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A Leave

휴가 A Leave 스크린샷

이란희|2020 | 극영화 | 81분 | 한국 | K KS

1882일째 투쟁을 이어가는 해고노동자들이 해고무효소송에서 패소했다. 끝을 알 수 없는 투쟁에 대한 불안과 낙심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휴가를 떠난다. 집으로 향한 재복과 함께 삶의 문제도 이어진다. 경제적 문제와 가족과의 관계, 여전한 노동자의 현실을 마주한 재복을 통해 장기투쟁 해고노동자의 삶을 마주한다.


[인천, 사람이 산다]

휴가
A Leave

감독 : 이란희
제작연도 : 2020
장르 : 극영화
나라 : 한국
언어 : 한국어/ 한글자막
상영시간 : 81분

상영일시 : 2020.12.12(토) 18:30 / 13일(일) 12:3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토) 3관(일)




12일(토) 6시 30분 <휴가> 상영 후
김경봉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랑희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이 진행됩니다.



작품해설

1,882일째 투쟁하고 있는 선인가구 해고노동자들이 해고무효소송에서 패소했다. 끝을 알 수 없는 투쟁에 대한 불안과 낙심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휴가를 떠난다. 집으로 향한 재복의 휴가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이다. 재복은 경제적 문제와 가족과의 긴장, 여전한 노동자의 현실을 마주한다. 재복의 삶은 부당한 해고에 맞서 삶과 노동을 회복하려는 모든 해고노동자의 이야기이다. 해고로 부정당한 노동과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고자 한 투쟁이 길어지면서 이들의 삶은 더욱 흔들린다. 그러나 이들은 삶을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반복되는 투쟁과 연대의 시간이 미래를 확실하게 알려주지는 않아도 질기게 싸운다. 이 싸움은 잘못된 해고라는 인정과 당신들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응답을 기다린다. “왜 이렇게 오래 싸우고 있나요?”라는 질문은 이제 “왜 이렇게 오래 이들의 삶과 노동에 책임을 지지 않나요?”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누구보다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해고노동자의 휴가를 통해 해고노동자들 삶의 회복을 생각한다.

_랑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나는 한 공장에 오래 다닌 기억이 없다. 새벽별 보고 출근해 영문도 모른 채 정리해고되었다. 7년을 일하고 노무현 대통령 말기부터 이명박, 박근혜를 거쳐 문재인 정부 초기까지 13년을 싸웠다. 그렇게 투쟁은 13년이란 세월이 흘러 정년 전 복직이란 투쟁으로 끝내 마무리가 되었다. 미련도 없는 회사를 상대로 무엇 때문에 그토록 질기게 싸웠는가? 노동부와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로 원직복직이라는 기대는 무너졌지만, 억울해서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소음과 매연 가득한 길거리 노숙투쟁을 하며 모두가 잠든 밤 공중화장실에서 눈치를 보며 씻어야 하는 생활에 내 몸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숱한 세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가정경제는 휘청이고 딸들은 대학등록금 낼 돈이 없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느라 친구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아이들의 원망을 감내해야 했던 옆지기는 눈물과 서러움에 후벼 패인 가슴을 안고 뒷산에 올라 걸으며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달랬다 한다. 그 맘도 모른 채 대전을 떠나 부평과 서울의 거리에서 9년의 노숙농성을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며 세상을 알아가게 되었다. 우리는 자본과 정부를 향해 싸워야 했다. 모욕적인 말과 비아냥거리는 말들을 속으로 삭이며 어느 무대에 올라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입고 있는 금속노조 조끼를 가리키며 “이 조끼가 부끄럽습니까? 저는 부끄럽지 않고 당당합니다. 이제는 여러분들도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왜 그럴까 관심 가져 주시고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느새 나 자신도 모르게 변해가는 모습에 나 스스로가 놀랐다.

지금은 말할 수 있으려나! 시작은 내 의지로 하지 않았지만, 투쟁을 끝내고 난 후는 내 의지가 필요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이제는 그만두고 내려가라는 주변의 압박으로 몸과 마음의 상처는 더욱 커졌고, 진정 싸워야 할 상대는 회사와 사법부 정부였지만 긴 투쟁에 내부의 골은 깊어졌다. 2중으로 고통을 안고 싸워야하는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까?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란 말이 그렇게 아픈 말인 줄 몰랐다.

