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만난 사이

28회_인천인권영화제_상영작_일로만난사이_이미지

장호경 | 2023 | 다큐멘터리 | 26분 | 한국어 한국어자막 한국수어 자막해설 화면해설 |

노들야학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 다섯 언니들의 노동하며, 놀며, 싸우며,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 탈시설 후 지역에서 사는 이들에게 노동의 경험은 특별한 무언가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관계’이다.



| 다름과 연루 |

일로 만난 사이
일로 만난 사이

감독 : 장호경
제작연도 : 2023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한국수어, 자막해설, 화면해설
상영시간 : 26분

상영일시 : 2023.11.17(금) 오후 7:00 / 11.18(토) 오후 8:1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3관




작품해설

만순, 희자, 성숙, 경남, 인혜는 노들야학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시설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이들은 자립생활을 하며 ‘일로 만난 사이’다. 이들은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미소를 짓고 동료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들에게 노동하며 그 속에서 관계를 맺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사는 재미이기도 하다. 노동할 수 없는 몸으로 여겨졌던 이들이 하는 노동은 노동자로서 권리와 장애인의 권리, 그리고 관계를 생산하는 노동이다. 일로 만난 이들의 관계가 노동으로 지역사회의 비장애인과의 ‘사이’로 확장되는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수진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인권해설

“아침에 어디 가냐고 그만 물어봐라. 나 출근하느라 바쁜 여자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의 장애여성 배우 서지원이 쓴 노랫말이다. ‘이른 시간 일터로 나가는 장애여성이 생소할테지…’ 그러려니 하다 반복되는 질문에 알아차렸단다. 입으로 휠체어를 운전하고 온 몸이 경련으로 꼬이는 내 몸은 일하기에 적당해 보이지 않는구나. ‘어! 그런데 나 공연 창작하는 일 하는 거 맞는데, 어떻게 증명할까?’ 노동이 가능한 몸으로 보이기 위해 옷도 사고 미용실가서 머리도 했지만, 어디가냔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아! 증명이 아니라 권리가 필요한 거구나!’

영화에 등장하는 김경남, 김희자, 박만순, 박성숙, 이인혜는 일로 만난 사이다. 발달장애인 노동자인 이들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권리를 외치는 일인(권익옹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한다. 권리를 외치는 노동을 잘 하기 위해 빼앗긴권리를 공부하고 자신들의 삶을 돌아본다. 시설에서 살았던 삶이 무엇을 박탈당했는지 떠올려보는 장면은 지키고 싶은 삶의 가치를 표현하는 시간같기도 하다. 시민들을 만나는 과정은 긴장도 되지만 힘도 받는다. 그래서 이 일을 쭉 하고 싶고, 좀 더 일자리가 늘어나 많은 친구들이 같이하길 바라지만 내년을 기약하기 어렵게 되었다.

최근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의 유일한 중증장애인 직접 고용 제도인 “중증장애인지역맞춤형취업지원사업(동료지원가)”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동료지원가로 계속 일하기 위해 발달장애인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하다 28명이 연행되었다. 또한 서울시는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사업을 사실상 폐지하였다. 2020년 시작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기존에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의 3가지 직무로 운영해왔다. 그러나 지난 7월 서울시는 권익옹호활동이 “보조금 유용”이라는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의 논리를 따라 권익옹호활동을 업무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화예술과 인식개선은 장애인 인식개선 및 문화·예술 활동(장애인 인식개선 보조 강사, 문화·예술 활동)로 통합시켰고, 장애친화적 환경조성(온라인콘텐츠모니터링, 장애인편의시설모니터링), 서비스업 보조(체육시설 보조, 병원·검진센터 보조, 도서관 사서 보조)로 직무 유형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최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취지를 지속적으로 부정하던 서울시는 급기야 24년도 예산안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중증장애인이 수행할 수 없는 직무로 이뤄진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했다. 실질적으로 현재 이 사업에 참여하는 중증 장애인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2018년 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85일간 농성투쟁하며 쟁취한 권리들은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다. ‘이것도 노동이다’라며 일로 세상과 관계 맺던 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이 해고될 처지다. 한 겨울 거리의 투쟁은 더욱 거세진다.

국가는 노동을 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으로 구분하고, 재생산노동을 외면하며 돌봄을 가족에게 떠맡기거나 생산력이 없어 돌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몸들을 시설에 가두었다. 뿐만아니라 시설 보호 노동으로 장애인 거주시설의 노동착취를 묵인하고, 최저임금 예외조항으로 장애인의 노동을 차별하는데 앞장섰다. 이제 시설에 감금됐던 몸들은 장애인 노동권 투쟁으로 노동의 의미를 다시 질문한다. 우리가 알던 노동자의 얼굴은 무엇인가? 당신과 나는 왜 일로 만날 수 없는 관계인가? 과연 당신이 알던 노동이 일의 세계의 전부인가?

중증장애인들은 노동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것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다시 쓰기 위해 일한다. 일로 만나며 시설에서 매일 똑같던 보호라는 선을 밟고 위험과 실패의 동선위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이들의 노동이 동료시민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서로를 지켜보고, 기다리며, 갈등하는 지루한 순간을 같이 견디며 의존하는 ‘사이’ ‘관계’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자고.

이진희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합니다. 장애/비장애여성 동료들과 서로 돌보는 일을 연습하며,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사회를 변화 시키는 여러 활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자 합니다.




장호경 감독


감독
장호경 Jang Ho-kyoung

<장애인에게 교육은 생명입니다>(2005), <다시, 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2009), <빈곤의 얼굴들>(2010), <최옥란들>, <장애해방 열사들의 이야기>,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끝나지 않은 이야기>(2012), <카페 그>(2014), <감염병의 무게>(2020) 등을 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