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No One Left Behind)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영화장면

2017년 포항에서는 2차례의 강한 지진과 80여 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 당시 지진을 겪은 장애인들은 재난 상황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대피할 수 없던 상황에 대해 말한다. 이들의 증언은 ‘누구도 남겨두지 않기’ 위해 국가와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을 돌아보게 한다.


[차이에 대한 권리 – 장애인인권]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No One Left Behind

감독 : 리슨투더시티
제작연도 : 2018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한국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영어자막/ 한국수어
상영시간 : 32분

상영일시 : 2018.11.24(토) 13:2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작품해설

지진이라는 재난이 쓸어가버린 것과 남긴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지진을 겪은 장애인들은 재난상황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대피할 수도 없어 남겨질 수 밖에 없었던, 또한 이들을 위한 구조체계도 대피소도 없었던 상황에 대해 말한다. 재난이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남겨지지 않는것, 그리고 ‘모든’ 이들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다. 이들의 증언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위해 국가와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수진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장애인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들의 삶/생명은 다양한 형태의 재난과 참사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 위험과 안전은 ‘A’와 ‘not A’의 관계, 그러니까 이분법적 대립 관계 내지는 제로섬 관계로 규정될 수는 없다. 요컨대 우리는 위험이 전무한 상태로 안전을 정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삶에 있어 위험은 불가피하며,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고, 때로는 위험을 즐기기도 한다. 당신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며 시설에 머무르라는 이 사회를 향해, 자립생활운동의 주창자들이 ‘위험을 경험할 권리’를 이야기했다는 것은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렇다면 위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고 했을 때 무엇이 문제인가?

유엔국제재난경감전략기구(UN International Strategy for Disaster Reduction, UNISDR)는 재난/참사와 위험의 관계에 대해 “‘자연’ 재난/참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연적 위험(요소)들이 있을 뿐이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natural’ disaster, only natural hazards)라고 말한다. 역사유물론의 핵심을 담지하고 있는 맑스의 저 유명한 구절을 패러디해 보자면, ‘위험(hazard)은 위험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위험은 재난/참사(disaster)가 된다.’ 그렇다면 그 특정한 관계란 무엇인가? 바로 위험에 대처를 ‘할 수 없게 만드는’(disabling) 관계 내지 조건일 것이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지난 7월 4일 이 영화를 제작한 리슨투더시티와 공동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재난 대비 워크숍’을 개최한 바가 있는데, 당시 그 워크숍의 타이틀도 바로 ‘No one left behind’였다. 조금 더 직역을 해보자면,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다’.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8년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내 걸었던 슬로건과 같이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아야’(Leave no one behind) 한다. 누가? ‘관계’로서의 우리가, 이 정치공동체가, 국가가 말이다. 또한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으려면, 혹은 누구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속도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그 속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누구를 기준으로? 가장 뒤에 있는 이들을 기준으로.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이 속도를 가장 앞선 자에게 맞춰놓음으로써 뒤에 오는 이들이 이를 따라잡기 위해 ‘노오력’해야만 하는 국가, 혹은 정상/평균(normal)에 그 바늘을 맞춰놓고 그 범위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죽게 내버려 두는’ 국가의 상태로 유지되어 왔다. 장애인 인권운동은 정상성(normality)에 기반을 둔 시간과 속도가 아닌 장애인의 신체성 및 시간성을 이 사회에 각인시킴으로써 그 속도를 늦추는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쟁과 효율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이 시공간에서 그것은 불가피하게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겠지만, 아마도 우리 사회를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듯이, 과속은 늘 위험하므로.



김도현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이자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장애인언론 『비마이너』발행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