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2일, 아일랜드는 국민 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첫 번째 나라가 된다. 영화는 ‘혼인평등’(혼인에 있어 평등할 권리)으로 불리는 법 조항이 만들어지기까지 아일랜드 사회에 끊임없는 질문과 변화를 요구해 온 사람들의 고민과 감동적인 여정 그리고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퀴어영화제-인천인권영화제 연대상영
[폐막작]
아일랜드 수정헌법 34조
The 34th
감독 : 론 클락슨
제작연도 : 2017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미국
언어 : 영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71분
상영일시 : 2018.11.24(토) 11.25(일)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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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아일랜드는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매우 보수적인 성향의 사회이다. 캐나다에서 결혼 생활을 하다 아일랜드로 귀국한 캐서린과 앤은 혼인신고를 하지만 동성혼이란 이유로 거절을 당하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결혼평등협회’라는 단체가 결성되면서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의견 차이로 인해 성 소수자 커플에게 제한적 권리만 인정한 ‘동반자법’을 택하는 한계도 나타나지만 ‘결혼평등협회’는 실질적인 평등권 확보를 위한 캠페인을 지속한다. 2011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헌법 제정 회의가 열리고, 참석자 79%의 지지로 국민투표가 성사돼, 찬성 62.07%의 투표 결과로 수정헌법 34조를 만들어 낸다.
미니미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그건 차별입니다.
“동성애를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동성혼은 제도적 문제니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일 것이다. 지난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안철수, 유승민 세 후보가 나란히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 이후 인사청문회를 거친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위와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동성애는 차별해서는 안 되는 존재의 문제, 동성혼은 합의가 필요한 제도로 구분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에는 몇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동성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동성애자들은 차별받지 않는다’, ‘동성혼은 동성애자들을 위해 특별한 제도를 마련하고, 특별한 권리를 주는 것이다’ 등등. 모두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아일랜드의 결혼평등협회가 동반자법과 동성혼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동반자법은 완전한 혼인평등에 비해 169개의 권리가 누락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 동반자법조차 없는 사회에서 동성커플에게 누락된 권리는 얼마나 될까? 사실 혼인이라는 제도가 부여하는 권리는 상당히 많으며, 이 모든 것들은 이성커플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이다. 당신과 파트너가 혼인했다면, 부부로서 주거정책, 세금 등 복지제도를 이용할 수 있고, 건강보험에서 서로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또한 당신은 파트너가 아플 때 보호자로 함께 할 수 있고, 파트너가 만일 사망한다면 상속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당신과 파트너는 서로의 사랑을 인정받고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다. 이 모든 당연한 권리들을 동성이라는 이유로,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동성혼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동성애자들은 차별 없이 잘 살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혼인평등(marriage equality)’, 영화에서는 동성혼(same-sex marriage)이라는 용어보다는 이 말이 주로 쓰인다. 한국에서도 최근 혼인평등 슬로건을 퀴어문화축제 등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용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혼인평등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동성커플이 혼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혼인이라는 제도가 갖는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 이것이 결코 특정 제도의 설정이 아닌 ‘차별’의 문제이며 ‘평등’한 사회를 위한 변화라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더 이상 차별하지 말라는 당연하지만 한편으로 공허한 이야기를 넘어 구체적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이상 혼인제도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고민을 해나가야 할 때이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
희망을만드는법(약칭 ‘희망법’)은 2012년 2월 창립한 비영리 전업 공익인권변호사 단체로 공익의 증진과 인권의 옹호, 독립성과 현장성있는 활동을 목표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http://hopeandlaw.org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헌법의 평등이념을 실현하는 인권기본법이자 포괄적인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실체법인 차별금지법제정을 목표로 2011. 1. 발족한 연대체입니다. http://equalityact.kr
평등을 예감하며
10월이면 촛불 2년이 된다. 변화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의 잘못이 하나둘 밝혀지고 전직 대통령들도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한반도에 부는 평화의 바람은 가을바람보다 더 반갑다. 한국사회가 불가역의 어떤 순간을 지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뒤돌아 갈 수 없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말할 수 있을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게 무안하리만치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이어지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권과 함께 한국사회에 ‘혐오표현’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인터넷에서의 혐오 표현이 우익 정부의 집권과 함께 급증하는 현상은 일본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혐오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혐오 때문이 아니다. 정치 때문이다. 2007년 말 차별금지법안에서 7개의 차별금지사유가 삭제된 사태는 혐오에 사회적 지위를 부여한 계기였다. 보수정권의 수립과 함께 혐오에 날개가 달린 것은 당연하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혐오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혐오선동세력은 차별금지법을 무산시킨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인권’이 들어가면 법이든 조례든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인터넷에서의 혐오는 거리로 나와 세월호참사의 피해자를 모욕했고 여성의 목숨을 앗아갔다. 최근 들어서는 난민을 반대한다는 이들이 꾸준히 집회를 열고 있다. 그들은 거짓 뉴스와 편견을 앞세워, 누군가 사라져야만 자신의 안전과 일자리가 보장된다고 선동하고 있다. 미래를 약속하지 못하는 국가는 대신 혐오를 허용한다.
차별하는 사람, 혐오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차별해도 되는 세상이 있을 뿐이다. 차별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인습이고 혐오는 인간이 몸을 가진 한 사라지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러나 차별을 알아차리는 만큼 그것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을 쏟고, 혐오를 감지하는 만큼 이성을 작동시키기 위해 힘써온 것이 민주주의의 역사다. 혐오의 시대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들고 있다.
촛불을 들고 대통령도 끌어내린 마당에 혐오의 정치도 사그라들기를 바란 것이 과한 욕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촛불 대선은 오히려 ‘동성애 찬반 검증’을 인사청문의 기준으로 만들어버렸다. 누군가의 존재가 공공연히 부정당하고 모욕당하는 일상을 바꾸는 것이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었던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재출범을 결정한 것이 이즈음이다. 혁명보다 어렵고 통일보다 어렵다 한들, 차별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으므로.
혐오에 자리를 내준 2007년의 과오를 더 늦기 전에 거둬들여야 한다. ‘차별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국가의 공식적인 선언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 제정 없이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왜 지금 여기에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 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차별당하고도 체념하거나 자신을 탓하며 말하기를 포기했던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하는 자리가 바로 민주주의의 자리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도전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재출범한 때는 정부도 국회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더 이상 나서지 않는 때였다. 평등을 위한 기본법조차 혐오가 무서워 법 못 만드는, 부끄러움은 그들의 몫이리라.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목소리들은 더욱 널리 퍼지고 이야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평등은 서로를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는 약속이다. 혐오가 평등을 이길 도리는 없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평등을 예감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당신도 함께하기를.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발행 <평등예감>의 여는 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