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훈 | 2022 | 다큐멘터리 | 31분 | 한국어 한국어자막 자막해설 |
우연히 할아버지가 4.3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지훈은 무작정 찾아간다. 좀처럼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에 함께 카메라 앵글 안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이어간다. 토벌대에 몸을 담기도 했다는 이야기에 점점 카메라 뒤로 숨게 되지만, 끝까지 카메라를 겨누며 이야기를 쫓는다.
| 몫소리, 기록의 힘 |
포수
The Shooters
감독 : 양지훈
제작연도 : 2022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자막해설
상영시간 : 31분
상영일시 : 2023.11.19(일) 오후 3:4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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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일) 오후 3시 40분 <포수> 상영 후
양지훈 감독, 희우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을 진행합니다.
작품해설
우연히 할아버지가 4.3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훈은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과거를 입에 담고 싶지 않다”는 할아버지와 함께 카메라 앞에 앉아 계속해서 고기와 술을 먹고 마신다. 수없이 망설이던 할아버지는 결국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과거의 조각을 털어놓는다. 폭력과 공포가 휘몰아치던 시간 속에서 할아버지가 살아남기 위해 거쳐왔던 순간순간은 그의 마음에 뿌리박혀 맨정신에, 다른 사람 앞에서는 결코 꺼낼 수 없는 응어리가 돼 있었다. 피해와 가해가 뒤엉킨 사건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얘기해보지 않았던 역사의 순간은 감독에게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 진실이다. 할아버지의 고백에 전율하고 지훈은 카메라 뒤로 숨으면서도 끝까지 카메라를 겨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긴 시간 뿌리내린 이 기억과 상처를 우리가 어떻게 읽어야 하냐고.
희우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인권해설
다큐멘터리 <포수>에는 반복적인 것이 많다. 주인공 양서옥은 시종일관 유사한 행위를 반복한다. 먹다, 삼키다, 말하다, 산다, 죽이다 등과 같은 동사의 반복이다. 또한 모든 것을 부조리하게 만들면서 주위를 환기시키는 시그널 음악들이 반복된다. 과연 양서옥의 손자이자 감독인 양지훈은 왜 이렇게 할아버지의 행위들을 반복적으로 포착했으며 또한 기괴한 사운드로 몰입을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무엇을 의미화하고자 선택한 표현전략이었을까.
양서옥은 역사의 외진 곳에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경험과 그에 대한 인식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와 서사가 미흡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피해자로서 국가 보상을 받는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토벌대로서 학살에 참여한 가해자이며 참혹한 시대를 뚫고 지나온 생존자이다. 그가 느끼는 가해자로서 느끼는 죄책감이나 수치심과 이에 못지않게 모든 반성을 내팽개친 안도감이 뒤섞여 있다. 이 모순적이고 복잡한 상태는 해석가능한 사회화된 언어와 서사로서 정착되지 못했다. 감독이 영화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즉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이름 없는’ 양서옥에게 가장 적확한 무게의 역사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매우 흥미로운 연출을 통해서 구현된다. 첫째는 섭식와 발화의 모순과 긴장감이다. 영화의 첫장면, 카메라 앞에 선 할아버지 양서옥은 귤을 먹고 있다. 귤을 먹는 행위는 말하기를 방해하거나 지연시킨다. 그렇게 귤을 먹으면서, “시간 날 적마다 조금씩 조금씩 기록을 해놔두면, 이게 종합적으로 해서 우리가 나중에 이렇게 책으로 피든가 하겠는데, 나는 그러기 싫은 게 그 과거를 떠올리기가 싫어, 너무 이러니까, 입에 담고 싶지 않다 이거야”라고 말한다. 발화하기를 꺼려하는 할아버지 양서옥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무언가를 먹거나 먹었음을 짐작게 한다. 또한 발화의 내용은 대부분 생존을 위한 섭식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의 섭식 행위와 동시에 진행되는 발화는 참혹한 상황에서의 생존은 윤리적 판단보다 우선하며, ‘이름 없는’ 양서옥의 모든 선택은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너머 단지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필연적이었음을 설득해 낸다.
두 번째는 동물의 도륙과 인간의 살육에 대한 은유이다. 감독은 할아버지의 경험을 듣기 위해서, 작은 무대를 만들기 시작한다. 무대장치는 숯불, 고기 그리고 술이다. 특히 냉동 포장육나 붉은 생고기의 질감이 뚜렷하게 보이는 인서트 이미지는 할아버지의 가해자라는 위치를 해석하는데 사용된다. 말하자면 냉동 포장육은 직접적으로 돼지를 도륙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섭식함으로써 대량 도륙에 동참하는 것처럼, 토벌대로서 직접적으로 사람을 살육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참여함으로써 살육에 동참하는 것에 대한 은유이다. 마지막으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시그널 음악은 감독의 해석이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순간으로, 할아버지의 진술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감독은 스스로에게 윤리적 의문이 생기는 순간마다 체크를 하듯이 음악을 삽입하였다. 의문은 이러하다. 과연 ‘이름 없는’ 가해자 양서옥은 과연 자신의 행위를 역사적 주체로서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그에게 물을 수 있는 역사적 책임이란 무엇일까. 따라서 시그널 음악은 감독의 혼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했다. 이 영화는 결국, ‘이름 없는’ 가해자이며 피해자이며 생존자인 양서옥를 겨냥한 질문이 결국 감독 스스로에게 돌아와서 꽂혔고 이에 답을 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포수의 영화이다. 이것이 이 영화를 함께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김일란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활동가이며, 다큐멘터리 감독.
현재 두 명의 트랜스젠더 여성에 관한 다큐멘터리 <에디와 앨리스> 막바지 작업 중이며,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감독
양지훈 Yang Ji-hoon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에서 외면당하는 것들을 찾아내려 한다. 주로 카메라를 이용하여 대상에 의존하며 그 앞에서 범주화 되는 사람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