하지만 아픔도, 기쁨도 처음부터 끝까지 몸과 마음으로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며 함께했던 문화연대 친구들, 상경투쟁하면서 낯선 곳에서 자신의 일처럼, 가족처럼 함께하며 어려움을 잊게 한 인권운동공간 활 친구들, 한 달에 한 번씩 8년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미사로 힘을 주었던 인천노동사목 장동훈 신부님, 수녀님, 신자분들, 겨울이 오면 추울까 비싼 점퍼를 사주고 명절이면 외롭지 않게 현금 두둑하게 챙겨주셨던 서영섭 신부님, 적막한 농성장에서 그림의 모델이 되어 힘든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하고 수다와 보드게임으로 웃고 떠들며 함께 했던 미술가 친구들, 밴드로, 연극으로, 영화로 문화를 접하며 노동과 문화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친구들. 이 밖에도 수많은 뮤지션과 연대 동지들 종교인들이 있다. 이런 친구들이 있었기에 13년의 투쟁을 버텨낼 수 있었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동지들을 잊지 않으려고 같이 여행도 하고 밥도 먹으면서 함께 하려고 한다. 평생 잊지 못할 친구들을 얻어 고맙고 행복하다.


김경봉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태일이 되어 싸우고 활동하는 동지들이 아프거나 힘들 때 잠시 쉬어가며 함께하는 공간 <비정규직 노동자의 쉼터 꿀잠>에서 상근활동하고 있다.



인권해설

25년을 생산직 노동자로 살았다. 해고를 두 번 당했다. 한번은 정규직으로, 한번은 비정규직으로. 두 번의 해고는 인생을 바꿔놓았다. 정규직으로 해고되어 565일을 싸웠다. 비정규직으로 해고되어 1,960일을 싸우고 있다. 싸웠다 하면 장기투쟁이다. 힘든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왜 이렇게 길게 싸울까. 나도 궁금하다.

해고를 당하면 해고가 실감 나지 않는다. 행정기관, 사법기관, 정치권이 나서면 곧 해결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기업의 불법은 정당화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악성 민원인이나 전문데모꾼으로 취급받는다. 암담하다.
장기투쟁의 고통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떠넘겨진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해고자가 되면 농성을 하고 투쟁을 한다. 자연스럽게 가정일은 소홀해진다. “아차!” 깨닫는 순간 가족은 이미 멀어져 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투쟁과 가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족을 생각하면 무거운 돌덩어리가 가슴에 얹힌 듯하다. 딸들과 와이프에게 어떤 말로도 미안함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 ‘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르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다. 장기간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를 두고 떼쓰는 노동자로 인식한다.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를 보고 길 가던 부모가 “공부 못하면 너도 저렇게 된다.”라고 아이에게 말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를 잘 보여준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시선은 한겨울보다 차갑다.

그럼에도 노동자는 투쟁하면서 가장 당당한 인간이 된다. 스스로 자존감을 찾는다. 투쟁하면서 자신이 누구에게도 무시당하거나 함부로 취급당하면 안 되는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투쟁을 통해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알게 된다. 투쟁하는 노동자의 눈빛에는 반짝이는 자신감과 말 못 할 슬픔이 같이 담겨 있다.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한 달 만에 178명이 해고됐다. 아사히는 김앤장을 고용하여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 하청업체만 통째로 계약 해지했다. 현재 22명의 조합원이 남아서 6년째 싸우고 있다. 노동부, 검찰, 법원까지 모두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사히글라스는 어떠한 명령도 따르지 않고 있다. 김앤장을 앞세워 노동부의 직접고용 시정명령도, 법원의 직접고용 판결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맞서 일본 동지들과 국제연대를 하며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에서 아사히 투쟁을 지원하는 공동투쟁 회의체가 만들어졌고, 5차 일본 원정 투쟁을 진행했다.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수지만 전국의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힘차게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