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 국가기록물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4.3이 다섯 할머니의 담담하고 때때로 격정적인 이야기 속에서 비로소 재현된다. 이 중 네 명은 4.3으로 전주형무소로 보내졌다. 당시 20대였던 이들이 70년이 지나서야 증언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 기록의 힘, 몫소리의 힘 |
돌들이 말할 때까지
Until the Stones Speak
감독 : 김경만
제작연도 : 2022
장르 : 다큐멘터리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영어자막, 자막해설
상영시간 : 100분
상영일시 : 2022.11.26(토) 오후 1:3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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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토) 오후 1시 30분 <돌들이 말할 때까지> 상영 후
김경만 감독
백가윤 전 (사)제주다크투어 대표
신석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을 진행합니다.
작품해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4.3의 기억을 몸에 새기고 오랜 세월을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의 기억과 삶의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다. 가족을 잃고 폭력을 겪은 다섯 할머니 중 넷은 재판도 없이 전주형무소에 보내지기도 했다. 자신이 겪은 4.3의 기억을 온전히 말하기까지 견뎌야 했던 그들의 오랜 침묵의 시간, 그렇게 할머니들의 꾸준한 삶의 시간이 흐르고 시민사회의 노력과 할머니들의 용기가 만나 4.3의 이야기를 지금 우리에게 펼쳐보이고 있다. 그리고 감독은 그 목소리들을 담담하면서도 세심하게 기록하여 그녀들의 4.3을 전하고 있다. 당시 20대였던 이들이 70년이 지나서야 증언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인권해설
“삼춘, 4·3 알아지쿠과? 4·3이 언제 일어나수과?” 제주 마을 길에서 만난 할망들을 붙잡고 이렇게 물어보면, 북촌 할망은 “4·3? 음력 섣달 열아흐렛날에 일어났주게”라고 답하고 가시리 할망은 “음력 10월 보름이주게”라고 답한다. 육지 사람들이야 4·3이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제주에서의 4·3은 마을마다, 그 경험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고 있다.
남자들이 없어 무남촌이라고 불렸던 마을들, 4·3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재건한 살아남은 제주 여성들, 그럼에도 아직까지 새해 첫날 마을에서 지내는 제사에 여자들은 초대받지 못하는 섬에서 제주 할망들은 70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제주 섬에서 4·3을 경험한 다섯 할망들의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기억을 기록한다.
오랜 기간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제주4·3은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에야 수면으로 올라왔고 그중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는 최근에서야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희생된 사람 약 3만여 명 중, 여성, 어린이, 노인의 희생은 33%에 달했다. 토벌대에 쫓겨 남자들이 산으로 들어가자 남은 어린이와 노인을 보살피며 집에 숨어 있다가 군경에 의해 희생된 여성들이 대다수였다.
그렇지만 그중에는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성들도 있었다. 제주4·3은 냉전 시기 외세에 의한 분단에 반대하며 일어난 항쟁이었고 자주독립을 외쳤던 통일 운동이었다. 1948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 회의에 제주도 인민대표로 참가한 6명의 대표단에는 김달삼, 강규찬뿐만 아니라 이정숙, 고진희와 같은 여성들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항쟁의 주역이었던 김달삼, 이덕구 사령관의 이름은 기억하지만, 같이 산에 올라가 적극적으로 항쟁을 이끌었던 여성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금기시되었던 4·3의 역사 속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 깊은 곳에 묻혀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전주형무소는 당시 전국 각지에서 끌려온 여성들이 모여있던 곳이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형무소 안에서도 삶은 이어졌고, 살아남은 여성들은 제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삶도 녹록지는 않았다. ‘빨갱이’라는 낙인, 계속되는 연좌제, 그리고 가부장제 안에서의 여성들은 점점 목소리를 잃어갔다. 4·3 때 동생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몰살당하자 딸린 동생을 데리고 시집간 것도 죄스러워 친정 부모님 제사를 부엌에 숨어서 몰래 지냈다는 4·3 생존자 할망의 이야기는 4·3 이후의 삶도 여성들에게는 쉽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사 운동을 하는 것은 매 순간 우리의 인간성을 시험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오래된 국가폭력의 기억을 현재로 가져와 끊임없이 몸에 새기며 기억하는 일. 영화의 마지막에서 박순덕 삼춘은 말한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남아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제주 4·3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양농옥, 박순석, 박춘옥, 송순희, 김묘생, 그리도 잊혀진 수많은 여성들의 이름을 가슴에 다시 한 번 새겨본다.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말처럼 삶이 아무리 험해도 살아있는 한 살기 마련이고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그 힘은 이 여성들의 삶을 이어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가윤
제주4·3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을 해왔다. 제주를 넘어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감독
김경만 Kim Kyung-man
역사인식의 문제가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고 생각해 영화를 만들고 있다.
2002년 단편 <각하의 만수무강>을 시작으로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2008), <삐 소리가 울리면>(2014) 장편으로는 <미국의 바람과 불>(2011), <지나가는 사람들>(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