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 (Fanatic)

성덕_스틸샷

사랑하는 가수의 팬, ‘성공한 덕후’로 행복했던 시간은 ‘오빠’가 범죄자가 되면서 분노와 슬픔, 부끄러움으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오빠들’의 범죄로 애정과 열정 가득했던 소중한 시간을 죄책감과 함께 복잡한 감정으로 보내고 있는 ‘덕후들’을 만난다.


[당신의 곁]

성덕
Fanatic

감독 : 오세연
제작연도 : 2021
장르 : 다큐멘터리
국가 : 한국
언어 : 한국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86분 43초

상영일시 : 2021.12.19(일) 13:1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12월 19일(일) 오후 1시10분 <성덕> 상영 후
오세연 감독, 손희정 영화평론가, 랑희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이 진행됩니다.

? <성덕> 대화의 시간은 원활한 진행을 위해 생중계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기록을 공유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작품해설

그녀(감독)의 처음에 그가 있었다. 처음 탄 기차, 처음 간 서울, 처음 산 앨범, 처음 좋아한 사람. 그를 향한 사랑으로 그녀는 ‘성공한 덕후’가 되었으나 그는 불법 촬영 및 불법 촬영 영상물 유포 등의 범죄자가 되어 그녀의 첫 법원 방문까지 이끌었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오빠들’의 범죄로 애정과 열정 가득했던 소중한 시간을 배신감과 부끄러움으로 보내는 ‘덕후들’의 고백이 들려왔다. 그녀는 ‘오빠’의 범죄로 자신 역시 피해자라 느끼면서도 동시에 ‘나도 가해자가 아닐까?’ 하는 질문과 함께 죄책감을 느낀다. 또한 아직도 팬으로 남아있는 이들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성찰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녀들의 복잡한 마음은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이 확산한 시간의 자장 안에서 소용돌이친다. 피해자만의 문제로 남겨두거나 여성혐오적 태도를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을 갖게 된 그녀들은 다시 ‘성덕’이 될 수 있을까?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얼마 전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 20주년을 맞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극장에서 재개봉했다. 정재은 감독은 “배우들이 아무런 사고를 치지 않아 재개봉 할 수 있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나 이건 그저 농담이 아니다. 과거 음악방송 자료를 보여주는 예능을 보다 보면, 특히 남자 아이돌의 경우 모자이크 없이 방송을 탈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사기, 음주운전, 마약, 도박, 데이트폭력, 미성년자 성구매, 성폭행, 디지털 성범죄…. 수많은 ‘오빠’들의 얼굴이 다양한 이유에서 공적 기록에서 삭제되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덕심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가수 정준영의 성덕이었던 오세연 감독의 자기-고백 다큐멘터리 <성덕>은 위기의 시대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가고 있는 수많은 팬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하는 ‘오빠’가 감옥에 간 이후 혼란과 좌절, 분노, 슬픔 등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던 감독은 카메라를 든다. 그리고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덕후 동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덕분에 <성덕>에는 추종하던 우상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이 거치는 마음의 풍경이 두루 담겨 있다. 부정, 분노, 수치, 허무, 해탈.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 안에서 카메라 앞에 앉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발화이기도 하다. 덕후 성토의 현장은 그야말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되는” 각성의 현장이기도 한 셈이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는 순간 중 하나는 감독이 “아직도 정준영을 기다리는 팬이 어떻게 있을 수 있지?” 하는 질문을 안고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집회에 찾아가는 장면이다. 한국의 정치 팬덤은 연예인 팬덤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마음과 형식이 비슷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정치인을 ‘아이돌화’, ‘우상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돌 팬덤의 활동 형식 자체가 정치 팬덤으로 이식된 지는 오래다. 하지만 아이돌 팬덤보다 정치 팬덤이 더 골치 아파지는 건 “우리가 옳다, 우리가 정의다”라는 확고한 신념과 만날 때다. 이런 정치 팬덤의 경우에는 사이버 괴롭힘과 가짜뉴스 유포에 앞장서기도 한다. 아이돌 팬덤과 정치 팬덤, 마치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두 씬은 감독의 통찰 안에서 하나로 겹쳐진다.

개인적인 혼란에서 출발한 <성덕>은 자조(自嘲/自助)의 시간을 지나 “팬의, 팬에 의한, 팬을 위한” 집단적 자기-위로의 기록이자 2010년대 대한민국 팬문화에 대한 세밀한 민족지 된다. 그리고 관객은 팬문화에 대한 민족지가 근본적으로는 두 개의 콘텍스트를 깔고 있다는 사실을 감각하게 된다. 첫째는 남성연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성범죄가 펼쳐지는 대한민국이라는 콘텍스트이고, 두 번째는 그런 남성연대에 대한 비판과 고발이 가능해진 페미니즘 대중화 물결이라는 콘텍스트다. 그런 의미에서 이 뜨겁고 영민한 작품은 2010년대 자체에 대한 민족지이기도 하다.


손희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