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싸우듯이 As I Fight ⚪⚫

내가 싸우듯이 스크린샷

김정근 | 2020 | 옴니버스 다큐 | 20분 | 한국 | K KS KSL

35년을 미뤄온 ‘이기적’ 복직 투쟁을 시작하는 한진중공업 용접공, 김진숙. 그는 오래된 해고 시절을 회상하지만 어딘지 현재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과 다를 바 없다. 함께 싸웠던 이들이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 심지어 대통령이 되었지만 노동자들은 죄다 비정규직이 되는 시대, 2020년 오늘. 김진숙은 ‘내가 싸우듯이’ 여전하게 투쟁하는 이들의 입을 통해 말한다. “나의 복직은 시대의 복직”이라고.

<내가 싸우듯이> 1편은 20대에 막 해고를 당한 이들을 만난다. 억울함과 여러 유혹을 딛고 어떻게 투쟁을 시작하고 견뎌가고 있는지 묻는다. 2편은 한창 일을 하는 30, 40대 시기를 복직투쟁으로 오롯이 보낸 이들의 얘기를 듣는다. 단식과 고공농성까지 마다하지 않은 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어떤 상흔이 남았는가. 3편은 끝내 복직을 이뤄내거나 이룰 수 없는 이들을 만난다. 복직은 했으나 현장에 남은 문제를 마주한 이와 복직할 공장마저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모든 이들의 이야기는 김진숙의 35년 해고 투쟁과 겹친다. 그들은 각자 김진숙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
세상에 건네는 말이 있다.





[노동의 권리와 연대]

내가 싸우듯이
As I Fight

감독 : 김정근
제작연도 : 2020
장르 :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나라 : 한국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한국수어영상
상영시간 : 20분

상영일시 : 2020.12.13일(일) 15:0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온라인 상영 : 2020.12.10(목) 늦은 7:00 ~13(일) 늦은 6:00



인권해설

“정말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나는 가끔 해고자들에게 묻곤 했다. 일터 괴롭힘도 심했고, 차별도 있고, 사람을 헌신짝처럼 취급했던 그 현장으로 정말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해고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이 하던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 사람들은 정말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생각했다. 쫓겨난 것이 억울해서 현장에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만들고 동료들과 함께 웃고 웃었던 그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곳을 사람 사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꿈을 꾸다 밀려났지만, 절망이 자신을 쓰러뜨리지 않는 한,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1직 사번 23733 김진숙. 그는 35년 전인 1986년, 노조 대의원으로서 어용노조의 문제를 폭로하는 선전물을 돌리다가 대공분실에 끌려간 후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의 동료였던 박창수 노조 위원장은 1991년에 구속됐다가 의문의 상처를 입고 병원에서 숨졌다.

또 다른 동료 김주익 지회장은 2003년 해고와 손배가압류에 맞서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하다 129일 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동료들의 고통을 끌어안고 긴 세월을 현장 바깥에서 싸워 왔다. 아마도 김진숙 노동자는 이 동료들이 못다 이룬 꿈을 현장에서 이루고자 복직을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통보되던 추운 겨울, 2011년 1월의 어느날 새벽에 그는 김주익이 올랐던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웃으며 만나기 위해, 크레인 위에서도 “웃으며,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쳤다. 2011년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85크레인으로 간 시민과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투쟁’이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김진숙 노동자와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많은 시민과 노동자들이 그날 절망에 굴하지 않을 용기와 연대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권리찾기를 위한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정리해고가 철회되고 김진숙 노동자는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들의 뒤를 지켰다. 그런 그가 이제 현장으로 돌아갈 결심을 밝혔다. 2009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김진숙 노동자의 해고가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복직을 권고했으나 회사는 복직을 시키지 않았다. 김진숙의 복직은 매번 다른 사안에 밀리고 저울질 당했다.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김진숙은 기꺼이 자신을 복직을 양보하고 거리의 생활을 감내했다. 그런데 그가 이제는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부산시의회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김진숙의 복직결의안을 냈다.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서도 김진숙 복직을 재권고했다. 그런데도 한진중공업 사측은 교섭을 위임받은 민주노조가 소수노조라서 교섭대표권이 없다고 주장하고, 해고 기간의 임금 지급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김진숙의 복직은 그 개인의 복직이 아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마음대로 짓밟던 시대,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끌려가고 죽임을 당해야했던 시대를 끝내는 복직이다. 그러니 김진숙 노동자를 복직시킬 뿐아니라, 그를 해고했던 회사와 정부가 진정으로 그에게 사과해야 한다.

정년까지는 한 달이 남았다. 크레인 위에서도 당당했던 그가 지금은 35년 해고 생활의 막바지에서 투병 중이다. 그래서 이제는 김진숙의 복직을 위해 한진중공업 동료들이 단식을 하고 천막농성을 한다. 김진숙은 동료인 영남대의료원 해고자가 고공농성을 할 때, 힘을 주려고 부산에서 대구까지 걸어 갔다. 그 응원에 힘을 내어 복직을 이룬 박문진은 김진숙의 쾌유와 복직을 기원하며 매일 3천배를 올린다고 한다. 2011년 한진중공업으로 하는 희망버스를 탔던 승객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김진숙은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찾기 위해 긴 세월을 거리에서 싸웠다. 노조를 만들고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는 많은 이들은 그와, 죽음의 길을 간 그의 동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아직도 노동개악은 계속 시도되고 노조할 권리는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은 김진숙 노동자의 용기와 의지를 배운 이들이 풀어 나가야 할 숙제다.

‘웃으며 끝까지 함께 투쟁’한 그가 이제는 성큼 현장으로 돌아가 동료들과 웃을 수 있도록 한 번 더 연대의 목소리를 모아 주시면 좋겠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매일노동뉴스 칼럼과 동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