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불구하고_스틸샷

1985년 설립된 장애인거주시설 항유의집은 모든 시설거주인이 지역사회에서의 삶으로 이주하면서 법인 스스로 ‘시설폐지’를 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시설을 떠나는 이들은 낯설기만 한 시설 밖의 생활이 두렵기도 하고, 새로 이사하는 동네의 생활이 기대되기도 한다. 영화는 우리가 이들과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 준비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질문한다.


[차이에 대한 권리 – 장애인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 : 정민구
제작연도 : 2021
장르 : 다큐멘터리
국가 : 한국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수어통역영상자막
상영시간 : 30분

상영일시 : 2021.12.18(토) 13:10, 19(일) 13:3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토), 3관(일)


12월 18일(토) 오후 1시10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추는 혼잣말> 연속 상영 후
이진희 감독,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꼬비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악천후로 인한 교통상황 악화로 취소되었습니다.

아쉽지만 해당 대화의 시간 관련 기록들은 이후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공유하겠습니다.



작품해설

1985년 설립된 장애인거주시설 항유의집은 법인 스스로 ‘시설폐지’를 한 최초 사례이다. 시설을 떠나 동네로 이사하는 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설 밖의 생활이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두려움과 기대로 지역사회의 삶을 시작한 이들은 때로 갈등과 불편을 겪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내 일상을 내가 결정하며 때로 행복해한다. 시설을 떠나 이사를 하고 동네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의 시선은 이미 탈시설의 필요성이나 시기 등의 논의를 넘어서 있다. 오히려 지역사회 속에서 삶의 주체로 서로 만나 부대끼며 돌보는 관계를 통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게 한다. 이제 질문은 시설 안의 사람이 아니라 시설 밖의 사람들을 향해야 한다. 삶을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준비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수진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장애계에서 1999년에 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에 가게 된 장애인시설의 충격과 시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밤잠을 설쳤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얼마 전 시설조사에서도 자기가 머무르는 해당 층만 이동할 수 있을 뿐, 건물 내부도 앞마당도 나갈 수 없는 장애인분들과 인터뷰를 했다. 장애인분들은 그저 자신에게 머물라고 말한 정해진 공간 안에서 ‘얌전’하기를 강요당한 채 정해진 일과대로 살고 있었다. 직원이 출근해서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직원이 퇴근하기 전에 저녁식사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하루 9시간의 틀 속에서 하루 세끼와 간식, 목욕, 소위 프로그램이란 것들을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벗어나지 말아야 하고 얌전해야 한다.

“왜 탈시설을 해야 하나요?” 많은 사람이 탈시설운동을 하는 우리에게 물었다. “왜 장애인이라고 시설에 살아야 하나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느 누구도 삶의 기본값은 시설이 아닌 자기 집이다. 장애인에게(특히 발달장애인에게) 삶의 기본값이 시설이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왜 장애인이라고 시설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사회에 반문한다.

다큐멘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1985년부 2021년 4월 30일까지 무려 36년간 운영되었던 향유의집의 폐쇄 과정과 그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각자의 집(=지원주택)으로 이전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13년 전인 2009년 시설에 사는 것이 기본값처럼 이야기됐던 시절, 더 이상 시설 안에서 투명인간으로 살기를 거부한 사람들의 ‘마로니에 탈시설 투쟁’이 있었다. 당시 장애인들은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을 하더라도 시설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포하고 30년 가까이 살던 시설을 박차고 나왔다. “나와서 하루를 살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나이대의 보통 사람들처럼 하루라도 살아보자” 이때의 투쟁으로 현재의 탈시설 정책의 골자가 만들어졌다. 그 정책들은 아주 아주 조금씩 아주 느리게 견고해져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고, 13년 전의 투쟁으로 시나브로 탈시설이 추진되고는 있다. 하지만, 탈시설을 향한 정책 속도는 너무너무 느리고, 온갖 변명거리가 유령처럼 돌아다닌다.

탈시설을 추진하기에 이 사회가 준비가 안 되어있다, 장애인들이 준비가 안 되었다, 님비현상이 심하다, 사회에 나갔을 때 학대위험이 높다, 가족이 반대하지 않느냐, 발달장애인에게 사회가 더 위험하다…. 팩트도 없는, 사실 팩트를 확인할 길도 없는 수많은 유령 같은 변명들을 누군가는 계속 계속 만들어내면서 탈시설을 반대한다. 그 속에서는 지금까지 시설을 운영해온 이들의 운영권 수호와 직원들의 고용불안이 담겨있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을 준수해야 하는 국가는 탈시설 정책의 시행의 주체이다. 그러나 찬성-반대의 이분논리를 명분 삼아 국가의 의무를 방기한다. 이러한 행태를 막고 법률로서 탈시설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장애인의 탈시설 지원에 관한 법률>이 발의되었지만, 장애인의 권리보다 이권 집단의 정치적 로비가 더 먹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도한 사회의 흐름은 탈시설로 가는 방향을 막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늙고 연약해져도 장애가 있더라도, 내가 살던 동네와 친숙한 사람들과 지역에서 그렇게 함께 늙어갈 수 있도록 탈시설 사회를 만들어가자. 어려운 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뤄야 할 꿈이다.


김정하
┃2005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라는 탈시설운동단체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대표이사를 겸임하면서 법인 차원에서 탈시설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