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투 비 Born To Be ⚪⚫

본 투 비 Born To Be 스크린샷

타니아 시프리아노 | 2019 | 다큐 | 92분 | 미국 | E KS

미국에서도 몇 안 되는 트랜스젠더를 위한 종합건강센터인 마운트 사이나이 센터. 트랜스젠더로서 존중받길 바라는 이들이 의료진들의 지지를 받으며 트랜지션의 과정을 갖는다. 이들의 목소리로 수술의 의미와 과정 그리고 이후의 삶을 담고 있는 카메라는 우리에게 진정한 존중을 끊임없이 묻는다.



| 높낮이 없는 새땅을 위하여 |

본 투 비
Born To Be

감독 : 타니아 시프리아노
제작연도 : 2019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미국
언어 : 영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92분

상영일시 : 2020.12.12(토) 12:30/ 13일(일) 16:1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토) 3관(일)
온라인 상영 : 2020.12.10(목) 18:30~11(금)18:30 / 2020.12.12(토) 12:30 1회 상영 (상영 후 ‘대화의 시간’ 라이브)


12일(토) 12시 30분 <본 투 비> 오프라인 상영 후
최예훈 산부인과 전문의,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홀릭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 미루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작품해설

“제 인생 처음으로 저 자신을 사랑해요. 이제서야 거울을 보고 웃을 수 있어요.” <본 투 비>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데빈은 자신의 수술 경험을 나누며 미소지었다. 트랜지션을 원하는 트랜스젠더들은 의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몇 안 되는 트랜스젠더를 위한 종합건강센터 마운트 사이나이 센터의 의료진들은 환자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애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수술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 <본 투 비>는 결국 사회적 관계 안에서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존재할 수 있기 위해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_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미루



인권해설

<본 투 비>의 배경이 된 병원은 2016년 뉴욕에서 트랜스젠더를 위한 수술과 내과적 치료, 정신심리적 치료가 연계된 센터로 문을 열었다. 영화는 한 명의 성형외과 의사를 중심으로 그가 만나는 환자들의 인터뷰와 병원 안팎의 장면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의사 이외에도 간호사, 전문간호사, 사회복지사, 보험청구전문가 등 수술 전후의 환자 케어를 담당하는 많은 사람이 비춰진다. 이들 모두가 환자에게 필요한 수술 전후의 환경을 파악하고 보다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흔히 아프면 가게 되는 병원에 잘 어울리지 않는 특별한 장면들이 있다. 환자가 의료인을 처음 만날 때부터 신뢰감이 넘치고 농담도 할 여유가 있다. 모두가 하루라도 빨리 수술받기를 고대하고 있고, 수술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기쁨과 흥분으로 상기되어 보인다. 호르몬 치료가 가능한 병원도 매우 드물고 수술을 위해서는 해외로 나가야만 하는 현재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면, 이런 병원이 어딘가에 실재한다는 것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한편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보여준다.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병원이 따로 있다는 것은 여전히 그곳이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트랜스젠더의 몸은 피사체가 되어 이야기의 일부로 그려지는데, 그들의 몸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에서 얻은 말들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내가 정상이라 느끼고 싶다”
“단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것”
“나는 한 번도 ‘트랜스젠더’였던 적이 없다. 그저 매일 내 몸을 편안하게 느끼기 위해, 자신으로 살고 싶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꺼이 (의사의) 실험 대상도 되는 것이다”
(수술을 마친 후에도) “항상 ‘그 다음은 뭐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말들은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정상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내가 당신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차이는 무엇인가? 그 다름은 건강과 행복의 위계를 가져올 만큼의 결정적인 차이인가? 누가 왜 건강과 행복을 누릴 권리를 당연히 가지게 되는가? 나의 권리는 누군가의 고통과 무관한가? 나의 무지가 누군가에게 고통의 무게를 더해주지는 않는가? 의료는 누구의 필요를 우선적이라 판단하는가? 왜 누군가에게는 필수적인 의료가 누군가에게는 부차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는가?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명이 가진 몸이 있고, 백 명이 느끼는 감각과 감정은 모두 다르다. 트랜스젠더로 호명되거나 정체화하는 사람들 역시 단일하지 않으며 각자가 다른 삶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젠더 정체성으로 누군가의 존재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더구나 젠더는 과학적 사실도 아니고 불변하는 진실도 아니다. ‘젠더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결론은 실제로 버티고 있는 삶의 무게에 비해 너무나 가볍게 느껴진다. 다름에서 멈춘 채 더는 돌아보지도, 알고 싶지도 않을 때 ‘다양성’이란 말이 곧바로 면피용 언어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다름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더 세밀한 정치화 작업이 필요할 터이다.


최예훈 산부인과 전문의,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성적 권리와 피임, 임신, 임신중지, 출산, 양육 등에 관한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교육과 상담, 의료지원 활동을 하며 관련 법정책을 연구하는 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