠올린 이유는 2021년이 트랜스젠더퀴어에게는 정말 힘들고 어렵게 시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2021년에 들어서, 봄이 오기도 전에 작가이기도 하고, 활동가이고, 교사이기도 하며, 정치인이자, 군인, 연인, 친구, 노동자, 다정한 위로를 건네주던 친구이기도 한 트랜스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모두 한국 사회의 차별과 트랜스 혐오에 저항하며 다양한 활동을 했고, 많은 이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외쳤고, 많은 사람이 힘을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죽음은 너무도 많은 퀴어-트랜스에게 충격이었다. 남겨진 이들의 삶이 흔들리는 사건이었고, 잇따른 비보를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계속해서 동료, 친구의 비보가 잇따랐다. 언제 비보가 들릴지 모르니, 검은색 옷만 입고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도 한동안 했다.

고통스러운 소식을 들은 뒤 혼자 그 충격을 감당해야 했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충격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할 때, 커뮤니티가 움직였다. 전국 곳곳에서 지하철을 함께 탔고, 서울에서는 시청광장에 모여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두 번에 걸쳐 함께 애도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었다. 온통 검은색 옷만 입은 트랜스와 동료들이 모여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행사도 진행했다. 큰 행사가 아니어도 친밀한 관계의 소수가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애도했다. 커뮤니티의 힘은 전복적 실천이 야기하는 위험을 함께 감당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예기치 않은 비보의 충격과 고통을 혼자 감내하지 않고 함께 애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2021년을 버틴 ‘나/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젠더를 항해/탐색(gendernauts)하며 삶을 덧대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루인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에서 트랜스 페미니즘 인식론을 모색하고,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퀴어의 역사를 기록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