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남은 공간 All We’ve Got ⚪⚫

우리에게 남은 공간 All We've Got 스크린샷

알렉시스 클레먼츠 | 2019 | 다큐 | 67분 | 미국 | E KS

미국에서 퀴어여성의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이 공간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서로 존중하는 안식처였다. 사라진 공간을 돌아보며 남은 공간의 이야기를 통해 퀴어여성의 삶과 저항의 역사이자 문화를 만드는 공간의 의미를 확인하고 공간을 지키는 이들의 고민을 들여다본다.



[인천퀴어문화축제&인천인권영화제]

우리에게 남은 공간
All We’ve Got

감독 : 알렉시스 클레먼츠
제작연도 : 2019
장르 : 다큐멘터리
나라 : 미국
언어 : 영어/ 한국어자막
상영시간 : 67분

상영일시 : 2020.12.13(일) 12:20
상영장소 : 영화공간주안 4관
온라인 상영 : 2020.12.12(토) 낮 1:00 ~13(일) 낮 1:00


13일(일) 12시 20분 <우리에게 남은 공간> 상영 후
부파 신나는여성주의도서관 랄라, 이혜연-임신규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 희우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와 함께
대화의 시간이 진행됩니다.



작품해설

2010년 이후 미국에서 퀴어여성들의 공간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서점, 바, 예술모임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온 이 공간들은 퀴어여성들이 온전한 나를 드러내며 서로를 존중하는 안식처였다. 영화는 사라진 공간과 남은 공간을 통해 퀴어여성의 삶과 저항의 역사이자 문화를 만들어 내는 ‘공간’의 의미를 확인하고 이를 지키는 이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오랜 외압과 최근의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할 공간’을 지켜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_희우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안전한 공간’은 우리(사회에서 소수자로 억압받고 있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특별히 ‘안전한 공간’을 원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는 감각, 즉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에게 비난받거나, 언어 혹은 물리적 폭력에 노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나는여성주의 도서관 랄라>를 만들면서 우리가 처음으로 가졌던 공간에 대한 감각은 이것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여성이라서 소외되거나 폭력을 당하지 않을 물리적 안전이 확보된 공간, 더 나아가서는 ‘나’로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 내가 누구인지 탐색하고 말할 수 있는 공간, 그러한 ‘나’들, 우리들의 목소리가 드러나고 모여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말하자면 그곳은 장소라는 공간을 바탕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레즈비언이라고, 무성애자라고, 범성애자라고, 트렌스젠더라고 말해도 괜찮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지지해 줄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우리에게 남은 공간>에 나오는 다양한 레즈비언 공간들을 보면서 화면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조금만 상상하면 눈앞에 그려지는, 그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온 힘으로 살아온 나이 든 퀴어 여성들, 그 공간에 와서 삶의 활력과 힘을 얻어가는 젊은 퀴어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뭉클 다가왔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또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공간을 살려내는 사람들, 저마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 공간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한국에도 그런 공간이 지역마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그려보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공간들이 많아지는 것, 안전지대의 범위가 확장되어 언제 어디서는 그렇게 안전하게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희망 아닐까.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레즈비언 공간 ‘에스페란사’의 우리 말 의미가 그래서 ‘희망’이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고 우리는 오늘도 랄라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부파
┃인천여성회 활동가로서 성평등 감수성교육으로 성평등 문화확산을 도모하고 있고, 신나는여성주의도서관 랄라를 운영하고 있다. 모든 생명이 자기다운 모습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여성주의 타로교육과 상담, 마음챙김 요가 등을 안내하고 있다.



