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위의 여성들 (Vessel)

파도 위의 여성들 영화장면

낙태가 법으로 금지된 국가의 여성들에게 국제수역에서 낙태 유도약을 나눠주는 행동이 진행된다. 여성의 목소리와 권리를 배제한 채 벌어지는 생명권과 선택권의 대결구도를 넘어 ‘여성들이 온전한 주체로 선다는 것’, 이를 위해 어떻게 연대하고 바꿔나갈 것인가를 보여준다.


[높낮이 없는 새땅 – 여성인권]

파도위의 여성들
Vessel

감독 : 다이애나 휘튼
제작연도 : 2014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미국
언어 : 영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88분

상영일시 : 2018.11.25(일) 15:1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작품해설

네덜란드 의사 레베카는 ‘파도 위의 여성들’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한다. 낙태죄 조항을 유지하고 있는 많은 국가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국제수역에서 임신중단 시술을 진행하기 위함이다. 반대세력과 언론에 의해 공격받고, 정부에 의해 배의 정박을 거부당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항해를 멈추지 않는다. 여성들이 약물(미소프리스톨)을 통해 스스로 임신중단을 할 수 있도록 돕거나, 비상연락망을 개통하는 등 낙태를 반대하고 금지하는 논리들을 용감하게 때로는 재기발랄하게 무너뜨려 나간다. 여성의 임신 및 출산에 대한 권리와 삶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 배는 각국의 여성들과 연대하며 지금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지혜 인천인권영화제 소금활동가


인권해설

낙태죄의 파도 위에서 믿음을 공유한다는 것

2018년 9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중지할 권리를 위한 국제 캠페인 International Campaign for Woman’s Rights to Safe Abortion’의 포럼이 열렸다. 세계 각국에서 120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첫 세션 발제를 맡은 발표자는 “유산유도제(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에는 발이 달렸다”고 소개했다. 화면에 발이 달린 알약 그림이 뜨자 유쾌하게 웃는 청중들을 향해 발표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말이다. 이 약은 가볍고, 작고, 어느 장소 누구에게나 갈 수 있다.”

실제로 이 약은 전 세계로 갔다. 1992년까지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WHO에서 안전성을 입증하는 약이 되어 그간의 잘못된 신화들을 깨뜨리고 있다. 유산유도제에 대한 대표적인 잘못된 신화는 “약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 임신중지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발표자는 미국과 유럽의 15세에서 45세 사이 여성 1천 명 당 임신중지율 통계를 통해 미페프리스톤 승인이 임신중지율을 높이지 않으며 오히려 승인 이후 통계 수치가 낮아졌음을 보여주었다. 사실 당연한 결과이다. 약을 도입한다고 해서 임신중지를 안 해도 되는 여성들이 괜히 임신중지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약의 승인과 임신중지 비범죄화는 보다 빠른 시기에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생각해보면, 이 잘못된 신화는 사실상 약이 아니라 여성들에 대한 깊은 불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임신중지에 대한 법적, 의료적 접근성이 높아지면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많이 할 것이라는 생각은 낙태죄를 유지하고 있는 핵심적인 논리이다. 2018년 5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을 앞두고 법무부가 제출한 “(임신중지는)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행위”라는 내용의 변론요지서가 이 신화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듯이 말이다.

이러한 논리와 인식 속에는 콘돔을 거부하며 “한 번만 안에다 하자”고 조르는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의 욕망을 단죄하고 성차별을 묵인하며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해 온 종교계의 억압적 태도나, 성적 통제를 명분 삼아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해 온 이들의 역사도 삭제되어 있다. 경제 개발, 생산성을 위해 정상성을 규율하고, 장애, 질병, 경제적 조건, 혼인 상태, 이주 상태,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 등에 따라 불임이나 임신중지를 강요하며 생명을 선별해 온 국가와 사회는 그 모든 책임을 여성들에 대한 처벌로서 전가해 왔을 뿐이다.

<파도 위의 여성들>은 그 모순과 억압의 파도 위에서 약과 함께 믿음을 전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혼자 위험으로 내몰리는 여성들에게 “우리는 지금 임신중지가 필요하다는 당신의 판단을 믿는다. 우리와 함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자. 그리고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소식이 닿게 하자.”고 용기 있게 손을 내민 사람들의 이야기. 이제 ‘파도 위의 여성들’은 바다 위를 넘어 온라인으로, 드론이나 로봇으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 용기 있는 항해를, 지금 우리도 함께하고 있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팀장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는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가부장체제에 맞서, 적(노동), 녹(생태), 보라(여성주의)와 다양한 사회적 의제 간의 연대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 지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유형의 착취와 차별에 지구적 차원의 네트워크로 함께 대응하고자 합니다. 현재 중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단체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활동가를 위한 페미니즘 학교와 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glocalactivis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