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곳곳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열차에 올라타는 끝도 없는 사람들. 모두 잰걸음으로 땅 위 삶을 향해 지하를 거쳐 갈 때, 이 반듯한 공간 ‘언더그라운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시끄럽게 돌아가는 세상 아래, 지하에서의 삶은 어떤지 묻고 싶어진 카메라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노동의 권리와 연대]
언더그라운드
Underground
감독 : 김정근
제작연도 : 2019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한국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영어자막
상영시간 : 88분
상영일시 : 2019.11.23(토) 19:4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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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작품 도심 곳곳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열차에 올라타는 끝도 없는 사람들. 모두 잰걸음으로 땅 위 삶을 향해 지하를 거쳐 갈 때, 이 반듯한 공간 ‘언더그라운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시끄럽게 돌아 가는 세상 아래, 지하에서의 삶은 어떤지 묻고 싶어진 카메라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누군가에게 일터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노동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이 타인과 사회와 때론 국가와 맺는 ‘관계’이기도 하다. 노동을 통해서만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지금의 사회에서 노동‘존중’이란 말이 많은 이들에게 그토록 절실하게 다가왔던 이유이지 않을까. 선한 마음과 배려면 족한 존중이 아니다. 임금이 그저 일한 대가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생활의 보장이어야 한다는 물질적 존중. 이것이 자존감, 소속감,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환경속에서 노동해야한다는 정신적존중과 짝을 이뤄야하지않는가. 이윤을 위한 저임금, 중간착취인 간접고용도 마다하지않는 효율과 위계, 이를 통해 전가되는 위험한노동, 불안한고용. 이 모든 책임을 물을 때, 기준은 이렇게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이 묵묵한 카메라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질문은 언더그라운드의 노동자를 지나 우리를 향하고 있다.
기선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특성화고 학생에게 일터는 아주 가까운 미래다. 그들이 취업을 위해 돌아보는 공장에는 위험한 노동을 곡예처럼 해내는 노동자들, 그런 노동으로 손가락을 잃은 노동자들이 있다. 그 사이로 이주노동자의 모습이 무심히 스쳐진다. 학교엔 취업 현황이 나열되고, 그들이 취업하게 될 곳은 대부분 산업단지의 중소기업이다. 정교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수업을 했지만, 결국 ‘버튼맨’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돌아보는 일터 중 부산교통공사는 괜찮아 보이는 일자리에 속한다. 그러나 그곳에도 계급이 존재했다. 경정비, 청소, 선로유지보수, 운전, 제어실 업무 등 전동차를 운행하기 위한 수많은 노동이 존재하고, 이는 모두 전동차의 안전한 운행이라는 목표로 합쳐지는 노동들이다. 그러나 이들을 지배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새기는 ‘일의 의미’보다 정규직,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형태다. 비정규직이란 이름표가 일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고용형태의 위계는 이제 사회적인 신분이 되어 노동자의 존재 자체에 값을 매긴다. 그렇게 노동에 값을 매기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권리 회복의 과정은 불합리하고 공정을 해치는 것으로 매도되고 있다.
그 사이로 지금은 무인화되어 볼 수 없는 매표노동자의 목소리가 흐른다. 비용과 효율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일터는 업무를 분리해 외주화하고, 외주화한 노동을 기계화하면서 사람 자체를 지워버렸다. 그에 그치지 않고 정규직이 종사하는 이른바 핵심업무라는 기관사 업무도 무인화로 인해 점차 지워져 가고 있다. 그 속에서 정작 지워지는 것은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모두의 안전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진짜 뭘까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더 이상 정교한 노동과 기술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필요 없어진 것일까? 어두운 터널 속에서 퉁퉁 선로를 두드려 점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가려져도 되는 것일까? 안전의 보장이 기계화로 대체될 수 없음에도 그렇게 사라지는 노동을 역사의 산물처럼만 여겨도, 정말 우리 사회는 괜찮은 걸까?
그 모든 노동에 대해 찬미하자는 것이 아니다.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에 대해 이 사회가 얼마나 존중을 표하고 있는가에 있어서, 말로 하는 찬사가 아닌 안전이나 노동조건의 보장, 그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결사의 자유 보장이 훨씬 중요하다. 그렇게 존중은 ‘권리’로 구성되어야 의미를 갖는다.
학생들이 위험한 일터에 비정규직으로 진입하는 것에 대해,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려 외주화하고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기술의 발달이라는 명목으로 위험을 방치하고 노동자를 일터에서 몰아내는 것에 대해,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말로 하는 존중과 현실의 간극은 바로 그 ‘권리’의 공백만큼 발생한다.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누구나 건강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권리가 있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권리를 빼앗고 노동과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맞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단체입니다. http://workright.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