인권해설

공간과 모임이 만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

동성애자로 성적지향을 받아들이고 25년이란 시간을 인천에서 지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퀴어의 공간(인천에 한해)이라고 해봐야 사실 남성 동성애자를 위한 공간뿐이다. 2000년대 초반 인천, 특히 부평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게이를 위한 공간들이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부평은 서울의 종로, 이태원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게이 술집들이 있는 지역이라고 들었다. 지금도 다양한 관련 업소들이 부평에 있지만, 예전보다는 줄었을 것이다. 인천에 사람들이 예전보다 덜 모이는 이유가 서울까지 교통이 편리해졌고 점점 더 편리해질 것이라는 점, 스마트 폰의 출현과 데이팅 앱으로 인해 사람을 만날 방법이 더욱 다양해진 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게이들이 모이는 외적인 형태로서의 공간 이외에도 다양한 모임들이 있다. 인천에 있는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중에는 오래전부터 활동해온 곳도 있고, 내가 소속되어 있는 정의당 인천 성소수자위원회는 몇 년 되지는 않지만 당사자들과 지지자들을 모으고 인천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연령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SNS 친목 모임들도 존재하고 운동을 함께 하는 오프라인 모임도 있다고 들었다. 그동안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성소수자의 존재가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언급되기 시작하면서 인천에도 성소수자가 살고 있고, 이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만연한지 사람들이 깨닫게 된 계기였다는 점에서 모임으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우리에게 남은 공간>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 퀴어들의 공간은 더욱 열악하다. 인천에 레즈비언들을 위한 공간은 내가 알기로 현재 없다고 들었다. 미국에서 여성 퀴어들의 공간이 젠트리피케이션, 부동산 금융 등의 원인으로 점점 사라짐에도 그 공간이 갖는 의미와 그곳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인천에 사는 퀴어 당사자로서 그리고 성소수자들도 지역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엄연한 주민이고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당사자로서 퀴어들의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공간이란 외적인 형태의 공간과 모임이 만나는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적인 형태로서의 공간이 일주일 동안 일상에서 자신을 숨기고 살다 그 공간 안에서는 그나마 자신을 드러내며 함께 술을 마시는 유흥의 공간, 성적 욕망을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공간 등이 있다고 하면, 대학모임, SNS 기반 연령별 친목 모임, 운동을 목적으로 한 모임,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는 이런 다양한 모임, 즉 외적인 형태의 공간과 다양한 모임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어떻게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라 생각한다. 그 ‘공동체’는 퀴어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까지 포괄하는 안전한 공동체임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임신규 정의당인천시당성소수자위원회
┃정의당인천시당성소수자위원회는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 인천지역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지역 성소수자 의제에 대응하고, 당사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2017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인권해설

공간은 때로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일상에서 감각하기 어려운 소수자의 존재는, 공간을 만나 그 형태를 갖추어 나가기도 한다. 서울역 앞 거리는 홈리스의 존재를 증명하고 어딘가의 판자촌은 빈곤층의 존재를 증명한다. 종로와 이태원의 성소수자 바, 퀴어문화축제도 성소수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공간이 된다. 일상적인 공간은 소수자들에게 배타적으로 존재하기도 하며, 그 공간에 소수자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종종 잊힌다.

누군가의 어떠한 공간은 소수자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혐오 시설’처럼 분류되기도 한다. 인천의 어떤 공간은 이주노동자가 밀집하는 공간이란 이유로 일종의 혐오 시설처럼 여겨진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홈리스의 거리는 그들이 몸 누이는 자리마다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박히기도 했다. 공간이 공간으로만 남지 않고 우리의 존재를 형상화한다는 맥락이 있기에, 공간에 대한 혐오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맥을 같이 한다.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할 때 우리는 “서울도 있는데 왜 인천에서도 퀴어문화축제를 해?”라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우리가 찾아낸 답은 ‘우리가 나고 자라고 사는 인천에서도 우리의 공간을 만들어내자’는 것이었다. 공간은 우리의 존재를 의미하기도 하기에, 서울은 아무리 가까워도 우리가 사는 터전은 아니기에, 우리의 터전에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고 정착시키기 위해 준비한다는 답을 찾아내었다.
인천에 이미 성소수자 바가 있지만 성소수자들은 인천 사람들에게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 곳곳에서 들린 “집에 가”라는 말은 우리가 인천에 존재한다는 것을 지우며, 같은 공간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남아,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하면서. 우리의 존재를 알림과 동시에 서로 확인하고, 맞닿고, 만나고, 연결되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간을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인천에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평범한 일상에 어떠한 균열을 낼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에게 남은 공간은 얼마나 되며 어떤 공간일까? 소수자를 포용하지 않는 어떠한 공간들이 우리의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그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균열 내야 한다. 혐오와 코로나19 상황이 맞물리며 성소수자의 공간은 더욱 쉬이 사그라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연결되고, 더 끈끈한 사랑과 우애, 연대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맞이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공간들은 우리가 모두 함께 향유하고 살아가고 있는 공간들이므로, 작게나마 모여낸 우리의 공간들이 어떠한 균열이 되어 우리가 일상의 공간에도 이질감 없이 스며들 수 있도록, 우리의 공간들이 굳건히 그리고 당당히 남아있기를 희망한다.


혜연 인천퀴어문화축제 활동가
┃인천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여러 사람과 함께 빚어내고 있습니다. 혐오가 넘실거리는 인천에서 굳건히 오픈리 퀴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와 나의 친구들의 삶과 생명, 존재 자체가 투쟁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