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의 뜨개질 Queen’s Crochet

28회_인천인권영화제_상영작_퀸의뜨개질_이미지

조한나 | 2023 | 다큐멘터리 | 36분 | 한국어 한국어자막 영어자막 자막해설 |

10살에 할머니 ‘춘자’로부터 신부수업으로 뜨개질을 배운 한나. 실과 함께 과거의 경험과 감정을 엮고 풀기를 이어가며 뜨개질계의 최고봉 ‘만다라 매드니스’에 도전한다. 한나는 가장 사소하고 여성스러운 뜨개질로 가장 거대한 반란을 꿈꾼다.



| 높낮이 없는 새땅 |

퀸의 뜨개질
Queen’s Crochet

감독 : 조한나
제작연도 : 2023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영어자막, 자막해설
상영시간 : 36분

상영일시 : 2023.11.19(일) 오후 1:2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3관

11월 19일(일) 오후 1시 20분 <퀸의 뜨개질> 상영 후
조한나 감독, 넝쿨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을 진행합니다.




작품해설

10살에 할머니 ‘춘자’로부터 신부수업으로 뜨개질을 배운 한나. 뜨개질을 배운 지 15년이 지나 어른이 된 한나는 자신의 방을 뜨개질의 세계로 만든다. 그리고 코바늘 뜨개질의 최고봉, ‘만다라 매드니스’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실을 얽고 풀기를 반복하며 한나는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과거의 경험, 뜨개질을 가르쳐주었던 춘자의 이야기를 함께 엮는다. ‘여자들의 조신한 취미’로 여겨지는 뜨개질, 그리고 끈기와 수행으로 완성되는 만다라를 엮는 과정은 한나를 넘어 춘자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이 상상은 한나와 춘자의 과거를 연결시키며 한편으로는 실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몸과 ‘여성적인 것’, ‘남성적인 것’을 경계 짓는 몸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가장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뜨개질로 반란과 전복을 꿈꾸는 한나는 이렇게 노래한다. “춘자 can be anyone.”

넝쿨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인권해설

영화의 첫 장면은 감독이자 주인공인 한나의 네 호흡 말과 두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말: “화장품 너무 오랜만에 써 가지고 안 나와.” “어머 어떡해 안 나오는 거 아니야?” “눈매를 어떻게 하면 남자답게 그릴까?” “너무 싫어 너무 느끼한 남자 같애.” 행위: 그는 화장을 한다. 그는 (회색빛 얇은 실로 촘촘하게 뜬, 마스크처럼 그 양 끝을 귀에 걸어 얼굴 일부를 가리지만 입은 뚫려있고 턱과 인중만을 가리는) 무언가를 쓴다. 즉, 여자되기 도구의 상징인 화장품으로 그는 느끼한 남자를 창작한다. 여자들의 손기술이자 예술방식의 대표격인 뜨개질로 그는 남자의 턱수염을 뜬다. 이렇게나 친절한 감독의 안내와 함께 나는 뜨개질로 자신의 젠더-세계를 한 코 한 코 떠나가는 영화의 여정에 동참한다.

이 세계가 실과 바늘로 만든 어떤 결과물이라고 상상해 본다. 인간뿐 아니라 온갖 인간 아닌 동물, 식물, 흙을 원료이자 수단으로 삼아, 즉 착취해, 뜨개질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광범위하게 짜여진 세계를 상상해 본다. 다른 차원에서 그 세계는 “성별, 장애, 병력(病歷),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의 실로 짜여진 복합적인 세계다(권인숙 등이 2021년 발의한 ‘평등 및 차별금지법’ 법률안의 일부). 이 영화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으로 한정해 말하자면 이 세계는 모든 행동, 말투, 취미, 기술, 삶과 죽음의 방식을 이성애자 남자 아니면 여자의 의미망으로 짜내려가는 세계다. 

영화는 말한다. “나는 내 방을 뜨개질의 세계로 만들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내 방에서 뜨개질로 세계를 만들었다.” 영화는 이 거대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 만다라 매드니스, 미친 원을 떠나간다. 한나가 능숙한 코바느질로 만다라를 짜내려가는 시간은 그가 자신의 도안과 기술을 활용해 기존의 젠더-세계에 개입하는 활동이다. 그 시간 동안 기억, 관계, 흔적, 악몽이 떠오른다. 그가 좋은 신부가 되길 바라며 그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준 할머니 춘자 역시 따라온다. 이 세계를 벗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남자가 되고 싶었다던 어린 한나처럼, 한 사람이 여자의 의미망에서 남자의 의미망으로, 그 반대로 이동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에 대해 영화는 뜨개질로 답한다. 이 세계의 방 한켠에서 만다라는 한 점에서 출발해 중심에서 주변으로 차오른다. 이 만다라는 한나가 촘촘하고 단단하게 짜내는 하나의 세계다. 이런 세계는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에) 다른 이를 초대한다. 영화가 진행되고 만다라가 점점 커지는 동안 한나의 친구들이 점점 영화 안으로 들어와 한나의 창작활동에 동참한다. 한나에게 신부수업을 강요하던 젠더규범 집행자처럼 느껴지던 춘자 또한 이 세계를 통해서야 자신만의 뜨개질로 어떤 세계를 만들어 온 여자가 된다. 만다라가 완성돼서야 한나는 말한다. “할머니의 뜨개질은 어떤 것이었을까. (…) 난 할머니의 뜨개질을 잘 모르는 것 같애.” 한나는 무언가를 창작하며 무언가를 모르게 된다. 권력자들에게 무지는 권력의 수단이자 결과라지만, 창작자들은 세계를 모르는 것으로 만들며 세계에 개입하고, 창작활동을 하고, 자신의 세계-만들기를 해나간다. (젠더규범을 포함해) 한 인간이 자신이 부여받은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이동하지 못하게 결박하는 기술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어떤 이동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끔 인간은 그 세계 안에서 다른 세계를 창작한다. 

수엉 트랜스 연구자
여성학 전공자, 이-무-기 멤버,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입니다.



조한나 감독


감독
조한나 Cho Han-na

방송영상을 전공했다. 연출작으로 단편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 <뱃속이 무거워서 꺼내야 했어>(2018), 극영화 <말로 하는 기도>(2020)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